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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97화 (97/237)

97화

<습격 (2)>

“아녜스!”

“루, 루시엘라 언니.”

루시아는 추위에 떨고 있는 아녜스를 향해 달려나갔다.

아무리 그녀가 단련된 무인이라고 하나 여름이라도 저녁 기온이 영하에 가깝게 내려가는 이곳의 추위를 쉽게 떨쳐낼 정도는 아니었다.

“괜찮아, 아녜스?”

아녜스라는 이름은 단순한 가명이라기보단 두 사람 사이에서도 통하는 애칭인 모양이었다.

“조, 조금 추워서 숙소에 다시 갔다 오려 했는데 기, 길이 갑자기 없어졌어요.”

그녀의 피부에서 싸늘한 냉기가 풍기는 걸 보니 아무래도 몇 시간은 계속 기다린 모양이었다.

“그, 미안하다.”

네르하는 살짝 죄책감을 느끼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러자 따뜻한 화기가 아네시스의 몸을 타고 냉기를 몰아내기 시작했다.

“후아!”

약 몇 분 정도가 지나 그제야 제대로 정신을 차렸는지 하얀 입김과 함께 그녀의 표정이 풀렸다.

“사, 살 거 같다아.”

네르하는 살짝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렸고, 그제야 약 1년간 헤어졌던 자매간의 상봉이 제대로 이루어졌다.

“그, 말도 없이 가문을 나가서 미안해, 아녜스.”

“아니에요. 뭔가 사정이 있으셨겠죠.”

의외로 아네시스는 루시아의 돌발 행동을 크게 탓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제가 이곳까지 온 건, 단순히 언니를 만나고 싶어서만은 아니에요.”

“뭔가 가문 내에 내가 모르는 일이 생긴 모양이구나.”

“네. 언니의 정보원들에게선 아마 소식이 차단되었을 거예요.”

그 무엇보다 급하다는 듯, 아네시스의 입에서 케프렌 최고 기밀이 흘러나왔다.

“대공자 측에서 언니를 암살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어요.”

“암살? 어떻게? 이곳은 리브라일 텐데?”

“정확한 방법은 저도 알 수 없었어요. 다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에요. 언니가 항상 리브라에만 있는 건 아닐 테니까요.”

아네시스는 그렇게 말하면서 네르하를 슬쩍 곁눈질했다.

“아…….”

루시아 역시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차렸다.

‘외부 미션.’

분기마다 행해지는 리브라의 실전 훈련.

아마 루시아의 암살을 노린다면 그녀가 외부의 위협에서 가장 취약해지는 그 시점을 노릴 터였다.

‘학장은 본가의 지원을 받아 호위를 붙여 놓겠다고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안전이 리브라 안에서만큼은 아니겠지.’

본가의 인물을 노리는 것도 아니고 자기 가문 사람을 노리는 만큼 암살을 깔끔하게 처리할 수만 있다면 굳이 라데우스와 깊게 척을 질 이유도 없다.

“아녜스.”

“네.”

“넌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지?”

일단 짚어볼 건 짚어봐야 했다.

그녀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가문 내에선 절 얻고 싶어하는 분들이 많아요. 직계면서도 사실상 대공녀 자리를 차지하긴 힘드니까요.”

서열 7위.

바깥에서 보면 분명 대단한 핏줄이지만 그들만의 싸움에서 보면 그녀는 최약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세력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니 상위 서열 입장에선 그야말로 군침을 흘릴 만한 먹잇감인 셈이었다.

“대공자 쪽에서 언니를 지지하는 걸 포기하고 자신들 쪽으로 들어오라면서 제안을 건넸어요. 올해가 지나면 루시엘라 언니는 세상에 없을 거라고…….”

“그렇군.”

네르하는 그녀의 사정이 자신과 매우 유사하다는 걸 이해했다.

다만 차이점이라면, 네르하는 전국을 뒤엎을 장래성이 있고 그녀는 많이 힘들다는 것이 차이였지만.

“그렇다면 어떻게 손을 써야겠군. 나도 충직한 부하 1호를 잃고 싶진 않으니까.”

“부, 부하?!”

“누가 부하 1호라는 겁니까!”

아네시스가 경악해하며 둘을 번갈아 보았고, 루시아 역시 아끼는 동생의 앞에서 체면이 구겨지자 얼굴을 붉히며 버럭 성을 냈다.

네르하는 피식거리며 그들의 반응을 즐기다가 갑자기 문득 든 생각에 얼굴을 굳혔다.

“잠깐. 이렇게 되면 뭔가 좀 걸리는데?”

“뭐가 말이죠?”

“만약 그놈들이 루시아, 너를 바깥에서 암습한다고 계획하고 있다면.”

“있다면?”

“지금, 놈들이 리브라 내부에서 소란을 피우는 목적은 대체 뭐지?”

“……!”

그 순간, 루시아와 아네시스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리고 네르하는 천천히 어둠이 내려앉은 수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것에 대한 답은 네가 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네?”

“무, 무슨 소리를?”

저벅!

그 말이 끝나는 순간, 거짓말처럼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내며 나타났다.

