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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145화 (145/237)

145화

<배신 (1)>

아스타로스는 무언가에 홀린 듯한 표정으로 꽃봉오리를 향해 다가갔다.

그럴수록 주변에선 비명과도 같은 비난이 쏟아졌다.

“아스타로스! 네놈이 이런 짓을 벌이고도 무사할 것 같으냐?!”

“네년은 마계에서 반드시 그 대가를 받게 될 것이다!”

그들은 전원 비슈나르 휘하의 마족들이었다.

아스타로스는 오히려 그런 그들을 비웃었다.

“후후, 내가 여기서 실패한다면 그렇게 되겠지.”

마계에서 작위 한 단계의 차이는 절대적이다.

그 간격을 넘기 위해서는 단순히 목숨을 건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었다.

비슈나르가 우화 중인 꽃봉오리에 도달한 아스타로스가, 멍하니 이런 말을 중얼거렸다.

“태초부터 지금까지, 마족의 역사는 약육강식의 역사. 이것을 부정하는 자는 없느니라.”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정면으로 맞붙었을 때의 일일 뿐.

“신이라 칭송받는 찬란한 마계의 공작들조차도, 태초에는 자신의 격을 높이기 위해 어떤 더러운 짓도 서슴지 않았지.”

꽃봉오리를 바라보는 아스타로스의 입가에 호선이 맺혔다.

“비슈나르여. 그대 역시 이자카르의 뒤를 치고 후작위의 자리에 오르지 않았더냐?”

이건 아스타로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마계의 마족 중에서도 가장 비천하게 다뤄지는 소모품인 ‘몽마(夢魔)’.

타인의 정을 갈취하여 자신의 힘으로 삼는 특성이 있지만, 몽마들은 그 힘을 제대로 쌓기도 전에 다른 마족에게 강탈당하는 불가촉천민이나 다름없었다.

비천한 몽마였던 아스타로스가 그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발악했던 시간은 고작 1, 2천여 년 정도가 아니었다.

“만 년. 만 년이야. 가장 밑바닥에서 기어오른 내가, 이제 마계에서 왕이라 불리기까지 걸린 시간이!”

이 꽃봉오리 안에 담긴 비슈나르의 힘만 흡수할 수 있다면.

분명 그리될 수 있으리라.

한참 동안 꽃봉오리를 관찰하던 아스타로스는 약간 김빠진 기색으로 고개를 저었다.

“분명 뭔가 함정이라도 있을 줄 알았더니, 정말 아무런 방비도 하지 않은 건가? 실망이군.”

꼬리에서 갈라진 촉수들이 막 꽃봉오리에 박히려고 할 때였다.

‘무언가’에 취해 있던 아스타로스의 정신이 번쩍 깨어났다.

“거기까지 하시게나, 친구.”

오싹!

묵직하지만 다정한 만류. 아스타로스는 그 순간 전신에 오한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 목소리의 정체를 알아챈 순간, 그가 비슈나르가 남긴 마지막 안배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너.”

천천히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아스타로스였지만.

그곳엔, 목소리의 주인공과 함께 거대한 뱀의 형태를 한 무언가가 전신이 찢긴 채로 널브러져 있었다.

―끅! 끄으으윽!

그녀의 동공이 거대해졌다.

“오르가쉬? 대체, 언제?”

―도, 도망…… 아스타로스 님, 도망가십……!

오르가쉬는 어느새 인간 형태가 아닌 본래 모습인 요르문간드의 자식으로서의 모습을 현현한 상황이었다.

못해도 치열한 전투가 있었다는 건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이 내가, 전투의 기색조차 느끼지 못했다고?’

절대로 상대가 은밀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감각’이 누군가에게 농락당했다는 게 옳았다.

씨익!

그 순간.

저 꽃봉오리 안쪽의 ‘무언가’가 자신을 비웃고 있다.

아스타로스는 그제야 눈치챘다.

저 꽃봉오리에 가까이 간 순간, 비슈나르의 함정에 빠져 시간 감각이 마비되었고.

그사이 크루갈이 자신의 부하들을 습격해 정리했다는 것을!

