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95화 (95/237)

95화

<손님이 아니라 손놈 (3)>

“그들의 패악질이 도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검의 낙원에서 교류전을 목적으로 온 이들은 상층부에서도 상당한 골칫거리였다.

“들르는 시설마다 트집을 잡거나 시비를 걸어대서 일반 생도들과 지속적으로 충돌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무력 충돌까지 가지 않았다는 걸 위안으로 삼아야 할까요?”

“숙소에서 몰래 빠져나가는 짓도 서슴지 않고 있죠.”

그나마 숙소의 위치가 리브라의 핵심 시설과는 거리가 먼데다 그렇게 빠져나가 상가에서 술을 공수하거나 하는 일반적인 말썽만을 부릴 뿐이었다.

몇몇 관리자들이 피로를 호소하며 교장을 간절하게 바라보았다.

“강력한 제재를 가하진 않았지만 이대로라면 숙소에 결계를 쳐야 할 판입니다.”

검의 낙원에서 온 기사들은 그야말로 대놓고 진상 짓을 부렸다.

과거, 교류전에서도 고압적인 태도로 물의를 빚은 경우가 있었지만 이번엔 아주 대놓고 리브라에 시비를 걸고 있다는 것이 차이점이었다.

“뭔가 노리는 것이 있나?”

보고를 모두 들은 루트비히가 부학장 네슬렉에게 시선을 돌렸다.

네슬렉은 담담한 표정으로 코웃음을 쳤다.

“보안은 완벽합니다. 놈들은 이곳에서 어떠한 헛짓거리도 할 수 없을 겁니다.”

“놈들의 목표가 우리가 아닐 수도 있겠지. 아무래도 ‘공주’와 관련해서 얕은 수작을 부리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교류회 마지막 날까지 놈들을 가둬 놓는 건 쉽습니다만.”

네슬렉의 말에 루트비히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겠지.”

그 말에 잠자코 있던 레이첼이 발언했다.

“하지만 관리 직원들의 피로가 계속해서 누적되고 있습니다. 조치를 취해야만 합니다.”

“물론 그럴 생각이네. 다만 학사 차원에서 직접 제재하는 건 모양새가 참 좋지 않아.”

“그 말씀은?”

루트비히는 깍지를 낀 모습 그대로 느긋하게 말을 이었다.

“혈기왕성한 놈들이니 운동하는 것도 좋아하겠지.”

“아하!”

레이첼은 그 말뜻을 알아차리곤 대번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그놈들을 모두 단련실로 보내게. 그곳에서 땀을 빼면 알아서 얌전해지겠지.”

“예. 학장님.”

레이첼은 루트비히의 말에 깊이 고개를 숙였다.

루트비히의 방금 전 말에선 ‘누구와’. ‘어떻게’라는 내용이 생략되었지만 레이첼은 굳이 그걸 언급하지 않았다.

바로 어제, 단련실에서 그 녀석에게 자신의 제자들을 맡겨 놓지 않았던가?

한껏 내려간 자존감을 다시 채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 검의 낙원 애송이들이 그 새끼 괴물을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지.’

레이첼은 내일, 날이 밝으면 자신이 손수 놈들을 대련실이란 구렁텅이로 밀어 넣으리라 다짐했다.

* * *

검의 낙원에서 파견 나온 놈들의 패악질이 상당히 도를 넘어서는 모양이었다.

그것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던 건 바로 눈앞에 있는 클로이아의 초췌한 모습을 보면서였다.

“괜찮냐?”

“솔직히 말하면 그리 괜찮진 않아요.”

그녀는 약간 피곤한 기색으로 눈두덩이를 문질러 대었다.

신임 교수인 만큼 이런 일에 동원되어 꽤나 고생한 티가 많이 났다.

“뭔가 이상하군.”

네르하는 그런 그녀를 안쓰럽게 바라보는 한편, 현재 벌어진 상황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다.

“보통, 이렇게까지 무례하게 난리를 피우곤 하나?”

“레이첼 선배에게 물어보니 이번이 좀 유별나긴 하다더군요.”

클로이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교류전에서 상대에게 모욕을 준다면 모를까, 이런 식으로 비생산적인 시비를 거는 것은 확실히 이상했다.

“다른 목적이 있다고밖에 볼 수 없겠군.”

“굳이? 무슨 목적으로요?”

클로이아는 부정적으로 반응했지만 네르하에겐 짚이는 것이 하나 있었다.

‘루시아.’

그녀가 지금 이곳, 리브라에 있는 이상 저들이 무슨 돌발 행동을 벌이든 뭐든지 이유가 될 수 있다.

