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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104화 (104/237)

104화

<북방으로 (1)>

“의외의 말씀이군요.”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

“분명 베하나스와 대치했던 상황을 캐물으러 오신 게 아닐까 싶었는데요.”

말마따나 네슬렉이 꺼낸 주제는 네르하의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 있었다.

북방.

대륙에서도 나름 북쪽에 위치한 라데우스의 세력권 중에서도 가장 최근에 평정된 오지 중의 오지.

수많은 천연자원과 희귀 금속이 나오는 이곳은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수많은 중소 부족들이 패권을 다투던 자연 경쟁의 장이었다.

어지간해선 본전도 찾지 못하는 그런 마경이었지만 십수년 전, 현 라데우스 가주인 카이젤이 직접 원정에 나서서 라데우스의 영토로 제패한 뒤로는 나름 평화가 유지되는 중이었다.

네슬렉이 클클 웃었다.

“아르바가 북방에 강림한 마왕과 전투를 벌여 패배했다는 소식은 들었느냐?”

“지금 막 들었습니다.”

네슬렉은 무슨 꿍꿍이인지 모를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라데우스 본가는 이번에 일어난 케프렌과의 마찰은 가급적 무난하게 마무리 지으려고 할 거야.”

리브라에서 일어난 일이긴 해도 그들이 노린 건 같은 가문의 일원인 루시아였고, 라데우스는 자존심에 금이 갔을 뿐 실질적인 피해는 없다.

반대로 북방의 경우 직계의 패퇴라는 자존심만이 아니라 어마어마한 피해까지 입어 버렸으니 본가가 어느 쪽을 우선시할지는 뻔한 일이었다.

그걸 인지한 네르하가 답했다.

“본가는 상처 난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북방을 확실히 정리하려 들겠군요.”

“클클클, 맞다. 후계 경쟁이 심각해지고 아르바가 몰락한 상황에서 다른 후계들에겐 그 무엇보다도 좋은 기회가 될 테니까.”

장녀 마하, 차남 루드빅은 물론 바멜과 레티안, 세티안 남매까지.

라데우스라는 거대한 가문 내에서도 나름 독자적인 파벌을 구성하고 있는 이들은 앞다투어 북방으로 달려 나갈 것이다.

원정의 리스크는 제쳐 두더라도 아마 북방의 일은 이번 세대 후계 경쟁을 거의 결정짓는 거나 다름없는 거대한 사건이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네르하, 네가 빠진다는 건 후계 경쟁에서 크게 뒤처지게 되는 셈이겠지.”

“그렇겠죠.”

네르하는 당황하지 않고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네슬렉을 향해 이렇게 물었다.

“왜 제게 호의를 베푸시는 겁니까?”

‘리브라’라는 곳은 네르하가 몸을 안전하게 보호하기엔 최적의 장소였지만 반대로 말하면 스스로를 우리 안에 묶어 놓는 일이기도 했다.

그 우리의 문을 여는 것은 네르하의 혼자 힘으로는 제법 힘든 일이었다.

네슬렉이 답했다.

“나는 네가 가주가 되는 걸 원하니까.”

“흐읍!”

그 순간, 옆에 조용히 있던 클로이아와 세이라의 표정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생각보다 훨씬 직접적으로 들어온 말에 네르하는 묘한 표정으로 그의 표정을 살폈다.

“단순히 이번 일을 넘어 후계 경쟁에서 절 지지하겠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만.”

“그래. 혹여…… 그 이유를 짐작하겠느냐?”

네르하의 눈이 가라앉았다.

나름 이쪽의 진면목 일부를 알고 있는 루트비히가 이런 말을 건넸다면 이해했을 것이다.

하지만 루트비히와는 달리 네르하는 네슬렉과의 접점이 거의 없었다.

‘그는 과거, 가주와 치열하게 자리를 다투었던 맹수.’

그것도 원래는 카이젤보다도 훨씬 위의 연배로서 가주의 자리에 더 가까이 갔었던 인물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결국 카이젤에게 패배한 이유는 개인적인 실력도 실력이지만 지나치게 큰 호전성과 야심으로 인한 주변의 견제 때문.

네르하는 네슬렉의 눈빛 속에서 그의 본질을 읽어 들였다.

‘맹수가 늙었다고 해도 그 야성이 수그러들었을까?’

피식!

“그럴 리가.”

“무엇을 말이더냐?”

갑자기 실소를 내뱉는 네르하를 향해 네슬렉이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이어지는 말을 기다렸다.

