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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110화 (110/237)

110화

<경계 도시 아르지엔 (3)>

클로이아가 침묵하자 다른 이들 역시 덩달아 조용해졌다.

그 침묵 속에서 네르하가 입을 열었다.

“잡힌 지 얼마나 지났다고?”

“잘해야 일주일이요.”

“북방 상황이 개판이 난 지는 얼마나 되었고?”

“……두 달이 넘었죠.”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말이 될 리가요.”

클로이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외투가 쌓여 있는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멋대로 접근하는 건 허락하지 않겠습니다.”

대번에 용병들이 달려와 클로이아를 제지했지만 클로이아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눈으로 안쪽을 훑었다.

“역시…….”

가볍게 확인이 끝난 그녀는 망설임 없이 신형을 돌려 네르하에게 돌아왔다.

네르하가 물었다.

“어때?”

“틀림없어요. 저기 쌓여 있는 것들 중 상당수가 북방이 아니면 구하기 힘든 것들이 많아요.”

“……!”

네르하의 시선이 넥스 시장에게로 향했다.

“저 물자의 출처는 어디죠?”

시장은 이를 까득거리며 대답했다.

“……동부 미케네 상단입니다.”

“이런 전시에 동부의 일개 상단이 북방의 특산품을 자유자재로 수출입할 수 있을 정도인가요?”

시장은 고개를 내저었다.

“대륙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상단일지라도 그건 어렵습니다.”

루시아가 그 말을 받았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라데우스 가문의 일이니 더더욱 그렇겠죠.”

“그렇다면 뒤가 구린 뭔가가 있다는 소리겠네.”

생각을 마친 네르하가 넥스 시장에게 요구했다.

“저들의 주거지를 한번 샅샅이 수색해 주세요.”

“얼마 전에 이미 한번 수색을 마친 상황입니다. 다시 수색한다 해도 증거물을 얻을 수 있을지?”

“증거물에 연연할 필요는 없습니다. 수색 자체가 목적이니.”

굳이 증거물을 찾을 필요가 없다는 말.

시장은 그 말의 행간에서 네르하에게 다른 의도가 있다는 걸 눈치챘다.

시장은 즉시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예. 바로 실행하겠습니다.”

* * *

네르하의 지시에 따라 대번에 백여 명에 달하는 병사들이 사바스 교단의 주거지를 덮쳤다.

그들의 주거지는 도시 외곽. 여러 개의 창고를 보유한 낡았지만 넓은 저택이었다.

“또 오셨군요.”

교단의 주교라 칭하는 늙은 사제가 병사들을 맞이했다.

이번 수색을 일임받은 경비대장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시장님의 명령이다. 수색에 얌전히 협조해라.”

“몇 번을 뒤적거리셔도 저희는 떳떳합니다.”

“그건 뒤져 봐야 아는 거겠지.”

“저번처럼 물자를 아무렇게나 다루진 말아 주시길. 창고의 물자들은 어디까지나 도시의 불쌍한 시민들에게 돌아갈 것들이니까요.”

당당하고, 또 신심이 넘친다.

정말로 고위 사제를 마주하는 느낌에 경비대장의 움직임이 살짝 흠칫거렸다.

하지만 사전에 지시받은 대로 굳이 증거물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는 것에 그는 호흡을 고르며 이렇게 답했다.

“선처하지.”

경비대장의 명령에 따라 병사들이 창고를 헤집기 시작했다.

창고만이 아니라 3층에 달하는 저택 전체를 뒤집으며 철저하게 증거를 찾기 위해 움직였다.

그렇게 거의 한 시간 동안 난리를 쳤는데도 무언가 마법적인 수작이나 부정적인 서류 같은 것들은 찾아낼 수가 없었다.

“어떻게, 저희가 죄를 지었다는 사실은 발견하셨는지요?”

“시끄럽다.”

“가능하면 오늘이 끝이면 좋겠군요. 여러분들이 이럴수록 신도들을 구원하는 일에 차질이 벌어진답니다.”

누가 봐도 선량한 종교인과 잔혹한 압제자의 모습이었다.

“대장, 수색이 끝났습니다만…….”

부대장이 말끝을 흐리며 다가왔다. 표정을 보아하니 지난번과 같은 결과인 듯했다.

경비대장이 최후의 보루인 도시 직속 마법사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그들 역시 별다른 이상을 찾지 못한 듯 고개를 내저었다.

결국 경비대장은 한숨을 내쉬며 손을 흔들었다.

“어쩔 수 없지. 정리하고 이만 물러가자.”

사제들은 엉망이 된 창고를 착착 정리하는 병사들을 무표정하게 지켜보았다.

