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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87화 (87/237)

87화

<중간시험 (4)>

“부정이라면?”

“몰라서 묻는 것이냐? 당연히 네가 제출한 이 논문을 말하는 것이다!”

퉁!

루트비히는 책상 위로 네르하의 논문을 거칠게 올려놓았다.

[네르하식 마나 연공법(가제)]

네르하가 굳이 라데우스라는 성을 빼버린 것은 이 연공법이 가문과는 일절 관계가 없다는 걸 어필하려고 했던 것이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은 모양이군.’

뭐, 그럴 만도 했다.

지금, 네르하가 제출한 마나 연공법은 일개 생도 수준을 넘어 어느 대가문의 비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완성도를 보이고 있었으니까.

“대체 어느 가문의 비전을 훔친 것이냐!”

“훔친 거라뇨?”

“이놈! 바른 대로 고하지 못할까!”

시작부터 이 정도 분노는 예상한 일이긴 했지만 그래도 변명할 기회는 주어야 하지 않겠나?

별다른 표정 변화를 보이질 않는 네르하에게 루트비히는 윽박지르는 것에서 타이르는 것으로 노선을 바꾸었다.

“네르하 라데우스.”

“네. 학장님.”

“이건 너와 나의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

“이 사실이 바깥에 공표된다면 넌 지금까지 얻어온 모든 신뢰와 공을 잃게 될 것이다. 그러니 정직하게 털어놓거라.”

과연 네슬렉이 이 사실을 본가에 알리지 않았는가.

아니면 정말로 자신의 선에서 일을 수습하기 위해 이쪽을 배려하는가.

지금으로선 알 수가 없지만…… 일단은.

네르하는 빙그레 미소를 보였다.

“학장님.”

“그래.”

“제가 설마 뒷수습도 하지 못할 일을 저질렀겠습니까?”

“뭐라고?”

묘한 어감을 지닌 말에 루트비히의 분노가 진심으로 폭발하기 직전.

“그 논문은 제가 쓴 것이 맞습니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거기에 적힌 문자 그대로 읊을 수 있으며, 원하신다면 오의(奧義)와 도해(圖解) 또한 풀어서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루트비히는 한순간 말문이 막혔다.

대체 이놈이 뭘 믿고 이리 설치는지 궁금증이 도졌다.

“오의와, 도해라고?”

“네. 제가 만든 것이니 당연히 그 정도쯤은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마법계에 저작권을 등록할 때 해당 논문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최소 8레벨 이상의 대마법사의 신원 보증을 받아 저작권을 등록하는 방법.

그리고 또 하나는 그 논문에 대한 모든 것을 낱낱이 해체하여 입증하는 것이다.

당연히 그 내용을 둘둘 암기하고 있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해당 이론의 기본적인 적용 방향은 물론 변형할 수 있는 사용법이나 더 나아가 어느 분야에 접목할 수 있는지 또한 막힘 없이 대답해야 한다.

“마나 연공법은 일반적인 술식보다도 훨씬 다양한 응용 방법과 변수가 존재하지. 너는 그 모든 것을 대답할 수 있다는 뜻이더냐?”

“그렇습니다, 학장님.”

네르하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 눈빛을 마주한 루트비히가 인상을 쓰며 네르하에게 논문을 건넸다.

“좋다. 그렇게 자신만만하다면 내 눈앞에서 이 논문을 완벽하게 입증해 보거라.”

“아, 그 전에.”

“……?”

네르하는 빙그레 웃으며 루트비히와 눈을 마주쳤다.

“만약 이 논문이 저의 저작물이라는 것을 입증할 수 있다면.”

“당연히 이번 시험의 1등은 네가 될 것이다.”

그 말에 네르하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뇨. 그 정도로 만족할 수는 없죠.”

“만족할 수 없다고?”

고작 중간시험에 응시할 생각으로 만든 논문이 아니다.

“이 논문이 헤르메스에 제출된다면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둘 수 있겠습니까?”

“헤르메스라고?”

루트비히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이 논문이 정말로 진실이라는 가정하에 네르하가 무엇을 노리고 제출했는지 대번에 깨달았다.

“헤르메스라…….”

당연한 말이지만 루트비히 정도 되는 마법사라면 헤르메스의 특별 심사 위원으로 심심치 않게 초빙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만큼 헤르메스에 제출하는 수많은 논문들을 접해 보았고, 그 경험을 토대로 이것의 수준을 측정한다면?

“우승도…… 불가능한 건 아니다.”

“그렇습니까?”

씨익!

다른 누구도 아니고 루트비히 라데우스다.

