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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139화 (139/237)

139화

<베드리우스 (3)>

베드리우스의 말은 확신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네르하 역시 놈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했다.

“아아, 뭔 개짓거리를 꾸몄는지 대충 알지.”

경계도시 아르지엔을 장악해 보급로 및 퇴각로를 차단하고 압도적인 전력으로 원정대를 밀어 버리겠다는 계획.

하지만 뒤늦게 합류한 네르하에 의해 그 계획을 실행한 마계 귀족 뮬란은 당했고, 아르지엔은 여전히 멀쩡한 모습으로 보급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네르하에게 내민 베드리우스의 손가락이 오그라들며 주먹을 쥐었다.

“일정이 좀 틀어졌지만 계획에 변함은 없다. 곧 비슈나르 님께서 일어나시면 너희를 모두 단죄하시리라.”

“웃기지 마라!”

그 말에 뒤에 있던 바스톤이 성을 냈다.

“너희들은 이제 끝났다! 네놈을 마지막으로 모든 마계 백작은 사라진다. 마왕 혼자 어찌할 수 있을 것 같은가!”

“어찌할 수 있을 것 같군.”

“뭐, 뭐라?”

“하지만 그 전에.”

베드리우스의 시퍼런 분노가 바스톤을 향했다.

“종복 주제에 주인들의 대화에 끼어들다니, 건방지기 짝이 없군.”

팟!

어느새 바스톤의 뒤에 나타난 한 마족이 거대한 낫을 휘둘렀다.

완벽한 기습. 그 은밀함과 강력함은 어지간한 마법사라면 대응조차 하지 못하고 목을 내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쾅!

‘서걱’이라는 소리 대신, 강력한 충격파가 네르하의 귓가를 강타했다.

“흠.”

베드리우스는 눈앞에 벌어진 결과에 살짝 언짢은 기색을 보였다.

분명 상대의 수준을 생각하면 일격에 목이 잘려 나가도 이상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기습을 막아 내고 반격까지 한 것이었다.

네르하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베드리우스를 향해 이죽거렸다.

“암흑 교단의 마족들은 다 저런가? 죄다 얍삽한 놈들밖에 없군.”

“…….”

지금껏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놈의 눈가에 주름이 졌다.

“라베건, 확실하게 마무리해라.”

“소, 송구합니다, 베드리우스 님.”

라베건이라 불린 마족은 자존심이 상했는지, 자신의 낫에 마기를 듬뿍 불어넣기 시작했다.

‘저 정도면, 시간을 끄는 정도를 넘어 비벼 볼 수 있겠는데?’

그 질과 양을 급수로 따지면 대략 남작급으로 보였다.

“바스톤.”

“네, 주군.”

“알아서 처리해.”

귀찮게 떠넘기는 듯한 한마디였지만, 바스톤은 그 저변에 담겨 있는 믿음과 신뢰를 느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대번에 바스톤이 찬 양손 건틀렛이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루시아.”

“네, 알고 있어요.”

루시아 역시 어느새 칼을 뽑아 들며 베드리우스 옆에 있는 한 마족에게 겨누었다.

“대장들 싸움 방해하지 말고 이쪽으로 오시죠?”

“…….”

상대는 별다른 답변도 없이 침묵했다. 시선이 살짝 옆으로 향한 걸 보면, 주군인 베드리우스의 말을 기다리는 듯했다.

“가라.”

“네.”

그 말이 있고서야 그 마족 역시 자리를 박차고 루시아에게 덤벼들었다.

그렇게 양면의 전투가 시작되고, 네르하와 베드리우스의 대치는 계속되었다.

“시작하지 않을 건가?”

“어차피 우리의 대결이 이 전투의 승부를 가를 게 아닌가? 조금 더 대화를 이어 나간다 해도 괜찮겠지.”

“내 부하를 노린 놈이 잘도 지껄이는군.”

네르하는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좋아. 이쪽도 물어볼 게 있으니 조금 더 떠드는 것도 괜찮겠지.”

“물어볼 게 있다?”

“일종의 확인 작업인데 말이야.”

지금까지 원정대 내부에서 숱하게 토론이 벌어졌으나, 아직 결론이 제대로 나지 않은 주제.

“마왕이 지금까지 움직이지 않은 이유.”

“…….”

“바스톤의 말대로 마계 백작들이 모두 죽어 나갈 때까지, 이 사태의 원흉인 비슈나르는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지. 그 휘하 세력도 동일하게.”

네르하는 베드리우스의 표정 변화를 유심히 살피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

“왜 그랬을까? 일반적으로 중간계에서 잃은 힘을 복구하기 위해서라기엔 앞뒤가 맞지 않아. 이미 마계 백작을 무려 다섯이나 소환했는데 말이야.”

그만한 전력을 소환했음에도, 비슈나르는 전선을 넓게 펴서 자기 세력의 각개격파를 유도했다.

“피해를 줄이기 위해? 시간을 끌기 위해? 현재까지 본 상황으로는 앞뒤가 맞지 않아.”

“후후후.”

