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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118화 (118/237)

118화

<마법의 경지>

네르하가 언급한 주제가 상당히 예상외였는지 엘로이아는 상당히 흥미로운 목소리로 반문했다.

“호오, 영역이라.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 영역을 말함인가?”

“네. 심상각인영역(心想刻印靈域). 그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8레벨의 전유물이자 대마법사의 상징.

뮬란과의 전투 당시 겪었던 현상.

당시, 네르하는 자기 나름대로 영역이란 것을 어느 정도 구현화하기 위해 시도했었는데.

뮬란의 마계영역을 깨트렸을 뿐 결과적으로 그 시도는 처참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깨달음이라기엔 딱히 정신의 각성이나 도야의 과정이 없었고, 단순한 지적인 호기심에 가까웠다.

“말해 보게.”

“네. 사실은.”

네르하는 뮬란과의 전투 중에 있었던 일, 그리고 자신이 시도했던 일을 소상하게 고했다.

“호오?!”

“5레벨의 관문인 고유 계통이 자신의 심상을 구축하는 단계라면 8레벨은 그 심상을 현실에 구현하는 단계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하지만 제가 시도한 심상의 구현은 그저 ‘마력적 현상’으로만 그쳤을 뿐 진정한 의미로 ‘구현’했다고는 볼 수 없었습니다.”

“계속 말해 보게.”

엘로이아의 재촉에 네르하는 자신이 품고 있던 가정 하나를 조심스럽게 꺼내었다.

“제 예상입니다만 6레벨 혹은 7레벨의 경지 어딘가에 영역 구축의 중간 단계가 하나 존재하지 않나 싶습니다. 저는 그 단계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시도했다가 실패한 모양이고요.”

솔직히 다시 되돌아보면 리바운드를 피한 것이 기적이었다.

“하지만 제가 알고 있는 6, 7레벨의 마법사들은 그런 경지나 낌새를 보인 적이 없더군요.”

당장 클로이아의 ‘서리 군주’의 경우 영역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압도적인 범위와 위력을 보이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고유 계통으로 발현한 것일 뿐 영역이라 부를 수 있는 지속력과 절대적인 장악력은 발견할 수 없었다.

같은 7레벨의 마법사인 레이첼의 경우도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그렇기에 온전하게 8레벨에 들은 것으로 추측되는 엘로이아에게 이 궁금증에 대한 답을 듣고 싶었다.

네르하의 말을 모두 경청한 엘로이아가 이쪽을 향해 물었다.

“자네는 지금 몇 레벨이지?”

“아마 5레벨일 겁니다.”

“이제 막 걸음마를 떼었는데 하늘 위를 보고 있군. 헐헐헐!”

말은 이렇게 해도 엘로이아의 말투에선 딱히 비난이나 깔보는 기색은 없었다.

웃음을 뚝 그친 그녀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정답일세.”

“하, 할머니?”

“자네의 마법 경지는 확실히 갓 5레벨을 개척한 애송이가 맞아.”

그 순간, 네르하는 엘로이아의 눈빛이 자신의 전신을 날카롭게 관통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심상과 의념에 대해 상당한 식견, 혹은 깨달음을 가지고 있군. 참으로 흥미로워.”

“…….”

“단순히 설명을 들었다는 차원이 아니야. 애초에 5레벨의 마법사는 절대 그런 식으로 영역 구현을 시도할 수가 없으니까.”

딱히 대답할 거리가 없던 네르하는 그냥 입을 꾹 다물고 침묵했다.

“최소 7레벨의 초반. 그래. 여기 이 녀석 정도의 경지는 밟아야 얼추 그 길이 보이는 게 정상이지.”

툭! 툭!

“흥미롭군. 흥미로워.”

엘로이아는 들고 있던 지팡이 끝자락을 땅바닥에 연신 두들겼다.

“아마 시저에게서 들은 내용은 아니겠지.”

“네. 그렇습니다.”

“그렇겠지. 내가 시저라면, 그리고 이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면 절대로 말해 주지 않았을 테니까.”

“……?”

“자네가 말한 그 ‘중간 단계’는 7레벨 후반대의 경지를 뜻하네.”

“……!”

“그리고 8레벨에 이른 스승들은 제자들에게 절대로 이 경지에 대해 입을 열지 않지. 스스로 깨닫기 전까지는.”

“어째서입니까?”

네르하는 그 답을 얼추 알 것 같으면서도 예의상 질문했다.

“당연히 가랑이가 찢어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지. 자격이 되지 않는 자가 이 영역에 발을 내밀면 너무나 쉽게 망가지니까.”

