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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125화 (125/237)

125화

<마계 백작 아스타로스 (4)>

‘잘 될까?’

루시아의 활약에 자극을 받아 나섰다지만, 이런 거대한 골렘을 상대하는 건 바스톤의 인생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탁! 탁! 탁!

휘청거리는 몸체를 타고, 바스톤은 마치 등반하듯 부드럽게 골렘의 머리 쪽으로 향했다.

‘주군이 전해 주신 보법이란 정말 굉장하군!’

사실 바스톤이 익힌 페레이라 가문의 비전 술식은 이론적으론 완성되었어도 아직 그 실전성이 입증되지 않은 미완의 술식이었다.

그 비전 술식의 정체는 바로 육체의 강화와 신체의 활성화.

페레이라 가문은 그 강화에 대한 리스크를 줄이고 강화된 신체를 컨트롤하기 위해 수많은 시도를 하고 긴 시간을 투자했다.

그 결과물을 얻기 위한 시도 중 하나가 바로 기사급의 육체 능력을 갖추는 것.

하지만 단순히 단련만 한다고 마나 연공법을 지닌 기사에 맞먹을 수 있을 리는 만무했고, 페레이라 가문에서도 아직 실전성이 입증되지 않은 술식에 대한 우려를 표했으나.

네르하의 도움으로 강화된 신체를 컨트롤하게 된 바스톤은, 어느새 가문의 술식을 완전하게 자기 것으로 소화할 수 있었다.

‘무게 중심의 최적화를 통한 허리와 다리의 움직임. 거기에 일점에 때려 박는 기술의 융합!’

바스톤은 루시아처럼 오러나 마나 소드를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무술에 숙달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네르하의 융합기는 어디까지나 양손에서 발현되는 것에 한정된 마법의 사용 방법을, 육체 전체로 넓히는 것에서 시작하는 기술.

대지 속성의 마나가 바스톤의 발에 뭉친다.

팟!

하늘 위로 솟구친 바스톤은 그대로 골렘의 머리를 향해 발을 내려찍었다.

“흐아압!”

투쾅!

골렘의 머리 부분에서 원형의 파동이 일어나며 그대로 놈의 거체가 뒤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네르하는 살짝 혀를 찼다.

방금 전 바스톤이 펼친 일격에 담긴 위력과 잠재력이 어느 정도인지 대번에 깨달은 것이었다.

“허, 바스톤이 저 정도였나?”

“멋진데요?”

저 능력을 제대로만 발전시킨다면, 어지간한 기사도 때려잡는 근접전 특화 전투마법사가 탄생할지도 몰랐다.

막상 골렘을 날려버린 바스톤 역시 스스로의 강함에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이, 이게 되네?’

넘어지는 골렘 너머로, 개떼같이 몰려 있는 마물들이 보인다.

크, 크르르륵!

지들도 이 상황이 위험한 건 아는지 명령에 지배당하고 있음에도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태양을 가리는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으니까.

바스톤이 그 모습을 보고 재밌다는 생각을 막 하고 있을 때.

쿠웅!

골렘이 뒤로 넘어지면서 대지에 거대한 충격파가 발생했다.

당연히 못 해도 수백 이상의 마물들이 그 충격파에 휘말려 고깃덩어리로 전락했다.

거대한 골렘 하나를 쓰러뜨렸음에도 네르하는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했다.

‘남은 대형은 다섯.’

개중 셋은 팔이 수십 개는 달려 있는 살점덩어리였다.

차마 쳐다보기 힘들 정도로 참혹하고 잔인한 외형.

네르하는 ‘저것’이 정상적으로 소환된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검을 갈무리한 루시아가 네르하에게 다가왔다.

“저건, 어보미네이션이군요.”

“어보미네이션?”

“음, 저도 기록으로 읽기만 했습니다만, 흑마법사들이 만든 생체 골렘이라고 합니다. 인간과 이종족 등 생명체의 살점을 뭉쳐 마기를 주입해 만든 흉물이죠.”

“세상엔 정말 인간 같지도 않은 것들이 많군.”

중원에서도 잔인하기로는 1, 2위를 다투는 혈교나 사령교 놈들도 저런 건 만들어 내지 못할 것이다.

“사실 이건 저보단 당신이 더 잘 알고 있어야 하는 겁니다만.”

“그렇다는 건, 이곳 북방 전선엔 마족들만 있는 게 아니라는 소리군.”

“자신의 무지를 외면하지 마시구요.”

“느낌이 상당히 좋지 않군. 저건 다른 의미로 군에 가까이 붙이면 안 돼.”

“……놈의 육체엔 특유의 강력한 독성이 있어서 잘못하면 강력한 전염병을 불러온다고 합니다.”

루시아는 네르하의 필사적인 모른 체에 백기를 들었다.

“후퇴는…… 현재까진 별 탈은 없군.”