‘만약 루시아가 목적이라면 굳이 난리를 치는 이유는?’

몇 가지 가정이 떠올랐지만 그 모두가 그럴듯해서 오히려 답이 나오질 않는다.

“그렇다면 가장 가능성이 높은 걸 고르면 되겠지.”

“응? 뭐가 말이에요?”

궁금해하는 그녀에게 네르하는 손을 내저었다.

“넌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지금도 많이 피곤해 보이는데 루시아의 일까지 겹쳤다간 과로로 쓰러질 수도 있었다.

최고급 영약을 먹고 한동안 쌩쌩하게 날아다니던 클로이아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건 그만큼 현재, 업무가 상당히 과중하다는 뜻이었으니까.

“일단은 레이첼 교수가 떠넘기고 간 병아리들부터 훈련시키도록 하지. 굴리다 보면 여러모로 쓸모가 많을 것 같은데 말이야.”

특히나 세이라가 요청한 마법사 인력을 대체하기엔 아주 딱이었다.

라데우스나 리브라의 기준이 높을 뿐 일반적으로 4레벨 마법사라면 세간에선 충분히 1인분을 할 수 있는 수준이니까.

“괜찮겠어요? 따로 그들의 목적이 뭔지 알아보지 않아도?”

“도가 지나치면 학사 차원에서 제재가 들어가겠지. 지금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건 아직 선을 넘지 않았다는 뜻이겠고.”

가능하면 이쪽으로 오면 좋을 텐데 말이야.

그렇게 되면 합법적으로 사뿐하게 지르밟을 수 있고 말이다.

그때였다.

“무슨 소란이지?”

네르하는 바깥에서 시끌거리는 소리가 들려오자 고개를 돌렸다.

클로이아 역시 의아한 기색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둘이 아닌데요? 적어도 십여 명 이상의 기척이 느껴져요.”

그 순간, 클로이아는 보았다.

네르하의 입가가 먹잇감을 몰아세운 맹수처럼 뒤틀리고 있는 것을.

“호랑이, 아니, 고양이도 제 말 하면 오는 법이군.”

* * *

“이게 무슨 짓이지?”

바스톤은 갑자기 몰려와서 단련실 곳곳을 헤집는 불청객들을 향해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짓이긴? 우린 정당한 권리로 이곳을 둘러보는 중인데?”

그 말에 대답한 건 선두에 서서 이곳에 들어온 한 거한이었다.

검의 낙원의 3학년이자 이 무리의 인솔자인 말락이 바스톤을 향해 이죽거렸다.

“지금까지 봐온 시설 중에선 그나마 가장 봐줄 만하군. 하지만 검의 낙원에 있는 단련 시설에 비한다면 조악하기 짝이 없어.”

“뭐라고?”

바스톤과 알페온의 표정이 대번에 굳어졌다.

그뿐만 아니라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던 교관들 역시 좋지 않은 눈으로 그들을 흘기고 있었다.

“뭐, 어차피 마법사 나부랭이들이 몸을 단련한다고 해서 뭘 어떻게 할 생각인지 전혀 모르겠지만 말이야. 하하하!”

“푸하하하!”

뒤따라온 기사 생도들이 말락의 말에 따라 일제히 웃음을 터트렸다.

아예 몇몇은 함부로 비품을 건들며 멋대로 굴고 있었다.

“이놈들이 지금……!”

알페온이 막 고함을 치려던 그때였다.

“너희들, 거기까지 해.”

날카로운 여인의 목소리가 입구 쪽에서 들려왔다.

“아, 아네시스 님!”

단정하게 머리를 정돈한 금발의 여인, 아네시스 케프렌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네시스는 생도들을 노려보며 차갑게 일갈했다.

“이게 지금 뭐 하는 짓들이지? 케프렌과 검의 낙원의 명성에 먹칠을 해도 유분수지.”

“그, 그게.”

아네스는 저들이 무슨 짓을 하든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그녀의 관심은 어디까지나 루시아를 만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쩌다 우연히 기사 생도들이 리브라 곳곳에서 행패를 부린다는 말을 듣고 화급히 달려온 것이었다.

아무렇게나 널려 있는 운동 기구들과 분노에 차 있는 교관들의 모습.

그것을 본 아네시스의 표정이 더더욱 싸늘하게 변했다.

“너흰 기사로서 최소한의 긍지도 없어? 이게 대체 무슨 행패야!”

“그, 그것이…….”

“한두 명이 그런 것도 아니고 단체로 민폐를 끼치는 걸 보면 누군가가 너희에게 지시를 내린 것이겠지.”