“원정대가 상대한 마계 백작들은 아스타로스를 제외하고는 전부 성실하게 공세에 대응했고, 정석적으로 맞서서 패배했지. 마치 우리에게 승리의 기쁨을 알게 해 주려는 듯.”

“흥미롭군, 계속 말해 봐라.”

어느새, 베드리우스의 표정엔 자그마한 미소가 나타났다.

감정 표현이 적어서 눈치채기 힘들 뿐, 마치 네르하의 추리를 계속 듣고 싶어 안달 난 기색이었다.

“너도 마찬가지야.”

네르하가 이번엔 베드리우스의 가슴에 손가락을 뻗었다.

“아무리 기책으로 진지의 방어벽을 뚫었다 해도, 나와 수하들이 합류한 시점에선 후퇴하는 게 정상이지.”

네르하와 수하들이 합류한 순간, 전력 면에선 뭘 해도 이쪽이 압도적이다.

“하지만 넌 아무런 망설임 없이 군대를 몰아 쳐들어왔다.”

저 멀리 라데우스의 마법사들이 몰려오는 마물 군세를 향해 포격을 퍼붓는 게 보인다.

“어떻게든 전력을 밖으로 빼내 회전을 만들려 하지 않고, 잘 형성된 진지에 병력을 꼴아박는 건 우장(愚將)이나 할 법한 일이지.”

“그래서?”

“그래서긴? 결국 희생 자체가 목적이잖아, 안 그래?”

그 말이 끝나자마자, 베드리우스의 전신에 강대한 마기가 터져 나왔다.

“정답이다, 마법사.”

네르하 역시 베드리우스의 기세에 맞춰 마나를 끌어올렸다.

“전선을 넓혀 시간을 끌려던 건 잃은 힘을 복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탁!

“시간을 끌며 회복한 힘을 비슈나르에게 몰아주기 위해서겠지.”

“하하하하하!”

베드리우스의 광소와 함께, 네르하와 마계 백작의 첫 번째 전투가 막을 올렸다.

* * *

‘신나게 싸우네.’

황금과 어둠.

거대한 두 힘의 충돌을 느낀 루시아는 자신의 검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재밌게 싸워서 부럽네. 내 상대는 하필이면…….”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드리워져 있던 루시아의 그림자에서 거대한 검은 가시가 튀어나왔다.

“쫀쫀하게 싸우는 암살자 나부랭이라니.”

루시아는 가볍게 발걸음을 놀려 가시의 기습을 피했다.

“바스톤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고위 마족을 상대하는 첫 실전인데 이런 놈들만 만나다니.”

“미안, 하군.”

근처 나무의 그림자에서 루시아를 상대했던 마족의 모습이 튀어나왔다.

쇠를 긁는 듯한 목소리가 루시아의 고막을 괴롭혔다.

“교단의 특성상, 이런 식의 능력이, 필요하거든.”

“친절한 설명 고마워.”

루시아의 애검, 그란디아에 오러가 맺혔다.

“그러니 이제 그 입 좀 다물어 줬으면 좋겠어.”

콰과과광!

원거리에서 날린 오러의 참격이 그대로 마족이 숨어 있던 숲을 강타했다.

주변을 순식간에 폐허로 만든 루시아가 상큼하게 웃었다.

“인근의 그림자를 모조리 없애면 숨어들 곳은 별로 없겠지?”

마족이 이를 갈며 말했다.

“너, 마법사가, 아니군.”

“마법사는 맞아. 최근까지 그놈의 마법을 배우느라 좀 많이 시달렸거든.”

루시아는 다시금 본가 검술의 기수식을 잡았다.

“단지, 검이 훨씬 익숙할 뿐이야.”

“그, 익숙한 금빛, 너, 라데우스가, 아니구나!”

예리한 지적이었다.

“암흑 교단 놈들은 중간계에 꽤 오래 체류한 탓에 대륙 사정에 나름 밝다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네.”

“케프렌! 어떻게, 네놈들이?!”

“거기까지 알았다면, 확실하게 살려 둘 수 없지.”

일반적인 오러에 더해, 하늘색을 띤 찬란한 별빛의 휘광이 오러를 덧씌우기 시작한다.

“……!”

검에 맺힌 힘의 총량이 상상을 훨씬 뛰어넘고 있다.

위기감을 느낀 마족은 파도처럼 그림자를 일으켜 루시아를 향해 몰아치기 시작했다.

“나! 하르마탄! 네년만큼은 죽인다!”

“내 이름은 루시아 스플릿…… 아니.”

가명을 내뱉으려던 루시아는 생각을 고쳤다.

“루시엘라 엘 케프렌이다, 어리석은 마족아.”

검에서 흘러나온 별빛이 그림자를 꿰뚫으며 하늘을 수놓기 시작했다.

검을 다루는 기사들이 보았다면, 그 고절한 아름다움에 넋을 놓았을 풍경.

―유성검(流星劍).

수십 갈래로 나뉘어진 유성이 하르마탄의 그림자를 이 세상에서 지워 버린다.

그리고 그대로 그림자 안에 숨은 하르마탄의 본체를 난도질했다.

“어, 어떻게, 오러 따위가, 내 몸에 타격을……!”

