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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83화 (83/237)

83화

<실전 마법 연구회 (3)>

금방 덤벼들 것 같았던 이들은 의외로 침착하게 반응했다.

‘이거 봐라?’

현재 자리에 있는 이들은 모두 일곱.

평정심을 잃고 으르렁거리는 녀석이 다수였지만 단 두 명만이 냉정하게 네르하를 노려보며 그 실력을 재고 있었다.

‘저 두 놈이 에이스겠군.’

바꿔 말하면, 저 두 놈을 제압할 수 있다면 이 동아리 내에서 네르하의 지위가 확고하게 자리 잡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네르하는 그중에서도 조금 더 강해 보이는 남색 머리의 청년에게 다가갔다.

수수한 인상이었지만 외모와는 다르게 나름 정련된 기세가 느껴진다.

“제법인데?”

레이첼 역시 그게 정답이라는 듯 은근한 미소를 지었다.

꿈틀!

네르하와 남색 머리가 눈을 마주치자.

대번에 주변에서 말이 사라지고 분위기가 굳어지기 시작했다.

먼저 입을 열은 건 남색 머리였다.

“네르하 라데우스라고 했나?”

“알면서 모른 척하시긴.”

“…….”

“뭐, 아직 정식으로 제 지위가 결정된 건 아니니 일단 선배 대접은 해드리죠.”

그 말에 남색 머리가 피식 웃었다.

“눈물 나게 고맙군.”

“그래서, 이름은?”

“디센트 맥퀸이다. 4학년 졸업반이지.”

“졸업반이라. 여기 있는 이들 중에선 선배가 가장 강한 것 같은데. 제 눈이 틀렸을까요?”

네르하의 말에 디센트는 고개를 내저었다.

“내가 이 동아리의 회장이니 틀린 말은 아니다.”

“과연!”

네르하는 자신의 예상이 맞자 기분 좋게 웃었다.

그런 네르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디센트가 물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

“말하시죠.”

“왜 이 동아리에 들어온 거지?”

“흐음?”

의외의 질문에 네르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게 말하는 저의가?”

“너라면 굳이 이런 곳에 들어올 필요 없이 아무 귀족 동아리에 들어가도 황제 노릇을 할 수 있을 테니까.”

“과연.”

디센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아무리 리브라의 상급생들이 각자 본가의 파벌 속에 속해 있다고는 하나 모든 이들이 그런 건 아니다.

네르하의 지위와 능력이라면 얼마든지 비집고 들어갈 수 있을 터.

“이곳이 마음에 들었다고 해두죠.”

“마음에 들었다?”

“가문과 아직 얽히지 않은 인재를 얻기 위해선 이런 곳이 적격이니까요.”

“……!”

그 말뜻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우릴 가문 내의 추잡한 권력 싸움에 끌어들이겠다고?”

은은한 분노를 담은 디센트의 말에도 네르하는 코웃음을 치며 비웃었다.

“그런 거에 얽매이고 싶지 않았다면 애초부터 리브라에 들어오지 말았어야죠.”

“…….”

“설마 그런 것조차 각오하지 않고 리브라에 들어오진 않았겠죠? 정말 그렇다면 많이 실망인데요.”

디센트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애초에 리브라는 일반적인 마탑이나 아카데미와는 그 궤를 달리하는 장소.

과정부터 결말까지 모두 라데우스 가문과 깊게 얽힐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물론 저 역시 조금 윽박지른 면이 없다고는 말하기 힘들겠죠.”

네르하가 디센트의 심장 부근에 손가락을 올렸다.

“그러니 실력으로 증명하면 됩니다. 절 꺾고 이 동아리에서 쫓아내면 만사가 좋지 않겠습니까?”

“풋, 재밌는 녀석이 왔군.”

그때, 화를 낼 줄 알았던 디센트가 의외로 피식 헛웃음을 터트렸다.

“바멜 라데우스보다도 훨씬 건방지고 패기 넘치는 녀석이야.”

“으응?”

바멜?

디센트의 입에서 의외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뭘 그리 놀라나? 그 역시 리브라의 졸업생인데.”

“아니, 뭐. 넷째 형님의 이름이 다른 이의 입에서 나온 건 처음인지라.”

“바멜 라데우스는 나보다 두 기수 위의 선배지. 내가 이 동아리에 처음 가입했을 때 바멜은 4학년 졸업반이었다.”

디센트의 입에서 제법 흥미로운 사실이 튀어나왔다.

