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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65화 (65/237)

65화

<시장을 붙잡아라! (2)>

결국 크림슨은 네르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세이라는 생각보다 야심이 있는 여인이었는지 단순히 사업장을 얻는 것에 더해 꽤나 구체적인 요구 사항을 네르하에게 전달해 왔다.

그리고 네르하가 요구 사항을 수락함으로써, 크림슨은 정식으로 네르하의 휘하에 들어오게 되었다.

“우, 우리가 찾을 때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는데…….”

노예 시장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아녜스와 기사들은 이 바닥에서 정보 조직이란 곳을 찾기 위해 며칠 동안 생고생을 했었다.

“당연하지.”

네르하는 한심하다는 시선을 아녜스에게 보내 주었다.

“그렇게 중무장을 하고 단체로 돌아다니는데 이놈들이 감히 너희들 눈앞에 나타날 것 같아?”

“그, 그래도 나름 숨기고 혼자 돌아다니는 척했는데…….”

“그래서 저 선배 둘을 낚았지. 하지만 그게 현지인들에게도 통할까?”

“…….”

아무리 잘 숨어도 아예 몸을 투명하게 하지 않는 이상 걸릴 수밖에 없다.

검기를 형성할 수 있는 기사 두어 명만 있어도 저격을 포함해 크림슨이 설치한 함정은 단 하나도 통하지 않는다. 몰살당하지 않으면 다행이지.

아예 네르하처럼 만만한 숫자로 돌아다니지 않는 이상, 딱 봐도 저렇게 흉악해 보이는 놈들에게 부딪치는 건 자살행위인 것이다.

아녜스는 입을 비죽이며 쿨리크를 노려보았다.

“신기하네요. 이 도시에서 시장을 등질 정도면 아예 저들을 거두겠다는 소린데, 저들에게 그럴 만한 가치가 있나요?”

쿨리크 역시 나름 아녜스와 기사들의 알고 있는 만큼 어깨를 으쓱하며 시선을 피했다.

“그건 네가 걱정할 바가 아니지. 내 판단하에 자의적으로 거두는 거니까.”

“…….”

“뭐, 어차피 너희 목적이야 전부 달성한 것 아니냐? 그냥 넘어가자고.”

“…….”

아녜스는 뭔가 패배한 자의 얼굴로 네르하를 노려보았다.

볼을 살짝 부풀리며 째려보는 모습에서 확실히 루시아가 겹쳐져 보이는 게 신기했다.

결국 아녜스는 한숨을 내쉬며 패배를 선언했다.

“후우, 뭐 좋아요. 다음번엔 이런 실수를 하지 않도록 길잡이라도 하나 데리고 와야겠군요. 설산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말이죠.”

꽤나 의미심장한 그녀의 말을 이해한 것은 네르하밖에 없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기 싸움이 끝나고.

분위기가 무르익었다고 판단한 쿨리크가 지도를 펼쳤다.

그 지도는 바로 시장 관저의 온갖 비밀 루트를 표기한 크림슨의 비장의 무기였다.

네르하는 생각 이상으로 자세한 지도를 내려다보며 피식 웃었다.

“시장이 이 지도의 존재를 알고 있다면 너흴 절대 살려 두지 않았겠군.”

“아무리 우리가 시장의 끄나풀로 긴 시간을 지냈다지만 만약을 대비한 굴 세 개 정도는 파둬야 하지 않겠습니까?”

쿨리크는 지도 한쪽에 손가락을 짚으며 본격적으로 작전을 브리핑했다.

“그럼 본격적인 침입 루트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 * *

“크륵! 크르륵!”

사지가 결박당한 한 노예의 전신에서 피가 뽑혀져 나온다.

전신의 힘이 빠지고 정신이 몽롱해지며 결국 죽음으로 향하는 허무한 결말.

온몸이 미라가 되어 죽어버린 노예의 시체를 노인 ‘두칸’은 무미건조하게 내려다보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흐음, 순조롭군.”

노예의 전신에서 뽑힌 핏덩이들은 노인의 세심한 손짓 아래 걸러지고 정제되어 새빨갛고 순수한 혈정(血精)으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순수한 혈정은 노인의 흑마법에 반응해 마기를 들이마시며 마족의 피, 흑혈로 재탄생하게 되는 것이었다.

