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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107화 (107/237)

107화

<출발>

네르하는 자신의 앞에 무릎을 꿇은 다섯 명을 바라보았다.

‘북방 때문에 일이 수월하게 풀렸군.’

이들은 진심으로 네르하에게 감격하여 수하를 자청한 게 아니었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인생을 건 도박. 즉, 베팅을 한 것이었다.

아마 북방의 일이 아니었다면 조금 더 간을 보면서 네르하의 자질을 시험했겠지.

그래도 결국 네르하에게 우두머리의 자질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였기에 던진 베팅일 것이다.

“일어서.”

말투가 명령조로 변했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아 했다.

“디센트.”

“네. 주군.”

네르하가 자신들의 맹세를 받아들인 순간, 디센트는 네르하에게 철저하게 존대로 대했다.

“내게 충성 맹세를 한 것은 이 다섯이 끝인가?”

“아닙니다. 이곳에 모인 이들은 어디까지나 북방에 동행할 이들을 차출한 것일 뿐, 동아리의 모든 소속원들은 이미 주군을 섬기기로 내부적으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잘됐군.”

네르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세이라가 좋아하겠어.’

이놈들을 어떻게 구슬려서 세이라에게 보낼지 고민하고 있던 차에 잘되었다.

실전 마법 연구회라고 전부 전투에만 특화된 놈들만 있는 건 아닐 테니 적절하게 인원을 뽑아 세이라에게 보내면 쏠쏠하게 잘 써먹을 수 있을 거다.

‘나까지 총 열 명인가?’

디센트를 포함한 다섯 명을 포함해.

네르하, 루시아, 바스톤, 알페온. 그리고…….

“배커.”

“…….”

네르하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마창 바이던트를 비스듬히 쥐고 있는 배커의 모습이 있었다.

“괜찮겠냐?”

라데우스의 방계인 배커는 루시아와 비슷한 의미로 북방에 갈 이유가 없었다.

굳이 공을 세울 필요도 없었고, 본가에 있는 배커의 계파는 여전히 성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배커는 교류전이 끝난 이후에도 성실하게 단련실에 얼굴을 비추었다.

‘그 때문에 요즘 제크론과의 관계도 좀 소홀해진 것 같은데.’

다만 그와는 별개로 배커는 자신의 시그니처 원소인 뇌전 속성을 본격적으로 창술에 응용하는 방법을 배우면서 최근 들어 급속도로 강해지고 있었다.

“난 말이다.”

배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리브라에서 라데우스의 이름이 아닌 것들이 나보다 강한 건 용납하지 못해.”

배커의 눈은 바스톤과 루시아에게 향해 있었다.

“난 라데우스의 혈족으로서 그 외의 놈들이 내 머리 위로 기어 올라오는 꼴은 막아야만 한다.”

그야말로 자존심과 자부심이 흘러넘치는 모습.

네르하는 속으로 피식거리며 웃었다.

‘그것도 이유의 하나겠지만.’

바스톤이나 루시아는 어디까지나 핑계.

이쪽을 바라볼 때마다 배커의 눈동자는 그 누구보다 사납게 빛나고 있었다.

“뭐, 좋아.”

네르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북방으로 가기까진 약간의 시간이 걸릴 거다. 그때가 올 때까지 나는 너희를 혹독하게 몰아붙일 거다.”

그 말이 나올 것을 얼추 예상했는지 별다른 동요나 반응은 없었다.

“시작하자.”

* * *

그렇게 네르하와 아홉 명의 부하들은 북방행에서 살아남기 위한 지옥 같은 수련에 돌입했다.

훈련이 시작되고부터 약 한 달.

금방 나가떨어질 줄 알았던 실전 마법 연구회의 멤버들은 의외로 괜찮은 끈기를 보이며 네르하의 진도를 따라왔다.

“헉, 헉!”

“크억! 커헉!”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면서도 쉽게 나가떨어지지 않는다.

‘이건 기분 좋은 오산이군.’

고산지대나 다름없는 리브라에서 몇 년이나 버텼고, 또 평민이란 신분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그들이 들인 노력은 상당한 수준이었다.

게다가 평민이라도 이들은 리브라에서 제공한 마나 블래스트를 한 알씩 먹기까지 했다.

‘그러고 보니 교류전 훈련 때에도 나름 잘 따라오긴 했었지.’

오히려 체력적으로 아직 완성이 덜 된 알페온이나 배커가 조금씩 뒤처지고 있을 정도였다.

약관 대의 나이에는 몇 년 정도의 나이 차는 제법 큰 격차로 다가오기 마련이었다.

훈련을 진두지휘하던 네르하의 귓가에 익숙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인님.”

“그래.”

네르하에게 다가온 건 세이라였다.

본격적인 훈련에 돌입하기 직전, 네르하는 세이라에게 명령 하나를 내렸었다.

“명령한 건 가져왔나?”

“네. 여기 있습니다.”

세이라는 들고 있던 묵직한 목함을 네르하에게 건넸다.