그의 눈높이는 어지간한 심사 위원들보다 훨씬 더 높은 기준을 가지고 있을 터.

이만한 인물의 보증이라면 확실히 지난 시간 동안 개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 논문이 너의 것이라는 걸 입증하고 나서다.”

지금까지 루트비히가 학장 자리에 있던 이래 최소 수십이 넘는 라데우스의 직계들이 중간시험에 논문을 제출했다.

하지만 그들 중에서 이만한 깊이와 난이도를 제출한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래. 그 바스텔이라 해도 말이지.’

라데우스 역사상 최고의 천재라 불리는 바스텔 로저 라데우스라 해도 1학년 당시 이 정도 수준은 아니었다.

“그러니 증명해 봐야 할 것이다.”

“좋습니다.”

네르하는 근처에서 의자 하나를 가져다가 루트비히의 책상 앞에 놓았다.

아무리 상대가 루트비히라도, 아니, 루트비히니까 이것의 입증을 위해선 못해도 수 시간 이상의 설명이 뒤따라야만 했다.

“일단 인체에 흐르는 혈도…… 즉, 마나 패스라 불리는 개념부터 정확히 이해하셔야 설명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일단은 십이경맥과 기경팔맥의 개념부터 시작하자.

그로부터 해가 저물고 새벽 달빛이 리브라를 비출 때까지 무려 여섯 시간 동안 논문에 대한 해석이 학장실을 가득 메웠다.

* * *

벽에 걸려 있는 시계의 시침은 어느새 숫자 1에 닿아 있었다.

새벽 1시. 네르하가 돌아간 뒤로부터 10분이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허, 허허…….”

루트비히는 혼이 빠진 얼굴로 자신의 의자에 앉아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허허허허…….”

그의 눈앞엔 네르하가 입증한 논문의 첨삭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이게 정말, 그 녀석이 창안한 연공법이라고?”

어지간한 수재들조차 숨이 턱 막힐 수준의 압박 질문들을 쉴 새 없이 쏟아내었던 루트비히였다.

설사 네르하가 진짜 논문의 저자라 할지라도 압박감을 느꼈을 정도로 몰아붙였는데.

네르하는 그야말로 물 흐르듯이 루트비히의 질문 세례를 한 차례도 막힘 없이 정확하게 대답해 버렸다.

정말로 인정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검증을 마치고, 네르하는 유유자적하게 학장실을 나섰다.

그렇게 잠깐 루트비히가 몰려온 허탈함에 몸을 맡기고 있을 때.

“크허허허! 어떠냐, 영감탱이야. 내 제자의 재능이 바로 이 정도다!”

어느새 루트비히의 눈앞엔 하얀 수염을 기른 거한이 나타나 있었다.

“시저.”

명왕 시저 루드벡.

리브라의 모든 보안을 뚫고 학장실까지 도달한 그가 루트비히의 눈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네놈이 그렇게 탈탈 털리는 모습은 수십 년 만에 보는 것 같군. 크흐흐흐!”

“쪼개지 마라, 애들 불러서 쫓아내기 전에.”

어느새 연장자로서의 태도를 집어던진 루트비히가 한결 편한 어조로 시저를 쏘아붙였다.

“네놈은 라데우스 소속도 아닌 주제에 낄 데 안 낄 데를 구분하질 못하는군. 네르하도 그렇고, 아르바도 그렇고.”

“허허헛!”

“그럴 바엔 차라리 정식으로 가문에 들어오는 편이 좋지 않으냐? 뭘 그리 빼고 있어?”

“아무래도 의무를 짊어지면 피곤해지니 말이지.”

“흥!”

“그리고 북방은 까딱 잘못하면 정말로 위험해지니까. 어쩔 수가 없었다.”

은거나 다름없는 삶을 살고 있던 시저였지만 짬과 실력이 있는 만큼 어느 정도 개인적인 정보망이 존재했다.

그 정보망의 보고에 의하면 아르바가 맞이한 북방의 상황은 정말 잘못하면 범대륙적인 재앙이 되기에 충분했다.

“아르바, 그놈도 무능한 건 아니야. 충분히 상황의 반전 정도는 끌어내겠지. 필요한 정보는 그렌 타운에서 모두 얻은 것 같으니.”

“그래도 점수가 깎이는 건 어쩔 수 없을 거다. 슬슬 가주에게도 보고가 들어갔을 테니까.”

아무리 은밀하게 일을 진행하더라도 라데우스의 이름 아래 있는 이상 가주의 눈을 완벽히 속일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것까지 시저의 관심 범위는 아니었다.