“이제 90%를 넘었으니 사실상 완성 단계라고 볼 수 있겠어.”

노인의 눈앞에는 다부진 근육이 인상적인 거한이 생명 유지 장치 안에서 죽은 듯이 보관되어 있었다.

“초마인, 비록 그 위대한 존재에게 닿지는 못하였으나 우리의 연구는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도다! 크흐흐흐.”

액체 속에 보관되어 있는 거한의 모습은 인간과 별다를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인간과 다른 것이 있다면 바로 관자놀이 부근에 거대한 뿔이 자라나 있다는 것이었다.

“위대한 선지자들을 이 땅에 다시 불러올 수 있다면, 우리는 다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 것이다.”

“두칸 님.”

한참 장밋빛 미래를 그리며 상상에 빠진 노인을 향해 그의 제자 중 하나가 다가왔다.

“무슨 일이냐?”

자신의 사색을 방해받은 두칸이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아무래도 이곳이 누군가에게 발각된 것 같습니다.”

“……뭐?”

“인근에 깔아 놓았던 방범 마법 몇 개가 손상된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솜씨로 보아하니 라데우스의 놈들일 가능성이 큽니다.”

아주 교묘하게 숨겨 놓았기에 눈치채는 게 늦었다.

하지만 두칸은 그런 제자의 보고에 비웃음을 흘렸다.

“크흐흐흐, 예상보다 빠르게 꼬리를 잡은 듯하다만, 이미 늦었다. 그놈들의 전력으로는 절대 이곳을 뚫을 수 없어.”

“철수 준비를 할까요? 놈들의 본가에서 지원이 온다면…….”

“그럴 필요 없다.”

두칸은 고개를 내저었다.

“차라리 잘되었군. 놈들을 제물로 삼는다면 굳이 노예들을 수급할 필요가 없겠지.”

“하지만, 놈들의 위치를 아직 발견하진 못했습니다.”

“굳이 놈들을 찾을 필요가 있을까? 놈들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는 놈이 하나 있는데 말이다.”

“……!”

그 ‘놈’이 누구인지 두칸의 제자는 단번에 이해했다.

“시장을 말씀하시는 것이로군요.”

“슬슬 놈의 이용 가치도 다할 때가 왔지. 지금까진 순순히 협조적으로 나왔기에 가만히 놔뒀지만 일이 마무리되어 가는 지금, 라데우스 잡것들을 제거하려면 놈을 붙잡아 도시의 제어권을 얻어야 한다.”

지금까지 시장 켈릭스가 무사할 수 있었던 건 자신을 건드릴 경우 언제든지 라데우스와 케프렌 두 가문에 직통으로 연락하겠다는 같잖은 협박 때문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 협박이 먹히는 유통기한은 지나 버렸다.

“실험은 완성되었고, 이제 재료만 있다면 언제든지 그릇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크흐흐, 이제 그 결과가 어느 정도인지만 확인하고 본단으로 귀환하면 돼.”

긴 시간이었다.

이 도시에 자리를 잡은 것은 3년 정도이지만 이 실험 자체에 두칸이 쏟은 열정은 30년이 넘어갔다.

“과거, 위대한 선조들께서 남긴 자료를 토대로 드디어 여기까지 왔다.”

“축하드립니다, 스승님!”

“축하드립니다!”

지난 3년간 함께 고생해 온 제자들의 축하에 두칸은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흑마법에 입문하면서 감정을 제거했다고는 하지만 아무리 그라도 이 정도의 성취에 감격을 숨길 수는 없었던 것이다.

“자, 이제 움직이도록 하지. 시장 놈을 붙잡고 도시를 손에 넣는다. 그리고 이 도시를 제물로 삼아 라데우스 놈들에게 화려한 선전포고를 날리는 거다!”

“네!”

“이걸로 주단 녀석과 교단 쪽의 복수를 해 줄 수 있겠군. 크흐흐흐!”

판데모니움의 분파 중 하나인 ‘교단’과 두칸이 속해 있는 ‘사령회’는 여러 갈래로 갈라진 분파들 중에서도 나름 친분이 있는 편이었다.

주단이 리브라에 잠입하기 전, 이 도시에 기반을 마련할 때 적지 않은 도움을 준 것도 교단 세력이었다.