클로이아가 불안한 표정으로 말을 흐렸다.

“할머니? 하지만 지금, 네르하 도련님은…….”

“그래. 멀쩡하지. 그렇기에 심상과 의념에 대한 깨달음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말한 거다.”

엘로이아가 날카로운 눈으로 물었다.

“어느 정도 계산이 섰기에 ‘상쇄’를 시도한 것이 아니던가?”

“네. 그건 맞습니다.”

네르하의 긍정에 엘로이아는 천장을 보며 탄식했다.

“라데우스에 괴물이 탄생했군.”

엘로이아의 말뜻을 전부 이해하지 못한 클로이아는 여전히 불안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고 있을 뿐이었다.

* * *

“일단 마법의 경지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주겠네.”

엘로이아는 자신의 지팡이로 흙바닥에 숫자를 새기기 시작했다.

그녀가 처음 새긴 숫자는 5.

“고유 계통의 각성 단계인 5레벨에 대해선 딱히 설명을 하진 않겠네.”

그리고 그녀는 곧바로 옆에 다음 숫자를 새겼다.

그렇게 새겨진 숫자는 6.

“6레벨은 흔히 ‘발전’의 단계라고 하지. 자신이 각성한 고유 계통을 응용해 ‘체계’를 만들 수 있다면 6레벨의 마법사라 부를 수 있네.”

특수작전대 아크의 분대장 엘림.

전격 계열을 각성한 그가 사용했던 ‘뇌전사(雷電絲)’가 대표적인 6레벨의 증거라고 할 수 있었다.

확신은 아니지만 마하타의 세뇌 마법 역시 그녀 나름 대로 정립한 6레벨의 체계에 속할 것이다.

스스슥!

7.

“자신이 각성한 고유 계통을 자유자재로 응용하는 걸 6레벨이라고 한다면 그다음 경지는 어떨 것 같은가?”

“글쎄요.”

네르하는 말끝을 흐렸다.

사실, 7레벨 이후의 경지는 시저도 말해 주지 않았다.

아까 엘로이아가 말했듯이 때가 되면 알아서 그 영역이 보일 거라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한번 추리해 보게.”

엘로이아의 권유에 네르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딱히 생각해 본 적은 없었지만 대략 어떤 경지일지는 전생의 경험을 미루어 대략 짐작이 갔다.

“의념을 깨닫고 다루는 영역일 것 같습니다.”

“헐헐헐! 역시 내가 사람을 제대로 봤군!”

엘로이아는 흡족하다는 듯 힘차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고유 계통을 자유자재로 다루어 마나를 한계까지 다루다 보면 어느 순간 세계의 흐름이 보이게 되지.”

그건 전생의 네르하도 한번 거친 과정이기도 했다.

“그리고 세계의 흐름을 느끼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만지고 다룰 수 있게 된다면 자신의 고유 계통은 진정으로 초인의 영역에 이르게 되네.”

그렇기에 이 경지의 초인들은 누가 더 의념을 잘, 그리고 오래 다루는가에 따라 실력의 차이가 갈린다.

“그래서 우리는 7레벨을 ‘조작의 경지’라 부르지.”

“조작의 경지…….”

“단순히 고유 속성만을 다루는 것에서 심상을 투영해 현실에서 조작하는 것까지를 포함하지. 기사들에게도 비슷한 경지가 있지만 마법사의 조작은 훨씬 더 섬세하고 정교하다네.”

그 순간, 네르하는 레이첼 루비아이가 어떻게 그렇게 불을 자유자재로 제어했는지를 깨달았다.

고유 계통인 ‘불’을 각성하고 오로지 그 불에 대해서만 의념의 단계까지 조작하는 데 모든 걸 쏟았기에 그만한 제어 능력을 보인 것이었다.

“클로이아의 서리 군주 역시 이 영역에 속하지.”

“7레벨이 조작의 경지라면 아까 말씀하신 ‘영역’과는 무슨 관계입니까?”

“그래. 여기서부터가 본론이겠군.”

엘로이아의 지팡이 끝이 7이라 새겨진 숫자의 옆으로 이동했다.

“…….”

하지만 그녀는 어째서인지 쉽사리 8이란 숫자를 쓰지 않았다.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7레벨의 경지는 사실, 모든 마법의 경지에서도 초입과 후반부의 수준 차가 가장 심한 레벨에 속하지.”

그 이유는 당연히 영역의 중간 단계라 부른 경지의 존재 때문일 것이다.

