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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82화 (82/237)

82화

<실전 마법 연구회 (2)>

“교류전?”

“네. 제 기억이 맞는다면 아마 지금도 계속되고 있을 겁니다.”

교류전이란 ‘검의 낙원’과 ‘리브라’ 사이에서 5년 주기로 열리는 것으로, 문자 그대로 교류의 장이 열리는 것을 뜻한다.

각 교육기관에서 선발된 후기지수들이 안면을 익히고 교류를 다지며 평화를 맹세하는 친목의 장이지만.

‘절대 그럴 리가 없지.’

딱 여기까지만 들었는데도 촉이 온다.

‘교류전이 아니라 탐색전이겠지.’

두 가문 사이를 생각하면 서로 하하 호호 하며 지낼 리가 없었다.

루시아가 말을 이었다.

“아녜스라면 분명 사절단에 섞여 찾아올 생각일 겁니다. 그 아이의 실력과 지위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죠.”

“그래서? 그 녀석과 만나면 뭐라고 말하려고?”

“글쎄요.”

그녀는 곤란한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저는 스스로의 의지로 가문을 나왔습니다. 그런 만큼 아녜스에게 말도 없이 사라져 미안하다는 말 말고는 해줄 게 없군요.”

“뭐, 그렇겠지.”

루시아의 의지는 이미 확고하다. 이제 와서 아녜스가 돌아와 달라고 간청해도 루시아는 꿈쩍도 않을 것이다.

지금 중요한 건 루시아라기보단.

‘칼잡이들과의 교류전이라?’

흥미가 없다면 거짓말이겠지.

검의 낙원이라고 한다면 이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학관 중 하나이자 최고의 검사 양성기관.

그 수준이 어떠한지 궁금증이 이는 건 무인으로서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의외의 문제 때문에 네르하의 교류전에 대한 관심은 당분간 꺼질 수밖에 없었다.

* * *

네르하가 정보를 얻기 위해 찾아갈 인물들은 한정되어 있었다.

알페온도 나름 마당발이긴 하지만 녀석의 위치상 얻어 오는 정보는 한정되어 있기 마련이었다.

“교류전이요?”

“응.”

클로이아가 신기하다는 눈으로 네르하를 바라보았다.

그런 건 또 어디에서 듣고 왔는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교류전은 도련님이 신경 쓸 일은 아닐 텐데요.”

“어째서지?”

그녀의 말은 ‘교류전에 관심을 꺼라’라는 어조보단 정말로 네르하와 별 관계가 없다는 식의 말투를 담고 있었다.

“당연히 도련님은 참가하지 못하니까요.”

“엥?”

“교류전의 참가 자격은 2학년과 3학년뿐이거든요.”

서로 합의된 사항은 아니지만 리브라의 자체적인 정책이 그렇다.

“아무래도 교류전에선 ‘합법적인’ 염탐질이 가능하다 보니 진짜 에이스들은 가능하면 숨기는 경향이 있어요.”

“그렇겠지.”

“꼬꼬마인 1학년생이야 그렇다 쳐도 졸업반의 수준은 차후 각 가문의 실질적인 무력을 잴 수 있는 척도가 되거든요.”

그렇기에 4학년의 수준은 절대로 외부에 유출되어서는 안 되었다.

“그래서 보통은 2학년, 잘해 봐야 3학년들이 교류전에 나가죠. 물론 그들 중에서도 수석급 인재들은 제외되고요.”

“그럼 너도 나가본 적은 없겠네?”

클로이아의 실력이라면 학창 시절에도 톱급이었을 테니 말이다.

“당시 교류전은 제가 신입생 시절에 일어났어요. 5년 주기인지라 그 이후 졸업 때까지 교류전을 구경하진 못했죠.”

클로이아는 잠시 과거를 회상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때의 일이 그리 좋은 기억은 아니었는지 회상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그녀가 피식 웃으면서 화제를 돌렸다.

“그런고로 관련도 없는 교류전보다는 이제 곧 다가올 중간시험이나 신경 쓰시는 게 좋을 텐데요?”

“중간시험이라……. 그래. 그것도 있었지.”

“아무리 이론만이라고는 해도 엄연히 공식적인 테스트니까요. 무시하지 않는 게 좋아요.”

리브라의 시험은 중간과 기말, 두 가지로 나뉜다.

중간은 이론, 기말은 실기라는 간단한 구성이지만 그 내용물은 절대로 간단하지 않다.

꽤나 높은 수준의 자율성에 비해 그 평가가 어마어마하게 빡빡하기로 유명한 게 바로 리브라의 시험이었으니까.

“확실히 교류전보다는 이쪽을 먼저 신경 써야겠군.”

네르하가 막 시험에 대해 언급하려고 할 때였다.

“어이, 네르하 라데우스!”

저 멀리서 익숙한 누군가의 목소리가 네르하를 불렀다.

“레이첼 교수님?”

고개를 돌리자 즐거운 듯한 미소를 띤 레이첼이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붉은 머리를 휘날리며 다가온 그녀는 씨익 웃으면서 네르하의 눈앞에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동아리 가입 절차가 모두 끝났다. 너는 물론이고 네가 추천한 세 명도 포함해서.”

