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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142화 (142/237)

142화

<마왕령 (2)>

아스타로스도 그렇고, 이 녀석도 그렇고.

왜 이리 내 몸을 원하는지 모르겠다.

네르하가 막 거절의 의사를 표하려던 찰나.

턱!

뺨을 향해 손을 뻗어오던 비슈나르의 팔이 이자카르에게 붙잡혔다.

―그렇겐 안 되지. 감히 누구를 노리고 있느냐?

―이자카르, 고작 파편 주제에 방해하지 마라.

화악!

비슈나르의 팔을 휘감고 있던 흑염이 이자카르에게 옮겨 갔다.

―흐흐흐, 내 힘을 마치 제 것인양 사용하고 있구나.

한순간, 이자카르의 이마에 솟아난 뿔이 크게 빛났다.

그와 동시에 이자카르를 침범하던 흑염이 그대로 잔불도 남기지 않고 증발해 버렸다.

―……!

―바깥에서라면 몰라도, 이곳 원초의 혼돈 안에선 너와 나는 대등한 존재다. 어디서 수작을 부리려 드느냐?

자신의 불이 사라지자 비슈나르의 표정에 언짢음이 생겨났다.

―귀찮게 되었군.

어쩔 수 없는지, 비슈나르가 한 발자국 물러섰다.

―이제 곧 파국이 다가온다. 나는 중간계에 완벽하게 적응한 육체를 얻어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을 거두어 갈 것이다.

잠깐.

육체를 얻는다고?

네르하의 표정이 기묘하게 변했다.

분명 이번 북방 사태의 원흉이 된 마족들 대부분은 소환의 형태로 이 중간계에 발을 들이밀었을 것이다.

하지만 갑자기 육체를 얻겠다는 점에서, 네르하가 멀지 않은 과거에 겪었던 기억과 경험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마신강림?’

―알고 있구나.

비슈나르의 입가가 찢어지듯 초승달을 그렸다.

―그래, 크루갈을 경험했다면 알고 있겠지. 하지만 나의 부활은 크루갈의 불완전한 것과는 다르단다.

저만한 자신감을 보일 정도면 거짓은 아닐 것이다.

―넌 이 몸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리고 그 대가는, 영원한 죽음으로써 갚게 될 것이다.

비슈나르는 두 번 권하지 않았다.

자신의 적이라고 확신한 순간부터, 확실하게 적의를 내보일 뿐.

이자카르는 그런 비슈나르를 비웃었다.

―크크크큭! 웃기는 말을 하는구나. 이 인간이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면 수족으로 세뇌하려 들었을 게 아니더냐?

―…….

정곡을 찔렸는지 그녀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부끄러움을 감추려는 듯 조용히 사라지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비슈나르가 완전히 사라지고 난 뒤.

자리에 남은 두 사람이 시선을 마주했다.

―내게 할 말이 많겠지만, 일단은 이 공간을 빠져나간 뒤에 생각하도록 하지.

‘……좋아.’

―네가 만들어 낸 이 원초의 혼돈은 그리 오래 유지되지 않는다. 앞으로 몇 분이면 세계의 유지력에 의해 외차원으로 튕겨 나갈 거다.

‘여기 계속 있으면 그 외차원이라는 곳으로 같이 튕겨나간단 소리구나.’

―이해가 빨라서 좋군.

‘다 좋은데, 어떻게 빠져나가지?’

사방이 회색으로 이루어진 공간이라, 그 크기가 얼마인지 짐작이 도통 되지 않는다.

―이 몸이 도와주겠다. 술식 하나를 네 머릿속에 주입할 테니 그걸 그대로 영창해라.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네르하는 송곳으로 뇌를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두통을 느꼈다.

‘큭!’

―영광으로 아는 게 좋을 것이다. 이 몸이 자랑으로 여기는 술식 중 하나이니.

‘이걸, 어떻게, 사용하라고!’

난이도는 차치하고 그 양이 터무니없이 많다! 보통의 책 한두 권으로는 도저히 그 내용을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이해할 필요는 없다. 그저 기억에 새겨진 그대로 영창하면 된다.

현재의 네르하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심득을 담고 있는 술식!

마법사에게 이 술식의 가치는 분명 무한대에 수렴할 게 분명했다.

‘젠장, 어쩔 수 없지.’

네르하는 머리가 깨질 것 같은 와중에도 빠르게 술식의 내용을 그려 나갔다.

이자카르의 말마따나 이해할 필요 없이 그저 기계적으로 술식을 그릴 뿐이라 양에 비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술식의 구성이 어느 정도 윤곽을 보이자, 네르하는 그 술식의 정체가 어떤 것인지 알고는 경악했다.

