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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121화 (121/237)

121화

<첫 작전 (3)>

네르하는 이번 군략 회의에서 자신을 철저한 외부인으로 여겼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은 이제 막 어제 도착한 몸이었고 그만큼 군략 회의에 참석했을지언정 의견을 개진할 위치는 아니라고 자각하고 있었다.

‘흠.’

주변의 시선이 이쪽으로 모두 쏠리자 네르하의 표정이 살짝 난감해졌다.

“이번 작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지?”

류레이아의 물음에는 짓궂은 장난기가 깃들어 있었다.

‘저 망할 엘프가.’

장담컨대 류레이아가 지금까지 질문한 이들은 모두 사전에 어느 정도 정보를 공유받은 이들일 것이다.

애초부터 그만한 지위를 가지고 있든, 아니면 참모진의 누군가가 정보를 유출했든 관계없이 말이다.

하지만 네르하로선 그 어떤 언질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받은 기습적인 질문이었다.

‘단답형으로 끝내선 앞으로 힘들어진다는 걸 알고 저러는 거겠지.’

네르하와 휘하 소대는 어떤 전선에도 속하지 않고 자유롭게 작전에 참여할 권리가 있었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전선의 지휘관들로부터 작전의 합류 자체를 거부당할 수도 있다는 소리기도 했다.

“반대입니다.”

“그 이유는?”

정말로 골탕 먹일 생각이라면 이 말 이후로 바로 화제를 돌렸을 텐데.

의외로 류레이아는 추가적인 설명을 요구했다.

“딱히 상관은 없지만, 굳이 던져 준 먹이를 받아먹을 필요가 있을까요?”

“던져 준 먹이라고?”

천박한 단어 선택에 몇몇 이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네르하는 태연자약했다.

정말로 상대의 의도는 그게 분명했으니까.

“후후, 그런가? 의견은 잘 알겠다.”

회의에 참여한 몇몇 이들이 달라진 눈빛으로 이곳을 바라보는 게 느껴진다.

그들은 네르하가 무슨 의도로 이 말을 꺼냈는지 이해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네르하의 의견이 반영되는 일은 없었다.

“처음 안대로 작전을 진행한다. 이번 작전의 총책임자는 지렌 라데우스. 거기에 세 개의 전투부대와 일곱 개의 보조 부대, 그리고 1만 5천의 군사를 편성해 주겠다.”

이 전투부대와 보조 부대를 합하면 이전, 아르바가 이끌었던 마법사 병대의 숫자와 비슷하다.

마계 백작 하나 정도는 충분히 척살할 수 있을 터.

“거기에 어젯밤 서리 일족에서 이번 작전에 대해 참전 의사를 밝혀 왔다. 투입 숫자는 그쪽의 전사장을 포함하여 약 50여 명이다.”

그 말에 많은 이들이 반색했다.

서리 일족은 그 숫자는 적을지라도 하나하나가 막강한 이능을 가진 존재들.

특히 현 전사장을 포함한 50명의 인원이면 어지간한 전투부대 하나 정도는 충분히 찜 쪄 먹을 수 있는 전력을 자랑했다.

“거기에 무소속으로 활동 중인 아르바 라데우스와 네르하 라데우스 외 리브라에서 파견 나온 생도 10여 명이 동행한다. 이상.”

마지막 말에 언짢아하는 이들이 많아졌지만.

총사령관이 최종적으로 선언한 이상 그걸 반대할 간담을 지닌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북방 전선에서는 두 번째, 네르하로서는 첫 번째 마계 백작 토벌전이 막을 올렸다.

* * *

“드디어 첫 작전입니까? 조금 흥분되는군요.”

“시, 시작부터 적이 마계 백작이라니. 이게 무슨 말이…….”

이번 작전의 참전이 결정된 것을 통보받은 일행들은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너무 걱정 마라. 어차피 너희가 마계 백작의 얼굴을 직접 볼 일은 없을 테니까.”

아무리 나이대에 비해 수준이 높아도 전장에서 구르는 베테랑들은 아직 리브라의 생도에 불과한 이들에게 큰 기대를 걸지 않는다.

네르하 역시 괜히 시작부터 마계 백작을 때려잡겠다고 설치기보단 일행들의 경험치를 올리는 것에 집중할 생각이었다.

“모두, 이걸 봐라. 일단 지휘부에서 지도 하나를 얻어 왔다.”

현 북방의 상황이 적힌 홀로그램형 아티팩트가 맑은 빛을 내뿜었다.

지이잉!

“이걸 보면 알겠지만 전체적인 북방 전선은 상당히 늘어져 있다.”

루시아는 그 지도를 보며 나지막한 감상을 내뱉었다.