평범한 체격이었지만 특유의 금발이 인상적인 미남.

등에 시커먼 색의 검집을 맨 채로 나타난 이는 다름 아닌 검의 낙원의 시라스 루 케프렌이었다.

“시라스!”

“오랜만이군, 루시엘라.”

무덤덤한 표정으로 나타난 시라스는 루시아나 아네시스보단 네르하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시라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떻게 알았지?”

“네 허접한 은신으로는 내 감각을 속일 수 없지.”

네르하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시라스에게 면박을 주었다.

“그리고 말이야. 너도 이 진에 갇혀서 나갈 방도를 찾고 있던 주제에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말하지 말아 주겠나?”

“…….”

정곡을 찔린 듯 대번에 시라스의 표정이 붉어졌다.

“아마도 아녜스 녀석이 어딜 가길래 혹시나 싶어 미행해 본 거겠지.”

“그래. 그 말이 맞다.”

시라스는 표정을 관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런 시간대에 저 성실한 범생이가 자리를 비운다는 건 분명 목적이 있어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목적이라면 당연히 이곳에 숨어 있을 루시엘라를 만나기 위함이라 판단했지.”

“그래서? 그 목적을 달성하셨을 텐데 이제 어떻게 하시려고?”

“당연히 내 할 일을 한다.”

철컥!

시라스가 등에 메고 있던 검집의 끈을 풀었다.

루시엘라의 표정이 그대로 굳어졌다.

“시라스, 너!”

“시라스 선배! 지금 이게 무슨 짓입니까!”

처음으로 덤덤하던 시라스의 표정에 음흉한 미소가 맺혔다.

“대공자님의 명을 받아 루시엘라 케프렌, 널 암살하겠다.”

스릉!

검집에서 완전히 검이 뽑혀 나왔다.

“그리고 아네시스 케프렌, 너 역시 죽어 줘야겠어.”

“거참, 네 눈엔 내가 보이질 않는 거냐?”

네르하가 황당함을 넘어 허탈한 목소리로 시라스를 노려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런 애송이 따위에게 생으로 무시를 당할 줄이야!

“아, 그래. 마법사가 있었지. 넌 라데우스의 직계이니 좀 위협적이긴 할 거야. 하지만!”

스윽!

“어라?”

후우우욱!

네르하는 시라스의 검에서 흘러나오는 아주 익숙한 기운에 살짝 혀를 찼다.

“마기(魔氣)?”

그것도 아주 순도가 높은, 저런 애송이가 다룬다기엔 이해할 수 없는 최상급의 마기였다.

그렇다면 저 마기의 근원은 시라스의 단전이 아니라.

“마검이로군.”

“정답이다.”

시라스의 동공이 서서히 검게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마검 다인슬라이프. 대기 중의 마나를 마기로 물들이는 마법사의 천적인 검이지.”

마법사는 마법진을 생성할 때 대기의 마나를 끌어다 쓰는 만큼 주변을 마기로 물들이는 기물을 상대하려면 특별한 준비가 필요하다.

“두 놈은 무기를 들고 있지도 않고, 나머지 하나는 저레벨의 마법사. 아주 쉬운 사냥이 되겠어.”

“거참.”

대체 저런 기물을 어떻게 리브라 안으로 밀수할 수 있었는지는 둘째 치더라도, 저놈을 내버려 두었다간 틀림없이 골수까지 마기가 스며든 마인이 탄생할 것이다.

“날 죽이려는 놈을 구할 정도로 호인은 아니다만 네놈이 살아남아 증언을 해 줘야 하니 어쩔 수가 없군.”

네르하는 천천히 앞으로 나서며 마나를 끌어올렸다.

지금이야 마검의 힘에 도취해 전능감을 만끽하고 있겠지만 몇 대 처맞다 보면 현실이 보일 것이다.

그때였다.

“네르하 도련님.”

“응? 루시아, 왜?”

“시라스는 제게 맡겨 주시지 않겠습니까?”

갑자기 루시아가 끼어들자 네르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괜찮겠냐? 칼도 없잖아?”

네르하의 반문에 루시아는 어깨를 으쓱했다.

“어차피 교류전에서 저 녀석을 상대로 지팡이나 맨손으로 싸우게 하실 셈이었잖아요?”

“하지만 저렇게 마검을 쓰는 놈과 붙일 생각은 아니었는데?”

지금 시라스가 들고 있는 건, 교류전에서 얻은 루시아의 검과 거의 비슷한 급의 검이다.

그 말인즉 루시아 역시 그 검을 들고 와야 확실한 승산을 볼 수 있다는 뜻.

“너무 늦으면 저놈을 구할 수 없을 텐데?”

네르하의 말에 루시아는 패기롭게 주먹을 쥐며 앞으로 나섰다.

“금방 끝낼게요.”

루시아가 저렇게까지 말하자 결국 네르하도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 * *

그렇게 루시아와 시라스의 일대일 매치가 성사되었다.

“괜찮을까요?”

아네시스가 걱정스럽게 물었지만 네르하의 대답은 대충대충이었다.

“아마도?”