“네놈, 크루갈!”

“오, 오! 흥분을 가라앉히게, 친구. 시도 때도 없이 흥분하는 버릇은 여전하군.”

치지지직!

아스타로스의 양 뿔에 전격이 뭉친 분홍색 구체가 맺혔다.

“멋지군.”

콰앙!

전격이 터지면서 기다란 광선이 크루갈의 육체를 덮쳤다.

기습적으로 강력한 일격을 퍼부은 아스타로스가 인상을 구겼다.

“영역을 사용하지 않는 무투파 마족. 그래서 내가 기척을 눈치채지 못한 거구나.”

“하하하, 정답일세.”

자신의 일격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낸 크루갈의 모습이 보인다.

‘바르마렉보다 훨씬 강해!’

마계에서의 평가야 둘이 거의 비슷하다고 한다지만, 실제로 보는 강함의 차이는 그야말로 천지 차이다.

아스타로스는 이를 갈았다.

어째서 남쪽에서 패배하고 마계로 쫓겨난 놈이 여기에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놈의 존재 때문에, 자신이 들인 모든 공이 수포로 돌아가게 생겼다.

“어째서냐?”

“으응?”

“넌 비슈나르를 싫어하지 않았나? 동료를 배신하는 행위를 무엇보다 싫어하는 놈이지 않나!”

“뭐, 그렇지.”

크루갈은 이전 네르하 라데우스에게 비슈나르의 존재를 오픈하여, 북방의 상황이 대거 꼬이는 나비효과를 초래한 장본인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크루갈이 비슈나르의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다시 싸울 수 있게 해 주겠다더군.”

“뭐?”

“크흐흐흐!”

마치 마약을 맞은 것같이, 크루갈의 표정이 황홀하게 일그러졌다.

“그 인간과 다시 싸워 보고 싶다. 놈의 심장을 꺼내 그걸 씹어 먹고 싶다. 다시 한번, 그 지고의 쾌락을 느껴 보고 싶단 말이다!”

캬하하하!

마치 조울증 환자처럼 광소를 내지르는 크루갈의 모습에, 그녀는 잘근잘근 자신의 입술을 씹었다.

“네르하 라데우스으으으!”

괴성과 함께, 어마어마한 기파가 크루갈의 몸에서 터져 나왔다.

아스타로스가 다급히 크루갈에게 딜을 제시했다.

“그, 그렇다면 이건 어떠하냐? 비슈나르의 힘을 너와 내가 나눠 가지는 것이다!”

“시끄럽구나.”

퍼엉!

뭔가를 인식하기도 전에.

아스타로스의 팔이 날아갔다.

“난 네년이 말한 것처럼 신의를 저버린 것들을 혐오하거든.”

“끄으으읍!”

팔과 함께 등에 붙어 있던 날갯죽지 일부분까지 함께 날아갔다.

그녀는 같은 마계 백작이라 해도, 타입에 따라 이렇게까지 전투력의 차이가 난다는 것에 절망했다.

그 순간.

“아스타로스 니이이임!”

‘죽은 척’을 하고 있었던 오르가쉬가 피투성이가 된 몸을 필사적으로 세워 크루갈에게 달려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나마 목숨 줄을 유지하고 있던 아스타로스 휘하 마족들 역시, 오르가쉬를 따라 크루갈을 향해 마력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일점포화에 노출된 크루갈은.

“멍청한 것들.”

불길을 향해 날아드는 부나방들을 향해 웃음을 내지었다.

* * *

“자자! 빨리 움직여라! 다른 방향으로 간 부대보다 뒤처지면 안 된다!”

“하이네! 길을 뚫어라! 기병의 이동로를 확보해!”

수많은 인파가 몰려 있음에도 자신의 할 일을 다하는 전장.

능수능란하고 유기적인 집단의 모습을 보며, 네르하의 수하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다시 봐도 적응이 안 되는군요. 주군이 저 거대한 군대의 총사령관이 되셨다니.”

“대체 했던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하는 거야?”

“하하하, 이렇게 직접 모습을 보는 건 또 새로우니까. 네가 이해하라고.”