‘설마, 공간이동 계열?’

대륙에는 그 시전자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 단독공간이동 계열의 술식.

그 라데우스 가문조차 고대부터 내려온 유산에 기대어 기물을 통해 재현할 뿐인 최고 수준의 주문이었다.

‘이런 보물을 손에 얻다니?!’

비록 그 내용에 대한 이해는 단 한 구절도 모르겠지만, 이 술식을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공간계열의 마법을 손에 넣을 가능성이 생기게 된다.

쩌억!

‘열린다!’

이자카르에게 건네받은 술식을 그대로 완성시킨 순간, 원초의 혼돈이라 불리는 회색빛의 공간에 새하얀 타원형의 구멍이 뚫렸다.

그리고, 네르하는 망설임 없이 그 구멍 안으로 몸을 날렸다.

* * *

그렇게 결과적으로 마계 백작 베드리우스의 육체를 완벽하게 소멸시킨 네르하는.

“이 빌어먹을 애송이놈아!”

뜬금없이 분노의 화신이 되어 나타난 류레이아에게 멱살을 잡히며 흔들리고 말았다.

“너,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나 있는 거야?!”

나름 찔린 구석이 있는 네르하는 고개를 돌리며 철면피를 깔았다.

“음, 딱히 피해는 없는 것 같습니다만.”

“피해가 없긴 개뿔이! 네놈이 만들어 낸 그 사상지평의 힘 때문에 내 영역이 깨져 버렸어! 저년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이 근방 전체가 휩쓸려서 적아 상관없이 모두 전멸해 버렸을 거라고!”

“어, 그게 그 정도였습니까?”

“어? 그게 그 정도? 이게 지금 그걸 말이라고!”

“자, 자, 진정하게. 총사령관.”

엘로이아가 개입하고 나서야 네르하의 멱살은 자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

“자네의 표정을 보면 의도하지 않았던 일인 것 같은데, 내 생각이 맞는가?”

“예, 계산이 좀 어긋난 것 같더군요.”

지금까지 감정을 읽을 수 없던 엘로이아의 표정엔 미미한 두려움이 나타나 있었다.

8레벨의 마법사가 그런 감정을 느낄 만큼, 네르하가 시전한 태극도…… 비슷한 무언가의 위험성이 거대했다는 소리였다.

“가능하면 술식이 완벽해질 때까지는 사용하지 말아 줬으면 하는군. 자신만이 아니라 주변의 모든 이들을 파멸시키고 싶지 않다면.”

“그, 죄송합니다.”

네르하는 민망한 마음에 고개를 숙였다.

확실히 두 사람이 이런 반응을 보일 정도면 굳이 안 봐도 뻔하다.

‘완성된 직후에 문제점은 딱히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베드리우스의 본체에 닿는 순간 뭔가 변수가 생긴 듯한데, 그 변수가 뭔지를 모르겠군.’

네르하가 복잡한 심경을 느끼고 있을 때, 냉정을 되찾은 류레이아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일단 상황을 마무리하자고. 어차피 대가리가 날아간 이상 그 밑에 놈들이 뭔 짓을 하든 전황을 바꿀 수는 없으니까.”

이제 마왕 비슈나르를 제외하면 남은 적은 없다.

류레이아는 그 말을 남기고는 전선으로 날아가 남은 적들을 일소하기 시작했다.

뭐, 자작급 이하 마계 귀족들이 몇 정도가 남아 있긴 했지만, 류레이아가 투입된 이상 얼마 지나지 않아 정리되겠지.

그러고 보니.

“확인하고 싶은 건 확인하셨습니까?”

네르하의 질문을 받은 엘로이아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확실히 확인했네.”

주름진 그녀의 눈이 의지로 가득 차 있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확실하게 말이야.”

그 눈을 본 순간, 네르하의 신형이 잠깐 멈칫거렸다.

그녀의 눈은, 네르하가 잘 알고 있는 무언가와 매우 닮았다.

정마대전의 마지막 순간, 천마가 자리 잡고 있는 낙곡산을 공략하기 위해 선발된 정사 무림 연합의 결사대.

지금 엘로이아가 보이고 있는 눈은, 그 결사대원들이 낙곡산으로 향하기 전 보였던 눈과 매우 흡사했다.

그리고 네르하는, 그 눈을 한 이들에겐 어떤 설득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어떤 선택을 하시든.”

“…….”

“부디 그 선택의 끝에, 단 한 점의 후회도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엘로이아는 뜻밖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그 기색은 오래가지 않았고, 피식 웃으며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답했다.

“고맙네.”

