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144화 (144/237)

144화

<마왕령 (4)>

유성 소환!

그것은 북방 전역 개전 이전 라데우스 가문 수뇌부에서도 의견이 나왔던 것이었다.

라데우스의 압도적인 마법 전력을 이용해, 약 20여 발의 메테오를 퍼부어 북방 지역 전체를 초토화시키는 방법.

명실상부한 대이적 마법에 속한 마법이며, 고대로부터 온전히 내려온 몇 안 되는 9레벨의 술식이었다.

“그렇게 되면 이 북방은?”

“버리는 거지. 깔끔하게, 라고 말하고 싶지만.”

류레이아는 피식거리며 전선의 지도를 쓰다듬었다.

“다행히 개전 초기처럼 그 범위가 북방 전체에 이르진 않을 거다. 어디까지나 그 범위를 마왕령으로 집중시켜 타격할 셈이니까.”

그렇게 되면 적어도 북방 전체가 휩쓸리는 건 피할 수 있다.

물론 메테오로 인한 마법적 영향으로 환경 변화나 인근 생태계의 붕괴 같은 일이 벌어지겠지만.

“그 정도면 충분히 감수할 수 있을 정도겠지.”

“서리 일족의 동의는 어떻게…….”

“그건 너희들이 알 바가 아니다.”

생각보다 단호하게 잘라내는 말투에 네르하는 살짝 고개를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분노로 가득 찬 클로이아가 당장이라도 따지려고 나서려 했다.

‘흠, 뭔가 이상한데.’

네르하는 그녀의 어깨를 다독이며 생각했다.

그녀는 리브라의 인솔 교수였지만 북방 한정으로 서리 일족 족장 대리인 신분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통보조차 없었다는 건 상당한 외교적 결례였다.

‘뭔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협의가 있었나?’

네르하가 본 류레이아와 엘로이아는 동격의 마법사로서 어느 정도 서로를 존중하는 면이 있었다.

게다가 대화를 보면 나름 교류도 있는 것 같았는데, 갑자기 이런 식으로 상대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는 건 명백하게 이상했다.

“앞서 말했듯, 마왕령의 공략은 세 방향으로 진행된다. 이 일전에 예비대를 제외한 전군이 모두 투입되며 지휘관은 다음과 같다.”

류레이아가 중앙을 짚으며 말을 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중앙군은 내가 맡는다. 적의 전력이 가장 집중되어 있는 곳이니만큼 내가 직접 나서야겠지.”

당연히 반대는 없었다.

“동쪽 루트의 책임자는 장로 게레온 라데우스가 맡는다. 그 휘하로 바멜 라데우스, 레티안 라데우스, 세티안 라데우스의 부대가 배속된다.”

의외로 직계 네 명이 모두 몰려 버린 편성이었지만, 어째서인지 그들에겐 불만이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쪽 루트인데…….”

류레이아의 시선이, 네르하에게로 향했다.

“네르하 라데우스, 너를 서쪽 방면의 지휘관으로 임명한다.”

“말도 안 됩니다!”

대번에 여기저기서 반발이 튀어나왔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네르하 도련님이라뇨?”

“동쪽 방면에 무려 네 분이나 되는 직계를 몰아넣고, 서쪽엔 네르하 도련님 하나라니?”

“아무리 총사령관님이라 해도 이건 편애가 지나치십니다!”

수뇌부 중 거의 절반 이상이 일어나며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루드빅이나 바멜 같은 직계들 역시 대번에 표정이 구겨졌다.

네르하가 서쪽 방면을 맡는다는 건, 기존 네르하에게 배속된 2개의 전투마법사단만을 이끄는 게 아니었다.

기존 서쪽 방면에 배치된 ‘세력 전체’를 맡는다는 뜻이었다.

그 말은 즉.

“내가 네르하를 추천했다.”

“지, 지렌 장로님?!”

거동이 힘들어 휠체어에 신세를 지고 있던 지렌이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내가 내 후임을 총사령관에게 추천한 건데, 뭔가 문제라도 있나?”

원정군의 2인자나 다름없는 지렌이 입을 열자, 다른 이들의 입이 대번에 다물어졌다.

“아, 아무리 그래도 경험이 부족한 네르하 도련님에게 총지휘를 맡긴다는 건…….”

한 전투부대의 대장이 미련을 놓지 못하고 항의했지만.