지난번에 벌인 행패가 아직도 머릿속에 깊게 남아 있었던 탓이었다.

스스슥!

그렇게.

주교를 포함한 모두의 시선이 병사들에게 모여 있을 때.

한 명의 인영이 저택 안으로 스며드는 것을 그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 * *

‘무난하게 들어왔군.’

네르하는 천잠은형술을 펼치며 저택 안으로 들어왔다.

‘정말로 저들 전부가 일반인이로군. 정말 철두철미해.’

아무리 의심이 들더라도 상대가 실제로 무능력자라면 어떻게 조치할 방법이 없다.

잘못 건드렸다가 저들이 무고를 외치면서 죽어 버리는 순간,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버릴 테니까.

‘뭐가 되었든 마족이나 암흑 교단 쪽과 관계가 있는 건 확실해.’

클로이아가 감정한 북방의 특산물들.

현재 상황에서 그것을 들여오려면 ‘마족’과 관련이 있는 자들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꼬리가 밟히지 않은 건 둘 중 하나지.’

정말로 철두철미하게 감추었든가.

아니면 아직 작업을 시작하지도 않았든가.

저택에 잠입한 네르하가 할 일은 간단했다.

그건 바로 우두머리로 보이는 주교의 방에 잠입한 이후…….

‘…….’

‘…….’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잠형술을 유지하면서 들키지 않게 조심스럽게 ‘관찰’만 하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저놈들이 뿌리는 것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고 있다.’

즉, 달리 말하면 저놈들이 구호품에 수작을 부리는 순간, 대처할 방법이 없어진다는 점이었다.

네르하는 신체의 신진대사를 의도적으로 억누르며 조용히 정신을 가라앉혔다.

‘몇 날 며칠이고 있어 주지. 네놈들이 꼬리를 드러낼 때까지.’

이미 다른 이들에겐 상황을 설명했다.

조금이라도 의심되는 정황이 발견되는 순간, 곧바로 손을 쓸 것이라고.

‘분명 전선의 상황은 그다지 나쁘지 않다고 들었다. 그런데 이런 시점에서 보급 줄인 후방을 도모한다는 건 여러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 주지.’

이곳 경계 도시 아르지엔을 도모하는 방식은 어디까지나 장기적인 시점을 바라보고 있는 것.

즉, 이건 앞뒤로 둘러싸 상대를 협공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라데우스의 저력은 아직 건재하니 섣불리 아르지엔을 도모했다간 오히려 주도에 남아 있는 병력이 도리어 아르지엔을 재탈환할 게 분명했다.

‘단기 결전을 통한 승리. 승기를 잡은 채 타이밍을 맞춰 단 한 번만 군의 퇴로를 차단한다면 전멸이란 결과물을 내놓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정말 네르하의 이 예상이 맞는다면.

마족은 이쪽의 전력을 상당히 자세한 수준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뜻이 되었다.

‘설마 정말로 그렇진 않겠지.’

네르하는 불안한 생각을 털어 버리며 정신의 혼란을 가라앉혔다.

어차피 이곳에서 상대의 의도를 분쇄시키면 해결되는 문제다.

그렇게 해가 지고 달빛이 만연하게 피어오를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덜컥!

낮에 경비대장을 상대로 당당하게 맞섰던 늙은 주교가 포교를 끝내고 돌아왔는지 방 안으로 들어섰다.

“후우, 힘들구먼.”

약간 지친 어조로 의자에 걸터앉은 주교는 잠시 어딘가를 뒤적거리더니 파피루스 같은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응?’

아무런 마법적인 효과가 없는 종이였다.

하지만 주교가 자신의 검지를 살짝 깨물어 피를 내더니.

슥슥슥!

아무런 마력 반응이 없던 종이에 갑자기 마력이 깃들기 시작했다.

‘혈마법!’

뱀파이어들의 고유 마법 체계, 혈마법.

마법이라기보단 종족 자체의 특성으로 인한 특혜에 가까웠지만 그렇다고 인간이 쓰지 못할 것은 없었다.

단지 매개체인 피의 효율이 많이 떨어질 뿐.

‘그렇군. 혈마법은 발동 전까지는 마력적인 작용을 발견할 수 없다고 하니 이런 일에 적격이야.’

이것도 세이라가 직접 혈마법에 대해 말해 주지 않았다면 절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혈마법의 동력은 일반적인 ‘마나’가 아닌 ‘생명력’.

뱀파이어라면 특유의 음마력을 통해 리스크를 줄여 나가지만 음마력이 없는 인간은 그저 자신의 수명을 담보로 혈마법을 발동시킬 뿐이었다.

그러니 마법사들이 눈치챌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화악!

