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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64화 (64/237)

64화

<시장을 붙잡아라! (1)>

사실, 마신강림이란 계획에 대한 단초를 제공한 것은 마족도 다른 마법사도 아닌 바로 그 초마인이란 존재였다.

당시에 그 초마인의 어떤 점에서 확신했는지는 몰라도 그 시대 사람들은 초마인을 마족이 아닌 인간이라고 확실하게 못을 박았다.

수십만의 군세가 있어야 가능한 일을 혼자서 해내는 그 압도적인 강함.

당시, 대륙의 모든 강자들이 자존심을 버리고 협공해 간신히 물리쳤다는 그 초마인은 무려 500년이 흐른 지금에 와서도 대륙의 전설로 회자되고 있었다.

“그 망할 흑마법사 놈들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군요.”

마하타는 물론 두 선배 역시 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대장이 보기엔 어느 정도까지 위력을 발휘할 것이라 보십니까?”

“으음…….”

마신강림이란 프로젝트의 기준점은 바로 그 초마인이었다.

손짓 한 번에 대마법사라 불리는 존재가 간단히 나가떨어지고, 발길질 한 번으로 일어난 지진파에 수만의 군대가 몰살당했다는 기록은 지금까지도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흑마법사를 포함한 절대다수의 마법사들은 그 초마인이 스스로 마기를 단련해 경지에 이른 것이 아니라 마왕이든 누구든 마계의 누군가에게서 힘을 받았다고 확신에 가까운 추측을 했다.

그의 힘은 일개 인간이 보이기엔 너무나도 초월적인 신위였던 것이다.

흑마법사들은 그 초마인의 초월적인 힘에 매료되어 그의 부하가 되기를 자처했지만 철저한 독존(獨存)을 원하는 초마인의 성향은 오히려 흑마법사들까지 적대하며 큰 피해를 입히고 말았다.

“자세한 것은 확신할 수는 없다. 다만…….”

“다만?”

“아주 잠깐이나마 느꼈던 힘의 편린을 고려하면 못해도 상급 마족 수준의 영혼을 담아내기에 충분할 거라는 것이다.”

“……!”

초마인에게 큰 피해를 입고도 근성의 흑마법사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초마인의 힘을 재현하고자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고, 백 수십 년이 넘는 근성의 노력 끝에 다른 방향이 되었지만 어느 정도 성과를 내는 데 성공했다.

그것이 바로 마신강림.

마기로 물든 육체에 마족의 영혼을 초혼하여 일반적인 강림 형태보다 열 배는 강한 힘을 발휘하게 하는 판데모니움 네크로맨서들의 최고 걸작이었다.

마하타가 기함을 하며 외쳤다.

“상급 마족이라니! 지상에 자신의 ‘영역’을 구축할 수 있는 귀족 계급을 뜻하는 것 아닙니까!”

“그렇지. 만약 이곳에 마족이 나타나고 그가 영지로 삼게 되면…… 아주 골치 아픈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마족의 무서운 점은 개개인의 강대한 무력도 무력이지만 작위를 가진 상급 마족 이상의 존재들이 펼칠 수 있는 마계영역(魔界靈域)에 있었다.

지상의 대지를 임시로 마계화하여 자신의 영지에 있는 수하들을 아주 손쉽게 소환해 군대로 만들 수 있는 권능이었다.

엘림이 입을 가리며 중얼거렸다.

“최악의 경우, 이 도시를 지도에서 지워 버려야 할지도 모른다.”

“……!”

“마족들이 펼치는 영역의 가장 성가신 점은 그 대지를 인간이 살 수 없는 땅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거다. 그걸 정화하려면 들인 힘의 수십 배 이상 가는 노력이 필요하지.”

자기 영지도 아니고 다른 가문과의 충돌 때문에 놔둔 중립 지역을 라데우스나 케프렌이 적극적으로 정화하려 들까?

네르하는 그 가정엔 회의적이었다.

‘차라리 지워 버리는 게 서로에겐 더 싸게 먹힐 수도 있겠지.’

권력자와 일반인의 계산법은 다르다.

그걸 알기에 네르하는 상황이 이대로 흘러가면 이 도시의 죄없는(?) 시민들이 마구잡이로 희생될 것이라 보았다.

‘내가 선인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버려 두는 것도 영 찜찜하군.’

더군다나 이 도시는 물론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기반이 취약한 네르하가 자신만의 세력을 일구기에 상당히 적합한 곳이었다.

“엘림 대장님.”

“말해라, 네르하 라데우스.”

생각을 정리한 네르하는 자신의 의문을 엘림에게 내비쳤다.