“당시, 바멜은 자신을 따르는 이들을 이끌고 리브라 내에서 한창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지. 그 대상에 우리 실전 마법 연구회도 예외는 아니었어.”

“호오?”

“하지만 바멜은 결국 당대의 선배들을 꺾지 못하고 물러서야만 했지. 그 이후로는 우릴 딱히 건드는 놈은 없었는데 이번에 그 동생이 우리를 내부에서 집어삼키려고 들어왔군?”

“그래서, 꼬우십니까?”

“아니, 우리도 언제까지나 중립을 유지할 수 있을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아. 실제로 동아리의 졸업생 선배 몇은 라데우스에 들어간 후 자신의 주군을 찾았고.”

생각보다 유연한 사고방식에 네르하는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역시 이 동아리는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야.’

처음, 추잡한 권력 싸움이니 뭐니 했던 건 어디까지나 네르하를 떠본 것일 뿐.

철저하게 계급제를 유지하고 실력 위주로 돌아가고 있다는 건 자신 있으면 직계 중 누구라도 어디 한번 실력으로 거둬보라는 레이첼의 창립 의도가 섞여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디센트가 싸늘한 눈빛을 보내왔다.

“다만 네가 입을 털 만큼의 실력이 없다면 넌 상상 이상의 굴욕을 당할 거다.”

“재밌군요.”

네르하와 디센트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5레벨은 무조건 넘었을 테고, 젊지만 실전 경험도 나름 풍부한 녀석인 것 같은데.’

탐이 난다.

바스톤과 알페온이 아직 원석이라면 이 녀석은 어느 정도 완성형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한 보석.

그리고 그 보석의 크기와 빛깔은 결코 주변에 굴러다니는 흔하디흔한 싸구려가 아니었다.

“그럼 바로 시작하시겠습니까?”

호기로운 네르하의 말에 디센트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뭔가 즐거운 것 같군.”

“그래 보입니까?”

무인과는 달리 마법사는 만나는 이마다 전략이 판이하게 달라 상대하는 재미가 있다.

“하지만 지금은 안 돼.”

“어째서죠?”

단호한 디센트의 거절에 네르하는 김이 빠졌다.

“우린 지금, ‘헤르메스’를 준비 중이니까.”

“헤르메스?”

“설마, 모르나?”

“굳이 알아야 합니까?”

“…….”

진심으로 모르겠다는 네르하의 모습에 디센트의 표정이 황당하게 뒤바뀌었다.

그때였다.

“헤르메스가 뭔지도 모르는 놈이 동아리 활동을 하겠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디센트의 근처에서 인상이 꽤나 험악한 청년 하나가 벌떡 일어났다.

덩치만 보면 바스톤과 호형호제해도 될 것 같은 위압감이었다.

“아놀드.”

“회장! 회장이 나설 필요까지도 없습니다! 제가 저놈을 박살 내 쫓아 버리겠습니다!”

쿵! 쿵! 쿵!

아놀드라 불린 거한은 면상을 흉악하게 일그러뜨린 채로 네르하에게 다가왔다.

“어어?”

그런 아놀드의 기세에도 네르하는 위축될 리가 없었다.

다만.

“바스톤, 네 친형님이냐?”

머리 색도 비슷한 갈색이고, 덩치도 그렇고.

인상이 좀 다른 것만 제외하면 바스톤이 또 하나 있는 느낌이다.

네르하의 물음에 바스톤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페레이라 가의 영식은 저 하나뿐입니다만.”

“그래?”

네르하는 뭔가 감회가 새롭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리브라에 너 같은 녀석이 또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군.”

“이 자식이!!”

당연히 그런 발언들이 아놀드의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정중하게 마법으로 상대해 주려고 했더니!”

“오, 주먹다짐이라면 오히려 환영이지.”

네르하가 검지를 위로 까딱거리자 아놀드의 이성이 완전히 사라졌다.

“죽여 버리겠어!”

대번에 아놀드가 주먹을 휘두르며 네르하를 덮쳤다.

“아놀드, 그만해! 만약 상대가 다치기라도 한다면……!”

“그래. 아놀드. 네가 다치면 큰일이니 그만두는 게 좋아.”

아놀드의 돌진을 본 디센트와 레이첼이 각각 한마디씩을 날렸다.

디센트가 적극적으로 소리치며 아놀드를 말린 데 반해 레이첼은 심드렁하게 중얼거렸다는 점이 차이였지만.

어쨌든 아놀드의 주먹은 착실하게 네르하의 면상을 향해 돌진했고.

퍼억!

그대로 아놀드의 머리가 뒤쪽으로 팍 꺾이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어?”