* * *

서쪽 전선에서 기습적으로 발발된 암흑 교단의 습격.

그리고 그 결과는 암흑 교단의 수괴이자 마계 백작인 베드리우스를 역소환시키면서 라데우스 측의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라데우스 측 역시 피해가 만만치 않았는데.

서쪽 전선을 이끌던 지렌 라데우스의 경우 더 이상 이번 전쟁을 이어 나갈 수 없을 정도의 중상을 입었고, 그 외에도 50명에 달하는 마법사 전력이 증발해 버리고 말았다.

“네르하가, 단독으로 마계 백작을 토벌했다고?”

“그, 그렇습니다, 바멜 사령관님.”

“미친!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마왕령과 인접한 북쪽 전선을 담당하던 바멜과 세티안 남매는, 느닷없이 들려온 소식에 어안이 벙벙했다.

“마계 백작들이 얼마나 괴물들인데, 그걸 단독이라고? 부하들과 함께 협공한 것도 아니라?”

“저도 처음엔 믿기지가 않았습니다만…… 목격자가 많습니다. 무엇보다, 총사령관께서 증인을 자처하고 계신지라.”

“미치겠군.”

바멜은 막사 안에 마련된 소파에 힘없이 몸을 맡겼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거지?”

아직 6레벨의 경지에 머물러 있는 바멜은 단독으로는 자작급조차 쉽게 상대할 수 없었다.

아무리 라데우스 고유의 힘인 스타 플래티넘의 힘과 온갖 아티펙트가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남작급 정도라면 모를까, 백작급을 단독으로 토벌하는 건 오로지 8레벨에 도달해야만 가능하다 믿었다.

“네르하의 권한이 어디까지 강해질지 상상하기도 싫군.”

지난 석 달 동안 온갖 개고생을 하며 사령관의 지위를 따냈다지만, 이번 일로 그 고생이 모조리 물거품이 되게 생겼다.

그때, 옆에 있던 세티안이 얼굴을 구기며 말했다.

“이젠 권한이 문제가 아니야.”

아직 젊음의 혜택을 누려야 할 세티안의 눈가엔, 어느새 작은 주름이 져 있었다.

“마계 백작의 단독 토벌? 이건 진짜여도 문제고 거짓이어도 문제야.”

옆에서 조용히 과자를 씹던 레티안이 그 말을 받았다.

“진짜라면 네르하의 무력이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났단 뜻이고.”

“거짓이라면 류레이아가 아예 네르하 쪽으로 붙어 버렸단 소리겠지. 망할!”

절규에 가까운 세티안의 탄식에 바멜의 표정 역시 구겨졌다.

가능성을 따지면 후자 쪽에 쏠리지만 마계 백작과의 전투에 대한 목격자가 최소 수백에 달한다는 것도 마음에 걸린다.

그들 역시 고생하며 세 명의 마계 백작을 토벌했다지만, 단독 토벌은 그 격이 다른 위업이었으니까.

“이젠, 정말로 마왕을 우리 힘으로 토벌하는 게 아닌 이상, 역전의 가능성은 없어.”

“이대로 북방 원정이 끝난다면, 네르하의 위상은 바스텔 형님이나 마하 누님과 경쟁이 가능할 정도로 상승할 거다.”

바스텔과 마하의 이름이 나오는 순간, 그들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압도적인 소가주 후보로서 절대적인 위상을 자랑하던 바스텔 로저 라데우스와.

형제자매 중 유일하게 그 바스텔에게 비빌 수 있을 정도의 위엄을 자랑하던 마하 엘자란 라데우스.

이 두 사람과 비교 대상에 올랐다는 것만으로도 다른 직계들의 초조함은 극에 다다르고 있었다.

그때, 그들의 막사 안으로 누군가가 들어왔다.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

“아르바 형님?”

그들의 앞에 나타난 건 요즘 자신들의 가장 큰 조력자인 아르바 세타 라데우스였다.

“그게 무슨 말이죠, 오라버니?”

막사 안으로 들어온 아르바는 로브를 벗고 여유롭게 자리에 앉았다.

“마왕의 토벌, 그것을 우리끼리 이뤄 버리면 되는 문제 아니더냐?”

류레이아를 배제한 채 직계들과 그 세력만으로 마왕을 토벌한다?

아무리 마계 백작들이 전부 사라졌다지만?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원래라면 불가능하지.”

아르바는 어느새 바멜의 서랍에서 멋대로 위스키를 꺼내들었다.

“하지만, 마왕이 아무런 움직임도 취할 수 없는 상태라면 어떨까?”

그 말을 내뱉는 아르바의 눈엔, 아주 희미하지만 요사스러운 빛이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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