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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84화 (84/237)

84화

<중간시험 (1)>

그렇게 며칠 뒤.

외부 미션에 나갔던 이들이 모두 돌아왔다.

“다섯 명.”

그리고 라데우스의 일을 돕기 위해 당당하게 출진했던 이들 중 다섯 명이 시체로 돌아오고 말았다.

라데우스 가문은 그들을 전사자로 예우하고 신관을 불러 장례를 치러 주었다.

“그래도 다섯 정도면 역대 기수 중에서도 가장 희생자가 적은 편에 속하지. 너흰 잘했다.”

신입생 전부가 모인 장례식에서 기숙사 사감인 에드발이 던진 한마디였다.

무사히 귀환한 이들을 위로하는 말이었지만 에드발의 시선은 여전히 다섯 개의 관에 고정되어 있었다.

‘정이 많군.’

매해 떠나보내는 이들을 보며 감정이 죽을 법도 한데 에드발은 여전히 아련한 표정으로 죽은 이들을 애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죽은 자는 죽은 자고, 산 자는 살아야 했다.

장례식이 끝나고 돌아오니 역시나 기숙사의 분위기는 상당히 가라앉아 있었다.

아직 장례식에서 돌아오지 않은 에드발을 대신해 부사감이 나타나 기숙사 인원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모두, 주목. 중간시험에 대한 공지가 있다.”

중간시험에 대한 발표가 나자 침울해 있던 이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부사감이 공지가 적힌 서류를 흔들며 말했다.

“사전에 알고 있는 녀석들도 있겠지만 리브라의 시험은 그 범위가 존재하지 않는다. 설사 1학년이라 해도 말이지.”

마법이란 그 계통, 속성, 범위, 학파 등등에 따라 천차만별로 이론이 갈리며 그것을 하나로 통일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설사 공용 마법을 배우는 1학년들이라 해도 리브라는 뻔한 내용을 시험으로 내보내지 않았다.

“리브라에서 배운 것이든 가문에서 배운 것이든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총동원해 하나의 술식을 만들어서 제출하도록.”

그 순간, 생도들의 눈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주제 자유, 내용 자유, 분량 자유. 다만 그 술식에 대한 첨삭과 증명은 필수로 할 수 있어야 한다. 가문이나 타인에게서 가져온 술식을 자신의 것으로 포장하는 놈은 당연히 0점. 기간은 한 달이다.”

부사감이 생도들을 보며 물었다.

“질문 있나?”

그러자 누군가가 손을 들었다.

“말해라.”

“협력으로 인한 공동 개발은 어떻게 취급됩니까?”

그 질문을 들은 부사감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상관없다. 다만 그 개발 술식에 대해 완벽히 이해했는지 다른 이들보다 훨씬 철저하게 평가할 것이며, 자연히 고득점 커트라인이 개인 제출물보다 올라간다는 것은 명심하도록.”

즉, 1+1의 결과가 3 이상의 시너지를 낼 수 없다면 있으나 마나 한 일이란 소리였다.

그 이후로도 몇 가지 질문에 대답한 부사감이 이 말을 끝으로 공지를 끝냈다.

“중간 평가에서 1등을 한 생도의 이론은 본인의 희망에 따라 이번 년도 ‘헤르메스’에 제출하는 것이 허락된다. 그곳에서 정식으로 입상만 해도 엄청난 명예와 보상이 뒤따르니 정진하도록.”

‘으응?’

네르하는 지난번 들었던 헤르메스라는 말이 다시 튀어나오자 고개를 갸웃했다.

‘1등은 헤르메스에 제출된다고?’

30세 이하 마법사들의 마법 이론 경연 대회인 헤르메스.

처음 들었을 땐 약간 관심이 있었지만 교류전과 마찬가지로 1학년은 참여가 금지된다는 말에 금세 관심이 식은 녀석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대회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이러면 이야기가 다르지.’

네르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클로이아의 연구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어서오세요, 도련님!”

며칠 만에 만난 클로이아는 아~주 밝은 표정으로 네르하를 반겼다.

지금까지 그녀와 마주하면서 이렇게 밝고 활기차고 기분 좋아 보이는 미소를 접해 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 이유를 알고 있는 네르하는 피식거리며 웃음을 흘렸다.

“약발이 꽤 좋았나 보네?”

“최고예요!”

클로이아의 피부는 며칠 전과 비하면 비교도 할 수 없이 탱탱해졌다.

머리카락 역시 푸석함이 완전히 사라지고 윤기가 나고 있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교수로서의 일과에 더해 네르하에 대한 지원, 거기에 마나 연공법의 연구 등이 겹쳐 컨디션이 최악을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몸 상태에 극적인 반전을 이루어준 게 바로…….

