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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71화 (71/237)

71화

<마족 크루갈 (3)>

‘뭐 이런 놈들이 다 있지?’

두칸의 수제자이자 공방의 방어 시스템을 총괄하는 6레벨의 흑마법사 달렉.

그는 지금 흔치 않게 당황해하는 중이었다.

‘함정이 통하질 않는다…….’

처음, 제대로 타격을 먹인 건 꽤나 공을 들였던 독무 지대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의견이 갈라져서 뛰쳐나온 기사 셋을 중독시키는 데 그쳤고, 또 그마저도 뒤따라온 후발대에 의해 정화되고 말았다.

‘마, 마치 어떤 함정이 깔려 있는지 사전에 정보를 얻지 않는 이상에야 불가능한 일이야.’

무엇보다 이 넓은 개미굴에서 헤매지 않고 곧바로 본진을 향해 다가오고 있다는 게 가장 당황스러웠다.

‘게다가, 천천히지만 방어 시스템을 확실하게 무력화시키면서 들어오고 있다.’

엘림이 전장에서 이탈한 상황에서 두칸은 이제 저들이 이곳의 방어 시스템을 뚫을 일은 없을 거라 확신했다.

그 제자인 달렉 역시 그렇게 생각했기에 침입자들의 위험성에 대해선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저놈, 저놈이 방어 시스템의 허점을 계속해서 파헤치고 있어!’

달렉의 눈이 갈색 머리의 청년, 네르하에게로 향했다.

‘함정을 미리 알아챈 것도 저놈이고, 방어 시스템을 역추적한 것도 저놈이다. 대체 뭐 하는 놈이지?’

순간, 달렉의 머릿속에 불길한 가정이 스쳐 지나갔다.

‘설마 겉모습만 어려 보일 뿐이지 스승님과 같은 7레벨에 도달한 건 아니겠지?’

케프렌 가문에서 말하는, 극한의 경지에 오르면 오히려 몸이 젊어진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아니, 아니지. 정말 그런 놈이었으면 스승님께서 살아 돌아오셨을 리가 없다.’

정신을 차린 달렉은 이제 몇 안 남은 사제들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안 되겠다. 내가 직접 나설 수밖에 없겠군.”

“사형?”

“스승님의 대법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너희는 스승님을 도와 의식을 마무리해라.”

“구, 굳이 직접 나서실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사제들의 만류에도 달렉은 완고했다.

“시간이 모자라. 이대로라면 스승님의 대법이 완성되기 전에 입구가 뚫릴 거다. 뭐가 됐든 목숨을 걸고 입구를 지켜내는 수밖에.”

스스스스!

달렉의 손짓에 따라 이곳저곳에서 망자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함정이 안 통한다면 물량이지. 어디 이 좁은 개미굴에서 얼마나 잘 뚫어 낼 수 있을지를 보겠다.”

달렉은 고개를 들어 한창 대법을 진행 중인 자신의 스승을 보았다.

“크아아아악!”

“아아아악!”

지난 난리 때 잡아 온 그렌 타운의 시민들이 인큐베이터 안에 갇혀 생체 에너지를 뽑히고 있었다.

그 생체 에너지는 두칸의 인도 아래 마족 크루갈의 육체에 조금씩 향해 쌓이고 있었다.

고통스러워하는 비명이 계속해서 울리고 있었지만 달렉에게 그건 그다지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 * *

“흠, 이제 거의 다 온 것 같은데?”

네르하는 저 멀리서 느껴지는 질척한 마기를 느끼며 중얼거렸다.

“다, 다 됐다, 네르하.”

“수고했습니다, 선배님들.”

함정을 해제한 페텔과 헤젤은 전신에 땀을 뻘뻘 흘리며 몸을 일으켰다.

이번에 설치된 함정은 지반의 일부를 무너뜨려 낙사시키는 치명적인 녀석이었다.

‘그래도 나름 도움이 되는군.’

네르하의 초월적 기감은 함정이 설치된 마나 회로가 어디까지 뻗어 있는지를 모두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걸 파악해도 네르하는 지식의 부재로 그 함정을 안전하게 해제할 역량이 부족했다.

본격적으로 충돌할 경우를 대비해 마하타의 여력은 아껴둬야 했으니 자연스레 함정의 해제는 남은 마법사인 페텔과 헤젤에게로 돌아갔다.

아직 3레벨 후반대에 불과한 두 사람이었지만 쌓아 둔 지식 자체는 확실히 네르하보다 나았다.