그냥 군대도 아니고 전원이 중무장한 2만에 달하는 군이다.

전략과 상황만 잘 맞으면 일반 제국군 20만도 갈아 버릴 수 있는 전력.

하늘을 바라보니 아르바와 그 수하들이 마족들과 치열하게 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나름 진심으로 마법을 난사하는 걸 보니, 네르하가 우려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비대칭 전력의 개입만 잘 막아 낸다면 어지간해선 뚫릴 일이 없을 거다.

‘그 비대칭 전력이 아직 움직이지 않아서 문제지.’

네르하는 저 너머에서 이쪽을 주시하는 ‘놈’의 존재감을 느꼈다.

‘명색이 우두머리이니 쉽게 움직이지는 않겠단 건가?’

그렇다면 그 어리석은 오만을 한계까지 뽑아 먹어 주겠다.

“루시아. 마엘론 경에게 전언 하나만 전달해 줘.”

“어떤 전언을요?”

“가능하면 무너질 듯 안 무너질 듯 아슬아슬한 상황을 연출해 달라고.”

씨익!

네르하의 의도를 파악한 루시아가 음흉하게 웃었다.

“시간을 벌 속셈이시군요.”

“너무 수월하게 막아 내면 상대도 지켜보는 맛이 없을 테니까.”

네르하는 상대가 곧바로 나서지 않는 이유를 짐작했다.

‘군을 이끄는 우두머리로서의 자존심도 있겠지만, 적절한 공멸을 유도해야 할 테니 어느 정도까진 두고 보겠지.’

그때까진 마음껏 날뛰면 될 일이다.

“남은 대형 마물들을 한 놈씩 제거한다. 잘 따라오도록.”

* * *

“상황이 꽤 재미있게 돌아가는구나.”

하늘에 떠 있는 검은 옥좌.

일반인 서넛 정도는 충분히 앉을 수 있는 널찍한 옥좌의 한가운데에서, 한 여성형 마족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앉아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아스타로스.

수천 년 이상을 살아온 고위급 마족이자, 백작의 작위를 지닌 마계의 강자 중 하나였다.

“아스타로스 님. 정말 저희가 나서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그 옥좌의 좌우에는 대여섯에 달하는 마계 귀족들이 그녀와 함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비슈나르 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았니? 놈들에게 기분 좋은 승리를 안겨 주라고. 내가 나서면 일이 꼬일 뿐이야.”

말문을 잃은 귀족들을 향해 그녀가 교태로운 웃음을 내지었다.

“너무 노골적으로 들이대는 건 의심을 살 일이지. 상대가 남자든 적이든 말이야.”

그녀가 쭉 뻗은 다리를 배배 꼬자, 그걸 지켜보던 귀족 몇몇이 침을 꿀꺽 삼켰다.

어지간한 이능엔 내성을 지닌 그들이다.

하지만 단순한 여성체의 색기를 넘어, 아스타로트의 육체는 이성을 유혹하고 세뇌하는 권능에 가까운 마성을 지니고 있었다.

아스타로스가 어딘가를 가리켰다.

“봐봐, 우리가 나서지 않아도 인간들의 군대는 착실하게 무너지고 있으니까.”

마물들의 파상 공세에 처음엔 굳건하던 인간들의 방벽이 시간이 지날수록 위태위태해지는 게 눈으로 보인다.

“필사적으로 구멍을 수복하려 들고 있지만, 저래서야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겠군요.”

“하지만 생각보다 저항이 오래갈지도 모릅니다.”

눈이 제대로 달린 이도 있었는지, 누군가가 상황을 정확하게 지적했다.

“하늘에서 수하들과 놀고 있는 저자는 그렇다 쳐도, 흑마법사들이 바친 골렘들이 무력하게 당하고 있습니다.”

“그래, 특히 저 두 명은 제법이네.”

아스타로스가 탐욕스러운 눈으로 전장을 바라보았다.

은갈색 머리의 소년과 금발의 소녀.

두 사람을 중심으로 한 9명의 소대가 전장을 누비면서 골렘들을 하나둘씩 제거해 나가고 있었다.

“탐이 나는걸. 몰래 제압해서 데려갈 수 있으려나?”

“어차피 ‘그자’는 입을 다물 테니 북쪽에 묶어 두었던 적들의 본대가 오기 전에 손을 쓰시지요.”

자신들은 이곳에서 ‘패배’를 연출해야 하는 만큼, 나름 이목이 덜한 때…… 즉, 군대가 완전히 무너진 난전 상황에서 손을 써야 걸릴 확률이 낮았다.

“나름 선전하고 있다 해도 적들의 진형을 보면 곧 무너질 것입니다. 저희가 그때 저들을 잡아 아스타로스 님께 노예로 바치겠나이다.”

“좋아, 아주 좋아.”