종이에 새겨진 혈액이 마법진의 형상을 이루더니 이윽고 화려하게 불타며 재가 되었다.

그리고 그 직후, 혈마법을 이용한 통신 마법이 발동하며 자그마한 거울이 허공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

거울 안쪽에서 쇠를 긁는 듯한 기분 나쁜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고하라.

주교는 아주 공손하게 거울 앞에 엎드린 채 입을 열었다.

“예. 주인이시여. 오늘도 도시의 사냥개들이 우릴 의심하고 겁박하였으나 아무것도 찾지 못한 채 무능함만 드러내고 돌아갔나이다.”

―후후후, 마나의 감각에만 익숙해진 인간들은 절대로 알아챌 수 없지.

거울 안의 존재는 흡족하다는 듯 웃었다.

―라데우스의 잡것들은 우리의 의도대로 움직이고 있다. 놈들은 자신들이 승리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고 있겠지. 자신들의 모든 것이 포착당하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말이야.

‘뭐?’

네르하가 그 의미를 곱씹고 있을 때, 거울 안의 존재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슬슬 그 도시에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해도 괜찮을 것 같구나.

“오오! 그 말씀은!”

―다음에 있을 보급품부터 조금씩 풀어나갈 것이다. 그리고…… 내가 직접 그 도시에 강림하여 시장의 육체를 빼앗을 것이다.

“주인님의 대업이 성공할 수 있도록 시장의 시선을 돌려 놓겠나이다.”

―라데우스의 잡것들은 위대하신 마왕 비슈나르 님의 힘에 속절없이 쓸려나갈 것이다. 그리고 퇴로조차 차단당해 도망갈 곳도 없이 비참하게 우리 군단의 양분이 되겠지.

“아아, 아아아!”

―준비하거라. 내가 곧 그곳으로 갈 터이니!

환희하는 주교의 뒤통수를 향해 거울 안의 존재가 엄숙하게 명령했다.

“명을 받들겠나이다.”

그렇게 주교와 거울 안 존재의 대화는 끝났다.

주교는 쉬는 것도 잊고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 급하게 다시 방을 나섰고.

“흐음.”

그들의 모든 대화를 듣고 있던 네르하는 살짝 골치 아픈 어조로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월척이 걸린 것 같은데 이걸 어떻게 요리해야 잘했다고 소문이 나지?”

꼬리가 아니라 엉덩이 정도는 걸린 것 같다.

잡힌 물고기가 너무 크면 그것대로 고민이 되는 일이었다.

* * *

“마, 마족이라고요?”

클로이아를 비롯한 수하들은 네르하가 물어 온 정보에 경악했다.

며칠 자리를 비울 거라 말하고 사라져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단 하루 만에 돌아온 건 좋았지만 너무 큰 정보를 물어 온 것이었다.

“확실한 건 아니지만 정황상 거의 확실해. 시장의 몸을 차지하겠다고 했으니까.”

“좀 소름 끼치는 말씀이군요.”

넥스 시장은 자신의 턱수염을 긁으며 떨떠름하게 반응했다.

루시아가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하실 거예요?”

“곧 수작을 부리겠다고 했으니 적어도 이번에 올 놈들의 보급대는 안으로 들이면 안 되겠지.”

“놈들을 치실 생각입니까?”

“글쎄…….”

네르하는 말끝을 흐렸다.

역시 문제점은 상대의 강함이 어느 정도인지 각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네르하와 이전에 겨뤄 본 마계 백작 크루갈.

하지만 크루갈의 강함은 온전한 것이 아니었고, 네르하의 추측으로는 잘 해 봐야 10% 정도의 힘을 냈을 뿐이었다.

그것만으로도 검기를 다룰 수 있는 귀(鬼)급의 기사들을 다수 학살할 정도였으니.

정말 온전한 힘을 복원한 마계 백작이라면 대륙에서도 최강자급의 강자가 와야 상대가 가능할 거다.

‘그래도 강한 놈이 올 가능성은 낮다.’

굳이 시장의 육체를 빼앗을 생각을 하는 놈이라면 본신의 무력은 그리 강한 편이 아닐 터.

“시장, 도시 내에 검기를 사용할 수 있는 기사가 있습니까?”

네르하의 물음에 시장은 난감한 어조로 답했다.

“그 정도의 실력자는 경비대장과 부대장 두 명뿐입니다.”

“마법사는 수준이 어느 정도죠?”

“5레벨의 정위 마법사가 한 명, 4레벨의 준위 마법사가 둘, 3레벨의 마법사 다섯이 있습니다.”

“5레벨과 4레벨의 마법사들만 모두 동원해 주시죠.”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네르하는 결정을 내렸다.

“놈을 잡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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