“마음속에 남아 있는 잔불을 태우고 싶으십니까?”

“……!!”

네슬렉은 눈을 크게 부릅떴다.

“노욕(老慾)을 주체하지 못하시는 게 제 눈에 선하게 보이는군요.”

네르하는 저런 이들을 많이 보아왔다.

투귀(鬪鬼)!

육체의 노화는 관계없이 언제나 싸움을 갈구하는 자.

그것이 바로 네슬렉의 본질이었다.

“흐흐흐, 너는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구나.”

네슬렉 같은 이가 작정하고 혼란을 부추기면 라데우스 가문은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간접적으로만 나선다는 건 그래도 자신의 지위를 망각하고 있지 않다는 뜻이겠지.’

네슬렉은 대전쟁을 바라는 늙은 전사이기도 하지만 또 가문의 원로이기도 했다.

상당히 복합적인 속마음을 품고 있는 이였다.

“그래. 난 네가 이 경직된 가문의 분위기에 풍파를 일으키길 기대하고 있단다.”

네슬렉의 눈빛이 서늘하게 빛났다.

“그리고 이 가문의 정점에 오른 네가 케프렌을 꺾는 모습을 보고 싶기도 하지.”

네슬렉 입장에선 바스텔의 빈자리를 차지하려는 현 후계들 중에선 좀처럼 마음에 드는 녀석이 없었다.

그런 와중에 눈에 띈 것이 바로 자신의 눈을 속이며 스스로를 숨겼던 네르하였다.

“십여 년 전, 내가 봤던 너는 도태될 것이 분명한 낙오자였다.”

그러고 보니 ‘네르하’의 마법 스승 중 하나가 바로 눈앞의 네슬렉이었다.

워낙 옛날 일이고 중요한 기억은 아니라서 깜빡 잊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너는 이미 스스로를 완성하고 비상할 준비를 하고 있구나. 나를 아주 감쪽같이 속였어.”

뭐, 아무리 네슬렉이라 해도 과거의 네르하와 지금의 네르하가 다른 인물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사실, 네르하에겐 크게 나쁜 이야기가 아니었다.

본가에 세력이라는 게 아예 없는 거나 다름없는 네르하에게 네슬렉이란 후원자는 아주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어떠냐. 한번 북방으로 가 보겠느냐?”

이것은 네슬렉이 네르하에게 내거는 일종의 시험이기도 했다.

만약 네르하가 네슬렉의 기대대로 공을 세우고 돌아온다면 그야말로 든든하기 짝이 없는 완벽한 아군이 되어주겠지.

하지만 그 제안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네르하가 아니었다.

네르하는 찻잔을 들며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제대로 된 공을 세울 경우에나 할 수 있는 말 아닙니까?”

생각보다 약한 모습에 네슬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른 형제자매들이 네가 공을 세우는 걸 방해할 거라 생각하느냐? 너를 찬밥 취급하고 소외시킬 걸 우려하느냐?”

네르하가 자신의 밥그릇을 타인에게 빼앗길 종자가 아니라는 건 별개로 치더라도.

설사 그런 견제가 들어오더라도 네르하는 그걸 견뎌내고 넘어서야 했다.

이런 우는소리를 하는 건 네슬렉이 원하는 태도가 아니었다.

“아뇨. 그 반대를 말씀드리는 겁니다.”

“반대?”

“네. 북방으로 간 가문의 원정대가 전멸하고, 저는 아무것도 못 하고 목숨만 간신히 연명하게 될 상황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

원래라면 말이 안 되는 일.

아무리 마왕이 강림했다고는 하나 대를 이으며 힘을 축적해 온 라데우스 가문의 힘은 불완전하게 부활한 마왕 하나를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허약하지는 않다.

네슬렉은 제법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마도 북방은 상상을 초월하는 사지(死地)가 될 거다.”

그의 입에서 네르하가 우려했던 상황이 흘러나왔다.

“아르바는 보고서에 마왕이 펼친 마계영역(魔界靈域)에 당했다고 하더군.”

아르바가 본가에 올린 보고서엔 상대의 병력 구조와 권능의 종류, 그리고 전황이 어떻게 변해 갔는지에 대한 상세 전개를 완벽하게 적혀 있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그 아르바가 자신이 처한 상황 그대로를 보고서에 올리진 않았을 거다. 상대를 얕봤다는 등 면피성 변명을 주절주절 늘어놓았겠지. 그놈은 그런 녀석이니까.”

