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122화 (122/237)

122화

<마계 백작 아스타로스 (1)>

세드릭 하이넨.

다르미안 엔시스.

두 사람 모두 라데우스의 정식 전투부대 대장으로서 가문 내 혁혁한 입지를 가진 젊은 마법사들이었다.

“곧 작전에 투입될 두 분께서 어떻게 여기에?”

“하하하, 아직 조금은 여유가 있습니다. 잠깐 짬을 내서 와 본 겁니다.”

탐스러운 녹색 머리카락이 허리까지 내려온 세드릭은 ‘이게 남자라고?’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여성스러운 미남이었다.

“네르하 도련님께 한 가지 여쭤볼 게 있습니다.”

반대로 다르미안은 푸른 머리카락을 짧게 깎은 굳건한 인상으로, 마법사보다는 군인이라는 인상이 강한 청년이었다.

네르하는 시간을 살폈다.

이동 시간이 다 되었지만 눈앞의 두 사람은 마냥 무시할 수 있는 이들이 아니었다.

“무엇이죠?”

“도련님께서 군략 회의 당시 하셨던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던져 준 먹이. 분명 네르하는 이번 작전의 공략 대상인 마계 백작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셨습니까?”

“아무래도 그 ‘배경’까지 전부 이해하기엔 무리가 있죠.”

“말 그대로입니다. 적당한 선에서 이쪽에게 승리를 주는 것. 아마 놈들이 원하는 건 그것이겠죠.”

네르하는 심드렁하게 말을 이었다.

“짓궂은 면이 있으시군요. 두 분도 그걸 예상하셨기에 작전에서 반대표를 던지신 것 아닙니까?”

그 말에 두 사람의 안색이 급변했다.

“군략 회의 때 전체적인 전선이 어떻게 변하는지 지켜보았습니다. 놈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총력전을 유도하고 있더군요.”

“으음!”

“도련님께서도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계셨습니까?”

물론 네르하가 무슨 군략의 천재라서 그런 건 아니었다.

다만 정마 전쟁을 거치면서 어느 정도 식견이 있는 건 사실이었고, 무엇보다 아르지엔에서의 일이 이 판단을 하게 만든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이번 마계 백작을 성공적으로 공략하게 되면 마왕령의 동쪽으로 향하는 교두보를 구축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되면 다른 곳에서의 방해를 막아내고 마왕령을 공략할 단초를 쌓을 수 있게 되죠.”

네르하가 서쪽을 향해 살짝 시선을 돌렸다.

그 시선 너머에는 이전, 다른 마계 백작을 해치우고 전진한 요새가 있다.

다르미안과 세드릭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 맞습니다. 하지만 그걸 모를 상대가 아닙니다.”

“최대한의 전력 보충을 해야 할 마족 측에선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다는 게 문제죠.”

이전, 첫 마계 백작 공략 작전 당시 어마어마한 병력 밀집을 보였던 당시와는 완전히 상반된 상황이었다.

네르하는 속으로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지만 이미 작전은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와서 상대의 의도가 뭐라 주장하든 전투는 피할 수 없습니다만.”

“예. 저희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너무 쉽게 긍정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네르하의 이마에 살짝 주름이 졌다.

“본론이 뭐죠?”

아무리 생각해도 작전 직전에 의견 하나를 물어보려고 직접 찾아온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이 맞았는지 세드릭이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번 작전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진지하게 마왕령 공략 건이 회의에서 대두될 겁니다.”

“그래서요?”

“군략 회의에서 만약 그 주제가 던져지면 네르하 도련님께서 반대파에 서 주셨으면 합니다.”

“흠?”

네르하는 황당하다는 시선을 던졌다.

아직 이번 전투가 시작도 되지 않았는데 알이 부화하기도 전에 닭이 몇 마리인지부터 세고 있다.

“일단 차치하고, 그렇게 해서 제가 얻는 이득은요?”

“그 대가로 저희 두 사람이, 이번 북방 원정이 모두 끝날 때까지 네르하 도련님의 뒤를 받치겠습니다.”

“……!”

세드릭과 다르미안.

두 사람 모두 백 명은 되는 라데우스 전투부대의 대장이다.

즉, 저 제안을 받아들이면 적어도 이번 북방에서 네르하가 굴릴 수 있는 200명의 전투 마법사가 수하로 들어온다는 뜻이었다.

