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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127화 (127/237)

127화

<마기 (2)>

“이, 이럴 수가.”

두 존재의 수 교환을 지켜보던 마족들과 네르하 일행은 이윽고 나타난 결과를 보며 넋을 놓았다.

단 일격의 교환.

“끅! 끄으윽!”

그 결과로 마계에서도 손꼽히는 무투파 마족인 바르마렉의 상반신이, 완전히 뜯겨 나가 버린 것이었다.

바르마렉은 망연자실하게 날아간 육체의 빈자리를 바라보았다.

“이 기술은 뭐지?”

“딱히 기술명은 없다. 그냥 마기를 뭉쳐 기탄의 형태로 날린 것일 뿐.”

“그런가? 마계에서나 볼 법한 훌륭한 일격이었다.”

단 일격에 치명타를 입은 바르마렉이 고개를 꺾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마족들에게서 큰 동요가 일었다.

“인간이 저 정도 수준의 마기를 다루다니…….”

“글쎄? 고레벨에 이른 계약자(흑마법사)들 중에 종종나오곤 했다.”

“하지만 저 인간은 계약자가 아니지 않나?”

“그렇다고 무언가 도구에 의존하고 있는 것도 아니야.”

그 사실이 마족들의 의구심을 증폭시키고 있었다.

“마기를 저 정도 수준으로 제어할 수 있는 인간은 500년 전의 그 이레귤러밖에 없었다.”

흠칫!

한 마족의 말에 주변 다른 이들의 표정이 급변했다.

“설마, 저 은발 인간이 그 괴물과 관련이 있다는 소리인가?”

“허튼 추측은 금지다. 저 네르하 라데우스라는 인간은 분명 강하지만 초월적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야.”

500년 전, 홀연히 나타나 숱한 강자들을 꺾고 마계의 신들에게 도전장을 날렸던 한 인간.

어째서인지 중간계에도 막대한 피해를 입힌 탓에 같은 인간들에게도 적대시당한 듯싶었지만, 마족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 인간은 중간계의 구세주나 다름없었다.

수하들의 동요를 지켜본 아스타로스가 이런 말을 툭 내뱉었다.

“초월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 없지 않느냐. 바르마렉이 저 꼴이 되었으니.”

“그, 그렇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탐나는구나.”

바르마렉의 상반신 절반이 뜯겨 나가는 걸 지켜본 다른 마족들은, 눈앞에 벌어진 광경을 부정하고 싶었다.

* * *

‘이 정도라면 제어할 수 있다.’

사실 방금 전의 일격은 네르하로서도 상당한 모험이었다.

모든 기운을 마기에 몰빵한다는 건, 결국 제어에 실패하는 순간 자멸한다는 뜻이었으니까.

하지만 네르하의 도박은 성공했다.

네르하는 지금까지 마령수투에 저장된 마기를 이용해, 마기를 다루는 감각 자체는 충분히 벼려 왔었다.

비록 이 정도 수준의 마기를 다뤄 본 것은 전생에서 죽기 직전의 마지막 순간, 단 한 번뿐이긴 했지만 말이다.

짝! 짝! 짝!

“멋져. 아주 멋지구나.”

네르하는 박수를 치는 아스타로스를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위험한 능력이야. 마족으로 우화하고 싶다면 말리진 않겠다만, 가능하면 조심해야 하는 게 좋을 텐데?”

“꽤나 친절하시군.”

“내 장난감이 망가지는 걸 원치는 않으니까. 함부로 밸런스를 깨기엔 인간의 육체는 더없이 연약하지.”

그녀의 조언이 네르하를 날카롭게 찔렀다.

‘확실히, 개선이 필요한 기술이야.’

가능하면 이런 식으로 한 속성으로 몰빵하는 건 지양해야 했다.

‘속성 통합’은 얼핏 보기엔 강하고 편리한 사기 특성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제약과 반동이 상당히 극심한 위험천만한 능력이었다.

인간의 육체는 음양오행의 조화로 이루어져 있는 만큼, 그 조화를 깬다는 것 자체가 리스크를 짊어진다는 행위.

만약 전형적인 엘리멘탈 계열인 화기(火氣)나 수기(水氣) 쪽으로 기운을 몰았다면?

‘전신이 불타 재가 되었거나, 단전부터 녹아내려 물구덩이가 되었겠지.’

네르하는 불끈 주먹을 쥐었다.

‘이런 리스크를 단기간에 줄이려면, 역시 라데우스 가문의 마나 연공법이 필요해.’

현재 네르하의 마나는 아직도 중원 천신문의 연공법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문제는 중심이 되어 줘야 할 금천진기(金天眞氣)가 마법과는 궁합이 영 맞지 않았다.

‘정확히는 속성을 다루는 부분에서 효율이 많이 떨어져.’