“네르하는 내가 기습을 당해 부상을 입었음에도, 후임으로 훌륭하게 부대를 수습해 방어전에 성공했고 단독으로 마계 백작을 토벌했다.”

“그, 그건!”

“실력과 지휘력이 증명되었는데 나이는 상관없지. 아니면 내 판단이 틀렸다고 말하는 건가, 페트릭 바스문드?”

“아, 아닙니다, 장로님!”

날이 서린 지렌의 눈빛에 상대는 대번에 꼬리를 말았다.

지렌이 이렇게까지 나오자, 더 이상의 불만은 있어도 나올 수가 없었다.

류레이아가 그 모습을 보곤 코웃음을 쳤다.

“결정된 것 같군.”

네르하는 조금 의외라는 눈빛으로 지렌을 바라보았다.

‘음, 이렇게까지 밀어줄 줄은 몰랐는데.’

네르하에게 목숨을 구명받은 만큼 그 은혜를 갚기 위해 뭔가 대가를 치를 거라 예상되었지만.

설마하니 이런 최종 국면에서 자신의 휘하 부대 전체를 통째로 넘겨 버릴 줄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드르륵!

지렌의 뒤에 있던 부하가 휠체어를 네르하 쪽으로 밀었다.

그렇게 휠체어가 네르하를 지나치던 순간.

“잘 해 봐라.”

“……!”

지렌은 그 말을 끝으로 회장을 나가 버렸다. 쿨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작전의 시작은 바로 내일이다. 사령관들은 각 부대를 수습하고 세부 전략에 대한 회의를 진행하라.”

각 루트에 대한 돌입과 대전략은 수립되었지만, 어떻게 전투를 진행할지, 부대의 편성을 어떻게 결정할지는 어디까지나 지휘관의 재량이었다.

“알겠소, 총사령관.”

“명을 받들겠습니다.”

두 명의 지휘관, 네르하와 게레온 장로가 침묵 속에서 명령을 받았다.

* * *

“괴, 굉장합니다, 주군! 하, 한 전선의 총지휘관이라뇨! 그것도 임시가 아니라 정식으로!”

“과연 주군이십니다!”

우거지상이 된 본진과는 다르게 네르하의 수하들은 축제 분위기에 빠졌다.

자신의 주인이 다른 직계들을 뛰어넘는 대출세를 했다.

인생의 갈림길에서 한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받은 만큼, 그들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네르하는 그들의 기쁨에 찬물을 끼얹었다.

“일단 모든 게 결정 난 건 아니다. 마왕 토벌이 실패한다면 이 모든 영광이 사라진다는 걸 명심해라.”

“예, 옙!”

나지막한 네르하의 말에, 수하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어깨를 바짝 좁혔다.

“앉으십시오, 사령관님.”

지렌의 부관인 그란드 데니시온이 정중하게 지렌이 앉았던 상석을 네르하에게 권했다.

그는 지렌을 따라 라데우스 본가로 귀환하지 않고 네르하를 보좌하기로 결정되어 있었다.

“그래.”

네르하는 망설이지 않고 상석에 앉았다.

기존 수하들은 물론, 세드릭과 다르미안, 그란드를 포함해 지렌 휘하에 있는 부대장급 마법사들이 즐비해 있다.

아마 이들만으로도 충분히 대륙에 이름 높은 마탑 하나 정도는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내일 있을 서쪽 방면 공략을 세우기 전에.”

저벅!

“새로 온 식구들부터 소개하지.”

네르하의 말이 끝나자 바깥에서 귀여운 단발의 여인이 들어왔다.

그녀는 하늘 같은 상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양처럼 덜덜 떨며 자신을 소개했다.

“마, 마하타 세스타스입니다. 이번에 증원된 특수작전대 아크의 분대장으로서 네르하 사령관님 부대 휘하에 배속되었습니다.”

“분대장?”

대장도 아니고 일개 분대장이 튀어나오자 몇몇 이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 상황을 네르하가 대신 설명했다.

“마하타는 내가 총사령관에게 직접 요청하여 그녀의 분대만을 특별히 빼 온 거다. 전투엔 내보내지 않고 내 직속으로 활동할 거니 그리 알도록.”

아크 전체를 요청한다면 당연히 거부되겠지만, 마하타나 그 분대 하나 빼 오는 정도라면 현재 네르하의 권한으로 충분히 가능했다.

‘마하타가 오다니, 운이 좋군!’