네르하는 곧장 대답하지 않고 그대로 팔짱을 꼈다.

그러고는 검지로 툭툭 건들며 심각하게 고민했다.

“지금 두 분의 제안은 총사령관님의 의도로군요.”

“……!”

“……!”

설마 그 사실을 알아맞힐 줄은 몰랐는지 세드릭과 다르미안의 표정에 놀라움이 깃들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당신들이 아무리 전투부대의 대장들이더라도 갑자기 제 휘하에 전입할 정도로 멋대로 굴 수는 없겠죠. 그리고 무엇보다.”

세드릭과 다르미안이 침을 살짝 삼키며 네르하의 말을 기다렸다.

“판이 깔리면 아무리 총사령관이라고 해도 여론을 무시할 수는 없을 테니 미리미리 균형을 맞춰두려는 것이겠고요.”

“대, 대단하십니다.”

세드릭은 진심으로 감탄했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다르미안 역시 말은 하지 않았어도 나름 놀랐다는 표정이었다.

그들의 표정을 보면 네르하에 대한 기대감이 상당히 높아진 듯했다.

그런 그들을 향해 네르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고맙지만 그 제안은 거절하겠습니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거절이라고 했습니다.”

세드릭이 다급하게 외쳤다.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십시오!”

“제 생각은 변하지 않습니다. 돌아가세요.”

그 뒤로 약간의 설전이 이어졌지만 네르하의 의지는 단호했다.

네르하의 고집을 꺾지 못한 두 사람은 결국 인상을 구기며 물러나고 말았다.

그렇게 세드릭과 다르미안이 돌아간 뒤, 클로이아가 네르하를 향해 걱정스럽게 물었다.

“괜찮겠어요? 총사령관의 호의를 이렇게 거절해 버리면…….”

네르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호의라기보단 희생양에 가까운 시험이지. 그들을 얻는 대가로 이곳에 온 다른 모든 직계들과 대립각이 세워질 테니까.”

대외적으로 총사령관이 네르하를 선택한 이유는 네르하가 시작부터 공을 세우려 들지 않고 신중하게 행동해서 그렇다고 한다.

‘그건 어디까지나 핑계에 불과하고 내가 만만하기 때문이지. 적당히 버티다가 밀려나갈 버림 패.’

설사 그런 판이 짜지더라도 류레이아는 공세의 반대를 원하는 게 아니다.

그저 조금 신중한 접근을 위한 대비책일 뿐.

애초에 족장 엘로이아의 말에 의하면 류레이아는 엘프 중에서도 매우 호전적인 편으로, 자신의 실력에 절대적인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런 만큼 싸우면 필승을 자신하지만 총사령관인 입장상 피해를 줄여야 하겠지.

반대로 공을 원하는 직계들은 피해고 나발이고 무조건적으로 공세를 외쳐댈 테니 그 광풍을 잠시 막아 줄 방패막이로 네르하를 선택한 것이다.

“어차피 그놈들이 있어 봤자 쓸모도 없어.”

“엥? 어째서요?”

네르하는 뒤에 있는 여덟 명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

“그놈들은 온전한 내 부하가 아니니까. 총사령관의 말 한마디면 언제든 내 뒤통수를 칠 수 있는 녀석들이지. 총사령관의 온전한 지지를 끌어내지 못하는 이상 그런 건 차라리 없는 게 나아.”

“그, 그렇군요.”

클로이아는 네르하의 말을 들으면서도 살짝 당황했다.

이곳, 북방에 도달한 건 고작 며칠이 지났을 뿐이고 총사령관 류레이아와 만난 건 단 한 번뿐이었다.

그런데 벌써부터 이런 정치적인 판단을 내릴 수가 있다니!

뒤에 있던 디센트 맥퀸과 다른 이들 역시 감탄을 숨기지 않았다.

‘생각이 넓고 깊다. 내가 사람을 잘못 고르진 않았어.’

특히 디센트와 수하들은 인생을 걸고 네르하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최근, 실력이 급격하게 늘었다지만 이런 최전선까지 왔기에 불안감이 없는 건 아니었다.

‘정말로 끝까지 살아남아 성공을 쟁취할 수도 있겠군.’

* * *

“거절했다고요?”

류레이아는 설마 자신의 예측이 틀릴 줄은 몰랐는지 약간 허탈한 목소리로 물었다.

“네. 아무래도 이쪽의 진의를 파악한 것 같습니다.”

