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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70화 (70/237)

70화

<마족 크루갈 (2)>

그 목소리는 인간의 성대에서 나오지 않았다.

공방 중앙에 고이 모셔 둔 구슬 형태의 아티팩트. 그 아티팩트에서 미세한 진동과 함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두칸은 분노를 담아 그 구슬을 노려보았다.

“날 조롱하는 것이냐, 크루갈이여?”

―설마. 내 현신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파트너를 조롱할 리가 있나?

말은 그렇게 해도 목소리에 담겨 있는 즐거움을 눈치채지 못할 두칸이 아니었다.

―허나 내 힘으로 간신히 생존해 놓고 이렇게 내게 화를 내는 것은 조금 어이가 없군.

“…….”

두칸의 표정이 살짝 붉어졌다.

그 말마따나 네르하에게 입은 상처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어도 이상할 게 없는 치명상이었다.

그럼에도 두칸이 살아 있는 건 어디까지나 계약 마족인 크루갈이 육체의 죽음을 보류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후후후…….

두칸이 말을 잊자 크루갈은 그제야 만족한 음색을 내었다.

―하지만 그 늙은 육체가 한계에 도달하고 있는 건 맞군. 리치가 된다면 좋겠지만 그러기엔 너무 늦었으니.

리치가 불사의 왕이라 불리며 공포의 대상으로 불리지만 그만큼 개나 소나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흐, 내 영혼을 탐내는가?”

흑마법사가 맞이하는 결말은 오직 하나뿐이다.

계약한 마족에게 영혼이 종속당해 그 마족이 먼저 소멸할 때까지 미래영겁 고통받고 농락당하는 것.

이는 흑마법이 그 편리함과 강대함에 비해 세력이 작은 가장 큰 이유였다.

하지만 크루갈은 두칸의 말을 부정했다.

―이미 저당 잡은 상황에서 굳이 욕심을 부릴 필요는 없지. 그보다 중요한 건 내 육체를 완성하는 일이다.

“……그래. 그렇겠지.”

두칸은 상처가 조금 고통스러운 듯 약간 창백한 어조로 일갈했다.

“약속은 지켜라. 네가 육체를 얻게 되면 나와 제자들의 영혼을 해방해 주겠다는 걸.”

―물론! 그뿐만 아니라 마군단의 참모로서 내, 직접 추천까지 해 주도록 하지.

두칸이 30년이나 되는 세월 동안 이 일에 매달리는 덴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자신이 속한 사령술 계파의 숙원을 이루는 것.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바로 흑마법사의 본질적인 숙명을 벗어던지는 것.

마지막으로는 자신의 인생을 나락으로 밀어 넣은 라데우스에 대한 복수였다.

그리고 세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기회가 바로 코앞까지 왔다.

―큭큭! 서두르는 게 좋을 거다. 속 편하게 육체를 회복시킬 시간은 없을 테니까.

“……알고 있다.”

“크, 큰일 났습니다, 스승님!”

역시나.

두칸과 크루갈의 예상대로 일은 급박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

케프렌 기사들과 충돌해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마지막 제자가 다급하게 두칸을 향해 외쳤다.

“라데우스 놈들이 그 기사들과 함께 이곳에 쳐들어왔습니다!”

“…….”

예상외의 소식에 두칸은 인상을 썼다.

잠시 고민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달렉.”

“네. 스승님.”

“난 지금부터 대법의 완성에 들어가겠다. 넌 남은 제자들을 이끌고 최대한 시간을 끌어라.”

“알겠습니다, 스승님!”

꼬르르륵!

강림이 예정된 크루갈의 육체가 인큐베이터 안에서 거품을 내뿜었다.

육체적인 부분에선 완성 단계에 이르렀고, 세부적인 조정과 영혼 강림 의식만이 남은 상황.

‘반드시 성공하고 만다.’

크루갈이 예정대로 이 세상에 현신하게 되면 그 계약자인 자신 역시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

마족의 강대한 권능이라면 설사 즉사에 가까운 상처조차도 완치하는 게 가능했으니까.

* * *

“마치 개미굴 같군.”

케프렌의 기사 아홉 명과 라데우스의 마법사 네 명을 포함한 합계 열셋의 돌입대.

지난 전투에서 부상을 입은 이들을 제외한 전력이었지만 남은 흑마법사들의 전력을 생각하면 충분히 압도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흠, 지난번에 충돌했던 그자들의 수준은 그리 높지 않았소. 어떻게든 마주친다면 승리를 보장하지.”