“벌써 말입니까?”

분명 반나절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그새 절차를 모두 마무리했다고?

“인재는 놓칠 수 없는 법이지.”

그 말에 클로이아가 살짝 불만스러운 어조로 볼을 부풀렸다.

“아까 전만 해도 건방진 애송이니 뭐니 하면서 죽일 듯이 마법을 퍼부은 건 선배…….”

“네 학창 시절 추태를 전부 까발리기 전에 조용히 하지?”

“…….”

클로이아의 입이 대번에 다물어졌다.

확실히 인간 상성이란 게 존재한다면 클로이아와 레이첼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클로이아도 재능과 마법 실력으로는 꿀리지 않지만 레이첼 역시 만만치 않으며 무엇보다 학창 시절은 물론 교직 시절까지 직속 선배의 위치에 있다.

게다가 후배가 꾸미는 반란의 낌새를 빠르게 캐치해서 적절히 대응하기까지 하니 그야말로 천적이란 말이 아깝지 않았다.

“표정이 너무 재밌어 보이는데요?”

“아, 미안.”

클로이아가 불만이 서린 눈빛을 보내자 네르하는 어깨를 살짝 으쓱하며 고개를 돌렸다.

클로이아가 한숨을 내쉬면서 레이첼을 노려보았다.

“아무리 선배라도 도련님을 이용하려는 건 용납할 수 없어요.”

레이첼이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이 녀석이 그걸 모를까 봐?”

“…….”

“서로 상부상조하자는 거지. 물론 이 녀석이 우리 동아리에 들어옴으로써 얻는 이익이 막대하다는 건 인정해. 나도 그걸 노리고 좀 무리해서 움직인 거고.”

레이첼이 지도 교수로 있는 실전 마법 연구회는 평민 비율이 높은 이단아 같은 곳.

아무리 레이첼이 신경을 쓴다 해도 알게 모르게 차별과 무시를 받고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이 녀석이 들어오면 사정이 좀 나아지겠지.”

나아지는 정도가 아니다.

라데우스의 직계라는 건 이곳, 리브라에선 절대적인 권위를 자랑하니까.

“그 대가로 너처럼 이 녀석을 후원하면서 신경 좀 써 주고 말이야.”

“……!”

‘너처럼’이라는 말에 클로이아의 눈이 크게 떠졌다.

“선배, 지금 그게 무슨 뜻인지.”

“내가 모를 리가 있나?”

저 말이 그녀가 생각하고 있는 그대로라면, 레이첼은 그녀의 생각보다 훨씬 큰 도박판에 발을 내민 것이었다!

“아아, 길게 말할 거 없고. 이번 기수 애들은 내가 좀 아끼는 애들이야. 잘되었으면 해서 모험 좀 해 본 거니까 너무 감동받진 마라.”

“누가 감동을 했다고!”

네르하는 성을 내는 클로이아를 달랬다.

“걱정 마, 나도 생각이 있어서 제안을 수락한 거니까.”

“그런 말은 제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하진 말아줬으면 하는데요.”

마치 애를 달래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자 대번에 클로이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녀의 머리에서 손을 뗀 네르하가 활기차게 외쳤다.

“자, 그럼 한번 동아리 선배들에게 인사나 해 보러 가 볼까요?”

그 모습에 레이첼이 떨떠름하게 말했다.

“혹시나 하는 말이지만 적당히 해 줬으면 해. 다 착한 아이들이니까.”

“전 어디까지나 상식인입니다.”

물론 상대가 상식적으로 나오지 않는다면 이쪽 역시 상식적으로 나갈 필요가 없다는 건 알아뒀으면 좋겠다.

* * *

실전 마법 연구회.

총인원 열두 명 정도의 소규모 동아리지만 각종 학술회나 연구회, 컨소시엄 등에서 괜찮은 성과를 거둔 엘리트 집단.

마법계에선 제법 괜찮은 인지도와 실적을 자랑하는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실전 마법 연구회가 리브라 내에서 유명한 이유는 다름 아닌 그 특이한 구조 때문이었는데.

“철저한 계급제로 운영되는 동아리는 그곳이 유일하다고 들었습니다.”

“리브라의 방침에 가장 부합하는 곳이라고 평가받긴 하지.”

바스톤의 말을 알페온이 받았다.

보통 동아리라는 건 기본적으로 수평적인 관계에 학년별, 기수별로 관행적인 계급이 생기기 마련. 하지만 실전 마법 연구회는 그런 것을 싹 무시하기로 악명이 높았다.

지도교수 레이첼 루비아이를 필두로 하는 철저한 실력제.

제삼자가 보기에는 저건 동아리가 아니라 군대라고 표현할 정도로 철저한 곳이었다.

“진짜, 가기 싫다.”

알페온이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짚었다.

하지만 저게 말뿐이라는 걸 아는 일행들은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정말 싫으면 빼주겠다고 말했다.”

“그럴 순 없죠. 바늘 가는 데 실이 안 갈 수도 없는 법이니.”

