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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130화 (130/237)

130화

<복잡한 상황 (3)>

“정식으로 내 이름을 들은 적은 없을 테니 소개하지.”

녀석은 네르하가 뭐라 반응하기도 전에 자기 PR을 시작했다.

“아스타로스라고 하네, 내가 아끼는 이들에겐 ‘아스타’라는 애칭을 허락하곤 하지. 앞으로 잘 부탁하네.”

수많은 마족들을 거느리며 여왕과도 같은 위엄을 흘리던 그때와는 달리, 친근감을 보이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모습은 기괴하기까지 하다.

“멈춰라.”

네르하의 제지에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오려던 아스타로스의 신형이 멈췄다.

아스타로스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두 손을 올려 항복의 제스처를 취했다.

“딱히 싸울 생각은 없다네?”

저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네르하는 일단 심문을 시도했다.

“이곳을 어떻게 알고 들어왔지?”

“숨어 들어온 게 당연하지 않나?”

“헛소리. 서리 일족의 방비는 만만한 게 아니다. 아무리 네가 마계 백작이라고 해도…….”

“후후후, 마계 백작의 역량을 우습게 보는구나. 그 인간 노파의 눈을 속이는 건 이 몸으로선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니라.”

“그렇다면 그 노파를 불러서 너를 처리하면 되겠군.”

무슨 의도인지는 몰라도, 놈은 호랑이 굴에 알몸으로 아가리를 내민 격이었다.

설사 이곳에서 마계 영역을 펼친다 하더라도 서리 일족이 대번에 눈치채고 영역을 억제해 버릴 것이다.

“자, 잠깐! 그것참 성질이 급하구나!”

“루시아.”

“네.”

딱히 다른 말은 필요 없었다.

루시아는 자연스레 검을 뽑으며 아스타로스의 퇴로를 차단했다.

“여기서 날 죽여도 딱히 얻는 건 없을 텐데, 진정 그래야겠느냐?”

“무슨 의미지?”

“지금 이 몸은 본체가 아니라는 뜻이다, 네르하 라데우스.”

네르하의 눈이 진중하게 상대를 살폈다.

확실히 그 엘로이아의 눈을 속이고 본체로 이곳까지 잠입하기엔 무리가 많았다.

그리고 방금 전 이 녀석은 서리 일족의 결계를 파훼한 게 아니라 ‘속였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전투보단 대화를 통해 상황을 진전시키는 게 서로 간에 이득이지 않겠느냐?”

“마족과 타협이라도 하는 모습을 보였다간 내가 끝장이다만.”

“마족이 아니라 ‘적’이겠지.”

그녀는 도도하게 이쪽을 올려다보았다.

“내가 본 그대는 할 수만 있다면 수단 방법 따위는 그다지 가리지 않는 편이라고 본다만, 내가 잘못 보았나?”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네르하는 팔을 살짝 내리며 아스타로스를 노려보았다.

“요점만 짧게.”

“그대, 나와 손을 잡을 생각은 없느냐?”

“너와 손을 잡아서 무슨 이득이 있지?”

“나는 비슈나르의 뒤통수를 치고 그 자리를 받아 가고자 한다.”

“……!”

너무나 당당한 배신 선언!

그런 아스타로스의 발언에 네르하는 물론 임전 태세였던 루시아마저도 자세에 살짝 금이 갈 정도였다.

“미리 말해 두지. 날 먼저 버리려던 건 비슈나르였다. 원래라면 난 이전 전투에서 역소환당할 운명이었지.”

“버린다고?”

“맞아, 만약 그렇게 되면 아마 앞으로 이곳 중간계에 발을 내밀지 못하겠지.”

“어째서지?”

씨익!

마치 그 물음을 기다렸다는 듯, 아스타로스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 대답을 해 주기 위해선 약속을 해 줘야겠는데.”

“좋아, 유언은 그게 끝인가?”

네르하의 협박에도 그녀의 표정은 여전했다.

“너희 중간계의 명운과 직결된 일인데도 내 화신을 죽일 텐가? 자, 죽이고 싶다면 한번 해 보거라.”

아스타로스는 대담하게도 네르하에게 다가와 턱을 치켜들었다.

마치 목을 날리려면 날려보라는 듯 아주 당당하게 다가왔다.

턱!

네르하는 망설임 없이 아스타로스의 얇은 목덜미를 부여잡았다.

“큿!”

마족의 육체가 아니라 정말로 화신체에 불과한 건지, 아스타로스는 조금 괴롭다는 기색을 보였다.

“큭큭, 나름 여아의 모습인데 망설임이 없구나.”

“너와 내가 손을 잡는 게 중간계의 명운과 직결된다고? 그다지 설득력이 없군.”

“그렇다면 조금 정보를 풀어볼까?”

턱!

아스타로스가 네르하의 손목을 가볍게 부여잡았다.

“네가 마기를 다룰 줄 안다면 정보를 전달해 주기 조금 편하겠지.”

