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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138화 (138/237)

138화

<베드리우스 (2)>

그렇게 어느 정도 진지 복구가 완료되고.

지렌의 부관 그란드 데니시온이 조심스럽게 네르하에게 다가왔다.

“네르하 사령관님.”

“뭐지?”

네르하의 눈빛을 받은 그란드는 잠깐 움찔하는 기색이었지만, 이를 악물고는 자신의 소신을 입에 올렸다.

“정말로, 여기서 마계 백작을 상대할 생각이십니까?”

“그렇다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아무리 두 개의 마법사단이 추가되었다지만 지렌 장로님께서 부상으로 이탈하신 상황입니다. 현재 전선엔 그분의 무력을 대체할 실력자가 없습니다.”

“뭘 말하고 싶은 거지?”

“후퇴를 권합니다. 다수가 힘을 합친다고 한 명의 초인을 대체하긴 힘듭니다. 마계 백작의 발을 붙잡지 못한다면 상상 이상의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7레벨 최후반대인 지렌의 무력은 같은 7레벨들과 동일개념 선상에 놓일 수준이 아니었다.

이전 엘로이아도 그랬듯 7레벨은 그 내부에서도 단계를 나누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올 정도로 수준 차이가 심한 레벨.

굳이 중원 식으로 구분 짓자면 초절정과 화경의 차이라고 봐야 할까?

마력량의 문제가 아니다.

초절정 고수 다섯이 격체전력을 펼치면 능히 화경의 고수 한 명의 내공을 압도할 수 있지만.

전장에서 화경의 고수 한 명이 펼칠 수 있는 활약은 초절정 고수 다섯이 힘을 합친다고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활약에 따라 능히 이십, 삼십이 넘는 존재감을 발휘하는 게 가능한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선, 마법사들의 세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법칙이었다.

“이전 마계 백작 토벌 때도 총사령관님이나 지렌 장로님께서 직접 그들의 발을 묶었기에 쉽게 토벌이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너는 지렌의 지휘력은 대체할 수는 있어도, 무력은 대체할 수 없다.

그란드는 눈으로 그 말을 하고 있었다.

“재미있군.”

“사, 사령관님. 지금 재미를 따질 상황이 아닙니다!”

“내가 마계 백작의 발을 묶어 둘 수 있을지 없을지, 내기나 한번 해 볼까?”

“내기, 라고 하신다면.”

“간단해. 내가 그 백작 놈을 감당하지 못하고 나가떨어진다면 그 순간 지휘권을 반납하고 네놈의 말에 복종하지.”

“……!”

“하지만 내가 놈의 공세를 충분히 버티거나, 혹은 놈을 잡게 된다면?”

꿀꺽!

그란드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그렇다면 네가 내 휘하로 들어와라.”

“그, 그럴 순 없습니다.”

나름 상대 쪽이 유리해 보이는 조건임에도 그란드는 넘어오지 않았다.

“저는 반평생 지렌 장로님을 모셔 온 몸입니다. 이런 내기 따위로 소속을 결정할 순 없습니다.”

‘쳇.’

네르하는 살짝 혀를 차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럼 앞으로의 작전에 토 달지 말고 철저히 따라라. 일단은 그 정도로 만족하지.”

“아, 알겠습니다.”

비록 첫인상은 좀 거지 같을지라도 그란드의 지휘 능력은 무시할 수 없었다.

괜히 지렌이 그를 부관으로 임명한 게 아닌 것이다.

“사령관님, 얼추 수습이 끝났습니다. 방어벽과 안티 이블 필드 역시 완벽하게 수복했습니다.”

“피해는?”

“전투마법사단 ‘크로노’ 사망자 스물일곱. ‘멤피스’ 열다섯. 합계 마흔둘입니다. 부상자는 총 열일곱. 놈들의 자폭이 워낙 지독했던 탓에 부상자의 숫자가 오히려 적군요.”

“일반군은?”

“아직 집계 중입니다만, 사상자를 합쳐 700여 명 수준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피해가 크군.’

수치로만 따지면 패전이나 다름없는 피해다. 아마 추가 전력이 없었다면 깔끔하게 후퇴를 결정했을 정도로.

그래도 네르하가 데려온 마법사단의 전력을 합치면, 사상자를 빼도 거의 삼백에 달한다.

이 정도 전력이면 이전 아스타로스 토벌전 당시의 전력과 비교해도 크게 꿇리지 않는다.

그때, 정찰부대에서 보고가 올라왔다.

“전방, 거리 3km! 다수의 마계 영역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보고가 아니더라도 얼추 느껴지긴 한다.

일반적인 기감의 거리를 초월하긴 했지만, 마기에 한해서라면 현재의 네르하는 그보다 먼 거리에서도 감지가 가능했다.