덜컥!

목함을 열자 청아한 향기를 풍기는 영단 아홉 덩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켈릭스 라구엘이 암시장에서 취급했던 영단 종류 중에서도 가장 상급의 것들만을 골라 왔습니다.”

“좋아. 마음에 드는군.”

흑마법사 사건에 더해 이번 사건으로 케프렌이 그렌 타운에서 손을 떼면서 그렌 타운은 완전히 네르하의 지배하에 들어왔다.

시장 자리는 켈릭스 라구엘이 여전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해도 그는 세이라의 권속으로 흡혈종이 되어 버렸으니…….

그야말로 비참한 몰락이라 해도 좋았다.

“클로이아, 레이첼.”

네르하의 부름에 주변에서 훈련 커리큘럼을 점검 중이던 두 교수가 다가왔다.

“확인해 봐. 보급형 영약 중에서는 가장 좋은 걸 골라 오라 했으니 크게 하자가 있진 않을 거다.”

“맡겨 주세요.”

“우리 도련님, 돈이 좀 많네?”

클로이아와는 다르게 레이첼은 살짝 떨떠름한 얼굴로 영약을 살폈다.

“이년 말을 들어보면 외가 쪽 자금을 끌어 오는 것도 아닐 텐데.”

“도시 하나를 굴린다는 건 그런 의미이니까.”

게다가 암시장의 특성상 희귀 매물을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입수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었다.

“그렇게 놀랄 필요는 없어. 다른 형제들 역시 기본적으로 이 정도 재력은 충분히 행사할 수 있다.”

“그래도 그 재력을 안고만 있는 거와 베푸는 것은 이야기가 다르지.”

하나에 성 하나를 살 수 있다는 전설급 영약은 아니더라도.

체질 개선과 활력 증진에 큰 도움이 되는 것들은 분명해 보였다.

‘보급형 영약이라기보다는…… 전설급 보약?’

그래. 딱 이런 느낌.

요즘 들어 몸보신이 부실했던 레이첼은 눈앞의 영약들을 보며 군침을 흘렸다.

“저기…… 이봐, 도련님.”

“무슨 일이지?”

단순 후원 관계를 넘어 산하로 들어오기로 한 레이첼은 기대감을 듬뿍 담은 눈빛으로 네르하를 직시했다.

“내 건 없어?”

“…….”

“그런 눈으로 볼 건 없잖아, 상처받게.”

7레벨의 마도사이자 전장에서 이름을 크게 날렸던 용병 출신이라면 돈이 부족하진 않을 텐데?

그런 행간을 읽었는지 레이첼은 고개를 살짝 돌리며 얼굴을 붉혔다.

“그, 고위 마법사가 돈이 많다는 편견은 버리는 게 좋아.”

“진짜냐?”

네르하는 확인 차 클로이아에게 시선을 돌렸다.

클로이아는 활짝 웃으면서 이렇게 답했다.

“제가 돈이 많아 보이나요?”

“……미안.”

클로이아야말로 제대로 된 영약 하나 얻어먹지 못하고 동레벨 최약의 마나 보유량을 자랑했지.

반대로 레이첼의 마나 양은 동급 최강이라고는 하나 뭔가 말하기 힘든 개인의 사정 같은 게 있을 수도 있겠지.

결국 네르하는 떨떠름해도 약속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 역시 이제 ‘내 사람’이니까.

“뭐, 쓸 만한 걸로 하나 구해 드리죠.”

“정말?! 야, 사랑해!”

레이첼의 표정이 활짝 펴졌다.

그녀는 네르하를 끌어당기며 뺨에 입술을 가볍게 쪽쪽거렸다.

그런 두 사람을 떨어뜨린 건 클로이아였다.

“선배, 주책 부리지 마시고 떨어지시죠.”

“뭐야. 이 정도는 가벼운 스킨십이잖아.”

“됐으니까 떨어지라고요.”

도끼눈을 뜬 그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끼자 레이첼은 어깨를 으쓱하며 네르하와 거리를 벌렸다.

“거, 그 나이에 벌써 그렇게 질투하면 결혼 못 한다.”

“신, 경, 끄, 시, 죠?”

이를 갈며 살기까지 흩뿌리고 있다.

확실히 클로이아의 앞에서 나이를 언급하는 건 상당히 민감한 이슈였다.

네르하는 시선을 다시 세이라에게 돌렸다.

“북방의 전황은?”

“음, 그것이…….”

네르하와 수하들이 훈련에 돌입한 지 몇 주가 지났다.

당연히 그 시간 동안 외부는 그야말로 격동의 시간이 지났을 것이고, 무언가 큰일이 벌어졌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아직 본격적인 전투가 벌어지진 않았습니다. 라데우스의 본대가 경계 도시를 지나 북방에 본격적으로 발을 내디뎠다는 것이 마지막 보고였습니다.”

“느리군.”

“그만큼 준비 자체는 확실하게 했다는 의미죠.”