“……!”

그 순간.

네르하의 뇌리에 어느 장면이 천천히 재생되기 시작했다.

마법을 배제한 기계도시에서 유행 중인 ‘필름’처럼, 마치 각각의 장면 하나하나가 순서대로 네르하의 시야를 지나갔다.

‘이, 건!’

거대한 사막의 모래 사구 밑에 형성된 거대한 마족들의 군세.

그리고 남만을 연상케 하는 열대우림을 마기로 물들이고 포효하는 초거대 마물.

마지막으로 어느 성당 같은 건물 안에서 검은 옷을 입은 채 기도를 올리는 수천 명의 사교도들까지.

그뿐만이 아니었다.

세상 곳곳, 최소 백여 곳이 넘는 곳에서 마족과 마물, 흑마법사와 사교도들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

“큭!”

네르하는 현기증을 몰아내며 얼굴을 쓸었다.

“이건, 뭐지?”

“뭐긴 무엇이겠느냐? 지금 이 세상에 나와 있는 마계의 병력이지.”

‘이 정도로, 많다고?’

“내 존재를 걸고 맹세하지. 이 군세는 진짜란다.”

이게 환상이나 현혹이 아니라면 그야말로 대륙 멸망의 위기라고 봐도 좋았다.

특히나 열대우림에서 잠깐 스쳐 지나간 그 거대 마물은, 단순히 덩치가 큰 수준을 넘어 네르하가 지금까지 봐온 어떤 괴물들보다도 압도적이었으니까.

“북방을 빨리 정리하지 못한다면, 이 세상이 어떻게 될지 잘 알겠느냐?”

아스타로스의 입가에 상큼한 미소가 맺혔다.

* * *

아스타로스와의 만남이 있었던 후로 하루 뒤.

네르하는 수뇌부 전원이 참석한 자리에서 아르바와 함께 이 자리의 주인공이 되었다.

“아르바 라데우스, 네르하 라데우스.”

“네, 총사령관.”

네르하와 아르바는 류레이아의 부름에 얌전히 한쪽 무릎을 꿇고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대 두 명은 불리한 상황에서도 맹활약하여, 라데우스의 군대를 온전히 보전하는 큰 공을 세웠다.”

류레이아는 평소의 가벼운 말투를 접고 근엄하게 입을 열었다.

그녀의 시선이 오른쪽에 있는 네르하에게로 향했다.

“그 와중 네르하 라데우스는 자작급 마족을 하나 잡기까지 했지. 그러므로 이 작전에서 가장 큰 공을 세웠다고 볼 수 있다.”

“오오!”

“까득!”

주변에서 감탄과 질시의 시선이 동시에 흘러나왔다.

뭐, 누가 누구인지는 굳이 쳐다보지 않아도 대번에 알 것 같다.

“아르바 라데우스.”

“네.”

“그대에겐 이전 원정대의 사령관 시절 가문 내 회수되었던 특권 일부분을 복권하고 비인가 마법사단을 다시 정식으로 승인하겠다. 또한 80명으로 이루어진 본가의 전투부대를 붙여 대장으로 삼는다.”

“감사합니다, 총사령관.”

짝짝짝짝!

대번에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으음! 축하한다.”

“추, 축하드립니다, 형…님.”

“……축하해.”

하지만 다른 직계들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는데, 완전히 몰락했을 거라 여겼던 아르바가 이번 일로 그야말로 불사조처럼 부활한 셈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자신들을 다시 넘어선 정도는 아니었지만, 같은 출발선엔 서게 된 정도?

모든 병력과 권한을 회수당하고 백의종군 중이던 아르바로선 큰 거 하나를 터트렸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직계들의 놀람은 다음에 이어진 네르하의 차례에 경악으로 뒤바뀌었다.

“네르하 라데우스.”

“네, 총사령관.”

“이번 작전의 제일공이라 할 수 있는 자네에겐, 다르미안 엔시스와 세드릭 하이넨을 붙여 주지.”

“초, 총사령관!”

총사령관의 옆에 앉아 있던 지렌 라데우스가 기함을 터트렸다.

다르미안과 세드릭은 하나하나가 라데우스의 전투부대를 이끌고 있는 7레벨의 실력자들이다.

그것도 다른 누구도 아닌 삼마자 류레이아 직속의 전투부대.

즉, 지금 상황은 류레이아가 자신의 팔다리를 떼서 네르하에게 붙여 준 셈이었고, 이건 파격이다 못해 낙하산과도 같은 일이었다.

당연히 지렌을 비롯한 다른 직계들의 반발이 튀어나왔다.

“너무 과합니다! 재고를 부탁드리오!”

“아무리 그래도 첫 실전을 치른 네르하에게 최정예 전투부대를 두 개나 붙이다니요?”

“게다가 네르하는 작전의 자유권리가 있지 않습니까?!”