아네시스의 뺨이 대번에 부풀었다.

“뭐예요? 언니가 걱정되지도 않으세요?”

“내가 저 녀석을 그리 오래 본 건 아니지만 하나는 잘 알지.”

네르하는 나무에 기댄 채로 살짝 하품을 했다.

“승부욕은 짐승 같아도 절대 승산 없는 일에 덤벼들진 않아.”

성격이 착실해서 그런 탓인지 루시아는 철저하게 정석을 추구하는 편이다.

적의 약점을 철저히 분석하고 승산이 높은 쪽으로 상대를 공략한다.

그러면서도 변칙을 써야 할 부분에선 능숙하게 움직임의 흐름을 바꾸어대니 괜히 네르하가 루시아의 재능을 극찬하는 것이 아니었다.

“보면 알겠지. 금방 끝낸다고 했으니 녀석 나름대로 생각이 있겠지.”

“그런가요?”

아네시스는 마지못해 수긍하는 기색이었다.

‘오히려 지금 중요한 건 저 둘 사이의 대결이 아니야.’

편한 자세로 앉아 있지만 네르하의 모든 감각은 숲 전체에 날카롭게 뻗어 있었다.

두 사람이 이런 말을 나누고 있는 사이, 루시엘라와 시라스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시라스, 당신이 이러고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직계 암살 모의에 가문에서 금지하고 있는 마검의 소유.

그것도 모자라 경쟁 가문의 중심 세력권에서 이 정도의 난리라니.

아무리 시라스가 가문의 혈족이라 해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단계는 확실하게 넘어섰다.

하지만 시라스는 단호했다.

“할 수 있다면?”

“어처구니가 없군요.”

“어처구니가 없는 건 나다. 한때 대공녀의 자리까지 언급되던 네년이 오라비가 정당한 대결에서 죽었다고 꼬리를 내빼다니.”

화악!

그 말이 끝나자마자 루시아의 전신에서 막대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당신!”

그것이 루시아의 역린이었는지 그녀는 지금까지 보여 주지 않았던 흉신악살과 같은 얼굴을 하기 시작했다.

‘뭔가 모를 사정이 더 있었군.’

확실히 단순히 상대를 꺾을 가능성을 찾기 위해서 이곳에 왔다고는 조금 명분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는데 말하지 않은 게 더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성을 잃지 마라. 전투에서 언제나 냉정해라.’

가장 간단한 진리였지만 시라스는 교활…… 아니, 훌륭하게도 시작부터 루시아의 평정심을 깨는 데 성공했다.

“죽어라, 루시엘라!”

그리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대번에 검을 휘둘렀다.

케프렌 비전.

사룡연화참(四龍聯化斬)!

네 가닥의 검기가 마치 용의 머리처럼 갈라지며 루시아에게 쏘아졌다.

“팔룡검(八龍劍)? 방계인 당신이 어떻게 직계의 검술을?”

루시아는 시라스가 사용하는 검술의 이름을 알고 있었는지 상당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다 대공자님의 은혜 덕분이지! 네년을 죽여도 모든 뒷감당은 대공자께서 해 주실 것이다!”

시라스의 검은 아직 완성도가 많이 떨어졌지만 마검의 압도적인 힘이 더해지자 파괴력만큼은 과거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루시아는 일단 검기의 폭풍을 전력으로 피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힘과 속도! 이 모든 것에서 난 너를 앞서고 있다. 더 이상 네년에게 짓눌려 만년 차석이었던 내가 아니야!”

다시 한번 시라스의 검에 마기가 터져나가며 네 개의 용두(龍頭)가 나타났다.

“흐흐흐, 마검의 힘을 빌리면 이런 초식 정도는 몇 번이고 쓸 수 있지. 어디 끝까지 피해 봐라!”

완전히 검의 힘에 취한 모습.

루시아는 그런 시라스의 추태에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검술에선 힘과 속도가 다가 아니라는 걸 예전에도 말했을 텐데요?”

그건 맞지.

네르하는 속으로 루시아의 말에 동의했다.

“닥쳐! 그 두 가지로 날 압도했던 네년이 감히 그런 말을 지껄여?”

시라스는 더 이상 마검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듯,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며 거칠게 칼을 휘둘렀다.

그리고 그 순간.

“고맙습니다. 당신이 계속 오라버니를 언급했다면 아무리 저라도 이성을 유지할 수 없었을 텐데.”

파괴력은 강력하지만 정교하지 못한 시라스의 검을 관통하며 그대로 루시아가 상대의 지근거리까지 접근했다.

“무, 무슨!”

“마검의 악역향이 없었다면 오히려 더 좋은 승부를 봤을 텐데, 안타깝습니다.”

스쳐도 중상일 무지막지한 힘.

하지만 마검에 휘둘려 케프렌의 검사가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정교함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시라스가 다급히 검을 회수하며 방어 자세를 취했지만.

화륵!

재빠르게 파고든 루시아의 주먹에 나선의 불꽃이 맺힘과 동시에.

콰광!

그녀의 주먹이 시라스의 복부에 깔끔하게 작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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