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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57화 (57/237)

57화

<암시장 (1)>

“제길, 제길!”

콰자창!

값비싼 와인 병이 바닥에 부딪혀 산산조각 났다.

안에 있던 내용물이 무질서하게 바닥을 어지럽혔지만, 그 상황을 만든 장본인은 전혀 개의치 않아 했다.

“대체 어떻게 라데우스의 놈들이 냄새를 맡고 올 수 있었던 게야!”

그렌 타운의 시장, 켈릭스 라구엘의 튀어나온 배가 거칠게 요동쳤다.

엘림을 접대할 때와는 완전히 상반된 표정.

시장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계속해서 화를 표출했다.

“흑마법사들이 이 도시에 자리 잡은 지가 벌써 3년이야! 지금까지 걸리지 않고 잘 있었는데 대체 어디서 정보가 새어 나간 거야!”

그런 시장의 화를 정면에서 마주한 비서, 고바가 입을 열었다.

“저희 쪽의 정보 통제는 완벽했습니다, 시장님. 보안을 위해 불필요한 피도 많이 흘렸다는 걸 아시지 않습니까?”

“그걸 아니까 하는 소리야!”

시장은 자신의 의자에 거칠게 몸을 맡기며 말했다.

“아무래도 흑마법사 쪽에서 정보가 새어 나가지 않은 이상,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어.”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뭐가 됐든 이미 일은 벌어졌고, 내후년이면 이제 또 시장 선거야! 이런 상황에서 라데우스 같은 놈들에게 빌미를 줘선 절대로 안 돼. 알아듣겠나?”

“물론입니다.”

그렌 타운에서 켈릭스 라구엘의 권력과 위상은 절대적이다.

라데우스와 케프렌, 두 가문에게서 중립이란 위치를 얻어내고, 촌동네에 불과했던 이곳을 대도시로 발전시킨 건 어디까지나 시장의 뛰어난 수완 덕분이었다.

그 발전의 결과가 비록 대륙에서 손에 꼽히는 범죄 대도시긴 하지만 말이다.

“다만 시장님, 암시장의 물건들을 숨긴다고 해도 워낙 그 규모가 커 시간이 걸립니다. 지금도 계속 서두르고는 있지만 앞으로 족히 하루는 더 필요할 겁니다.”

비서의 걱정에 시장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내저었다.

“흥! 걱정할 거 없다. 라데우스란 가문이 얼마나 엉덩이가 무거운 작자들인데? 이곳까지 불러 잔뜩 먹이고 대접했으니 움직이는 건 내일부터일 거다.”

“그렇게 되면 좋겠습니다만…….”

“어쨌든 고바, 네놈은 증거인멸은 물론, 암시장이 피해를 입지 않게 최대한 단속을 잘해! 아무리 용의선상에서 벗어나도 암시장이 박살나면 그게 그거니까.”

“명심하겠습니다, 시장님!”

그렌 타운의 암시장은 시장이 지닌 권력의 원천이다.

시장이란 양지의 권력에 암시장에서 비롯된 재력. 이 두 가지가 합쳐져 그렌 타운의 범죄자들이 시장에게 꼼짝도 못 하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흑마법사 놈들에게 확실하게 전해. 라데우스 놈들이 물러나기까진 가능하면 얌전히 지내라고.”

그 말을 들은 비서가 불안감을 내비쳤다.

“그자들이 말을 들을까요? 오히려 적극적으로 라데우스 놈들을 죽이려 들 텐데요?”

그 말에 시장은 자신감 있게 근거를 늘어놓았다.

“그놈들도 여기까지 와서 괜히 놈들을 자극해 기반을 날리는 짓은 하지 않을 거다. 3년이야! 놈들이 이곳에 자리 잡고 실험을 한 햇수가!”

그 실험이 뭔지는 몰라도 대충 완성 단계에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괜히 라데우스를 자극해 모든 걸 망칠 정도로 어리석진 않을 것이다.

“예.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시장님.”

“그래. 수고하고. 나가 봐.”

비서인 고바가 나가고 시장은 그제야 안정을 되찾았다.

“후우, 괜찮을 거다. 만에 하나의 일이 일어나도 그 정도 놈들이면 충분히 죽여서 은폐할 수 있어.”

마치 자신을 세뇌하듯, 시장은 그 말을 끊임없이 되뇌며 스스로를 안정시켰다.

* * *

스스스스!

클로이아와 새롭게 개발한 마나 연공법이 만들어 낸 기운이 네르하의 전신을 일주천했다.

‘제법 괜찮군.’

네르하는 천천히 눈을 반개하며 운기조식을 마쳤다.

마나 블래스트로 습득한 마나는 이제 완전히 자신의 것이 되었고, 충분히 한두 번 정도는 강기를 꺼내도 지치지 않을 정도로 양과 질적인 면에서 안정을 되찾았다.

