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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61화 (61/237)

61화

<시저 루드벡 (2)>

뜬금없이 내밀어진 제안에 네르하는 현재 상황이 어떠한지도 잊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자 말이다. 제! 자! 정식으로 내가 익힌 계파의 후계자가 될 생각이 없느냔 말이다.”

“왜 갑자기 뜬금없이 그런 말을?”

저런 제안까지 하는 걸 보면 이쪽을 해코지할 생각은 없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노인은 겉모습만큼 말 또한 직설적이고 솔직한 편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네 자질이 탐이 나서……. 내가 거두었던 제자들은 하나같이 몇 년을 버티지 못하고 전부 야반도주해 버렸지 뭐냐? 이대로라면 우리 계파는 후계자를 얻지 못하고 역사 속에 묻혀 버릴 판이야…….”

네르하는 물끄러미 노인의 몸을 바라보았다.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높은 거한에, 액면가는 일흔이 가볍게 넘어 보이는데도 전신에 우람한 근육이 알차게 박혀 있다.

스승의 모습과 인상을 보면 어떤 방식으로 제자를 육성하는지 대략적인 윤곽이 보이는 법.

‘왠지 알 것 같군.’

제자들이 도망친 이유를 말이다.

노인은 뜬금없이 텐션을 올리며 외쳤다.

“내 가르침을 받으면 너는 날개를 달 수 있다. 기초부터 다져야 할 필요도 없어! 너는 이미 기반과 자세가 준비된 만큼 그리 오랜 가르침도 필요하지 않을 게야!”

네르하는 뚱한 표정으로 답했다.

“거절합니다.”

“왜?!”

“노인장의 말은 노예를 구하는 사기꾼들의 전형적인 수법이니까요.”

중원에서 자신을 가르쳤던 사부가 그랬다.

―무공이란 티끌을 모아 태산을 쌓는 작업! 최고의 명문 대파라고 해도 무공을 날로 먹게 해 주는 방법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사부는 이렇게 강조했다.

‘내가 조금만 가르치면 넌 지금보다 훨씬 강해질 수 있어!’라고 말하는 놈들은 전부 사기꾼이다!

네르하는 그런 사부의 가르침을 철저하게 숙지하고 있었다.

“사기꾼이라니!”

노인은 네르하의 말에 진심으로 화가 난 듯했다.

“나, 시저 루드벡! 반백 년 동안 전장에서 구르면서 신뢰와 신용 하나만으로 살아남은 몸이다. 하물며 사기꾼이라니! 내 이름 다섯 자에서 진심이 느껴지지 않느냐?!”

“노인장의 이름이야 중요한 게 아니고.”

오히려 저렇게 말하니까 수상함이 더욱 배가 된다.

“약속한 보상이나 내놓으십쇼. 아니, 보상은 필요 없으니 우리가 무사히 돌아갈 수 있도록 놔주기만 하면 됩니다.”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났다.

바깥 상황이 더 나빠지기 전에 일행을 깨운 다음 후퇴해야만 했다.

“아니, 잠깐.”

네르하의 그 말에 시저의 표정이 황당하게 뒤바뀌었다.

“……너, 진짜 나 모르냐? 이름도 밝혔는데?”

“알아야 합니까?”

시저가 말문이 막힌 사이, 네르하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노인장이 대단한 실력자인 건 인정합니다. 제가 봐 온 이들 중에서도 능히 다섯 손가락 안에 충분히 들어가겠죠.”

“그치! 그렇지!”

시저는 나이도 잊고 순수하게 기뻐했다.

네르하의 인정이 그의 기분을 꽤나 좋게 만든 모양이었다.

그러나 뒤이어 이어진 네르하의 말에 시저의 표정이 구겨졌다.

“하지만 여전히 노인장의 신원은 불분명한 데다, 무엇보다 나는 라데우스와 관련된 자가 아니라면 가르침을 받을 수 없습니다.”

“자, 잠깐만!”

“노인장이 라데우스와 적대 관계라면 특히…….”

“아, 아니, 적대 관계는 아니다. 다만…….”

뭔가 골치 아픈 기억이 떠올랐는지 시저는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네르하로서도 마지막 말은 한번 반응을 떠보기 위해 내뱉은 것이다.

이미 상대는 이쪽이 라데우스 혈족이라는 걸 알고 있었고, 그럼에도 별다른 적의를 보이지 않았으니까.

뭔가 변명거리를 찾던 시저는 무언가를 깨달은 듯 손바닥을 탁! 치며 주제를 돌렸다.

“아, 맞다! 네놈. 라데우스의 직계이면서도 라데우스의 마나 연공법을 익히지 않았더구나.”

“……!”