“5공자의 심계가 보통이 아닙니다. 이전, 낙오자라 불렸던 그 5공자가 아닙니다.”

다르미안과 세드릭은 임무를 실패했다 해서 딱히 아쉬운 기색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쪽의 수를 모두 꿰뚫은 네르하에게 감탄하고 있었다.

“설사 그렇다 해도 자기 입장에선 딱히 아쉬울 게 없었을 텐데?”

류레이아의 말대로 가문 내 지지 기반이 극단적으로 약한 네르하에겐 물지 않을 수 없는 탐스런 먹이였다.

“이러면 장로 중 하나를 설득하는 수밖에 없나?”

원정대에 포함된 라데우스의 장로를 설득하려면 네르하보다 더 큰 대가를 줘야만 했다.

그때, 옆에서 대기하던 참모 하나가 입을 열었다.

“총사령관님.”

“왜?”

“몇 분 전에 토벌군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선발대가 무사히 영역에 진입했다고 합니다.”

“적의 저항은?”

“예상대로 다수의 마족들과 마물들이 영역 초반부부터 격렬하게 저항하고 있다 합니다. 하지만 별다른 피해 없이 무난하게 중앙까지 뚫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장로가 직접 이끄는 만큼 그 정도는 해 줘야겠지. 외부 상황은 어떻지?”

“병력 배치는 끝났습니다. 다른 영역에서 지원군이 온다 해도 충분히 막아낼 수 있을 겁니다.”

“흐음.”

그녀가 뭔가 심각한 표정으로 전황 판을 들여다보자 수하들이 의아한 기색으로 물었다.

“뭔가 문제가 있으십니까, 류레이아 님?”

류레이아가 답했다.

“확실히 너무 쉬워. 던져 주는 먹이는 맞지만 그렇다고 해도 최소한의 반항 정도는 있어야 할 텐데 말이야.”

“변수가 있다 해도 류레이아 님이 직접 나서시면 충분히 해결되는 문제 아닙니까?”

“아니, 나서지 못해.”

“……?!”

류레이아는 살짝 침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견제당하고 있기 때문이지.”

“누, 누구에게?”

“마왕에게.”

‘경지’를 넘어선 류레이아는 똑똑히 알 수 있었다.

지금 이 상황은 마왕과 자신의 수 싸움이라는 것을.

“비슷한 이유로 서리 일족의 할멈 또한 움직일 수 없어. 나와 그 할멈이 힘을 합쳐야 지금의 마왕을 때려잡을 수 있으니까.”

“서, 설마 류레이아 님의 힘으로도 불가능한 것입니까?”

“마왕이란 이름값이 그리 녹록지는 않지.”

류레이아가 마왕의 기척을 느낀 것은 단 한 번.

첫 마계 백작을 성공적으로 토벌하고, 그 시체의 잔향에서 마왕이 가진 힘의 파편을 느꼈다.

“그래서 변수가 필요한 거야. 지금은 우리가 우위라지만 놈들의 힘은 시간이 갈수록 커지고 있으니까.”

최악의 경우 북방을 메테오로 쓸어버리는 일은 없어야만 했다.

“총사령관님은 그 변수 중 하나가 네르하 님이라고 생각하시는군요.”

“맞아. 리브라 쪽 아는 놈들의 말에 의하면 놈의 성장 속도는 그야말로 초월적이라고 하더군. 당장 1년 전만 해도 고작 2레벨의 풋내기가 지금은 고유 계통을 각성하고 6레벨을 바라보고 있다던가?”

“……그게 말이 됩니까?”

“말이 되니까 하는 소리겠지?”

말은 하지 않았지만 자신과 동격의 강자들이 네르하를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마법적인 재능 외에도 하나가 더 있었다.

‘놈의 진가는 머리와 육체 그 자체라고 했던가?’

과연 그 재능이 이 험한 북방 전선에서 어떻게 꽃피울지 기대가 된다.

그때였다.

“크, 큰일났습니다, 총사령관님!”

막사 안으로 전방과 연락을 담당하는 마법사 하나가 다급하게 들이닥쳤다.

“무슨 일이지?”

“바, 방금 전 영역의 중심부까지 파고든 지렌 라데우스 장로님의 전언입니다.”

“빨리 말해.”

“목표물인 마계 백작 아스타로스와 그 군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

류레이아의 표정이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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