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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135화 (135/237)

135화

<암흑 교단 (2)>

“어이가 없군.”

지렌 라데우스는 저 산맥 너머에서 몰려오는 500여 명의 사제들을 바라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마물들을 탈 것 삼아 다가오긴 했지만, 딱히 그 외의 군대는 운용하고 있지 않았다.

“빛의 교단의 이단심문관들이 보면 좋아하겠군. 쳐 죽일 이교도들이 저렇게 많으니 말이야.”

“어떻게 할까요?”

“원래라면 적의 수준을 알아보고 대응을 모색하는 게 정석이지만…….”

지렌은 귀찮다는 듯 신형을 돌렸다.

“사정 범위 안에 들어오면 전부 쓸어 버려라. 저런 것들을 굳이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

대충대충 판단했다고 보기엔 지렌의 대응은 지극히 정석적이었다.

이쪽은 철저하게 진지를 구축한 상황이고, 그런 곳에 대책 없이 들이박으려는 모양새.

이러면 상대의 의도가 어떻든 그냥 원거리에서 포격을 쏟아내면 끝이었다.

“저런 놈들보단 앞으로 있을 마왕과의 결전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확실하게 처리해!”

“네! 장로님!”

비록 아스타로스 토벌전 당시 그녀의 계책에 물을 먹었긴 했지만, 지렌 휘하 마법사단의 무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콰과과과광!

콰과과광!

거점에서 백여 발에 달하는 마법이 발사된 여파로 거대한 파공음이 일어났다.

지렌은 곧 상대가 시체조차 남기지 못하고 전멸할 거라 생각했지만.

이어진 부하들의 경악에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저, 저게 뭐야?!”

“저놈들, 대체 무슨 짓을?”

지렌이 고개를 돌리자, 그 시선의 끝엔 뼈와 살이 기괴하게 얽힌 거대한 육벽(肉壁)이 모습을 드러냈다.

“……인신공양?”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인간성을 더럽히는 끔찍하고 흉물스러운 장벽.

“빌어먹을, 마신을 섬기는 사교도 놈들 아니랄까 봐.”

반백 년 이상을 살면서 볼 꼴 못 볼 꼴을 다 봤다고 생각했는데, 눈앞의 광경은 지금껏 봐 왔던 광경 중 단연 워스트 3안에 들어갈 만했다.

그때 부하 하나가 지렌에게 심각한 목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장로님. 아무래도 저놈들이 뭔가 사특한 수를 쓴 것 같습니다.”

“으음!”

지렌 역시 나지막한 신음을 흘렸다.

아무리 이쪽이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발사된 5레벨 이상의 마법만 무려 백여 발이다.

위력으로 따지면 8레벨의 대마법사가 본격적으로 전력을 발휘한 수준일 터.

‘저 육벽의 방어력은 상상 이상이군. 아무리 인신공양으로 위력을 올렸다 해도 대부분의 역량을 강화에 집중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일 텐데?’

지렌의 뛰어난 관찰력은 현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했다.

그 계산대로라면, 상대는 대부분의 역량을 소진하고 너덜너덜해져야 정상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육벽에서 기어 나온 판데모니움의 이교도들은 육안으로 보아도 지친 기색이 가득했다.

하지만.

‘뭔가 불안하군.’

지렌은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불안감에 눈살을 찌푸렸다.

“놈들이 튀어나오면 곧바로 2차 포격을 가해!”

“네!”

라데우스의 숙련된 정예들은 수백 미터나 되는 거리가 있음에도 정확하게 상대를 노려 요격 마법을 영창했다.

“쏴!”

능선을 향해 올라오는 사교도들을 향해 두 번째 포격이 펼쳐졌다.

그러나.

“젠장! 또 저 징그러운 육벽이냐?!”

사교도들은 또다시 정면에 육벽을 소환하며 이쪽의 포격을 막아내었다.

물론 육벽이라고 완전한 방어를 보장해 주는 건 아니어서, 500여 명에 달하던 사교도들은 고작 1분여 만에 절반으로 줄어들었지만 말이다.

포격 한 번에 반으로.

두 번째에 또 반으로.

세 번째에 또 반으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살아남은 사교도들은 필사적으로 진지를 향해 달려왔다.

“장로님, 아무래도 놈들이 방어선까지 닿을 것 같습니다만, 어떻게 할까요?”

“…….”

상황을 지켜보는 지렌의 표정은 좀처럼 펴지지 못하고 있었다.

무작정 아군의 진지에 꼴아 박는 상대의 의도가 전혀 헤아려지지 않는다.

‘이 흐름대로라면 2~30명 정도는 살아서 진지까지 도달한다.’

문제는 그렇다 해도 육벽을 소환하느라 기진맥진해진 놈들이 뭘 할 수 있냐는 점이었다.

“혹시나 놈들이 10여 미터 안쪽으로 들어온다면 기지 전체를 둘러싸는 방어막을 쳐라.”

“자, 장로님?”