“원래 이런 식으로 전선을 길게 늘리는 건 우책에 속하지만 마법사의 전장은 역시 다르군요.”

디센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렇습니다. 특히 라데우스의 마법사들은 아티팩트를 이용한 기동성이 뛰어나고, 그를 통해 전선 간의 연락이 빠르게 이루어지니까요.”

네르하가 빨갛게 칠해진 마족들의 영역을 가리켰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런 식의 전선이 형성된 건 마족들이 먼저 광범위하게 영역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못해도 수백 개체 이상의 마계 귀족들이 수백 킬로미터에 걸쳐 영역을 만들어 내었다.

그 모습을 본 이들은 대부분 비슷한 감상을 남겼다.

“마치 왕국과도 같군요.”

“그렇지. 실제로 비슷하게 돌아가고 있기도 하다.”

지도에 표시된 영역 중 시뻘겋게 칠해진 부분.

크기로 따지면 지름이 약 5킬로미터 정도?

“여기가 우리가 최종적으로 공략해야 할 마왕의 영역이다.”

꿀꺽!

주변에서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키는 이들이 많아졌다.

“아직은 여기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어. 어차피 지금 너희 수준으로 작전 중에 마왕을 만난다면 죽었다고 복창하고 놈에게 목을 내놓으면 된다.”

“…….”

나름 농담조로 말한 것이었는데 받아들이는 입장에선 농담이 농담으로 들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괜히 뻘쭘해진 네르하는 헛기침을 한번 한 뒤에 설명을 이어나갔다.

“크흠! 여기를 보면 이번 목표가 된 마계 백작의 영역 외에도 근처에 최소 열 개체에 달하는 놈들의 영역이 존재한다.”

“우리는 이들을 상대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군요.”

“맞아.”

네르하는 아르지엔에서 맞붙었던 남작급 마족 뮬란을 떠올렸다.

7레벨의 마도사인 클로이아조차 밀릴 만큼의 위력. 현재 데려온 이들의 실력으로는 분명 변변한 저항도 못 하고 떼 몰살당할 테지만.

‘놈은 그때, 자신의 힘이 페널티를 극복한 상태라고 말했었다.’

그리고 그 페널티의 극복이 마치 자신만의 특별한 케이스라고 자랑하듯 떠벌렸던 게 생각난다.

‘그 말이 정말 사실이라면?’

네르하는 놈이 보여 준 힘과 일반적으로 마족이 중간계에 현신했을 때 얻는 페널티의 결과값을 도출해 내었다.

“솔직히, 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오오!”

“하지만 전장은 온갖 변수가 난무하는 곳이야. 조금만 방심해도 가장 하찮은 마물한테 허무하게 목숨을 잃을 수 있는 곳이라는 걸 기억해라.”

잠시 얼굴이 밝아졌던 수하들은 네르하의 살벌한 경고에 다시금 시무룩하게 가라앉았다.

네르하가 선언했다.

“우리는 내일, 병사들의 지원조에 합류한다.”

“지원조라면?”

“가문에서 동원한 병사들은 보통, 수준 낮은 마물들을 주로 처리하는 임무를 맡지. 그들을 지원하는 일이다.”

그러다가 귀족은 아니지만 지성이 있는 중, 하급 마족들이 나타나면 힘을 합쳐서 상대하는 식이었다.

“솔직히 이곳에 파견 나온 대부분의 마법사들이 꺼리는 일이지. 하지만 시작으로선 나쁘지 않다고 본다.”

잡졸은 열을 죽이든 백을 죽이든 잡졸에 불과하다.

큰 공적을 원하는 본가의 엘리트들 입장에선 기피하고 싶은 잡일에 불과했다.

그걸 인지하고 있던 바스톤은 불안한 표정으로 네르하에게 물었다.

“주군, 괜찮으시겠습니까?”

“뭐가?”

“아직 모자란 저희와는 달리 주군이나 클로이아 교수님은 이런 일을 맡을 만한 실력이 아닙니다.”

좀 더 넓게 포함한다면 루시아까지 들어가겠지만 지금 그걸 따질 때는 아니고.

“이번 북방행은 어디까지나 주군께서 다른 후계들보다 더 큰 공을 세우기 위한 목적의 원정입니다.”

“그렇지.”

“다른 직계들은 분명 장로가 이끄는 직속 타격대에 전원이 들어가 있을 겁니다.”

“뭐, 그렇겠지.”

하지만 네르하는 오히려 자신들을 이끌고 외곽으로 지원했다.

네르하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마계 백작을 잡는 일에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한데도.

자신들이 발목을 잡고 있다.

그 사실이 바스톤의 마음을 괴롭게 만들었다.