“아무리 그래도 직계에게 연공법을 안 알려 주진 않았을 것 같고, 네 움직임을 보면 애초에 길을 다르게 잡은 것 같은데… 내 말이 틀리냐?”

“……맞습니다.”

세부적인 부분은 틀리지만 귀찮기도 하고 굳이 정정해 줄 필요성도 없었다.

노인이 흐뭇한 표정으로 네르하를 칭찬했다.

“잘했다. 네가 스스로 깨달은 건지, 아니면 누가 가르쳐 준 건지는 몰라도 무투와 마법을 병행하는 것에 있어서 라데우스의 연공법은 그리 좋은 게 아니야.”

“노인장은 라데우스 가문의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어찌 그리 잘 아십니까?”

네르하의 추궁에 노인은 살짝 멋쩍은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아니, 뭐, 마법사로 살아가는 이상 그짝 놈들과 완전히 척을 질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말이지. 아, 아무튼!”

노인이 살짝 헛기침을 했다.

저런 식으로 말을 얼버무리는 모습이 상당히 수상쩍다.

“아무튼 라데우스의 마나 연공법이 고점으로 갈수록 진가가 발휘되는 최상급의 심법임은 맞지만, 장기간 몸을 움직이면서 싸우는 데 특화된 것은 아니지. 그래서 하는 말인데.”

노인이 은근한 눈빛으로 네르하와 시선을 마주했다.

“나라면 네게 도움이 돼 줄 수 있다.”

“…….”

“아무래도 네 수법은 독학으로 창안한 것 같은데, 나름 고차원적인 무술의 기법이 섞여 있긴 해도 마법적인 부분에서는 한계에 직면한 게 너무나 잘 보이더구나.”

꿈틀!

네르하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섣부른 단정이 아닐지.”

“단정은 개뿔이.”

네르하의 미약한 몸부림을 노인은 통렬하게 비웃었다.

“공격을 흘릴 때, 주먹을 내지를 때, 발재간을 부릴 때. 그때, 네가 섞어 쓴 마법은 전부 기초적인 사대 원소 수준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더군. 마지막 일격 역시 파괴력의 대부분은 오러에 의존했고.”

“…….”

“5레벨에만 이르러도 훨씬 다양한 응용이 가능할 텐데 그게 안 된다는 건 네 마법적인 성취가 육체 능력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시저의 말이 네르하의 폐부를 쑤셨다.

“전투 당시 보인 모습을 보면 단순한 숙련도의 부족보단 경지가 벽에 다다랐다고 보는 게 맞겠지. 어때? 내 말이 틀리냐?”

“…….”

네르하는 당장 대답하지 않았다. 한참 후에야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었다.

“고견은 잘 들었습니다. 그럼 이만.”

“아니 왜에에에!”

네르하를 붙잡는 시저의 표정은 의외로 절박해 보였다.

아까 보였던 유쾌한 모습은 거의 보이질 않았다.

“내 제자가 되면 네 약점 정도는 금방 고칠 수 있다니까? 너라면 서른 이전에 7레벨에 도달하는 것도 꿈은 아니다!”

시저의 말은 나름 사실을 담고 있었다.

시저의 실력, 그리고 그가 알아본 네르하의 재능이 결합된다면 충분히 가능하니까.

하지만 네르하에겐 이 제안을 받아들여선 안 될 이유가 있었다.

“노인장…… 아니, 어르신과 라데우스 가문은 그다지 좋은 관계가 아닌 모양이더군요.”

“아, 그게…….”

시저의 표정이 다시금 변했다.

방금 전 갑자기 말을 돌린 걸 보면 거의 무조건이다. 악연은 아니더라도 뭔가 껄끄러운 사이는 분명할 거다.

네르하는 시저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제 상황상 가문 외부의 마법사를 함부로 스승으로 모셨다간 불편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어르신.”

시저의 실력은 물론 놀랍고 아깝지만, 그렇다고 대체불가능한 건 아니다.

아무리 리브라에 있어도 지금 네르하는 어디까지나 계승 전쟁을 준비해야 하는 입장.

아직 육체가 덜 완성된 상황에서 가문과 사이가 틀어진 마법사를 함부로 스승으로 모셨다간, 다른 이들에게 어떤 꼬투리를 잡힐지 몰랐다.

“그, 그게 말이다.”

시저는 뭔가 덩치에 걸맞지 않게 우물쭈물하더니, 생각도 못 한 비사를 툭 내뱉고 말았다.

“내가 나중에 라데우스와 다시 얽히게 된다면 사마자(四魔子)가 되겠다는 약속을 네 가주와 했었거든. 그래서 가능하면 너희 가문과 얽히지 않으려던 것이다.”