‘하지만 뭔가 정체된 느낌이야.’

네르하는 자신의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마법과 무공의 융합.

사실, 지금까진 압도적인 무공의 깨달음으로 모자란 마법적인 지식을 보충하는 식으로 벽을 뚫어 왔지만.

그것도 지금에 있어선 슬슬 한계에 도달하고 있었다.

‘마법에 대한 진도가 너무 더디다.’

마법은 생전 접하는 새로운 학문이다.

그리고 무공보다 훨씬 그 분야가 넓고 다양해서 ‘어떤 분야’를 무공에 접목하느냐에 따라 결과물이 천지 차이로 나게 된다.

‘블레이즈 피스트나 다른 것들은 대부분 기초적인 엘리멘탈 마법을 응용해 만들었을 뿐이지, 고차원적인 마법의 묘리는 섞여 있지 않아.’

흑마법사, 주단을 끝장낸 금철유성(金鐵流星) 역시 마찬가지다.

기본적인 파괴력은 강기. 즉, 오러가 베이스가 되었기에 강력할 뿐 마법이란 학문이 주는 다양함과 변수 창출 능력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고유 계통을 깨달을 수밖에 없어.’

결국은 5레벨. 즉, 고유 계통을 깨달아 자신이 추구하는 마법 체계를 확립시킬 수밖에 없다.

리브라는 그걸 위해 수많은 술식들을 생도들에게 때려 박고, 그에 따라 자신만의 ‘취향’을 개화하도록 유도하지만.

“딱히 뭔가 딱 느낌이 오는 게 없단 말이지.”

아직 리브라에 들어온 지 반년도 되지 않았고, 나름 성급한 판단일 수도 있다.

하지만 네르하는 여기서 돌파구를 찾지 못하면 꽤나 긴 시간 동안 헤매야 할 것이라는 걸 직감했다.

‘돌아가면 모든 교수들을 한 번씩 찾아가 볼까?’

리브라의 교수들은 모두가 자신만의 개성이 뚜렷한 자들이니 뭐가 됐든 도움이 될 것이다.

생각을 정리한 네르하가 여관 1층으로 내려가자 그곳엔 예상했던 인물이 나타나 대기 중이었다.

“잘 쉬었나, 네르하 라데우스.”

“예. 엘림 대장님.”

“여기, 네가 포섭한 크림슨이란 조직에서 지금 막 정보가 들어왔다.”

꾸벅!

그렌 타운의 빈민가 정보 조직 크림슨의 2인자 격인 쿨리크가 네르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네르하는 씨익 웃으며 쿨리크를 치하했다.

“너희 덕분에 귀찮은 일을 면할 수 있어서 다행이야.”

“귀찮은 일이라면?”

“만약 너희가 내 제안을 거절했다면, 우린 지금쯤 이 동네 암흑가들을 모조리 박살 내면서 조직을 흡수하고 있었을 테니까.”

움찔!

쿨리크는 살짝 어깨를 떨었다.

이 말이 마냥 허세가 아니라는 것은 라데우스의 이름이 증명한다.

뭐, 네르하로선 조금 과장해서 허풍을 떤 것이었지만.

“이번 일은 너희에게 큰 기회가 될 거다.”

쿨리크는 네르하의 말에 동의했다.

“예. 저희도 그렇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시장은 분명 이 도시 내의 암흑가 다수와 연관이 있을 테고, 우리가 지금부터 일을 벌이면 그들 중 많은 수가 쓸려 나가겠지.”

“…….”

“뭐, 세이라에겐 잘 생각해 보라고 전해. 드래곤의 꼬리를 노릴 것인지, 뱀의 머리를 노릴 것인지.”

“예. 보스께 그리 전하겠습니다.”

쿨리크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고는 물러갔다.

“방금 건 무슨 소리지, 네르하 라데우스?”

일련의 대화를 모두 들은 엘림은 기묘한 표정으로 네르하를 추궁했다.

“아, 별건 아닙니다. 저놈들이 제법 능력이 되는 것 같아서 일이 끝나면 본가로 데리고 가려고요.”

그 말에 대번에 엘림과 다른 마법사들의 표정이 구겨졌다.

“너는 지금 리브라의 생도다, 네르하 라데우스.”

“물론이죠. 하지만 저들을 줍는 이가 로젤리아 라데우스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않겠습니까?”

“……!”

“전 어디까지나 리브라의 생도. 일이 끝나면 리브라로 돌아가 본분을 다할 뿐이죠. 그냥 줄만 연결해 주는 거라면 딱히 상관없지 않겠습니까?”

그냥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었지만 이런 식의 스카우트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엘림은 한숨을 내쉬며 나직하게 경고했다.