그럼에도 아르바는 자신이 대패한 것을 그대로 본가에 보고했다.

아르바를 직접 만난 건 딱 한 번이고, 네르하는 외부의 평가만을 들었을 뿐 그의 진면목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승산을 높이기 위해 일부러 흑마법사들의 자료까지 몰래 습득한 그 치밀함을 보면 아르바의 준비가 부족했다기보단 그냥 상대가 압도적으로 강했다는 뜻.

“그런 상황에서 공을 세울수록 너의 가치는 더욱 높아지겠지.”

“그건 맞습니다.”

“그래서? 갈 건가, 가지 않을 건가?”

네슬렉은 최후통첩을 날렸다.

옆을 살짝 바라보니 클로이아가 불안한 눈빛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게 느껴진다.

네르하가 저 제안을 거절할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보지 마라. 내가 할 말은 정해져 있으니까.’

다시 네슬렉에게 시선을 돌린 네르하는 굳은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가겠습니다. 다만 두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말해라.”

“첫째로는 동행할 인원 정도는 제가 정하게 해 주십시오.”

“물론이지. 두 번째는?”

“제가 북방에서 제일대공(第一大功)을 세워 온다면 저를 지지해 주실 것을 공식적으로 선언해 주십시오.”

어지간한 상위 공적이 아닌 최고의 공로.

네르하는 그것을 당당히 자신의 것으로 가져오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크하하하! 아주 재밌는 녀석이군! 당연히 그리될 것이다.”

네슬렉은 정말로 제일공을 세워 온다면 단순한 지지만이 아니라 더더욱 놀라운 서프라이즈를 보여 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네슬렉이 호탕하게 웃으면서 떠난 뒤.

네르하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클로이아를 다독였다.

“왜 이렇게 죽상이야?”

“그, 그게!”

그녀의 표정에 새겨진 죄책감을 모를 리가 없었다.

네르하는 그녀를 다독이며 말했다.

“좋게 좋게 생각하자고. 그 영감이 무슨 꿍꿍이든 간에 내뱉었던 말은 확실히 사실이니까.”

이건 후계 경쟁에서 가장 큰 전환점이며 성장을 위한 기회이기도 하다.

“클로이아, 네가 인솔 교수가 될 거야. 그리고 희망하는 자에 한하겠지만 가능한 내 주변 이들은 모두 데리고 갈 거다.”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건 정말로 병신 같지만…… 죽을 수도 있어요. 아니, 높은 확률로 죽을 겁니다.”

아직 1인분도 못 하는 애송이들을 북방으로 끌고 간다는 건 자살행위다.

하지만 네르하는 단호했다.

“그런 것 정도는 당연히 감수해야지. 가능한 죽지 않게 하겠지만 진정한 사선을 넘어야만 재능의 벽을 넘어 진화할 수 있는 법이야.”

루시아, 바스톤, 알페온, 배커 등등.

모두 재능과 의욕이 모두 충만한 녀석들뿐이다.

“일단 아마 우리가 북방으로 가게 되는 건 못해도 두 달은 지나야 될 거다.”

당연한 말이지만 본가에서 첫 원정대를 보내는 것에 곧바로 합류할 수는 없었다.

네르하와 클로이아가 북방으로 가는 건 전선이 형성되고 난 뒤.

어느 정도 상대의 전력이 파악된 뒤, 본가에서 본격적인 힘을 쏟아부을 때. 딱 그 시점이 될 것이다.

“우리가 가기 전에 일이 해결된다면 그건 그거대로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그냥 아르바가 병신이었다, 한마디로 끝날 일일 테니까.”

“그럴 리는 없겠죠.”

“그렇겠지. 그러니까 출발하기 전까지 철저하게 준비하면 돼. 그리고 그럴 각오가 있는 자들로만 지원을 받을 거고.”

네르하가 고개를 돌렸다.

“세이라.”

“네. 주인님.”

“북방의 상황을 계속 예의 주시하며 가능한 실시간으로 갱신해 줘. 그리고 무엇보다 서리 일족의 행방을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세이라가 살포시 웃으면서 답했다.

“물론 그렇게 조치를 하고 나왔답니다.”

“믿음직하군.”

역시 조직의 관리자로서 인재를 잘 뽑긴 했다.

“그럼 일단 이번 일부터 확실히 마무리한 뒤에 진행하도록 하지.”

세이라가 돌아간 이후에도 네르하는 자리를 뜨지 않고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북방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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