하르마탄은 당황을 넘어 경악했다.

자신이 다루는 그림자는 이공간에 영역을 걸칠 수 있는 권능이 있었다.

그렇기에 다른 마족들처럼 강력한 화력을 뽑아 낼 순 없었지만, 반대로 절대적인 방어와 회피를 손에 넣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루시아는 빙그레 웃으면서 찢겨 나간 하르마탄의 머리를 향해 이죽거렸다.

“기사의 오러와 마법사의 마나를 융합하면, 이런 식의 부차적인 기능이 생기더라고.”

“무슨, 말도 안 되는!”

“너 같은 이질적인 놈들을 상대하는 덴 최적의 힘이지.”

콰직!

루시아는 그 말을 끝으로 깔끔하게 상대를 마무리했다.

피나 육편이 튀지는 않았다.

그저 조각난 육체가 바닷가에 뿌려진 먹물처럼, 고작 작은 줄기만을 만들다가 천천히 사라졌을 뿐이었다.

그렇게 자작급 마족으로서 단탈리안과 함께 대륙 역사에 암약해 왔던 암살자.

하르마탄이 루시아의 손에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하, 좀 개운하다.”

그림자가 별빛에 찢겨 나가는 절경.

자신이 만들어 낸 그 모습을 바라본 루시아는 기지개를 쭉 펴며 후련함을 드러냈다.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었는데, 이렇게라도 풀어야지.”

원래 얌전한 편이던 그녀의 성격은, 리브라에 와서 지옥 같은 훈련을 거치면서 조금씩 개화해 나갔고.

북방에서 그 ‘빌어먹을 라데우스 잡것들’에게 구박당하며 성격이 좀 안 좋은 쪽으로 변해 버렸다.

물론 그걸 네르하나 다른 동료들의 앞에서 대놓고 드러내진 않았지만 말이다.

“바스톤이나 도와줄까? 아직 스트레스가 덜 풀…… 아니, 전쟁에서 일대일을 고수하란 법은 없으니까.”

루시아는 그란디아의 칼날을 바닥에 질질 끌며 바스톤의 전장을 향해 휘적휘적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녀를 추종하는 아녜스가 이런 모습을 봤다면, 언니가 변했다며 눈물 한 사발 줄줄 흘렸을 광경이었다.

* * *

‘내 가치를 증명할 기회다!’

양손에 묵직한 건틀렛을 착용한 바스톤은, 낫을 다루는 라베건이란 마족과 치열하게 격전을 벌였다.

‘물러설 바엔 차라리 죽는다. 기회를 주신 주군께 실망을 드릴 순 없다!’

바스톤은 진즉에 알고 있었다.

어릴 적 용병 일을 경험하여 전투력에서 남들보다 조금 앞서갔을 뿐.

자신의 재능은 루시아는커녕 알페온에게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말이다.

리브라에서 상위권을 노려볼 수 있을 ‘수재’급은 되겠지만, 그 정도로는 앞으로 승천하는 용이 될 네르하의 곁에 있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누구보다 노력했다.

네르하가 ‘근본’이 없다고 지적한 자세들을 버리고,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깨고 쌓으며 위만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결과.

콰앙!

바스톤의 주먹에 멀찌감치 나가떨어진 라베건이 황당해하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너, 정말 마법사냐?”

“그렇다만.”

“내가 본 어떤 인간 권사보다도 무식한 것 같은데?”

촤르르륵!

라베건의 낫이 분열하며 바스톤을 향해 날아간다.

마기를 듬뿍 먹은 낫의 칼날은 제왕급 기사들의 오러 블레이드와 비교해도 파괴력 면에선 꿇릴 것이 없었다.

그런데.

카가가강!

바위도 두부처럼 잘라 내야 할 마기의 낫이, 마치 벽에 튕겨 나간 유리구슬처럼 허무하게 나가떨어진 것이다.

“……이러고도 마법사라고?”

“마법이 맞다. 신체 강화 마법의 일종이지.”

바스톤의 본가 페레이라 가문이 명운을 걸고 연구한 테마는 신체 능력의 향상.

그 근본은 대지 속성의 마나를 끌어올려 기사를 능가하는 육체를 얻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기사를 능가하는 육체 능력을 가졌다 하더라도, 오러를 맨몸으로 버티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였다.

“무슨 고대종 몬스터가 따로 없군.”

그 말이 끝나자마자, 라베건은 자신의 눈앞에 거대하고 묵직한 주먹이 시야를 가리는 걸 자각했다.

어느새 지근거리까지 접근한 바스톤이 전력으로 건틀렛을 휘두른 것이었다.

콰아아앙!

간신히 방어한 라베건이었지만, 그 일격을 방어하는 대가로 오른쪽 팔이 너덜너덜해지고 말았다.

“마법사가 몸이 허약하다는 편견은 버려라.”

워낙 충격파가 강렬한 탓에 상의 일부분이 찢겨 나갔다.

그리고 그 안쪽에 극한으로 압축된 근육이 모습을 드러냈다.

“내 이름은 바스톤 페레이라. 네놈의 머리를 으깨 버릴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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