“나머지 하나는 약발이 떨어졌다 싶을 때 먹어. 지금은 마나의 증진보다는 정상적인 몸 상태를 유지하는 게 우선이니까.”

“예에엡!”

시저 루드벡에게서 받아 온 최상급 영약 세 알.

네르하는 그중 두 알을 클로이아에게 투자해 버린 것이었다.

애초에 외부 미션의 보조 목적 중 하나가 그녀를 위한 영약의 수집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후, 후후후… 이 기운들만 모두 흡수할 수만 있다면 선배도 더 이상 날 무시하지는…….”

여태까지 쌓인 게 많았는지 클로이아는 레이첼에게 하극상(?)에 대한 의욕을 불태우고 있었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호호호, 물론이죠!”

저 ‘호호호’가 아주 인위적인 웃음이라는 게 마음에 참 걸리지만 어쨌든.

“그나저나, 헤르메스 입상 상품이 뭐길래 가라앉았던 기숙사 분위기가 이렇게까지 반전될 수 있었던 거지?”

“아, 헤르메스…….”

네르하의 물음에 클로이아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헤르메스의 정식 명칭은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 대륙에서도 명망이 높기로 유명한 그란시스 마탑에서 3년마다 주최하는 마법 이론 경연 대회죠.”

“그건 예전에 들었어.”

“사실, 그란시스 마탑은 사실상 라데우스 가문이 지배하는 곳이에요.”

“뭐, 그것도 들었지.”

“그렇기에 헤르메스 경연 대회가 마법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상이 높을 수밖에 없어요. 헤르메스에서 우승한 논문은 그대로 라데우스의 실베리오 아카이브에 보관되는 영광을 누리니까요.”

실베리오 아카이브는 7단계로 나뉜 라데우스의 마법 이론 보관소 중에서도 두 번째 등급에 속하는 이차원 보관소다.

최상위 등급인 임페리얼 아카이브가 사실상 대마법사들의 논문 보관소라는 걸 생각하면 이제 막 청년기에 든 이들의 논문이 이곳에 저장된다는 건 마법사로서 무한한 영광이 아닐 수 없었다.

그건 현재 자신의 가치뿐만 아니라 미래의 가능성 역시 라데우스 가문에서 보증해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하지만 네르하는 뚱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설마 그게 끝은 아니겠지?”

“아니, 사실 이것만 해도 엄청난 가문의 영광인데요…….”

“실익이 없잖아.”

“에휴.”

클로이아는 황금만능주의(?)에 빠진 자신의 주인을 향해 한심하다는 한숨을 내쉬었다.

“헤르메스에 정식으로 입상하게 되면 라데우스의 보관소에서 딱 한 가지, 원하는 마법 이론을 얻을 수 있게 돼요.”

“호오?”

그제야 심드렁하던 네르하의 표정에 흥미가 깃들었다.

“정식 입상 논문 열다섯 개, 우수 논문 다섯 개, 최우수 논문 두 개, 그리고 최고 논문 한 개.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보관소의 등급이 해금되는 식이죠.”

“그럼 최고 논문에 선정되면?”

클로이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임페리얼 아카이브에 보관된 대마법사의 마법 술식을 얻어내는 것도 가능해요. 설사 그게 무엇이든 간에.”

“……!”

이전, 카르안 라데우스의 실패작 논문을 봤을 때도 제법 높은 수준의 논문이라 생각했는데.

“그런 수준이 완성형에 이르러 보관되었다면…….”

네르하의 혹한 표정을 본 클로이아가 웃으면서 물었다.

“도전해 보시게요?”

“원하는 게 있긴 한데…… 그게 있는지는 둘째 치더라도 도전해 볼 가치는 충분하겠지.”

“확실히 헤르메스에서 우승한다면 후계 경쟁에서도 상당한 가점이 붙을 거예요. 제가 알기론 현 직계 중에 헤르메스에서 우승한 이는 단 한 명뿐인 것으로 알고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이번 대회에 다른 형제들 역시 참가할 수도 있겠군.”

“나이로 따지면 네 명 정도일까요? 아르바, 그 자식은 북방의 일 때문에 바쁠 테니 빼버리고…….”

그럼 자연스럽게 남는 건 바멜과 레티안, 세티안 남매 정도일 거다.

“재밌겠군, 그놈들을 자빠뜨리고 우승하는 것도.”

“자신감은 매우 넘치시는데 지금 도련님의 이론 실력으로는 헤르메스는커녕 학년 수석도 간당간당하다는 걸 인지하고 계시죠?”

당연한 말이지만 타인의 도움이 있어서는 안 되었다.