네르하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두 사람에게 포권을 했다.

“선배들의 공은 확실하게 기억해 두겠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페텔과 헤젤은 이전에 보인 오만함은 완전히 사라진 채 시무룩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야. 네가 함정에 설치된 마나의 회로를 알려 주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거다.”

“맞아. 그게 아니었다면 우리가 이 술식들을 파훼할 순 없었겠지.”

‘웬일이래?’

벌써 이들이 해제한 함정만 다섯 개다.

이 정도면 충분히 어깨를 펼 수 있음에도 어째서인지 페텔과 헤젤은 가면 갈수록 주눅이 들고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괴물 같은 새끼……!’

‘함정 하나하나가 우리 수준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풀 수 없는 수준이야. 저놈이 해답을 알려 주지 않았다면, 건들자마자 함정이 터져 버렸겠지.’

‘몸만 좀 쓰는 수준인 줄 알았더니 지금까지 실력을 숨기고 있었구나!’

네르하가 한 일은 사실상 옆에서 교과서를 펼치고 그대로 읊어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아볼 사람이 고작 세 명뿐인 것이 억울할 정도였다.

그어어어!

“언데드다!”

“숫자가 상당해!”

지금까지 마법적 트랩이나 함정 같은 것만 즐비하다가 본격적으로 언데드가 나오기 시작했다.

‘언데드가 나왔다는 건 슬슬 저들도 써먹을 패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뜻.’

그리고 놈들의 본거지에 거의 근접했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언데드들을 마주한 기사들이 입가에 미소를 띄우며 검을 뽑았다.

“그다지 위험한 놈은 없어.”

“모두 한입거리로군.”

하지만 그때…….

“나서지 말고 방진을 펼쳐!”

네르하의 고함 소리가 기사들의 귓가를 때렸다.

“무, 무슨?”

“여기까지 와서 평범한 언데드로 시간을 끌 리가 없다! 모두, 정신 똑바로 차려!”

“……!”

기사들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갑자기 반말을 찍찍 갈기는 싸가지는 둘째 치더라도 적어도 이 동굴 안에서 네르하의 판단은 절대로 틀린 적이 없었다.

“정말 감이 좋군, 스승님의 말씀대로.”

“누구냐!”

저 언데드들의 뒤에서 칙칙한 중년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놈은!”

“그 흑마법사 놈의 제자!”

네르하 역시 기사들의 반응을 보고 상대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아마 엘림과 마법사들이 두칸과 싸울 때 외곽 지역에서 경계를 맡았던 두칸의 제자인 6레벨의 흑마법사일 것이다.

네르하는 수척해 보이는 달렉을 향해 이죽거렸다.

“이제 거의 다 왔군. 그 늙은이가 아니라 네놈이 나왔다는 건, 예상대로 그 늙은이는 전투를 할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라는 뜻일 테니.”

“이놈! 스승님을 그렇게 부르지 마라! 감히 라데우스의 저주받을 종자가 어딜!”

달렉은 네르하를 향해 분노를 토해냈다.

네르하는 차분하게 주변을 돌아보며 달렉이 준비한 수법을 파악해 냈다.

“이런 좁은 공간에 언데드들을 잔뜩 끌고 온 건 자폭을 시키기 위함이겠군. 이곳을 아예 매몰시켜 버릴 생각이기도 할 테고.”

“그, 그걸 어떻게?”

“비슷한 상황을 예전에 한번 경험해 봐서 말이지.”

이전, 마교 암혼대의 함정에 빠져 강시들의 자폭 공격을 당했던 적이 있었는데, 현재의 상황과 전황은 우연히도 그때와 매우 흡사했다.

“그리고 저 안쪽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는데 말이야. 내 감각은 빨리 널 치워 버리고 저 안을 청소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군.”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감각은 더욱더 명확해지고, 불길함은 더해지고 있다.

어지간한 일엔 위기감을 느끼지 않는 네르하가 불길함을 느낄 정도면 분명 심상치 않은 존재가 저 안에서 태동하고 있다는 뜻.

“알고 있다 해도 나를 넘을 수는!”

“미안하지만 너 따위를 상대할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거든.”

“……!”

어느새 수많은 언데드들을 제치고 네르하의 신형이 달렉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우, 움직임을…… 놓쳤다!’

아녜스는 물론 케프렌의 기사들도 눈을 부릅뜨며 경악했다.

특히 아녜스의 놀라움은 더더욱 컸다.