나름 인간과 비슷한 미의식을 가진 아스타로스는 어리고 잘생긴 자신 취향의 적을 만나지 못해 상당히 불만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 나이가 좀 있는 것 같지만 아슬아슬하게 수비 범위에 있는 네르하와 루시아가 눈에 들어온 것이었다.

“빨리, 빨리 무너져라.”

아스타로스와 수하들은 빨리 인간들의 군대가 무너지기를 기다렸다.

상황을 보면 한 번만 제대로 구멍이 뚫리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질 게 분명하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자.

그녀와 수하들은 뭔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걸 알아차렸다.

“좀처럼, 무너지지 않는데요?”

“자세히 보니, 전방의 인간들에게서 묘한 여유가 느껴집니다. 스스로 구멍을 만들고 있는 것 같은……?”

그 말을 내뱉은 마족은 그제야 상대의 의도를 알아차린 듯 눈을 부릅떴다.

아스타로스 역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얼굴을 구겼다.

우연이었을까?

그녀는 저 멀리 있던 네르하와 눈을 마주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개 인간 따위가 이런 먼 거리에서 자신을 인지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전장 한가운데 있던 네르하가 자신을 향해 입꼬리를 싸악 올리자.

아스타로스는 그제야 상대의 허접한 모습이 자신을 기만하려는 술책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감히 저 잡것들이 날 속여?!”

* * *

“이제야 눈치챘군.”

“후우, 후우! 뭐가 말인가요?”

다섯 마리의 대형 마물을 처치하고도, 네르하와 수하들은 계속해서 마물들의 군세를 막아 내었다.

다가오는 늑대형 마물 하나를 베어 낸 루시아가 자세를 풀지 않은 채 네르하에게 물었다.

“가능한 여력을 남겨 두라고 해서 힘 조절은 해 왔는데, 슬슬 체력이 부치네요. 언제까지 버텨야 하죠?”

“이제 곧.”

짤막하게 중얼거린 네르하는 근방에서 체력을 소진하고 헉헉대고 있는 디센트를 불렀다.

“디센트.”

“네, 네 주군!”

“본진으로 가서 장군에게 전달해. 지금부턴 피해를 신경 쓰지 말고 무조건 북상하라고.”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리고 루시아와 바스톤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를 데리고 군대 사이에 껴서 퇴각하도록 해.”

“…….”

원래라면 그 말에 불같이 화를 내며 불복했을 디센트지만, 지금 상황에선 어쩔 수가 없었다.

“허억, 허억!”

디센트를 비롯해 모두가 지쳐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이런 거대한 전장을 겪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런 만큼 체력의 분배나 마나의 소모량 조절 같은, 실전적인 부분에서 미숙함이 드러나 버렸다.

“주군은, 어쩌실 셈이십니까?”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야지. 북쪽의 지원군이 합류할 때까지.”

이제 곧 분노한 마계 백작이 이곳을 초토화시키기 위해 달려올 것이다.

‘아군의 피해는 고작 백여 명 미만. 시간을 보면 아주 선전했군.’

하지만 이 선전도 상대의 압도적인 무력 앞에 언제 뒤집어질지 모르는 살얼음판일 뿐이었다.

“가.”

단호한 네르하의 말에, 디센트는 자신의 무력함을 절절히 깨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부디 살아 돌아와 주십시오.”

“말 안 해도 내가 죽을 일은 없을 테니까. 너희나 괜히 말려들지 말고.”

네르하의 핀잔에도 디센트는 힘없이 미소를 지은 채 후방의 아군에게 합류하기 위해 빠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최전선에 남은 건 셋.

분투하는 보병들을 독려하던 네르하에게 루시아가 다가왔다.

“저도 가고 싶은데요.”

“넌 안 돼.”

네르하는 단호했다.

루시아가 시무룩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저기서 다가오는 놈, 진짜 무서운데요? 원탁의 기사들보다도 훨씬 강해 보여요.”

“그렇겠지.”

상대는 마계 백작. 그것도 마왕의 휘광을 등에 업고 힘의 상당 부분을 회복한 괴물 중의 괴물이었으니까.

바스톤 역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저 멀리서 다가오는 자가 자신이 감히 대항할 수 없는 상대라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크르르르!

왕의 강림엔 병사들이 나설 자리가 아니라고 여긴 것일까?

지금껏 흉포하게 병사들에게 달려들던 마물들이,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주춤주춤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마계 백작 아스타로스가 네르하의 눈앞에 나타났다.

“후, 후후후…….”

네르하는 뮬란 이후로 두 번째로 보는 마족의 진체(眞體)를 눈에 담았다.

산양과도 같은 검은 뿔에 자신의 신장을 넘어서는 붉은 머리카락.

그리고 마족 특유의 검은자위와 고양이같이 갈라진 동공을 보면 확실히 인류라고는 볼 수 없는 이질적인 모양새였다.

“너희들이구나. 감히 시답지 않은 머리를 굴린 놈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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