“다음번엔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네르하는 속으로 미소를 지으며 엘림을 향해 살짝 고개를 숙였다.

* * *

그렇게 저녁이 지나 늦은 밤이 되었을 때.

엘림을 비롯한 일곱 명의 마법사들은 조용히 창문을 통해 여관에서 빠져나왔다.

‘역시 이 시간대까지 감시가 붙어 있군.’

곳곳에서 느껴지는 어수룩한 인기척들.

분명 시장이 붙여 놓은 끄나풀일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은신 마법에 기척 차단까지 사용해 가며 움직이는 마법사들을 일반인이 알아차리는 건 불가능했다.

‘크림슨이 흑마법사들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고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말이야.’

워낙 은밀하게 움직이다 보니 그들 역시 흑마법사들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알지 못했다.

그나마 흑마법사들의 본거지가 빈민가엔 없다는 걸 확인한 것에 만족해야 했다.

‘암시장, 그리고 암흑가 세력들 사이에 큰 항쟁이 벌어질 때나 아주 가끔 나타난다고 했지.’

크림슨으로서도 흑마법사들의 뒤를 캐는 건 엄청난 모험일 테니 그러려니 했다.

차라리 암흑가에 세력을 넓히면 넓혔지, 흑마법사와 연관되는 건 그것보다 수십 배는 위험한 일이었으니까.

일행들은 감시를 모두 따돌리고 성공적으로 여관에서 나왔다.

그러고는 크림슨이 제공한 암시장의 위치를 향해 빠르게 내달렸다.

‘밤의 도시라 그런지 이렇게 달려도 딱히 위화감이 없군.’

새벽 2시가 넘었지만 그렌 타운의 밤은 여전히 대낮과도 같았다.

범죄 도시이니만큼 매춘, 향락 같은 것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저곳입니다.”

수십 개의 건물들이 밀집해 있는 상가.

겉으로 보기엔 정상적으로 보이는 장소였지만 저곳이야말로 이곳, 그렌 타운에서도 가장 큰 금전이 흐르는 장소였다.

“비켜. 비켜! 오늘 중으로 다 정리해야 한다!”

“따라와, 이 노예 놈들아! 늦장 부리면 내일 식사는 없어!”

이곳저곳 불이 켜져 있고 수많은 인부들이 바쁘게 ‘물건’을 나르고 있다.

“한창 정리 중이었군. 시기적절하게 잘 찾아온 모양인데?”

엘림이 그런 암시장의 모습을 보며 조소를 지었다.

노예를 다루는 모습만 없다면 참으로 단순한 노동의 현장처럼 보인다.

하지만 인부들을 자세히 뜯어보면 단순 노동자치고는 풍기는 분위기들이 상당히 살벌했다.

“게다가 마법사들까지 대기시키고 있을 줄이야.”

“이래서야 잠입은 꽤 어려울 것 같은데요?”

마법사가 있다는 말은 알람 마법이나 경보 마법 같은 것들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는 소리다.

물론 라데우스의 정예인 이들이 그것 정도에 애를 먹진 않겠지만 적어도 시간을 꽤 잡아먹을 거라는 건 확실했다.

네르하가 상황을 파악하고는 엘림에게 건의했다.

“인부들이 드문 곳을 통해 안쪽으로 파고들죠. 다행히 놈들이 복장을 통일했으니 몇 명을 제압하고 옷을 갈아입으면 될 것 같습니다.”

“뒷골목 놈들답지 않게 유니폼이라니 참 어이가 없군.”

헛웃음을 지은 엘림이었지만 그렇다고 네르하의 의견을 거부하진 않았다.

네르하의 의견에 따라 구석진 곳에서 일하는, 정확히는 농땡이를 부리는 몇몇 이들이 타깃이 되었다.

“어? 누, 누구…….”

뚜둑!

뚜두둑!

털썩!

“자, 갈아입으시죠.”

“…….”

“…….”

막 마법을 써서 인부들을 제압하려던 엘림과 마법사들은 네르하가 갑자기 팍 뛰쳐나갈 땐 제법 당황해했다.

그리고 네르하가 마법을 쓴 것보다 훨씬 조용하게 상대를 제압해 버리자 그 당황은 황당으로 뒤바뀌었다.

“대, 대체 이건?”

대번에 십여 명의 인부들이 침입자라는 말을 내뱉기도 전에 조용히 쓰러졌다.

마법을 쓴 것도 아니고, 네르하가 기사도 아닐진대 정말로 귀신에 홀린 기분이었다.

주섬주섬.

그리고 네르하의 실력을 한차례 겪어 봤던 페텔과 헤젤만만이 그런 당황스런 분위기 속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인부들의 옷을 벗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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