“절대로 놈들과 접촉하는 일이 없도록 해라! 철저하게 대비해! 일말의 여지조차 주지 마라!”

“아, 알겠습니다!”

지렌의 추상같은 호령에 휘하 부관들은 허둥지둥 지시를 이행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렇게 얼마 후, 지렌의 예상대로 500에 달하던 사교도들은 라데우스 마법사들의 잇따른 포격에도 수십 명 정도가 살아 진지에 도달했다.

“크흐흐흐, 역시 예상대로군.”

살아남은 암흑 교단의 주교, 가멕이 눈앞에 펼쳐진 두꺼운 방어막을 보며 웃었다.

“놈들은 모르겠지. 우리의 각오를.”

가멕은 방어막에 상처투성이인 자신의 손을 얹었다.

그리고 나지막하게 성호를 그으며, 심장에 뭉친 마기를 폭주시켰다.

“……자폭?!”

상황을 지켜보던 지렌이 눈을 부릅뜨며 경악성을 내뱉었지만.

이미 폭주한 상대의 마기를 다시 주워 담는 건 신이 아닌 이상 불가능했다.

“악마전의 강림을 위하여.”

뚜두두둑!

퍼퍼퍼펑!

7레벨에 근접한 마력이 육체를 착실하게 박살 내면서 터져 나온다.

고위 마법사가 생명을 걸고 폭주시킨 마기의 폭발은, 방벽에 구멍을 뚫기엔 충분한 위력을 보였다.

콰―앙!

“지, 지금 무엇을?!”

설마하니 저런 고위 마법사가 이런 일에 목숨을 내버릴 줄은 몰랐기에, 라데우스 마법사들의 표정에 당황이 일어났다.

특히나 목숨을 내버린 상대가 자신들과 비슷한, 혹은 그 이상의 실력자였던지라 그 동요는 더더욱 컸다.

가멕의 육체가 그대로 피떡이 됨과 동시에 방벽에 거대한 구멍을 뚫고.

그 사이로 살아남은 교단의 사제들이 봇물처럼 밀고 들어와 마법사들을 덮치기 시작했다.

“이, 이놈들!”

“설마, 처음부터 자폭할 작정으로?!”

다급하게 무영창으로 저레벨 마법을 쏘아냈지만, 상대는 몸에 구멍이 뚫리든 팔다리가 뜯겨 나가든 아랑곳하지 않고 필사적으로 라데우스의 마법사들을 덮쳐 나갔다.

그리고, 하나같이 망설이지 않고 자신의 마력을 폭주시켜 자폭을 감행했다.

콰과광!

콰광!

“이, 이런 미친 광신도들이!”

전방 진지의 방어가 뚫리는 것과 동시에, 대번에 최전방에 배치되었던 수십 명의 마법사들이 적들의 자폭에 휘말렸다.

하지만 그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장로님! 저 밑에!”

부하가 가리킨 곳을 바라본 지렌의 눈가가 부르르 떨려왔다.

어느새 저 멀리 수천에 달하는 마물 군세가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설마 고작 단 한 번 방어벽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그만한 전력을 희생시키다니!’

지렌의 상식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전술.

차라리 마물들을 희생해 방어벽을 허물려는 작전을 세웠다면 이해해 줄 수는 있다.

하지만 상대는 투입한 전력의 가치는 생각하지도 않고 무조건 이쪽의 방어를 꿰뚫는 것만 노렸다.

“일반 병사들을 앞으로 세워! 부상자들을 뒤로 밀어내고 빨리 새로운 방어선을 구축해라!”

“아, 아무래도 늦을 것 같습니다!”

마법사들이 세운 진지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그건 바로 압도적인 방어력과 요격 능력에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 단점이 있었는데, 한 번 방어선이 무너지면 그 영향이 집단 전체에 악영향으로 변하는 정도가 지나치게 빠르다는 점이었다.

“제길! 내가 나서서 시간을 벌겠다! 그사이에 혼란을 수습해!”

자폭에 휘말린 저 아래쪽은 아직도 연기와 잔불로 인해 시야를 확보하기 어려워 보였다.

시야의 방해는 곧 혼란의 지속으로 이어지는 법.

지렌은 그 문제도 해결할 겸 최대한 마력을 뽑아내 거대한 돌풍을 만들어 내었다.

후우우욱!

대번에 장내의 혼란이 사그라들고 정신을 차린 마법사들이 이성을 되찾기 시작했다.

지렌이 그 결과물에 만족해하며 적들을 향해 모아 둔 돌풍을 쏘아내려 할 때.

“히히히! 그렇겐 안 되지.”

“뭣?”

목소리의 근원지를 확인하기도 전에, 갑자기 나타난 흑색 단검들이 지렌의 전신을 향해 쇄도해 왔다.

‘귀족급 마족인가!’

영역이 펼쳐지진 않았어도 귀족급 마족이면 충분히 이 정도의 위력을 내는 게 가능했다.

지렌은 재빨리 돌풍을 해제하고 능숙하게 단검을 피해냈다.

“모습을 드러내라!”