라데우스가 확실하게 토벌 준비를 하던 사이, 북방은 완전히 마족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대부분이 산맥 지대에 인간이 살기 힘든 혹한의 환경이니 실질적인 타격은 없다 해도.

상징적으로는 과거, 가주 카이젤이 직접 원정을 나서 정복했던 지역을 상실한 셈이니 라데우스로서는 이가 갈릴 정도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라데우스의 본대를 이끄는 총대장은 대마법사인 삼마자, 류레이아 엘마이넨. 그 외에 라데우스의 장로들 다수와 물경 3천에 달하는 전투 마법사들이 편성되었습니다.”

물론 저 3천이 전부 5레벨 이상의 실력자들은 아닐 거다.

라데우스 본가만이 아니라 마탑이나 동맹 마법 가문들을 끌어모아 만든 숫자겠지.

그래도 그 전원이 마법사라는 점에서 어마어마한 전력임은 분명했다.

“후계들은 어떻지?”

“장남 바스텔, 장녀 마하, 주인님의 동생이신 아가씨를 제외한 모든 직계들이 참전했습니다.”

그 말인즉.

차남 루드빅, 사남 바멜, 차녀 레티안, 삼녀 세티안까지.

아홉 명의 직계 중에서 무려 다섯 명이 이번 북벌에 참여한 것이었다.

“그 외에 가문 휘하의 병사 5만과 보급 부대까지 포함하여 토벌대의 규모는 총 6만에 달한다고 합니다.”

“엄청나군.”

일개 가문이 국가의 눈치도 보지 않고 수만 단위의 군을 이리 짧은 시간 안에 일으킬 수 있다니?

“영약의 복용이 끝나고 준비가 되면 본격적으로 출발해야겠어.”

리브라와 경계 도시 아르지엔은 이곳에서 그리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니다.

애초에 리브라의 환경 자체가 북방과 인접한 곳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준비는?”

“완벽하게 끝났습니다. 하지만 북방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이신 이후에는 기본적인 보급 외에는 지원을 드리기 힘들 겁니다.”

“그것까진 무리겠지.”

미네르바는 어디까지나 ‘정보’ 조직이므로 지원해 줄 수 있는 범위는 최대가 경계 도시 인근일 것이다.

“그럼 슬슬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 볼까?”

* * *

그렇게 또 몇 주 후.

리브라는 갑작스럽게 벌어진 네르하의 외부 미션으로 인해 제법 시끌시끌해졌다.

같은 라데우스의 혈족인 배커를 포함해 나름 졸업반 굴지의 실력자로 알려진 디센트 맥퀸까지 북방으로 향한다는 소문이 알음알음 퍼진 탓이었다.

“으음,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줄을 설 걸 그랬나?”

“꿈 깨라. 지금 간다고 받아주지도 않을뿐더러 뭐가 좋다고 그 위험한 북방에 자진해서 가려는 거야?”

네르하와 그 일행은 마치 출정식을 하듯 아주 당당하게 정문을 나섰다.

그런 일행의 북방행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온갖 말을 속삭였다.

딱히 절실함이 부족한 귀족 출신 생도들은 이번 화제에 관심을 보이면서도, 또 네르하에게 줄을 선 실전 마법 연구회를 비웃었다.

“병신 같은 놈들. 줄을 서도 하필 세력도 제일 변변찮은 네르하 따위에게 붙다니.”

“가문도 없는 평민 놈들이니 선택지가 네르하 라데우스밖에 없겠지. 큭큭큭!”

물론 이렇게 악의를 표출하는 자들이 있는 한편, 순수하게 걱정이나 우려를 표하는 이들도 있었다.

“수많은 실력자들이 북방에 몰려들고 있는데 과연 제대로 된 공을 세울 수 있을까?”

“본가의 마법사들 뒤를 따라다니면서 마물을 토벌하는 게 그나마 낫다고 봐.”

“하긴, 그게 현실적이긴 하지.”

“듣자 하니 본가의 마법사들과 합류하지 않고 자기들끼리만 움직이겠다던데?”

“어쩌면 저 얼굴을 보는 것도 마지막일 수도 있겠군.”

“재수 없게 마족과 마주치면 순식간에 살해당할 테니.”

많은 이들이 네르하 일행이 북방에서 처참하게 실패하고 올 것을 예상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네르하와 일행의 성공을 확신하는 이들도 존재했다.

그들 대부분은 네르하의 진면목을 일부라도 알고 있는 리브라의 고위층들이었다.

“맹랑하군. 조용히 빠져나갈 수도 있는데 일부러 저렇게 이목을 끌다니.”

“다 생각이 있어서겠지. 저렇게 주목을 끌수록 돌아왔을 때의 대가가 큰 법이니까.”

“큰 공이라도 세운 순간, 리브라에서 녀석의 입지는 독보적으로 변하겠죠.”

학장 루트비히, 시저 루드벡, 부학장 네슬렉이 한마디씩을 보탰다.

루트비히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현재 북방의 전황은 어떻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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