이전, 아녜스를 보필하던 중년의 기사가 부상으로 빠진 후 새롭게 2인자 격으로 올라선 고드반이라는 자가 콧대를 높였다.

“하지만 지휘권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 점은 사전에 협의된 것이니 지켜 주시길 바랍니다.”

마하타가 입술을 깨물며 항의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영 시원치 않았다.

“흥! 고작 애송이 셋으로 뭘 하겠다고 지휘권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군.”

“…….”

네르하는 피식 웃으면서 고드반을 향해 이죽거렸다.

“이곳은 마법사의 공방입니다. 우리의 도움 없이 이곳에 깔린 모든 함정을 돌파할 수 있다면 기꺼이 그리하시죠.”

“…….”

이번엔 고드반이 침묵할 차례였다.

이런 반응이 나올 줄 알고 네르하는 시장의 지도를 저들과 공유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마법적인’ 감각으로 함정을 파악하고 돌파하겠다는 말을 전했을 뿐.

하지만 이런 말을 듣고도 의외로 고드반은 물러서지 않았다.

“고작 다 죽어가는 마법사의 공방 따위…….”

“고드반 경, 방심은 금물입니다.”

보다못한 아녜스가 고드반에게 주의를 주었다.

“아녜스 아가씨. 전에 말씀드린 대로 우리만으로도 충분히 돌파할 수 있습니다. 이 주변의 마나 밀도는 그다지 깊지 않으며 위협적인 건 물리적인 함정뿐일 것입니다.”

사실, 고드반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 자였다.

무리의 3인자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게 그 수준이 능히 절정의 수준에 올라 있으며, 검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실력자였다.

“끄응!”

다만 원래 고드반이 이런 식으로 노골적인 불만을 표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가 이런 태도를 취하는 이유는 단 하나.

“고드반 경의 안목을 의심하는 건 아니나…….”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아녜스가 차분하게 말을 고르고 있던 때였다.

“그렇게 하시죠.”

“네?”

“그렇게 공을 원하신다면 굳이 말리진 않겠습니다.”

마하타를 대신하여 일행의 지휘를 맡기로 한 네르하가 고드반을 직시했다.

“네놈.”

고드반의 살기 어린 시선에도 네르하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래도 저 같은 ‘애송이’의 지휘에 따르는 게 불만이신 것 같은데, 얼마든지 자유롭게 행동하셔도 괜찮습니다.”

“…….”

“다만 그 뒷감당은 온전히 본인의 책임이라는 것은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아녜스가 경악한 눈으로 ‘지금 말리지 않고 뭐 하는 거예요!’라는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네르하가 생각하기에 이 상황은 자신의 진짜 정체가 밝혀지지 않다 보니 생긴 부작용이었다.

사람들을 이끌려면 실력, 지위, 인망 셋 중 하나라도 있어야 하는데 케프렌의 기사들에게 있어 네르하는 그 모두가 결여된 낙하산이나 다름없었다.

“하지 말라면 하지 못할 것 같으냐! 멜핀, 소토스, 따라와라!”

고드반은 꼬리를 내리기는커녕 오히려 역정을 내며 부하 둘을 이끌고 앞으로 나섰다.

그렇게 고드반의 이탈로 장내 분위기가 어수선해지자 그 틈을 타 아녜스가 네르하에게 다가왔다.

“무, 무슨 짓이에요? 저러다 고드반 경이 죽기라도 한다면…….”

“이런 결전을 앞에 두고 명령체계가 제대로 잡혀 있지 않은 건 큰 문제야.”

아녜스의 우려에도 네르하는 단호했다.

“차라리 잘됐지. 아직 진입 초반부라면 충분히 바로잡을 가능성이 있으니까.”

고드반과 기사들은 충분한 예시가 되어 줄 것이다.

“마하타 님. 해독제나 정화 마법이 적힌 스크롤이 있다면 준비해 주세요. 혹시 모르니 아녜스 너희도.”

네르하의 뜬금없는 말에 아녜스가 눈을 깜빡였다.

“알았어.”

반대로 마하타는 네르하의 말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실력에 자신이 있는 건 좋지만 모든 걸 파악하지 못하면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하지. 방금 전 뛰쳐나간 놈이 딱 그 꼴이고.”

“그게 무슨?”

“됐으니까 빨리 준비나 해.”

아녜스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이 네르하의 말에 따랐다.