그렇기에 주단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누구보다 분노했던 것이 바로 두칸이기도 했다.

“완성체를 회수하고 이곳은 폐쇄한다. 이제 우리의 본거지는 시장 관저가 될 것이다!”

두칸과 그를 따르는 흑마법사들, 당당하게 그렌 타운의 시장 켈릭스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에취!”

라데우스와 판데모니움.

두 세력의 표적이 된 시장 켈릭스는 영문도 모른 채 갑자기 찾아온 오한에 몸을 떨어야만 했다.

* * *

“여름 감기인가…….”

시장은 비서에게 보고받던 중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끼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장님?”

“음, 아무래도 차가운 걸 너무 많이 먹었나 보군.”

몸에 딱히 큰 이상이 없는 걸 확인한 시장은 다시금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방금 전까지 골치를 썩이던 주제로 다시 되돌아갔다.

“그것보다…… 이 일은 어찌할 거냐! 기사 놈들에게 장부를 빼앗기다니!”

“그, 그것이!”

비서의 얼굴에서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놈들의 정체가 케프렌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 건 네 녀석이 아니냐!”

“소, 송구합니다, 시장님. 놈들에게 정보가 들어가는 건 최대한 차단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디서 대체 그런 정보를 얻었는지…….”

시장과 비서는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

암시장을 초토화시킨 건 분명 아녜스를 비롯한 케프렌의 기사들이 맞았다.

하지만 그들이 쳐들어오기 전 암시장에 잠입했던 건 어디까지나 네르하를 비롯한 라데우스의 마법사들.

시장과 비서는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젠장! 이렇게 된 이상 라데우스 놈들을 끌어들일 수밖에 없겠군.”

“라, 라데우스를 말입니까?”

비서는 당황했다.

이건 그야말로 호랑이를 잡겠다고 사자를 들이는 꼴이 아닌가?

그래도 시장에겐 나름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어쩔 수 없어! 그 꽉 막힌 케프렌 놈들보단 그나마 라데우스가 말이 통하니까!”

“그, 그건 확실히.”

“지금까지 물증만 없었을 뿐 놈들도 내가 뒤가 구린 일을 하고 있다는 건 추측하고 있었을 거야. 이것저것 많이 내줘야 하겠지만…… 그래도 완전히 망하는 것보단 낫다.”

기사 가문의 정점인 케프렌의 결벽증은 전 대륙에서도 유명했다.

악에 대한 철저한 무관용.

물론 그 무관용이 상대에 따라 유연하게 적용된다는 걸 모르는 이는 없지만 적어도 약점이 노출된 시장은 그 ‘유연한 대상’에 적용되지 않았다.

“특히 흑마법사 놈들에 대한 정보를 팔아 버리면 어떻게든 싸게 넘길 수 있어. 넌 당장 라데우스의 마법사들이 머물고 있는 곳으로…….”

“허허허! 우릴 라데우스의 잡것들에게 팔아버린다 이거지?”

“흐어어어억!”

시장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의자와 함께 뒤로 넘어졌다.

“혹시나 싶었는데 보험을 들어놓기를 잘했군.”

“고, 고, 고바! 네놈이 배신을?!”

이 목소리는 바깥에서 들려온 것이 아니었다.

바로 비서인 고바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이었다.

“배신이라, 뭐 좋을 대로 생각하시게나.”

시장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비서를 노려보았다.

어느새 비서의 눈은 뒤집혀 있었고, 마치 정신이 나간 듯 전신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평소와는 다른 노인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으니 당연히 시장은 이 상황에 이상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곧 도착할 것이니 도망가지 말고 대기하고 있게나. 굳이 고통을 주고 싶진 않으니까.”

“으, 으아아아악!”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비서의 칠공에서 피가 터지며 그대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 기괴한 장면을 본 시장은 비명을 지르며 문을 박찼다.

“시, 시장님?!”

“다, 당장! 당장 라데우스의 마법사들이 있는 곳으로 가자!”

입구를 지키고 있던 자경단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시장을 바라보았다.

이미 시장 관저엔 백이 넘는 자경단이 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만으로 흑마법사들에게 맞선다는 건 무리가 있었다.

“사, 살려 줘!”

……누구에게 하는지 모를 처량한 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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