“실질적인 적의 본진이겠군요.”

“대담하게도 대놓고 영역을 펼치다니.”

“어떻게, 요격하시겠습니까?”

네르하의 주변인들이 의욕을 불태우며 의견을 물었다.

그런데, 의외로 네르하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저건 미끼다.”

“미끼라고 하신다면?”

“저게 본진은 맞겠지. 하지만 이미 우리는 수천에 달하는 마물들의 습격을 받았어. 그게 다 어디서 왔겠나?”

그 대답은 지금껏 조용히 있던 루시아의 입에서 나왔다.

“저쪽에 시선을 돌리고 숨겨 둔 다른 쪽에서 다시 한번 이곳 본진을 노리겠죠.”

그녀의 예리한 분석에 주변에 놀람이 번졌다.

“오, 아가씨. 예리한데?”

세드릭이 한쪽 눈을 찡긋하며 추파를 던졌지만 루시아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무시했다.

‘루시아의 말마따나 고전적인 성동격서일 확률이 높다.’

진지를 습격한 마물들과 사제들이 발견된 건 1km 내외.

그런데 그보다 먼 곳에서 대놓고 마계 영역을 펼쳐 군세를 소환한다는 건 그냥 기만책이란 소리다.

루시아가 의견을 피력했다.

“그렇다면 삼면일 가능성도 무시할 순 없습니다.”

“삼면? 굳이 그렇게까지 전력을 나눈다고?”

“상식을 무시하고 돌격해 온 놈들입니다. 가능성을 무시할 순 없죠.”

“아마도 그럴 것 같군.”

네르하가 손가락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 삼면 중 하나가 저놈인 것 같으니까.”

그 말이 끝나자마자, 저 먼 봉우리 뒤편에서 어둠의 기둥이 치솟아 올랐다.

“마계 귀족!”

“마기 농도 체크해!”

대놓고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적.

그 대담함에 진지 내부에 혼란이 찾아왔다.

“84.48% 백작급입니다!”

“젠장, 하필이면 이때!”

마계 백작의 존재감은 세 명을 해치웠어도 여전히 부담스럽기 그지없었다.

“베드리우스 본인이 나섰군요.”

“…….”

네르하는 심유한 눈빛으로 베드리우스가 내뿜는 존재감을 감지했다.

‘강하군. 엄청나게 강해. 단순한 마기의 양만으로 따지면 천마조차도 상대가 안 될지도.’

천마가 아무리 강대한 절대자라 해도 본질은 인간이다.

반대로 저들은 못 해도 수천 수만 년 이상 살아온 이차원의 종족.

‘그런데 저놈이 천마보다 훨씬 약해 보이는 건, 그저 내 착각에 불과한 걸까?’

네르하는 자신의 주먹을 움켜쥐었다.

지금의 나는, 무적권신의 나보다 강한가?

자문에 대한 답은 금방 나왔다.

‘아니, 아직은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저 마계 백작을 감당할 수 없는가?

“아니, 절대 그렇지 않다.”

“네르하 님?”

입 밖으로 튀어나온 말을 들은 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네르하의 시선은 여전히 어둠의 기둥을 주시했다.

“세 명인가?”

“세 명?”

네르하는 여전히 알 수 없는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다.

그 와중에 전투의 서막은 천천히 올라가고 있었다.

“서남쪽 방향에서 적 출현!”

“아까 그 광신도들이 왔던 방향인가?!”

“이번엔 마물들과 함께 온 듯합니다. 어림잡아 일만은 되는 것 같습니다!”

“사령관님!”

“네르하 님!”

모두가 최고 결정자인 네르하를 향해 시선을 모았다.

한참을 침묵하던 네르하가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루시아, 바스톤.”

“네!”

“네, 주군.”

“너흰 날 따라와라.”

대번에 두 사람의 눈에 기쁨이 흘러넘쳤다. 네르하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를 리가 없었다.

“명을 받듭니다!”

루시아와 바스톤의 몸에 전의가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결정에는 당연히 불만이 나오기 마련이었다.

“사령관님, 저들보단 저와 다르미안을 데려가시는 것이 전력 면에선 나을 겁니다.”

“…….”

“5레벨의 두 사람보다 7레벨의 두 사람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네르하의 시선이 공적 욕심이 그득한 세드릭의 눈과 마주쳤다.

“너희는 지난 한 달 동안 날 보고서도 레벨이 전투력의 전부라고 생각하나?”

“그건, 아닙니다만.”

“미안하지만, 지금의 루시아는 너보다 강하다. 바스톤도 작정하면 네게 30분 이상은 버틸 수 있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세드릭이 눈을 부릅뜨며 반발했다. 불신감이 철철 흘러나오는 모습이다. 발언자가 네르하가 아니었다면 당장 증명해 보라고 일갈했을 기색이었다.