그리고 먼저 뛰쳐나간 이들을 쫓아 앞으로 전진한 지 5분도 되지 않아.

“끄으윽!”

“사, 살려 주십시오, 아가씨…….”

“고, 고드반 경?”

일행은 온몸에 독이 퍼진 채 널브러져 있는 고드반과 부하 기사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대, 대체 어떻게?”

아녜스가 눈을 부릅뜨며 네르하를 바라보았다. 그녀만이 아니라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들은 몇몇 이들 역시 아녜스와 비슷한 눈으로 네르하를 직시했다.

“날 쳐다보기 전에 저놈들부터 치료하는 게 먼저가 아닐까?”

“아! 이런! 고드반 경! 멜핀 경!”

아녜스는 네르하의 조언에 따라 미리 준비해 둔 해독 스크롤로 앞서 나간 기사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틈을 통해 마하타가 네르하에게 다가왔다.

“어, 어떻게 안 거야? 분명 지도엔 함정의 종류는 딱히…….”

“쉿.”

지도에 관한 것은 절대로 밖으로 새면 안 되었기에 네르하는 빠르게 검지를 들어 마하타의 입을 막았다.

그녀가 살짝 붉어진 얼굴로 입을 다물자 네르하가 빙그레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단순한 감입니다. 약간의 경험이 좀 섞여 있지만요.”

‘겨, 경험?’

이제 막 리브라의 신입생인 네르하가 이런 함정을 경험할 기회가 있었나?

하지만 네르하의 위치를 자각한 마하타는 절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뭐, 직계에다 어릴 적부터 후계 권력 다툼을 이어왔을 테니 그럴 수도 있겠지.’

네르하는 굳이 마하타의 그런 착각을 바로잡아 주지 않았다.

사실, 이런 개미지옥 같은 동굴 안에서 동굴 전체를 무너뜨리는 게 아닌 이상 쓸 수 있는 함정에는 꽤 많은 제한이 존재했다.

‘굳이 지도를 보지 않아도 함정이 깔려 있는 게 분명한 지형. 그런데 마나 밀도의 흐름이 적다면 나올 수 있는 건 두 가지뿐이지.’

하나는 물리적인 함정. 그리고 또 하나는 독.

‘이들은 독을 전혀 경계하지 않았군.’

물론 검기를 쓸 수 있는 실력자라면 마나로 투명한 막을 쳐서 일정 시간 동안은 독의 침입을 걸러 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흑마법사들이 그걸 모를 정도로 멍청할까?’

분명 그런 대비 정도는 우습게 뚫어 버릴 함정을 준비해 놨을 것이다.

물론 그런 수준의 함정이라도 주변에 마법사들이 있다면 어떻게든 대비할 수 있었겠지만.

고드반의 오만함과 공명심은 결국 이런 결과를 만들어 내고 말았다.

네르하는 여전히 경련하고 있는 고드반에게 다가가 이렇게 물었다.

“어떻게, 계속 고집을 부리시겠습니까?”

“끄, 끄으윽!”

해독 스크롤이 엄청난 고가라고는 하지만 고위 마법사가 직접 주문을 걸어주는 것보다는 훨씬 약할 수밖에 없다.

네르하가 살짝 눈짓을 하자 마하타가 다가와 고드반에게 직접 해독 마법을 걸어 주었다.

“카운터액트 포이즌.”

화악!

환한 빛이 일어남과 함께 방금 전의 스크롤을 통한 해독보다도 훨씬 강렬한 빛이 동굴 안을 밝혔다.

마하타가 아무리 정신계 마법이 주라고는 하나 기본적으론 후방 지원이니만큼 이 정도 마법은 충분히 가능했다.

“고, 고맙……소.”

네르하는 환하게 웃으면서 다독이는 척을 했다.

“이 앞엔 어떤 미지가 있을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런 만큼 충분히 조심하면서 가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

사실상 꼽을 주는 말에 고드반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게다가 은근히 네르하를 향해 불평을 내뱉던 다른 기사들 역시 고드반의 그 꼴을 목격하고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한동안은 조용하겠군.’

아녜스의 반응도 그렇고, 케프렌의 기사들이 이쪽의 지휘를 제대로 들어먹지 않으리란 정도는 충분히 예상했다.

그런 만큼 어떻게 한 번 정도는 기를 눌러 줄 필요성이 있었다.

‘이 정도로 끝나서 다행이지.’

아마 저 안쪽에서 항명이 일어났다면, 아녜스는 충성스러운 기사들을 다수 잃었을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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