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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123화 (123/237)

123화

<마계 백작 아스타로스 (2)>

화염과 벼락이 빗발치고 대지가 무너지며 지층이 생겨난다.

수천에 달하는 마족과 마물들이 달려들었지만 그들은 단 한 개체도 적의 몸에 닿지 못한 채 처참하게 찢기며 소멸했다.

“순조롭군.”

타격대의 총대장인 지렌 라데우스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마계영역의 특성상 영역 내에서는 무제한에 가까운 마물들이 생성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수백에 달하는 라데우스의 전투 마법사들은 마물들이 생성되는 것보다도 훨씬 더 빠르게 병력을 밀어내고 있었다.

역시 아무리 부정해도 마법사의 진가는 다수 대 다수가 맞붙는 전쟁에서 퍼붓는 광역 포격에 있었다.

“이대로라면 곧 마계 백작의 영역에 도달합니다.”

“너희도 준비는 되었겠지?”

지렌은 한평생을 함께해 온 직속 수하들에게 물었다.

비록 숫자는 열을 넘지 못하지만 하나하나가 라데우스의 전투부대 대장을 맡아도 모자람이 없는 이들.

자신과 함께 마계 백작 아스타로스를 상대하기 위해 차출한 6레벨 후반에서 7레벨 초입에 다다른 최고의 정예들이었다.

“물론입니다!”

수하들의 우렁찬 대답에 지렌은 흡족하게 웃었다.

“전사장도 잘 부탁드리오.”

서리 일족의 전사장, 바실리 블루벨벳 또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계 백작급의 휘하에는 전원이 마족으로 구성된 정예부대가 존재한다고 한다. 비록 귀족은 아니더라도 방심은 금물이다.”

“타격대의 마법사들이라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겠지. 하지만 언제나 변수를 조심해야 한다. 정신 똑바로 차리도록!”

지렌이 수하들에게 몇 번이나 당부하던 사이, 어느새 라데우스의 군세는 주변의 습격을 떨치고 목표 지점에 도달했다.

“장로님! 곧 영역의 중앙 부분에 도착합니다!”

“좋아. 바깥에서 날뛰고 있는 직계들을 불러와라. 그들에게도 기회는 공평하게 줘야겠지.”

“네!”

이윽고 바멜을 비롯해 라데우스의 직계들이 아스타로스를 상대하기 위해 합류했다.

지렌은 리브라 시절부터 자신과 함께해 온 애병, ‘용왕의 어금니’라 불리는 지팡이를 꺼냈다.

“어디, 그때 보았던 놈보다 얼마나 더 강한지 확인해 볼까?”

그러나.

“……?”

“자, 장로님?”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

아스타로스와 그 군세가 포진되어 있을 거라 생각했던 곳에는 그 어떠한 인기척도 보이지 않았다.

“……함정?”

누군가가 멍하니 그 말을 내뱉자 정신을 차린 지렌이 다급하게 수하에게 외쳤다.

“비시우스!”

“네. 장로님!”

“이 주변의 마기 밀도를 확인해! 어서!”

비시우스라 불린 중년의 사내는 빠르게 마도구 하나를 꺼내 숫자를 확인했다.

“몇이지?”

“마기 농도 46.68%. 이 정도면…….”

“자, 자작급입니다!”

“뭐?!”

백작의 영역이라 생각했던 마계영역이 사실은 자작급이었다고?

“이, 무슨! 분명 직전까지 확인했던 마기 농도는 분명 60%가 넘어가지 않았더냐?”

“그, 그건 확실합니다! 하지만, 하지만 분명 중심부에서 마기 농도가 변하는 사례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지렌은 망연자실하게 과거의 기록 하나를 떠올렸다.

“영역 바꿔치기.”

인간이 가장 마지막으로 마족과 싸웠던 기록은 무려 500년 전이다.

그만큼 필사로는 그 위력이나 세세한 전략들을 구체적으로 떠올리기 힘든 것들이 많았으며, 이번 ‘영역 바꿔치기’ 같은 경우도 이러한 경우에 속했다.

“이 근방에 이 영역의 주인인 자작급 마족이 숨어 있다는 건 둘째 치더라도…….”

지렌은 인상을 쓰며 고함을 내질렀다.

“그럼 놈들의 목적이 대체 뭐란 말이냐!”

이런 식으로 전투를 회피해 봤자 마족들이 얻을 수 있는 건 없었다.

압도적인 물량으로 포위해 섬멸을 시도한다 해도 현재 전력이면 그 포위진 전체를 녹여버릴 수 있었으니까.

“장로님! 동쪽 방면에서 급보입니다!”