그들은 아무런 말도 못 하며 서로 눈치를 볼 뿐이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관찰한 아네시스가 누군가의 이름을 툭 내뱉었다.

“시라스 선배야?”

“…….”

“맞구나.”

애초에 시라스 루 케프렌이 이번 교류전에 참가한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신이야 개인적인 이유가 분명히 있다지만 시라스는 검의 낙원의 기대주이자 차기 케프렌의 기수로 그 존재가 밝혀지지 않아야만 하는 존재였으니까.

‘그런 시라스 선배가 후배들을 이용해서 대체 무슨 짓을 벌이려는 거지?’

하지만 그녀의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칼잡이들이 행패를 부리고 있다 해서 조지려고 왔는데…… 설마 네가 주동자였냐?”

“어라?”

아네시스의 목이 녹슨 기계처럼 삐걱거리며 돌아갔다.

그리고 그곳엔 싸늘한 눈빛을 한 네르하의 존재가 있었다.

“아녜스, 네 말대로 이렇게 다시 만났구나.”

“그, 그!”

“다시 만나면 대련을 신청하겠다니, 오늘이 바로 그날이군.”

그 이후로 딱히 말이 없었지만 해명을 요구하는 네르하의 눈빛을 아녜스가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제대로 된 해명을 하지 못한다면 각오해야 할 거다’라는 표정이었다.

그녀는 네르하와 다른 생도들을 한 번씩 번갈아 보더니 화사하게 미소를 지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전 지금 상황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아, 아네시스 님?”

“그, 그럼 이만~.”

누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그녀의 등은 실시간으로 작아지고 있었다.

그야말로 광속 같은 재빠른 손절이었다.

검의 낙원에서 파견 나온 이들이 등을 돌린 그녀의 뒷모습을 황당하게 바라보고 있을 때.

네르하가 그녀에게 전음을 보냈다.

―오늘 저녁에 루시아를 데리고 만나러 가지. 너희 숙소 북쪽에 있는 정원으로 갈 테니 마음의 준비 정도는 하고 있어라.

원래라면 이 시간 때는 루시아 역시 이곳에 있어야 하지만.

아무래도 저들이 몰려온 것을 눈치채자마자 재빠르게 모습을 숨긴 모양이었다.

그 순간, 저 멀리 있던 아녜스의 머리가 살짝 움찔거리는 것이 보였다.

“어, 어어?”

그렇게 남겨진 검의 낙원의 생도들.

그들은 멍한 눈으로 네르하와 아네시스의 등을 번갈아 보았다.

‘저, 저거, 설마?’

‘도망치는 거, 맞지?’

물론 아네시스의 성향과 입장상 이런 일에 가담하진 않을 거라 생각하긴 했다.

하지만 그래도 지금 저 모습은 마치 상대에게 완전히 쫄아 도망가는 것 같지 않은가?

“이봐, 너희들.”

“네, 네?”

원래라면 어꺠를 뻣뻣이 하고 반말로 대꾸했어야 했지만 방금 전의 상황이 워낙 비현실적이라 저절로 존댓말이 튀어나왔다.

네르하가 리더 격인 말락의 어깨를 부여잡으며 환하게 웃었다.

“시라스라고 했나? 그놈이 이번 상황의 주동자인 것 같은데 우리, 한번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어 보는 건 어떨까?”

“헛소리하지……!”

꾸욱!

말락이 네르하의 손을 거칠게 떼어내려던 찰나, 그는 어깨 쪽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통증에 인상을 찌푸리고 말았다.

‘자, 잠깐? 무슨 놈의 힘이!’

말락은 경악했다.

지금, 어깨에서 느껴지는 악력의 세기는 절대로 마법사 나부랭이가 낼 수 있는 차원의 힘이 아니었다.

‘크윽! 벼, 별로 근육도 없어 보이는 놈이!’

하지만 이대로 아프다는 티를 계속 내고 있으면 개망신이나 다름없었다.

“지랄하지 말고 당장 손 떼라!”

말락은 거칠게 팔을 움직이며 네르하의 팔을 걷어 내었다.

아니, 걷어 내려고 했다.

“마, 말락 경?”

“어?”

말락은 멍청하게 자신의 어깻죽지를 바라보았다.

‘어? 왜 팔이 움직이지를 않지?’

마치 팔 자체가 마비된 듯 통제를 들어 먹지 않고 있었다.

오싹!

말락은 그제야 어깨 부분에 뭉쳐진 이질적인 마나를 감지하고는 공포에 질렸다.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주입된 마나가 신경을 마비시켜 팔을 무력화시킨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말락의 한쪽 팔을 제압한 네르하가 인자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자, 대화를 시작하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