“만약 본가에 지원을 요청하면 늦기 전에 지원군이 이쪽에 도착할 수 있겠습니까?”

“……그건.”

이곳에 도달하기까지만 해도 마차로 열흘이나 걸렸다.

지원이야 마법으로 바로 할 수 있더라도 전력이 편성되고 여기까지 도착하기까진 적어도 일주일은 봐야 한다고 해도 좋았다.

엘림은 침음을 흘리며 답했다.

“어렵군. 솔직한 내 의견을 말한다면 조금 늦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조금 늦더라도 놈들을 확실하게 처리하려면 이 방법밖엔 없다.”

“방법이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응?”

“마하타 님.”

네르하가 고개를 돌려 마하타를 바라보았다.

네르하의 눈빛을 이해한 마하타가 활짝 펴진 낯으로 품속에서 장부 몇 개를 꺼내 엘림에게 내밀었다.

“이건?”

“그렌 타운 시장, 켈릭스 라구엘이 제국법에서 불법으로 지정한 노예 시장 및 암시장을 운영했다는 관련 증명이 담긴 장부입니다.”

“호오!”

엘림은 제법 놀란 표정으로 장부를 살짝 훑어보았다. 온갖 숫자와 목록의 나열을 본 엘림은 부하에게 진위 여부를 확인하라고 넘기고는 엄한 표정으로 마하타를 노려보았다.

“위험한 짓을 했군.”

움찔!

“내가 처음 내린 명령은 어디까지나 퇴각이었다. 일이 잘 풀렸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저 두 녀석이 저지른 일처럼 임무 자체가 위험해질 뻔했다.”

마하타의 표정이 대번에 시무룩해졌다.

하지만 네르하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는데.

당연히 엘림의 입에서 다음으로 나올 말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잘했다.”

“……!”

“임무에 실패했다면 어리석은 만용이 되었겠지만 성공한 이상 과감한 결단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 이게 진본이라면 어지간한 임무 하나를 단독으로 성공시킨 공이 되겠군.”

“대, 대장님!”

네르하가 겪은 엘림은 부하의 공을 자신의 앞으로 돌리는 짓은 하지 않는 자였다.

“다만 이 장부가 지닌 가치는 이 임무를 무사히 완수했을 때 비로소 빛을 발한다. 네르하 라데우스, 네가 그런 생각도 없이 말하진 않았으리라 보는데?”

“물론입니다. 이 장부는 단순히 시장을 압박해 굴복시키는 용도로만 쓰일 뿐이죠.”

네르하의 목소리가 살짝 낮아졌다.

“이 근방에 케프렌의 기사들이 있습니다.”

“뭐? 케프렌?!”

“네. 바로 저희와 협상을 했던 그자들이죠.”

네르하는 시장 인근을 습격한 기사들의 정체와 목적,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한 상황 등을 적당히 각색해서 엘림에게 말해 주었다.

“케프렌과의 연합이라, 내키진 않군.”

“비록 선배님들께서 최정예의 전투 마법사라고는 하지만 전위(前衛)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위력엔 상당히 차이가 난다고 봅니다.”

어떻게 보면 주제넘은 말일지도 모르지만 네르하의 말엔 틀린 게 없었다.

네르하가 추구하는 전투 마법사와 라데우스에서 육성한 전투 마법사는 그 결이 다르다.

라데우스의 전투 마법사는 일반적인 육체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만큼 당연히 전위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위력 차이가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었다.

“마나를 덧씌울 수 있는 기사 열두 명. 이들과의 연합이라면 늦기 전에 흑마법사들과 충분히 결판을 낼 수 있지 않을까요?”

“확실히 상대측에 7레벨에 달하는 자가 있다고는 해도 그만한 기사 전력이 함께라면 일이 쉬워지겠지.”

가능성이 있다 못해 충분하다.

“케프렌이 그 일을 받아들인다고 확언을 했나?”

“아침까지 답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만약 그들이 찾아온다면 우리와의 연합을 수락했다고 봐도 좋겠죠.”

“으음!”

“본가의 지원 없이 이 일을 마무리 지을 수 있다면 설사 케프렌의 공조가 있다고는 해도 공의 크기가 훨씬 커집니다. 본가의 자원을 사용한 게 아니니까요.”

그 말에 엘림은 상당히 혹한 표정이었다.

마하타 정도는 아니더라도 엘림 역시 공을 세워 출세를 원하는 일반인이다.