“뭐? 동쪽?”

등쪽은 이전, 군략 회의 때 몇몇 이들이 매복의 우려를 표했던 그 협곡 지역이었다.

“동쪽 협곡 인근에서 다수의 비행형 마물들이 나타나 이곳을 향해 돌진하고 있답니다!”

“뭐라고!”

놀라움을 다 터트리기도 전에 다른 쪽에서 보고가 올라왔다.

“서쪽 부근에서도 연락이 왔습니다! 근방에 포진하고 있던 남작급 마족들이 영역을 해제하고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다고 합니다!”

“장로님! 남쪽에서도……!”

북쪽이야 원래부터 마물들의 영역이었으니 사실상 동서남북 모든 방향에서 적들이 몰려오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아직 이런 위기를 겪어 보지 못했던 바멜은 창백한 표정으로 말을 더듬었다.

레티안, 세티안 쌍둥이 역시 크게 굳은 표정으로 지렌의 얼굴만을 직시할 뿐이었다.

“진정해라! 사방에서 적들이 몰려온다 해도 주적인 마계 백작이 없으면 얼마나 몰려오든 그저 시간 벌기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비록 포위되긴 했어도 본대가 굳건하게 대기하고 있는 이상 이건 딱히 포위라고 할 것도 없었다.

‘진짜 무슨 속셈이냐?’

지렌이 이를 갈며 상대의 수를 읽으려고 들 때, 다른 부하들에게서 보고가 들어왔다.

“장로님! 서남쪽 보급 부대에서 급보입니다!”

“뭐냐?!”

“그쪽에서 마기 농도 68%에 달하는 마계영역이 새롭게 펼쳐졌다고 합니다!”

“……!”

지렌의 표정이 한껏 일그러졌다.

“그쪽에 뭐가 있지?”

부하 마법사는 잠시 할 말을 곱씹다가 재빨리 입을 열었다.

“만약을 대비한 2만에 달하는 일반군이 대기 중이고, 마법사 전력은 지원조를 제외하면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순간, 지렌의 뇌리에 남쪽 경계 도시에서 있었던 사건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설마, 일반군 자체가 목적?”

남쪽에서 퇴로를 차단하려는 마족들의 시도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시도가 리브라의 일개 생도에 불과한 네르하와 몇몇 이들에게 저지되었다는 걸 듣고선 처음엔 마족들의 무능함을 비웃었었는데…….

‘남쪽에서의 일을 들은 총사령관은 놈들이 단기전을 걸어올 것을 예상했다. 이번 작전은 그 발을 빼지 못하도록 적절한 판을 만들어 줄 전투라고 했지.’

아무리 마법사 전력이 강대하다 해도 상대가 군단급인 이상 이쪽도 화력을 받쳐 줄 군의 존재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그쪽에 별다른 마법사 전력이 없는 만큼 마계 백작의 영역이 펼쳐진다면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하고 쓸려나갈 게 분명할 터!

“그쪽에 있는 마법사 전력은 어느 정도지? 조금이라도 군을 보호할 수 있을 정도인가?!”

이쯤 되면 본진에서도 눈치를 채고 전력을 파견할 수도 있을 테지만 아무래도 본진보단 이쪽에서 지원을 가는 것이 더 빠르다.

그래도 지원까지 최소 30분은 걸린다.

“그, 그나마 서리 일족의 7레벨 마법사인 클로이아 블루벨벳이 있습니다. 그, 그리고.”

“뜸 들이지 말고 말해!”

“네르하 라데우스 도련님께서 리브라의 생도들과 함께 그곳에 지원 마법사로 배치되셨습니다.”

“이런 제길!”

* * *

“충! 네르하 도련님, 지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번 토벌대의 장군 중 하나인 마엘론 젠투 경은 이번 2만 군세의 사령관으로 임명된 이였다.

“그리 예의를 차릴 것 없습니다.”

2만 군의 사령관이라고 해봐야 라데우스에서는 전투 마법사단의 대장보다도 지위가 낮은 이였다.

당연히 어지간한 일이 아닌 이상 라데우스의 직계에게 줄을 댈 기회는 거의 없다고 봐도 좋았다.

그렇기에 마엘론 경은 자신의 휘하에 배속된 네르하에게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있었다.

“원하신다면 보조로 천인대 하나 정도는 내어 드릴 수 있습니다만.”

“아뇨. 마법사는 어디까지나 군을 보조하는 존재지 군이 마법사를 보조하는 게 아닙니다.”

일반적으로는 그 말이 맞지만 라데우스에서는 이단이나 다름없는 발언이기도 했다.

“아아! 훌륭하신 말씀입니다!”