“너희들이 충분히 성장하기 전에 시작부터 이런 큰 작전에 얽힌 건 확실히 계산 외이긴 하지.”

“그렇다면!”

“착각하지 마라, 바스톤.”

네르하의 잔잔한 음성이 장내를 울렸다.

“고작 백작 따위 하나 잡지 못했다고 후계 경쟁에서 고꾸라지진 않는다.”

애초부터 네르하는 단기간에 결판이 나지 않는다는 계산하에 북방으로 왔다.

그런 만큼 절대 조급해하지 않고 길게 보며 가야 한다.

“그리고 말이다.”

“넵!”

“어디까지나 내 목표는 마왕이지 그런 잔챙이가 아니야.”

바스톤은 물론이고 수하들 모두가 네르하의 패기에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우리의 시작은 미약하지만 끝은 창대할 거다. 그러니 날 믿고 끝까지 따라와라.”

“네. 주군!”

바스톤과 루시아를 비롯한 수하들 모두가 힘차게 응답했다.

* * *

날이 밝자마자 네르하는 수하들을 이끌고 서리 일족의 영역에서 빠져나왔다.

병사 지원조에 합류하겠다는 네르하의 말에 전사장 바실리는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본대에 들어가지 않는 건가? 의외로군.”

“전사장님은 본대에 합류하시나 보군요.”

“총사령관의 요청이다. 마계 백작을 상대하는 데 전위의 역할을 맡아 달라는군.”

권사인지 검사인지 아니면 다른 주특기가 있는지는 몰라도 바실리는 명실상부한 현 북방 전선 최강의 육체 능력자였다.

당연히 그런 요청을 받아도 이상할 게 없었다.

바실리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 나름대로 생각이 있겠지.”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차피 이번 작전은 마왕의 영역으로 향하는 루트 확보와는 별다른 상관이 없으니까. 내가 듣기론 아르바 역시 이번 작전에 합류하진 않았다더군.”

흠칫!

“아르바 형님이 말입니까?”

“그래. 어느 지점으로 가는지는 몰라도 적어도 본 타격대에 들어가지 않은 건 확실하다.”

그 순간, 네르하의 눈이 가늘어졌다.

‘무슨 꿍꿍이지?’

아르바는 그 누구보다 공에 대한 열망이 강한 인물이다.

네르하야 수하들의 경험치 성장을 위해 이번 작전에서 빠졌다지만 책임질 이가 없는 아르바는 이번 작전에서 빠질 이유가 없었다.

“어쨌든,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네의 무운을 빌지.”

그 말을 끝으로 바실리는 자신을 따르는 무리와 함께 본대를 향해 떠났다.

‘뭔가 다른 계획이 있는 건가? 그게 아니라면 뭔가 부자연스럽군.’

네르하는 아르바에 대해 고민하다가 곧 고개를 털어 버렸다.

이미 본대는 작전 수행을 위한 구성을 끝냈고, 그 외의 병력 배치 역시 어젯밤에 모두 완료가 된 상황이다.

‘설마, 아니겠지.’

네르하는 갑자기 뇌리를 파고든 가정에 헛웃음을 지었다.

너무 허황된 생각을 하는 것도 정신 건강에 그리 좋지 않은 법이었다.

“대장, 모두 준비가 끝났어요.”

루시아가 검집을 움켜쥔 채로 네르하에게 다가왔다.

그 뒤로 클로이아를 제외한 일곱 명의 인원이 모두 전의를 다진 채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좋아. 일단 출발하기 전에 만약을 대비한 명령 체계를 설정하지.”

네르하는 자신의 옆에 클로이아와 루시아를 순서대로 세웠다.

“기본적으로는 내 명령이 최우선이다. 하지만 의도치 않은 일이 생겨 지시를 내리지 못할 땐 클로이아, 루시아 순으로 명령 체계가 이어진다.”

클로이아야 그렇다 쳐도 다음으로 디센트가 아닌 루시아를 지목했는데도 별다른 이의는 없었다.

지난 두 달여간의 수행 기간 동안 루시아의 역량이 어느 정도인지 모두가 확실하게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그럼 이동하지.”

“잠시…… 주군!”

“뭐냐, 바스톤.”

“손님이 오셨습니다.”

“손님?”

막 작전이 시작되려는 시기에 네르하를 찾아올 손님은 많지 않았다.

‘아르바인가?’

그나마 상대를 추정하자면 아르바인 줄 알았는데.

“다행히 헛걸음을 하진 않았군요.”

“실례하겠습니다.”

“당신들은?”

네르하는 의외의 방문자가 나타나자 속으로 제법 놀라워했다.

세드릭과 다르미안.

이번 작전에서 반대표를 던졌던 그 두 명이 어째서인지 네르하를 찾아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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