반대로 마법사의 연공법은 속성을 다루는 데 특화되어 있다.

물론 클로이아와의 합작을 통해 만들어 낸 마나 연공법이 있지만, 이걸로 효과를 보려면 최소 수 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는 단점이 있었다.

결국엔 돌고 돌아 원점.

네르하가 개화한 속성 통합에 대한 부작용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선 라데우스의 마나 연공법, 즉 ‘스타 플래티넘’이 필요한 것이었다.

* * *

‘뭐, 지금 상황에서 그나마 연공법을 얻어낼 가능성이 있는 건, 아르바일까?’

어설프게 거래를 제안했다간 의심을 살 수도 있으니 꽤나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그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르바가 거칠게 분노하며 네르하에게 다가왔다.

“네르하!”

“형님이 무슨 말씀을 하실지는 예상이 되지만, 지금은 잠시 물러나 주시죠.”

“뭐? 그걸 말이라고!”

“가주님께서 허락한 일입니다.”

흠칫!

가주의 이름이 튀어나오자 아르바의 표정이 굳어졌다.

“가주님께서, 네가 마기를 다루는 걸 허락하셨다고?”

“애초에 이 아티펙트 자체가 가주님의 인가가 없다면 제작될 리가 없는 것이죠.”

네르하는 흑진주 같은 구슬이 박힌 수투를 들어 아르바에게 보였다.

수투에서 흘러나오는 흉흉한 마기가 아르바의 영역을 사정없이 자극했다.

“큭!”

“아직 일기토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절 추궁하시려면 이번 일이 모두 끝나면 하시죠.”

“……좋다.”

아르바는 뭐가 그리 분한지 이를 악물며 신형을 홱 돌렸다.

가문의 율법을 어기고 마기라는 금기를 범했다기보단, 어째서인지 네르하가 마기를 익혔다는 자체에 불만이 있는 듯했다.

‘뭐, 지금 저놈의 사정 따윈 중요한 게 아니지.’

상반신이 갈려 나간 바르마렉은 어느새 역소환되어 사라졌다.

고위 마족이니만큼 당연히 초재생 능력 정도는 기본으로 가지고 있었겠지만, 문제는 그가 당한 것이 다른 무엇도 아닌 ‘마기’라는 점에 있었다.

마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생명체의 재생을 방해하는 성질이 있었으니까.

“내 다음 상대는 누구지?”

오만한 네르하의 도발에 마족들의 표정이 일변했다.

“놈은 바르마렉이 전력을 내기도 전에 일격에 승부를 봤다.”

“시작부터 진지하게 싸운다면 저런 추태는 보이지 않겠지.”

“그렇다 해도 쉽게 볼 상대가 아니다. 지금까지 싸워 온 놈 중에는 확실히 격이 달라.”

네르하의 저력이 예상 밖이었는지, 섣불리 튀어나오는 놈이 없었다.

짝! 짝! 짝!

그렇게 분위기가 이쪽으로 넘어오려던 찰나 아스타로스의 박수 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

“훌륭하구나. 그놈과의 비교를 위해 바르마렉을 선봉으로 내세워 봤는데, 설마하니 이 정도로 압도적일 줄은 몰랐구나.”

‘그놈’이란 분명 크루갈을 말하는 것일 터다.

아스타로스가 다리를 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바르마렉이라면 마계에선 크루갈과 비교할 수 있는 강자. 그런데도 이런 결과라면 크루갈의 강림이 그만큼 불안했던 걸까, 아니면 고작 몇 달 사이에 네가 강해진 걸까?”

네르하는 굳이 그 말에 답을 주지 않았다.

그런 요지부동한 모습에 아스타로스는 재미없다는 듯 입술을 살짝 내밀었다.

“뭐, 딱히 상관없겠지.”

딱!

“오르가쉬, 네가 나가라.”

“예, 아스타로스 님.”

그녀가 손가락을 튕기자, 이번엔 바르마렉과는 전혀 다른 인상의 이지적인 마족이 앞으로 나왔다.

딱 봐도 머리를 제법 굴릴 것 같은 놈이었다.

“다른 타입은 어떻게 상대하나 볼까?”

검은색 정장에 외알 안경을 낀 흑발의 남자.

마족 특유의 뿔이 아니었다면 한족으로 착각할 정도로 외모가 중원인과 닮았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상대의 외모 평가가 아니었다.

‘여기서 끝낼 생각이군.’

저 여마족의 주변에 포진해 있는 놈들 중, 가장 강렬한 존재감을 풍기던 녀석이 나왔다.

다른 타입 운운하기 전에 방금 놈과는 격이 다른 존재였다.

“아스타로스 님. 잠시…….”

놈은 막 나서기 전에 아스타로스에게 뭐라 작게 속삭였다.