네르하의 말대로 이 일을 본가의 지원 없이 해결할 수 있다면 어지간한 A급 임무 몇 개를 해결하는 것보다 훨씬 큰 공을 세우는 게 가능했다.

“그렇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이 오겠군.”

말의 뉘앙스로 보아 엘림은 이미 마음을 굳힌 듯했다.

“무, 물론! 단순히 공을 탐해 이런 선택을 한 것이 아니다. 네르하 라데우스, 네 말처럼 도시의 피해가 커지기 전에 빠르게 일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네, 네. 누가 뭐랬습니까?

마치 주변의 시선이 그렇게 말하고 있는 듯하여 엘림은 살짝 빨개진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 * *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아녜스가 기사들을 이끌고 여관으로 합류했다.

다행히 휘하 기사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는지 표정은 그리 좋진 않아도 나름 납득한 기색이 보였다.

“아네시스 케프렌입니다.”

“엘림이오. 특수작전대 아크의 분대장이지.”

네르하가 자신의 위치를 어느 정도 설명해 준 덕에 아녜스는 그제야 엘림과의 대화에서 물꼬를 틀 수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대들에게 기대하고 있는 역할은 하나뿐이오. 우리가 마법을 쓸 수 있을 때까지 버텨 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

“글쎄요? 당신들이 멍청하게 캐스팅이나 하고 있을 동안 우리들이 흑마법사인지 뭔지 모를 놈들을 싹 쓸어버리고 있을 것 같습니다만.”

“…….”

“…….”

아무리 이해의 일치에 따른 합동작전이라고 해도 라데우스와 케프렌의 사이는 절대 좋을 수가 없었다.

대번에 양측에서 곱지 않은 눈으로 서로를 노려보기 시작했고, 어색한 침묵이 장내를 감쌌다.

“거기까지만 하시죠.”

그 분위기를 환기한 것은 네르하였다.

“이런 식으로 감정의 골을 파내다간 작전 중에 무슨 일이 터져도 이상할 게 없습니다. 임무 실패, 혹은 막대한 희생이 일어나는 일은… 서로 바라지 않겠죠?”

“으음.”

“뭐, 그렇죠.”

엘림과 아녜스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마지못해 고개를 주억거렸다.

“엘림 대장님, 작전을 말씀해 주시지요.”

“알겠다.”

엘림 역시 베테랑인지라 불편했던 감정은 쏙 집어넣고 천천히 작전의 개요를 말하기 시작했다.

“일단 흑마법사들의 본진으로 쳐들어가기 전에 시장 관저를 제압해야 할 필요가 있소.”

“어째서죠?”

“시장이 흑마법사와 거래하고 있다곤 하나 완전히 손을 잡은 것은 아니오. 그를 제압해 도시의 자경단을 움직여 흑마법사들의 퇴로를 끊을 필요가 있소.”

흑마법사들 이상으로 암흑가에 거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게 시장이다.

아니, 어쩌면 흑마법사들에게 암흑가의 지하 은신처를 제공해 준 것이 시장 본인일지도 모르지.

“또한 일단은 만약의 사태가 벌어졌을 때, 시민들을 대피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건 시장이오.”

“타당하군요. 다만…….”

아녜스는 날카로운 눈으로 이 작전의 허점을 짚었다.

“시장 관저를 제압하는 건 저희들만으로는 힘든 일입니다. 실력을 떠나 절대적인 숫자의 문제죠.”

시장 관저에는 못해도 백 단위의 병력이 지키고 있다.

그 정도는 되어야 이 도시에서 충분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소란을 피우면 무조건적으로 흑마법사들이 눈치챌 겁니다. 그러면 기습의 이점이 사라지겠죠.”

“그에 관해선 해결 방법이 있습니다.”

엘림의 시선이 네르하에게로 향했다.

네르하는 고개를 끄덕이곤 구석에서 대기 중이던 한 외팔이 장년인에게 손짓을 했다.

“이자는?”

나름 중후한 인상이었다. 다만 마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라데우스의 인간은 아닌 듯싶었다.

“쿨리크라고 합니다. 크림슨이라는, 이곳 빈민가의 정보 조직에 속해 있습니다. 지금은 네르하 라데우스 님을 섬기고 있죠.”

“정보 조직!”

아녜스는 눈을 부릅떴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즐기며 쿨리크는 자신 있게 품에서 지도 한 장을 꺼내었다.

“시장에게 향하는 직통 루트를 알려드리죠.”

“대, 대체 언제?”

아녜스는 불신감을 온몸으로 표현하며 네르하를 직시했다.

자신들은 지난 며칠 동안 뒤져 봐도 실마리를 찾지 못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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