“대륙에 발표된 공식적인 8레벨의 마법사는 다섯. 나같이 속세에 묻혀 있는 것들을 포함한다 해도 열을 넘진 못하지. 하지만 7레벨의 마법사는 전 대륙을 통틀어서 천여 명이 넘어간다네.”

꾸욱!

그녀는 7이라 새겨진 숫자 옆에 작은 방점을 찍었다.

“그 경지는 굳이 말하면 7.5레벨이라고…… 말해야 할까?”

네르하는 그것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의념의 영역을 구축하는 건 의념을 깨닫는 것보다 훨씬 어렵죠. 마치 5레벨과 6레벨의 차이처럼 이건 응용을 넘은 발전의 단계이니까요.”

네르하가 이것까지 이해할 줄은 몰랐는지 엘로이아의 눈이 크게 떠졌다.

“마, 맞네. 만약 8레벨의 마법사가 지금보다 많았다면 분명 마법의 단계는 한층 더 늘어났을 게야.”

솔직히 말하면 의념이란 부분에서만큼은 네르하는 눈앞의 엘로이아보다도 훨씬 더 능숙하고 정교하게 다룰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의념을 도구처럼 다루는 무인의 방식과는 달리 마법사의 의념은 고유 계통과 합쳐져 ‘영역’이란 이름으로 전혀 다른 체계로 변해 버린다.

네르하가 어려움을 피력하는 것은 바로 이 부분에서였다.

엘로이아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네르하를 바라보다가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나갔다.

“설명을 편하게 하기 위해 인과관계를 조금 바꾸도록 하지.”

슥슥!

그녀의 지팡이가 드디어 8이란 숫자를 만들어 냈다.

“결론부터 말하겠네. 8레벨의 경지는 한마디로 ‘한정적인 전능’이라 정의 내릴 수가 있다네.”

“모순이군요.”

“그렇지.”

전능은 어디까지나 전능일 뿐 절대로 ‘한정’이란 단어와 결부시켜 말할 수 없었다.

한정이란 단어가 붙는다면 전능은 전능이 아니게 되니까.

“하지만 그 모순을 극복하고 받아들여야만 진정한 의미에서 8레벨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지.”

네르하는 무언가를 알아차린 듯 눈을 반개한 채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그 생각은 그리 오래 이어가지 못했다.

“8레벨에 이르면 마법의 궁극이라 불리는 9레벨의 세 요소 중 하나를 끌고 올 수 있게 되네.”

엘로이아의 말이 네르하의 생각을 끊어 버렸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9레벨의 세 요소를 열화시켜 심상각인영역이란 부분으로 축소, 한정시켜 구현하는 것이지.”

“9레벨의 세 요소라는 건 무엇입니까?”

생전 처음 듣는 개념에 네르하의 흥미는 최대치로 올라갔다.

“창조, 소멸, 간섭.”

“창조와 소멸이란 말은 알겠지만 간섭은 무엇입니까?”

“말 그대로 세계의 모든 영역에 간섭하는 경지를 말하네.”

엘로이아가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 영역엔 시간과 공간까지도 포함되지.”

“……!”

“그 세 요소를 모두 아울러 다루는 경지를 10레벨이라 부르지. 다른 말로는…… 그냥 신(神)이라고 부르네.”

“딴엔 맞는 말이군요.”

“뭐, 너무 아득한 경지는 조금 제쳐두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지.”

엘로이아는 자신이 땅에 새긴 모든 숫자를 지우며 말했다.

“자네가 왜 영역 구축에 실패했는지에 대해 말이야.”

* * *

엘로이아는 어째서인지 클로이아를 밖으로 내보냈다.

네르하를 배려한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는 몰라도 클로이아는 입술을 비죽이면서도 그녀의 말에 따랐다.

그렇게 클로이아마저 나가고 장내엔 두 사람만이 남았다.

“그 해결 방법을 말하기 전에 이 노인네에게 궁금증이 하나 생겼는데, 가능하면 답해 줄 수 있겠는가?”

“무엇입니까?”

“자넨 분명히 젊어. 나이를 속인 것도 아니고, 분명 라데우스의 피를 이은 직계 혈족일세.”

“……?!”

지금껏 인자함을 품고 있던 엘로이아의 눈빛이 어느 순간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그 사실을 인지하기도 전에 그녀의 한마디가 네르하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그런데 마법사인 자네가 어떻게 그 나이에 의념에 대한 깨달음이 검성(劍聖)의 단계에 이르렀는가?”

그 순간, 네르하의 전신에 가공할 한기가 맺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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