그 말을 들은 아스타로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무언가를 허락했다.

“상관없겠지. 어차피 지금쯤이면 다 들켰을 텐데.”

“네, 그럼.”

놈이 손을 한차례 휘두르자 검은 마기가 놈의 전신을 휘감았다.

그리고.

“영역 전개.”

지름 약 300m가량의 검은 영역이 놈을 중심으로 펼쳐지기 시작했다.

* * *

300m.

남작급 마족이라는 뮬란의 영역보다도 훨씬 좁아터진 영역.

하지만 네르하는 그 영역의 위력이 넓이로만 결정된다는 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자신의 영역을 펼친 오르가쉬가 네르하에게 물었다.

“희한하군요.”

“뭐가 말이지?”

“왜 절 공격하지 않습니까?”

오르가쉬는 의외로 네르하에게 존댓말을 사용했다.

“공격해 주길 바랬나?”

“딱히 상관은 없었습니다만, 당신은 뮬란과 싸우면서 영역의 약점을 알았을 텐데요?”

“그렇긴 하지.”

마계영역은 확실히 지나치게 편리하고 강력한 능력이지만 분명 몇 가지 약점이 있다.

그중 하나는 마족이 영역을 펼치는 순간, 본신의 안전이 상당히 취약해진다는 점이었다.

오르가쉬가 묘하게 웃으면서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바르마렉을 일격에 쓰러뜨릴 힘이라면 기습을 가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 오만함이 당신을 패배로 이끌 겁니다.”

말하는 걸 보면 네르하가 거대한 기회를 놓친 것처럼 보인다.

“큭! 웃기는군.”

“……?”

“네놈의 주특기는 입으로 남을 기만하는 건가?”

“무슨 의미죠?”

“애초에 처음부터 영역이 펼쳐진 상태에서 기습을 해 봤자 당해 줄 리가 없잖아?”

“……!”

오르가쉬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네놈은 어딘가에 영역을 펼쳐 놓고 나와 싸우던 순간 회수를 진행했지. 공간을 자유자재로 넘어서는 영역의 편리함은 확실히 대단하지만, 그걸로 날 속여 넘기기엔 좀 노골적이었어.”

‘영역 바꿔치기를, 알고 있었다?’

비록 잔재주라 할지라도, 처음 1회에 한해서는 거의 절대적으로 속여 넘기는 게 가능한 기술이다.

물론 수없이 당한 과거의 인간들이 기록으로 남겨 둘 수는 있었겠지만, 이렇게 단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는 절대로 아니었다.

“어떻게, 알았습니까?”

네르하는 나지막하게 대꾸했다.

“감.”

“가, 감이라고?”

감이라고 둘러대긴 했지만, 네르하는 어느 정도 근거가 있었다.

정확히는 마기를 극한으로 다루면서 일시적으로 개안한 마안(魔眼)의 힘 덕분이었다.

여기에 네르하 라데우스로서 얻은 ‘마법사의 감각’에 마기라는 동일 속성이 더해지면서 공간에 대한 감각이 깨어난 것이다.

‘차원을 넘어서는 소환의 형태다. 공간을 넘어서지 못할 이유는 없지.’

마안을 개안한 현재 네르하의 눈엔 놈의 마핵과 연결된 ‘영역’이 어딘가에 이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뭐, 원래의 평범한 ‘무인’의 감각이었다면 절대로 알아차리지 못했겠지만.’

“설사 알아차렸다 해도 상관없습니다.”

쩌적! 쩌저적!

오르가쉬가 손을 살짝 내젓자, 마계 영역의 바닥에서 무언가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네르하는 바닥에서 기어 나오려는 것들의 정체를 짐작하며 눈을 찌푸렸다.

‘교룡? 아니, 웜(Worm)이라고 하나?’

마치 어둠 속에서 수백 마리의 뱀들이 꿈틀거리며 튀어나오려는 끔찍한 광경.

분명 저건 주변에 소환된 일반적인 마물 따위보다 훨씬 강력하고 성가신 것들이 분명했다.

“나, 뱀의 군주 오르가쉬. 아스타로스 님의 명령에 따라 당신을 포획하겠습니다.”

네르하는 대답 대신 시선을 돌려 북쪽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거, 힘줘서 말하는 네겐 미안하지만, 너와 내가 싸울 일은 없을 것 같군.”

“뭐라고?”

“타임 오버다. 생각보다 빠르군.”

아스타로스 역시 네르하와 같은 것을 본 모양인지, 살짝 혀를 찼다.

“쯧, 한참 재밌었는데 말이야.”

오르가쉬가 네르하와 같은 방향으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그 시선 너머에서, 북쪽으로 향했던 라데우스 토벌대의 비행선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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