물론 이 도움이라는 게 해석하기에 따라 상당히 달라지는 것이기도 하지만 적어도 ‘중간시험’이라는 면에선 클로이아는 물론 다른 이들의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

“실전이라면 모를까, 이론이라는 면에서 지금의 도련님을 뛰어넘는 인재는 적어도 세 명은 넘어요.”

“세 명이라.”

아무리 네르하가 짧은 시간 내에 만만치 않은 지식을 쌓았다지만 지식을 쌓은 것과 그것을 응용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그런 아이들조차 헤르메스에 나가면 입상조차 불투명하죠. 그런데도 도전하시게요?”

“물론이지.”

네르하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내겐 이곳의 누구보다 앞서 있는 분야가 있으니까.”

“어, 설마?”

클로이아는 네르하가 무슨 분야를 말하는지 알아들었다.

그러고는 벙찐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진심이세요?”

“당연하지.”

“그, 그걸 오픈하겠다고?!”

마나 연공법.

마법 술식으로 취급되긴 하지만 지금까진 헤르메스에서 마나 연공법이 나온 적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네르하가 씨익 웃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물론 너와 함께 만든 걸 출품할 생각은 없어. 조금 많이 뒤틀고 손봐서 열화판을 내놓을 생각이다.”

하지만 그 열화판이라 해도 그 깊이가 낮다는 건 절대 아니었다.

“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헤르메스에 제출된 논문은 그대로 마법계에 발표된다.

즉, 마나 연공법 같은 비전 중의 비전이 마법계에 발표되면 상황에 따라 그 손해가 얼마만큼인지 측정하는 게 불가능할 정도였다.

네르하가 클로이아의 어깨를 다독였다.

“너무 걱정 말라고. 내가 그렇게 생각이 없진 않으니까.”

물론 지금까지 봐온 네르하의 심계가 나이에 걸맞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다.

불안해하는 클로이아를 향해 네르하가 음흉한 미소를 내보였다.

“익히고 싶다면 얼마든지 익히라지. 아주 고급스런 연공법을 공개해 줄 생각이니까. 하지만…….”

한번 발을 내밀면 뺄 수가 없을 거다.

네르하는 그 말을 속으로 삼켰다.

* * *

중간 평가를 앞두고 네 명이 항상 수행하던 육체 단련은 잠시 느슨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루에 정해 둔 훈련량을 빼먹지는 않았지만 그 외에는 마법 서고나 도서관에 박혀 술식 개발에 몰두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헤르메스라.’

루시아는 네르하로부터 이번 시험에서 당당하게 1등을 차지해 헤르메스에 도전하겠다는 포부를 들었다.

‘정말 그게 될까?’

마법계에 대해 네르하만큼이나 무지한 그녀였지만 그래도 헤르메스가 무엇인지 정도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분명 3년 전에 바멜 라데우스가 2위에 입상했었지.’

당시, 간발의 차이로 바멜을 꺾고 우승한 마법사는 ‘엘게스 그란체스터’라는 6레벨의 마법사로, 당시의 바멜보다 무려 일곱 살이나 많은, 나이 제한을 거의 꽉 채운 29살의 마법사였다.

아직 나이 제한에 걸리지 않은 바멜은 올해에도 당연히 도전할 테고, 레티안과 세티안 남매 역시 응시할 가능성이 충분했다.

‘그 사람은 대체 무슨 이론을 제출할 생각이지?’

30세까지라는 나이 제한은 의외로 리브라의 생도들도 쉽게 좁히지 못할 정도의 격차가 있다.

역대 우승자들은 대부분 떡잎 때부터 천재성을 입증받은 5에서 6레벨의 마법사들이었으니까.

물론 리브라의 학생 신분으로 헤르메스에서 우승한 자가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네르하의 문제는 그가 리브라에 들어온 지 이제 고작 반년이 지났다는 점에 있었다.

지금껏 신입생이 제출한 이론이 헤르메스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적은 아예 없었다.

‘아무 생각 없이 일을 저지르는 사람은 아니니 뭔가 엄청난 걸 보여 주긴 하겠지만…….’

그 엄청난 게 뭔지 딱히 상상이 안 된다는 게 문제였다.

‘에이, 모르겠다. 내 앞가림이나 하자.’

루시아는 살짝 혀를 차며 주변에 수북하게 쌓여 있는 술식 뭉치들을 바라보았다.

네르하에 대한 걱정을 하면서도 그녀의 손은 쉬지 않고 펜을 놀리고 있었다.

‘이런 엄청난 기술을 알고 있는 사람이니 또 뭔가를 들고 나와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네르하가 루시아와 바스톤에게 가르친 양의심공.

어느 정도 입문 단계를 지난 루시아는 이 양의심공을 아주 쏠쏠하게 써먹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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