아르바에 대한 흥미가 식은 시저가 대화의 주제를 바꾸었다.

“그래서? 헤르메스 어쩌고 하던데 내 제자의 논문은 입상 가능성이 있는 것 같나?”

“입상? 넌 지금까지 뭘 엿들은 거냐?”

루트비히는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했다.

“이대로 제출한다면 압도적인 우승일 거다. 격이 달라.”

“그 정도냐?”

“지금도 믿기질 않는다, 그 녀석이 이런 수준의 연공법을 창안했다는 게…….”

마나 패스에 대한 이론은 루트비히도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네르하가 제시한 마나 패스에 대한 지식은 루트비히조차 생전 처음 들어볼 정도로 다양하고 복잡한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대체 어디서 이런 지식을 얻었을까?’

설사 이 연공법을 네르하가 창안하였다고 해도 마나 패스의 지식 자체는 절대로 네르하가 스스로 알아낸 것은 아닐 것이다.

루트비히가 그렇게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시저가 살짝 하품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

“흐아암! 뭐 어때? 베낀 게 아니라면 좋은 게 좋은 거지.”

“대마법사라는 놈이 생각하는 수준하고는.”

“그래서 녀석을 내게 맡기기로 한 논의는 아직도 진행 중인가?”

시저가 이런 늦은 시간에 보안을 뚫고 루트비히를 찾아온 이유는 오직 하나뿐이다.

지금까지가 적당한 사담이었다면 지금이 본론.

루트비히는 작게 입꼬리를 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논의는 무슨. 이곳에선 내가 법이지.”

“그 법께서 판단하시기엔 어떻냐고.”

시저가 품속에서 슬그머니 술 한 병을 꺼냈다.

그 술병엔 루트비히가 가장 좋아하는 골드 드래곤 문양의 라벨이 새겨져 있었다.

돈과 권력이 있어도 그 희소성 때문에 쉽게 구하지 못한다는 에가라스 지방의 로쉴드 203년산 와인이었다.

“커허허험!”

루트비히는 크게 헛기침을 하며 시저가 내민 와인을 곱게 받아 들었다.

“뭐, 이런 걸 다……. 네르하를 지도할 수 있는 인재는 너를 제외하면 없다는 건 이미 결정이 났거늘…….”

“허허, 그런가?”

시저는 너털웃음으로 루트비히를 바라보고 있지만 그 눈은 상당히 가늘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런 뇌물이 아니었다면 확답을 해 주는 건 최소 한 달 정도 후의 일이었겠지.’

그래도 생각이 어느 정도 기울지 않았다면 이 정도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와인을 조용히 밑으로 숨긴 루트비히가 그제야 엄중한 표정을 만들었다.

“크흠! 이제와서 하는 말이지만 사실, 조금 많이 고민했네. 지금도 좀 고민 중이고.”

“그거 받아먹고 설마 두말하는 거냐?”

“아니! 내 말 좀 들어 보라니까?”

시저의 전신에게서 살기가 뿜어져 나오자 루트비히는 다급하게 손을 내저었다.

“그 뭐냐. 네가 네르하를 가르친다는 건 어떻게 보면 라데우스의 후계 경쟁에서 네르하를 지지한다는 선언과도 같지 않나?”

“뭐, 그렇지.”

민감한 주제가 튀어나오자 시저는 살기를 가라앉혔다.

“네놈이야 학파의 진전을 이을 인재다 싶으니 네르하의 상황이 어떻든 일단 제안부터 던졌겠지.”

“크, 크흠!”

사실상 긍정이나 마찬가지인 반응이었다.

“그리고 넌 네 벨카서스 학파의 대를 이을 수 있다면 라데우스의 후계 구도가 어떻게 변하든 상관하지 않겠고.”

“뭘 말하고 싶은 거냐, 루트.”

학장실의 온도가 급격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루트비히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무력이란 측면에서 보면 당연히 네르하, 정확히 말하면 3부인의 세력은 최약체나 다름없다.”

비율적인 측면에서 보면 바멜, 세티안, 레티안 남매의 2부인 세력의 반의반조차 되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대부인 시엘 라데우스와는 비교거리도 되지 않고 말이다.

하지만 거기에 8레벨의 대마법사인 시저가 합류한다면?

“대번에 세력 구도가 뒤바뀌겠지. 라데우스 가문은 큰 혼란에 빠져들 것이다.”

루트비히는 어느새 라데우스의 최고 원로의 눈으로 시저를 바라보았다.

“시저, 넌 그에 대한 책임을 질 각오가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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