애초에 본가에서의 증원에 아크가 포함된 것을 알았을 때 네르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마지막 작전을 앞두고 나름 못된 흉계를 꾸미고 있는 네르하로선, 세뇌라는 특수능력을 가진 마하타의 존재는 상당히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히이이익!”

다만, 능력의 흉악함에 비해 저 소심한 성격은 아직도 고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지만 말이다.

“큼! 그 외에도 서리 일족이 우리 쪽에 합류한다. 규모는 이전 아스타로스 토벌 때와 마찬가지로 전사장 바실리를 포함한 50여 명이다.”

“오오!”

“서리 일족이!”

당연한 말이지만, 강력한 전력을 지닌 서리 일족의 합류를 거부하는 이는 없었다.

“총사령관의 명령으로 네 번째 부대는 이미 행동에 들어갔다.”

전투에 참여하지 않는 마지막 네 번째 부대는, 현재 마왕령을 핀포인트로 잡고 대이적 마법 ‘미티어 스트라이크’에 대한 영창에 들어간 상황이었다.

무려 9레벨에 속하는 마법이니만큼 마법사 부대 두 개가 3일에 걸쳐 주문만 줄기차게 읊어야 하는 고난의 작업이었다.

“영창에 3일, 운석이 내리꽂는 데 하루. 즉, 우리는 4일 안에 마왕을 격살하고 그 지역을 탈출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 시간이 지나게 되면…….”

“적어도, 직격 지점에 있다면 살려는 생각은 그만두게 되겠지.”

“…….”

꿀꺽!

누구인지는 몰라도 목울대가 꿀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생명을 건 타임 어택 미션이라니!’라고 한탄하는 소리도 들려온다.

그때였다.

똑똑!

“실례하겠습니다, 네르하 사령관님.”

막 세부 작전을 기획하려던 찰나, 류레이아가 보낸 사자가 찾아왔다.

“무슨 일이지?”

“총사령관님의 전언입니다. ‘그녀’가 행동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래?”

예상보단 빠르지만, 어쨌든 상대는 약속대로 움직였다.

네르하는 마왕령 너머에서 반역을 꾸미는 ‘그녀’를 향해 건승을 빌었다.

‘부디 놈이 성공했으면 좋겠군.’

* * *

‘그녀’의 행동은 기습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크아아악!”

“막아라!”

마왕령의 중심부를 지키고 있는 마족 전사들이 비명과 고함을 내질렀다.

그들이 적대하고 있는 건 인간이나 다른 중간계의 생명체들이 아니었다.

그들의 앞에 선 것은, 다름 아닌 자신들의 동포인 ‘마족’.

그나마 고위 계급이라 할 수 있는 마계 자작 알로케스가 자신들을 공격하는 원흉을 향해 소리쳤다.

“아스타로스! 감히 속주(屬州) 주제에 주군을 배반하려고 하느냐?!”

“후후후, 주군이라. 재밌는 말을 하는구나.”

딱!

아스타로스가 손가락을 튕기자 그녀의 최측근인 오르가쉬가 달려들었다.

대번에 수많은 뱀의 잔영들이 알로케스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오, 오르가쉬! 네놈이!”

“후후, 같은 자작위끼리 붙도록 하죠.”

신사적인 미소를 짓고 있던 오르가쉬의 표정이, 마치 다른 사람처럼 급격하게 일그러졌다.

“감히 나의 주군께 ‘주제’라는 단어를 써?”

“보, 본진의 방어가 비어 있을 때 기습을 하다니!”

마왕 비슈나르는 직속으로만 무려 50여 개체에 달하는 마계 귀족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라데우스의 공세를 대비해 세 갈래로 나뉘어 출진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본진에 남아 있는 마계 귀족은 고작 다섯 체.

아스타로스는커녕 그 수하들조차 쉽게 감당하기 힘든 전력이었다.

그렇게 수하들이 다른 마계 귀족들을 붙잡아 두는 사이.

아스타로스는 느긋하게 비슈나르가 우화 중인 거대한 검은 꽃봉오리에 다가갔다.

“후후후, 비슈나르여. 나를 굴복시킨 증오스러운 자여.”

아스타로스의 꼬리가 갈라지며, 수많은 촉수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녀의 ‘기원’에 걸맞은 상대의 힘을 강탈하는 권능.

그 촉수들을 꽃봉오리에 조준한 아스타로스는 마치 약에 취한 듯한 황홀한 미소를 내지었다.

“그대가 과연 이 상황을 예견하고 우화를 시도했는지 궁금하구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