이들이 반발한 이유의 핵심이 마지막 말이었다.

네르하는 남작급 마족 뮬란을 해치우고 북부 도시 아르지엔을 구한 공으로 작전의 자유를 부여받았다.

그런 네르하가 정예 부대 두 개까지 얻게 된다면, 그야말로 다른 모든 직계들을 제칠 수 있는 날개를 다는 셈이었다.

쿵!

장내가 소란스러워진 상황에서, 류레이아가 자신의 스태프 끝을 쿵 내리쳤다.

“닥쳐라.”

움찔!

“적들의 작전에 낚여 막대한 물자만 낭비한 것들이 지금 누구보고 과하다고 하는 거지?”

직계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거기에 거친 날씨에 무리해서 비행선을 운용하다 세 척이 박살났다. 이것만 해도 일반적인 패전에 준하는 책임을 물을 수 있지.”

장내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류레이아가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직계들을 바라보았다.

“너희들을 모조리 강등시키고 네르하의 상을 취소할까? 난 그래도 상관없다만.”

“아, 아닙니다.”

가장 크게 항의했던 바멜이 류레이아의 시선을 받고는 그대로 찌부러졌다.

이번 작전의 최고 책임자는 어디까지나 지렌 라데우스였지만, 각 전투부대를 이끌고 일각을 담당한 직계들도 책임 소재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장내의 소란이 가라앉자, 류레이아가 네르하에게 물었다.

“그 외에 원하는 게 있나?”

“이번 논공이 끝나고 잠시 독대를 요청합니다.”

“독대? 딱히 상관은 없다만.”

류레이아는 의외라는 표정으로 네르하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이 두 사람이 아니었다면, 이번 작전은 북방에서 있었던 최초의 패전이 되었을 거다. 다음부턴 이번과 같은 추태를 부리는 일은 없기를 바라지.”

“네, 총사령관!”

“명심하겠습니다!”

다른 이들이 우렁차게 류레이아에게 답하면서, 논공행상이 마무리되었다.

* * *

“그래서, 내게 뭔가 할 말이라도 있어?”

총사령관 집무실로 돌아온 류레이아는 한결 편한 표정으로 느리게 자리에 앉았다.

“그렇습니다.”

네르하는 살짝 한숨을 내쉬면서 그녀를 쏘아보았다.

“기어코 두 사람을 저에게 감시로 붙이시려 하는군요.”

류레이아는 입술을 비죽이며 답했다.

“감시라니. 너무하네. 그 두 사람이 듣는다면 서운해하겠어.”

“아무리 그들이 정예라고 해도, 사실은 사실이니까요.”

“그냥 내 개인적인 호의라고 생각해 주면 안 되나?”

“절 정치적인 반대파로 쓸 생각이시면서 호의를 운운하시다니, 조금 웃기는군요.”

“어차피 너도 그 애들을 써먹을 생각으로 받아들였잖아? 좋게 좋게 생각하자고.”

뭐, 저 말이 맞았다.

상황이 이왕 이렇게 된 거, 다르미안과 세드릭의 부대는 내 사람들을 성장시킬 발판으로 이용해 줄 생각이었다.

“그건 그렇고, 진짜 본론은 이게 아닌 것 같은데.”

류레이아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내 뒤로 드리워진 그림자를 가리켰다.

“저 그림자 안에 숨어 있는 게, 정말로 날 찾아온 진짜 목적인 것 같은데? 내 말이 틀린가?”

“아뇨, 맞습니다. 예리하시군요.”

스윽!

네르하의 그림자 속에서 무언가가 갑자기 치솟아 오르더니 점차 소녀의 형체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 형체를 본 류레이아가 무언가를 직감하더니, 골치가 아프다는 표정으로 이마를 짚었다.

“이건 또…….”

“우린 한 번 본 적이 있었지. 세계수의 수호자.”

세계수의 수호자?

갑자기 던져진 키워드를 네르하가 곱씹고 있을 때.

류레이아가 천천히 지팡이를 들고 기세를 흘려내기 시작했다.

“이번 토벌 대상자가 무슨 깡으로 여기까지 기어들어 왔는지, 제대로 해명하지 못하면…….”

“못 한다면?”

장난스럽게 대답하는 아스타로스의 반문에, 류레이아의 두 눈이 아수라처럼 빛나기 시작했다.

“세계수의 힘을 빌려서라도 그 화신체를 통해 네년의 본체를 걸레짝으로 만들어 주지.”

“후후후, 무서운 협박이로군. 하긴, 너라면 그럴 자격이 있지.”

“그래서, 용건은?”

언제든지 출수할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한 기세를 내뿜는 그녀를 향해, 아스타로스가 악마의 속삭임처럼 달콤한 제안을 건넸다.

“현 마왕 비슈나르를 비롯해, 내가 아는 한에서 다른 마계 백작들의 모든 정보를 넘겨주지. 그 대가로 나와 손을 잡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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