“……!”

그 말을 들은 네르하의 눈이 크게 떠졌다.

저 시저라는 노인장이 말하는 것은 분명 삼마자(三魔子)라는 외부에서 초빙된 라데우스의 최상위 원로 3인을 일컫는 말일 것이다.

그 경지가 워낙 대단하고 위대해 그 라데우스 가문조차도 적대보단 포섭을 우선시했을 정도의 실력자들.

지금 눈앞의 시저라는 노인은 자신이 그 삼마자와 동격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었다.

“어르신은 꽤 대단한 거물이셨군요.”

“그걸 이제야 알아보다니 너 역시 참 대단하구나.”

이놈, 진짜 라데우스의 직계가 맞는 건가 싶을 정도로 외부 사정에 무지한 녀석이었다.

“그래서 내 제자가 되겠느냐? 진짜 솔직히 말해서 너 같은 놈은 처음이다. 내가 이름을 밝히고 제자를 구하면 지원자로 도시 하나 정도는 빙 두르고도 남음이 있는데 말이야!”

“다 도망갔다고 하셨잖습니까?”

“그, 그러니까 말이다. 내 수련을 끝까지 버틸 수 있는 자질이 흔치 않으니 말이지.”

네르하의 팩트에 시저의 고개가 다시 돌아갔다.

분명 시저에겐 수많은 제자들이 존재했다.

지금은 단 한 명도 없으니 문제지만.

“전 리브라의 생도입니다. 노인장의 제자가 된다 해도 리브라에서 나갈 생각은 없습니다. 이건 제 목숨과 관련된 문제이기도 하니까요.”

“으음!”

“노인장께서 하신 라데우스 가문과 얽히지 않겠다는 말씀과 절 제자로 받아들이시겠다는 말씀은 양립할 수가 없습니다. 아쉽지만 거절…….”

“그건 딱히 상관없다만?”

“네?”

“네 말대로라면, 리브라에서 나가지 않는다면 내 제자가 될 수도 있다는 말 아니더냐?”

씨익!

시저가 은근한 표정으로 네르하의 귓가에 속삭였다.

“안 걸리면 되는 문제 아니더냐?”

“…….”

네르하의 황당한 시선을 접한 시저가 어깨를 펴며 당당하게 말했다.

“설사 리브라의 학장인 루트비히 놈이라 해도 내가 작정하고 숨어들면 절대 알아차리지 못한다. 리브라라는 기관은 너에게 가르침을 주는 데 딱히 장애물이 되지 못한다는 거지.”

“…….”

세상에.

전생의 신무조도 제법 막 나간다고 자부하는 성격이긴 했는데.

이 노인장 역시 그에 뒤지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가 분명했다.

시저는 어느새 심유한 눈으로 네르하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술과 마법의 조화. 그것이 네가 추구하는 길.”

“맞습니다.”

“비록 내가 처음부터 그 길을 걸은 것은 아니다만 적어도 너보다 앞선 곳에서 달리고 있는 선배라고는 부를 수 있다.”

시저 루드벡은 분명 마법의 위계를 완성시킨 뒤, 무술의 가능성을 알아차리고 뒤늦게 융합을 시도한 자가 분명했다.

비록 선후가 다르긴 해도 지금의 그는 충분히 네르하를 앞으로 이끌어 줄 수 있는 역량과 자격이 있는 사내였다.

“그러니 너에게 진심으로 권유하마. 부디 우리 ‘벨카서스’ 학파의 지식을 이어받아 그 완성형을 만들어 줄 수 있겠느냐? 그 완성형은 분명 네가 추구하는 그 길과 같은 방향일 것이라 확신한단다.”

간절함, 절박함, 그리고 자신감.

이 세 가지 감정이 모두 느껴지는 시저의 말에 네르하는 한동안 심각하게 고민했다.

“지금 당장은 어렵습니다.”

“……그럼?”

“리브라는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말. 그 말을 실천해주십시오. 그렇다면 어르신을 제 스승으로 모시겠습니다.”

시저의 표정에 화색이 돌았다.

“……! 정말이냐?”

“그리 간단하진 않을 겁니다. 단순히 숨어드는 것만으로는 끝나지 않을 테니까요.”

“당연하지! 내 학장 녀석에게 비밀 교수 자리를 얻어내는 한이 있더라도 가겠다!”

정교수나 조교수도 아니고 비밀 교수라는 건 처음 들어 본다.

시저는 네르하의 말을 이미 승낙으로 알아들었는지 껄껄 웃으면서 어깨를 두들겼다.

“잘 부탁한다, 제자야!”

그러니까 아직 제자가 아니라니까 그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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