상황을 지켜보던 다른 생도들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왜 주먹을 날린 아놀드의 머리가 젖혀졌지?’

십여 명이 넘게 있는 이 자리에서 네르하가 어떤 방식으로 대응했는지 정확히 알아차린 사람은 네 명.

레이첼, 루시아, 바스톤, 그리고 디센트뿐이었다.

“……!”

디센트는 방금 전 벌어진 일을 상기하며 눈을 부릅떴다.

아주 자연스럽게 목을 살짝 꺾는 것만으로 아놀드의 공격을 회피한 것으로도 모자라 상대의 반동을 이용해 그대로 아놀드의 면상에 주먹을 꽂아 넣은 것이었다!

그 외의 인물들은 그저 아놀드가 제멋대로 고개를 꺾은 것으로 보일 것이다.

“아이고.”

“그러게 왜 덤벼서는.”

훈련 내내 네르하에게 어마어마하게 시달렸던 세 명은 아놀드의 모습에 동정을 금치 못했다.

‘그래도 넘어지지 않은 걸 보면 맷집은 제법?’

루시아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으아아아악!”

화가 머리끝까지 난 아놀드가 양팔을 벌리며 또다시 네르하에게 달려들었다.

평범한(?) 주먹질이었기에 일격에 무력화되진 않은 모양이었다.

그런 아놀드의 모습에 네르하는 혀를 찼다.

“흠, 육체의 잠재력은 더 훌륭할지 몰라도 전투 기술은 바스톤만 못하군.”

분노에 이성이 먹혀 전신에 약점을 훤히 내보이고 있질 않은가?

“죽엇!”

“그래. 죽어라. 아니, 죽으면 곤란하니 그냥 기절해라.”

네르하는 그대로 접근해 발뒤꿈치로 녀석의 턱을 후려갈겼다.

빡!

방금 전보다도 더 흉악한 소리가 들려옴과 함께 그대로 아놀드의 신형이 스르르 무너져 내렸다.

“…….”

“…….”

그야말로 전광석화 같은 일격. 그 모습에 실전 마법 연구회의 일원들은 입을 쩍 벌리며 경악했다.

“자, 혹시 더 덤비실 분 계십니까?”

그 후에 이어진 네르하의 말에도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 * *

“푸하하하! 아놀드를 단 이격에 때려눕히다니! 지금까지 마법이 아닌 주먹질로 아놀드를 이긴 녀석은 없었는데 말이야.”

레이첼이 재밌는 걸 봤다는 듯 유쾌하게 웃어젖혔다.

“…….”

그리고 네르하를 제외한 나머지 동아리 신입 부원 셋은 완전히 뭐 씹은 얼굴이 되어 고개를 숙였다.

당연히 신입생과 선배들의 첫 만남은 완전히 개판이 되어 버렸다.

비록 네르하에게 덤비려는 이는 없었지만 나머지 동아리 선배들은 그야말로 철천지원수를 보는 눈빛으로 네르하와 다른 세 명을 노려보았다.

“뭐, 시간이 해결해 주겠죠.”

정작 일을 벌인 당사자인 네르하는 별걱정 없다는 어조로 지나가듯 말했다.

“열 번 쪼개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거, 그럴 때 쓰는 말 아닙니다만.”

뒤에서 루시아의 불만 섞인 딴죽이 흘러나왔지만 가볍게 무시당했다.

“이럴 때 쓰는 말 맞지. 열 번 정도 패다 보면 알아서 숙이지 않겠어?”

“대체 저 양반은 케프렌에서 태어나지 않고 왜 라데우스에서 태어났는지 모르겠네.”

그 말을 들은 바스톤과 알페온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오늘은 가벼운 인사차 들린 거고. 일단은 선배들이 그 헤르메스라는 게 끝나면 다시 오도록 하자고. 어차피 우리 역시 중간시험이 있으니까.”

“가벼운 인사차?”

일행들은 단어의 뜻을 자신이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잠시 인지부조화를 겪었다.

‘헤르메스라.’

레이첼에게서 들어보니 헤르메스라는 건 마법계에서도 상당히 알아주는 청년 마법사들의 이론 경연 대회라고 한다.

굳이 무림으로 따지면 후기지수들의 천하제일 논검 대회…… 정도라고 보면 되려나?

검의 낙원과의 교류전에 헤르메스라는 경연 시험까지.

외부 미션을 마치고 돌아온 이후 나름 평온한 일상이 이어질 줄 알았는데 제법 흥미를 끄는 단어들이 귓가에 들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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