네르하는 그런 세드릭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해 주었다.

“뭐, 그 이전에 너희가 빠지면 누가 마법사단을 지휘하겠나? 이곳으로 몰려올 마계 귀족들을 상대하는 건 너희의 몫일 텐데.”

나름 위로라고 한 말인데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아 보인다.

뭐, 새까만 후배한테 밀린다는 말을 들었으니 자존심에 제대로 상처를 입었겠지.

“원한다면 이 전투가 끝나고 대결을 주선해 줄까?”

“진심이십니까?”

“물론, 세드릭 네가 이긴다면 네가 원하는 건 뭐든 한 가지 들어주지.”

“……무르기 없기입니다.”

이런 조건을 달고 나서야 세드릭은 분노를 수습했다. 마법사란 지적인 생명체이지만 자존심으로 먹고사는 인종인 만큼 이런 도발엔 참 약했다.

아니, 그건 기사도 마찬가지인가?

어쨌든.

네르하는 두 사람에게 총지휘권을 넘기고 루시아와 바스톤만을 대동한 채 진지를 나섰다.

의외로, 자신도 데려가라 떼를 쓸 줄 알았던 클로이아가 얌전히 진지에 남겠다고 대답한 건 좀 뜻밖이었다.

“네르하 님.”

“왜, 루시아?”

“어째서 전투 직전에 그런 불필요한 도발을 하신 건가요?”

네르하는 그 말을 듣고 어깨를 으쓱했다.

“너희를 데리고 나오는 순간부터 불만은 나올 수밖에 없어.”

그런 상황에서 적당한 도발은 오히려 약이 될 수 있다.

“봐봐, 너와의 대결을 주선해 주겠다고 하니까 대번에 전투 의지를 불사르고 있잖냐?”

“아니, 그 때문에 피해를 보는 건 전데요?”

“왜, 자신 없냐?”

루시아는 표정을 구겼다. 상대에게 왜 도발을 하냐고 따졌더니 이번엔 자신에게 도발을 하고 자빠졌다.

넘어가면 안 된다고 자기 암시를 되뇌이면서도 루시아의 입은 참으로 솔직했다.

“압도적으로 처바를 자신이 있죠. 제까짓 마법사 나부랭이가 뭐라고.”

“그럼 문제없겠네.”

“아, 아차!”

자신도 모르게 자존심을 내세웠다는 걸 자각한 루시아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어쨌든, 너희는 내가 처음으로 거둔 수하이자 실질적인 양팔이야. 너희가 죽거나 날 배신하지 않는 이상 물릴 생각은 없지.”

“주, 주군!”

바스톤이 또다시 감격해하며 소리쳤다.

“하지만 내 양팔이 되고 싶다면, 그만한 자격을 증명해야겠지?”

“반드시, 주군께 승리를 바치겠습니다!”

바스톤은 지금 자신이 마족을 상대하러 가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것도 그냥 마족이 아닌 귀족급 마족을 말이다.

“일반적으로 귀족급 마족을 상대하기 위해선 7레벨의 경지에 올라야 한다고 하지.”

몇 달 동안 계속된 전쟁에서 확립된 상식이었다.

“하지만 난 지금의 너희들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마법과 무공의 융합.

마법사들에게 시달리는 와중에도 두 사람은 이 개념을 절대 잊지 않고 수련에 매진했고, 기어코 충분한 결과물을 보았다.

네르하는 아무도 없는 전방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네가 보기엔 어떻지?”

“그걸 적에게 묻는 건가?”

들려올 리 없는 대답이 들려왔다.

스으윽!

어느새 자리에는 로브로 전신을 가린 세 명의 인영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만나서 반갑군.”

흰색과 검은색이 조화를 이룬 경건한 복장.

암흑 교단의 상징인 해골 문양만 아니었다면 정식 교단의 성직자로 착각할 정도로 말끔한 모습이다.

네르하는 후드 너머로 보이는 상대의 얼굴을 보자 조금 놀랐다.

‘인간의 모습?’

지금까지 봐 온 마족들이 하나같이 마족의 티를 팍팍 내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네가 베드리우스인가 뭔가 하는 놈인가?”

“그렇다. 비슈나르 님 휘하 마계 백작의 지위를 가지고 있지.”

베드리우스가 무덤덤한 목소리로 반문했다.

“그렇다면 네가 네르하 라데우스로군. 이번 전쟁의 최대 이레귤러…….”

“이레귤러?”

“이것을 알고 있는가?”

그의 손가락이 네르하의 가슴을 향했다.

“네놈이 아니었다면, 이맘때쯤 라데우스의 원정대는 모두 전멸하여 설산의 계곡에 파묻혔을 거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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