누가 바늘이고 누가 실인지는 알페온의 그윽한 눈빛을 보면 알 수가 있었다.

루시아가 뭔가 질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알페온의 근성은 여전했다.

‘저 녀석의 정체를 알고서도 좋아할 수 있을까?’

녀석의 본가인 리브레히트는 라데우스와 가까운 가문 중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규모를 자랑한다.

당연히 라데우스의 경쟁자인 케프렌과는 사이가 좋을 수가 없다.

‘뭐, 그건 그때 가면 알게 되겠지.’

네르하와 일행들은 레이첼의 인도하에 리브라 외곽 지역에 있는 마탑형의 건물에 도달했다.

“꽤 방비가 잘되어 있는 곳이군요.”

건물 전체에 감도는 강력한 방어 마법을 눈치챈 네르하가 감탄을 표했다.

레이첼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리브라 전체를 통틀어 마법 사고가 가장 잘 일어나는 곳이니 어쩔 수가 없지.”

아직 미숙한 마법사들이 미숙한 이론을 다루는 만큼 어쩔 수 없는 일은 맞았다.

그렇게 건물의 3층을 통째로 쓰고 있는 실전 마법 연구회의 동아리실에 도달했을 때.

“그쪽, 술식 정리가 아직도 안 끝났어?!”

“죄, 죄송합니다!”

“이래서야 제출 기한까지 맞출 수가 없잖아! 빨리빨리 못 해?”

“이번 경연에서 상위에 입상하지 못하면 너희, 전부 X 되는 거야!”

“쉬지 말고 손과 머리를 굴려, 빌어먹을 굼벵이들아!”

‘무슨 전쟁터인가?’

동아리실에 들어서자마자 사방에 수북하게 쌓여 있는 종이 뭉치들과 바쁘게 움직이는 상급생들이 보인다.

그리고 사방팔방에 빼곡하게 적혀 있는, 그리고 적고 있는 술식들을 보자면 단순히 동아리라기보다는 마탑의 마법사들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자, 모두 주목!”

짝짝짝!

레이첼이 손뼉을 쳐 주변을 환기하자 대번에 이쪽을 향해 이목이 몰렸다.

“교수님!”

“오셨습니까, 교수님!”

마치 장군을 맞이하는 병사들과 같은 모습이었다.

레이첼이 이 동아리에서 어떤 존재인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단순히 귀찮아하거나 의례적인 인사가 아닌, 진심으로 그녀를 향한 경의와 존경이 느껴졌다.

“이번에 새로 동아리에 들어온 녀석들이다. 1학년이지만 실력은 확실한 녀석들이야.”

“1학년……이라고?”

그들의 의아한 시선 속에서 신입생들에 대한 레이첼의 소개가 이어졌다.

“각각 네르하 라데우스, 알페온 리브레히트, 루시아 스플릿하트, 바스톤 페레이라다.”

“라데우스?”

“리브레히트?”

뒤에 언급된 루시아와 바스톤은 별다른 관심을 얻지 못했지만 네르하와 알페온은 사정이 달랐다.

“잠깐. 네르하 라데우스라면……!”

대번에 그들의 표정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레이첼이 은근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어렵게 데려온 애들이니까 괴롭히면 안 된다?”

“…….”

언젠 적당히 하라고 하더니 정작 본인께선 시비 걸리기 딱 좋은 멘트를 날리네?

아니나 다를까. 대번에 반감이 섞인 반응이 튀어나왔다.

“아무리 라데우스의 직계라고 해도 아직은 애송이. 이곳에 들어온다면 이곳의 법도를 따라야 합니다.”

“이곳은 실력이 전부입니다.”

“그 규칙을 세우신 건 교수님이시니 그걸 이제 와서 바꾸진 않으리라 믿습니다.”

이것 외에도 대부분의 반응은 비슷했는데, 내용은 하나같이 ‘알아서 숙여라’라는 뜻을 담고 있었다.

‘이거 설마.’

네르하의 시선이 레이첼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기묘한 웃음을 지으면서 별다른 반응을 보이질 않았는데,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한숨을 쉰 네르하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서며 외쳤다.

“아주 마음에 들어. 나이, 지위, 이런 건 상관없는 실력 지상주의인 장소. 사실, 나도 이런 곳을 원했거든.”

“뭐?”

“저 새끼가 지금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아직 1학년인 주제에 감히……!”

대번에 욕설과 함께 분노의 기운들이 몰아친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네르하는 더더욱 마음에 들었다.

리브라에서 직계가 가지는 위상을 생각하면 네르하가 아무리 1학년이라도 이렇게 깡이 있는 모습을 보이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진심으로 자기 실력에 자신이 있는 건지, 아니면 내 악명에 배짱을 부리는 건지는 확실히 확인해 봐야겠지.’

까딱까딱!

네르하가 그들을 향해 손을 까딱였다.

“실력이 전부인 곳에서 신입생이 이렇게 나오는데 가만히 있지는 않겠지?”

“……!”

“안 덤비고 뭐 해? 아니면 내가 갈까?”

네르하의 상큼한 미소가 동아리의 선배들에게 작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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