‘어, 어떻게?’

이전, 두칸을 기습할 때야 이미 어느 정도 거리가 좁혀져 있었고, 두칸이 빈사 상태에 빠진 덕이었다고 말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이미 전면에 언데드란 전위들이 있는 데다 상대 역시 방심하지 않고 있었다.

“다, 다크니스 커튼!”

“늦었어, 인마.”

달렉의 방어 마법을 일격에 뚫어 버리며 네르하의 수도가 그대로 달렉의 머리를 날려 버렸다.

덜컹!

나름 결사의 각오와 준비를 마치고 나타난 달렉은 그렇게 네르하의 기습에 의해 허무하게 사망하고 말았다.

“…….”

“…….”

마법사가 아닌 기사의 움직임.

그것도 아녜스 자신도 감히 따라 하지 못할 엄청난 빠르기와 정확성이었다.

“저기…….”

“질문은 나중에.”

네르하는 아녜스의 말을 단번에 잘라내었다.

네르하가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은 딱히 이 상황을 무마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진짜 시간이 없으니까.”

달렉이 죽고 언데드의 사기가 어느 정도 가시자 그제야 장내에 있는 이들도 저 너머에서 느껴지는 막대한 마기를 느낄 수 있었다.

고오오오!

마치 천 개의 바늘이 피부를 찌르는 듯한 불쾌한 감각.

이전, 두칸이나 달렉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압도적인 기운이었다.

“휴, 흉악하군.”

“마족이란 존재를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이건 생각보다 훨씬…….”

“자, 잠깐!”

기사들의 사기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하자 아녜스가 다급하게 주의를 환기하려고 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네르하의 나직한 목소리가 동굴 안에 울려 퍼졌다.

“정말로 늦었다면 이런 놈이 아니라 그 마족이 직접 나와서 우릴 반겼겠지요. 아직 모든 게 끝난 건 아닙니다.”

“그, 그렇지!”

“맞는 말이야.”

케프렌의 기사들은 네르하의 말에 동의하며 전의를 되찾았다.

“가죠.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오오!”

네르하는 당당하게 기사들의 앞에 서며 달렉의 시체를 넘었다. 그리고 그 뒤를 케프렌의 기사들이 당당히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녜스는 그런 기사들을 황당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저분들이 저렇게 말을 잘 듣는 분이었나?’

* * *

판데모니움 사령술 학파의 본거지는 상당히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원래 흑마법사의 본거지라면 칙칙하고 시체 썩은 내가 진동하는 그런 음침한 장소를 상상하기 마련이었지만 흑마법사도 사람이고 마법사인지라 위생과 청결에 꽤나 공을 들인 티가 팍팍 났다.

“그렇다고 이 참혹한 광경이 익숙하다는 건 아니죠.”

수십 개에 달하는 인큐베이터 안에 사람들이 누워 있다.

그 인큐베이터에서 붉고 검은 기운이 흘러나와 정중앙에 있는 거대한 캡슐 속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리고 그 거대한 마법 장치를 조정하고 있는 상처 입은 노인.

두칸이 그곳에 있었다.

“달렉은…… 어찌 되었지?”

두칸은 조종하던 것을 멈추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르하에게 뚫린 어깻죽지 부근엔 어느새 어느 정도 뼈와 살이 새로 돋아나고 있었다.

그렇다고 완전한 재생은 아닌지라 상당히 그로테스크한 모습이었지만 말이다.

“네 제자의 이름이 달렉이었나? 물론 죽였지.”

네르하는 그런 두칸을 향해 단호하게 대답했다.

“…….”

“수십 년간 이딴 짓을 저지르고도 설마 편하게 죽을 줄 알았나?”

저 수십 명 분량의 생체 에너지가 중앙 캡슐 쪽에 채우는 양은 고작 한 줌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 캡슐의 에너지는 이미 가득 차 있었으니 그 말은 저것에 희생된 이의 수가 최소 만 단위라는 것을 의미했다.

“흐, 흐흐! 그래.”

하지만 지난 세월, 벌여온 악행과는 별개로 30년을 함께한 수제자의 죽음에 두칸은 이성을 잃은 듯 광인과도 같은 웃음을 흘렸다.

“흐흐흐…….”

뚝!

미친 듯한 낮은 웃음을 흘리는 것이 뚝 끊김과 동시에 공방의 중앙에 있던 캡슐의 문이 열렸다.

“네놈 역시… 절대로… 편히 죽게 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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