지렌의 외침에 호응하여, 적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많다!’

지렌을 둘러싸며 나타난 마족들은 무려 십여 개체.

복장이 전원 암흑 교단의 추기경급이라는 것에 있어, 적의 정체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위험하다.’

지렌은 식은땀을 흘렸다.

저들 모두가 귀족급이라는 걸 고려하면, 이번 상대인 마계 백작 베드리우스 휘하의 정예들이 모조리 튀어나온 셈이었다.

“낄낄낄낄!”

“시작부터 대어가 걸렸군!”

이곳저곳에서 킬킬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암흑 교단 놈들이 제정신이 아닌 건 하루 이틀이 아니라지만, 지도자급 개체가 전부 저따위라는 건 뭔가 이상했다.

‘네다섯 정도라면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열 마리를 모두 상대하는 건 불가능하다.’

평소라면 자신의 휘하에 배속된 후계들과 그 세력들이 자신의 뒤를 받쳐 주었을 테지만.

경쟁이 가속화된 지금, 후계들은 모두 자신들만의 전투부대를 배속받고 전원 사령관급으로 승진해 다른 쪽으로 나가 버렸다.

즉, 지금의 상황은 목숨의 위기였다.

‘어떻게든 시간을 끌며 증원을 기다려야만 한다.’

지렌은 그럴 생각으로 자신의 마나를 폭주시켰다.

하지만 그 계획은, 그리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쿨럭!”

몇 차례의 수 싸움 끝에, 마기가 뭉친 단검이 지렌의 복부에 꽂혔다.

“이, 이놈들.”

씨익!

자신의 배에 칼을 박아넣은 마족이 지렌의 눈앞에서 뒤틀린 미소를 내지었다.

‘지, 지독한 놈들 같으니!’

마족이라고 다를 줄 알았지만 광신도는 광신도였다.

놈들은 자신의 피해는 생각하지도 않고, 철저하게 지렌의 목숨을 노렸다.

설마하니 역소환을 각오하고 달려들 줄은 몰랐던 탓에, 지렌은 제대로 실력 발휘를 하지 못하고 허점을 노출하고 말았다.

‘끝인가…….’

마나가 역류하고 플라이 마법이 풀린다.

지렌은 자신의 끝을 직감했다.

그대로 머리통이 바닥과 충돌해 깨진 수박처럼 으깨지려던 찰나.

턱!

한쪽 발목에 강한 저항이 느껴지며, 지렌은 머리 쪽에서 느껴져야 할 할 통증이 찾아오지 않았다는 걸 자각했다.

천지가 뒤집힌 시야 속에서, 지렌은 자신의 발목을 붙잡은 상대를 알아보았다.

“너, 너는?”

“그래도, 아주 늦진 않았군요.”

털썩!

지렌의 신형이 꼴사납게 바닥을 굴렀다.

평소라면 라데우스의 드높은 장로인 자신의 몸을 이렇게 취급한 상대에게 대호령을 내질렀을 테지만.

죽음을 각오한 상황에서는 이런 추태 정도는 얼마든지 용납할 수가 있었다.

“네, 네르하인가?”

“맞습니다, 지렌 숙부님.”

자신을 죽음의 문턱에서 구해낸 존재.

그는 다름 아닌 과거 자신이 낙오자라 멸시했던 가문의 다섯째, 네르하였다.

* * *

‘진짜 지독하군.’

뒤늦게 전황을 파악한 네르하는 절로 눈살을 찌푸렸다.

마기 폭발에 휘말려 엉망진창이 된 전방 진지의 모습과.

간신히 부상자를 수습하고 있는 마법사단의 모습.

그리고 몰려오는 마물들과 사생결단을 내는 일반병들은 물론이고.

결정적으로 단체로 린치당해 제 실력을 발휘하지도 못한 지렌 라데우스까지.

전황을 파악한 네르하는 가장 먼저 지휘관인 지렌을 구해냈다.

“고, 고맙다, 네르하.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다.”

“복부에 침식하고 있는 마기부터 해결하시죠. 오래 두면 골치 아파집니다.”

“그, 그래야지.”

“저놈들은 제게 맡기시고 운기에 들어가십시오. 곧 후속 부대가 도착할 겁니다.”

지렌은 네르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곤 마나를 다스리기 시작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라데우스의 장로 정도나 되는 인물이니 별다른 도움은 필요 없겠지.

키득키득!

네르하는 저 위에서 기분 나쁜 웃음을 내짓는 마족들을 올려다보았다.

네르하 역시 놈들을 마주하며 실소를 내지었다.

“지금까지 봐온 마족 놈들과는 사뭇 느낌이 다르긴 한데, 오히려 네놈들 쪽이 더 익숙해 보이는 게 좀 어이가 없군.”

탁!

가볍게 땅을 박차고 하늘로 올라선 네르하가, 놈들을 향해 손을 까딱거렸다.

“덤벼라, 새끼들아. 내가 너희 같은 놈들 상대하는 덴 이골이 나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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