하지만 천생 군인인 마엘론 경에겐 무엇보다 호감도를 올릴 수 있는 말이기도 했다.

네르하가 귀찮게 하는 마엘론을 대충 상대해 주고 있을 때.

“대장, 이번 웨이브가 끝났습니다.”

디센트 맥퀸이 실마연의 수하들을 데리고 돌아왔다.

네르하는 마엘론 경을 떼어내고 디센트에게 다가갔다.

“느낌은 어때?”

“확실히 대장 말대로 힘들더군요. 이런 군 단위 규모의 전투는 처음인지라.”

“위력을 조절하거나 아군에게 오사가 나지 않도록 마력을 제어하는 게 특히 피곤하더군요.”

말로 힘드니 피곤하니 하는데 표정에도 그다지 만족스러운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네르하는 피식 웃으면서 녀석들을 다독였다.

“대대적인 웨이브가 끝나면 그땐 소대 단위로 토벌전에 들어가니 조금 쉬어둬라.”

“오오!”

“넵. 알겠습니다!”

영역에 침입한 자들을 몰아내기 위해 마계 귀족들은 주기적으로 마물들을 떼거리로 보낸다.

마법사들의 마나를 그런 하급 마물들에게 소모되는 걸 막기 위해 군대가 동원되는 것이었고, 일반적으로 병사들은 그걸 웨이브라고 불렀다.

‘합격진을 잘만 유지하면 나와 클로이아가 없어도 남작급 마족과 싸워도 해 볼 만하겠군.’

네르하가 그런 생각을 하던 때였다.

부르르르!

‘음?’

네르하의 글러브, 마령수투가 갑자기 떨려 오기 시작했다.

‘뭐지?’

물리적으로 떨리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일정 규격 이상의 마기(魔氣)를 접했을 때, 마치 그것을 잡아먹고 싶다는 듯 탐욕스럽게 네르하의 영혼을 보채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전, 뮬란이란 놈의 정체를 파악했을 때보다도 훨씬 더 강렬하게 울리고 있다. 그렇다는 건?!’

사태를 파악한 네르하는 고함을 내질렀다.

“클로이아!”

“네, 네!”

“당장 수하들, 전부 불러 모아! 전투준비!”

“……! 알았어요!”

클로이아는 네르하의 표정에서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엘론 경!”

“마, 말씀하시지요!”

“전군에 전투준비를 알리세요. 방패병을 앞으로 세우고 적의 급습에 맞춰서 퇴각진을 짜야 합니다!”

“그, 그게 무슨!”

“서둘러! 시간이 없다고!”

클로이아보단 대응이 느렸지만 마엘론 경도 나름 경험과 눈치가 풍부한 기사였다.

“더, 더 필요한 건 없으십니까?”

“지원조에 속한 마법사들을 모두 모아 주세요. 한시가 급합니다. 전방 작전에 뭔가 차질이 생겼어요.”

“알겠습니다!”

이 지시에 문제가 있을 경우 어차피 덤터기는 네르하가 모조리 쓰게 될 것이다.

그걸 알기에 마엘론 경은 순순히 명령에 따랐다.

‘전방에서 뭔가 문제가 생긴 게 틀림없다.’

그게 아니라면 저 멀리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지닌 적의가 느껴질 리가 없었다.

“빨리빨리 움직여!”

“보급품을 빨리 후방으로 빼라! 기습에 대비해!”

그나마 마엘론 경의 빠른 대처로 늘어져 있던 군이 전투준비를 마쳐 가고 있다.

“온다.”

네르하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리자마자 저 멀리서 누군가의 ‘영역’이 무지막지한 속도로 이곳을 잠식해 오기 시작했다.

세상의 색깔이 하얀빛에서 검은빛으로 물드는 걸 누구나가 육안으로 볼 수 있을 정도였다.

“마계영역!”

이전, 보았던 뮬란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범위와 농도였다.

“주군, 모두 모였습니다!”

막 쉬러 가려던 네르하의 수하들은 클로이아의 긴급 집합 지시에 다급하게 발을 돌렸다.

네르하는 어둠에 침식되고 있는 저 너머를 바라보며 말했다.

“곧 거물이 올 거다.”

“거, 거물이라고 하시면?”

“아직은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상대다.”

이전, 만났던 크루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존재감.

그건 아마도 저 위에 마왕이란 존재가 있기 때문에 그 수혜를 받았을 가능성이 매우 컸다.

어째서 목표물이 이곳에 나타났는지는 몰라도 네르하는 단 한 가지 사실은 확실하게 깨닫고 있었다.

제대로 정신 차리지 못하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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