어쩌면 북방 전선의 마지막이라 할 수 있는 작전이 시작되었지만, 네르하의 수하들은 여전히 들떠 있었다.

그 이유는 당연히 네르하의 파격적인 승진 때문이었다.

‘북방 전선 사령관의 직속 수하. 리브라를 졸업하면 대체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빌어먹을 제임스 놈. 자작가 출신이라고 날 그렇게 깔봤겠다? 이제 내가 네놈 위에 서 주마!’

특히나 실마연의 수하들이 좀처럼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그걸 인지하고 있던 디센트 맥퀸이 따로 그들을 불러 주의를 줄 정도였다.

“모두 긴장 풀지 마라. 여기까지 와서 허무하게 죽을 셈이냐?”

“아, 아닙니다.”

“잘 들어. 잘난 건 주군이지 우리가 아니야. 그분의 덕을 받아 우리가 이번 전장에서 큰 성취를 보였다지만, 그래 봤자 우리 수준으론 저 하이네나 살로페 같은 전투마법사단의 말석에 간신히 들어갈 수 있을까 말까 한 정도란 말이다.”

삼마자의 휘하로서 라데우스의 후계들을 위해 준비된 그들은, 당연하지만 가문 내부 전투마법사단 중에서도 상당히 높은 지위에 있었다.

일반적으로 리브라를 졸업했다고 이곳에 바로 입단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현실을 깨우쳐 주는 디센트의 말에, 수하들의 표정이 대번에 시무룩해졌다.

하지만 디센트는 멈추지 않았다.

“무엇보다, 우린 주군의 ‘호위대’다. 주군은 절대 뒤에서 아군을 지휘하는 성향이 아니야. 누구보다 앞장서 수하들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분이다.”

꿀꺽!

그런 이를 호위하려면 목숨이 몇 개나 있어도 모자라다.

디센트가 보기엔 눈앞의 놈들은 다 죽고 싶어 안달 난 것처럼 보였다.

“정신 똑바로 차려. 영광도 살아 있어야 누리는 법이다. 주군을 향해 달려드는 마족들에게 쓸려나가고 싶지 않다면, 끝까지 긴장의 끈을 조이고 살아남는 것에 집중해.”

“아, 알겠습니다!”

“우리가 북방으로 온 처음 목적을 상기해. 우린 생각보다 큰 것을 이루었어. 자만하지 말고, 방심하지 말고, 무조건 살아남는 데만 집중해라.”

“넵!”

우렁찬 목소리가 막사 바깥까지 울려 퍼졌다.

근처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네르하와 그 일행들은 선배들의 기합소리에 미소를 내지었다.

‘따로 얘기하지 않아도 되겠군.’

확실히 오늘 아침 보였던 수하들의 정신 상태가 전투까지 이어졌다면, 열에 아홉은 전사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심각했다.

원래라면 네르하나 인솔 교수인 클로이아가 직접 나서서 분위기를 다잡아야 했다.

하지만 네르하는 총사령관으로서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았고.

클로이아의 경우엔.

“…….”

어젯밤 서리 부족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정신이 완전히 그쪽으로 향해 있었다.

* * *

“클로이아 블루벨벳. 오늘부터 네가 서리 일족의 족장이다.”

“그, 그게 무슨 소리예요, 삼촌?”

어젯밤 동쪽 전선의 작전 회의가 끝난 이후.

서리 일족의 전사장 바실리 블루벨벳은 충격적인 소식을 가지고 진영에 합류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갑자기 족장으로 임명된 클로이아는 크게 반발했다.

“이렇게 뜬금없이 말인가요? 할머님이 제 사정을 모르는 건 아닐 텐데요?”

그녀는 서리 일족을 대표로 라데우스에 보내진 인질.

그리고 현재는 리브라의 교수로 아이들을 지도하는 입장이다.

“이미 결정 난 일이다.”

“할머님을 뵈어야겠어요!”

“족장님께서는, 며칠 전부터 모습을 감추셨다.”

“지금, 뭐라고요?”

“말 그대로다. 그분께선 네게 족장의 자리를 위임한 이후 단독행동에 들어가셨지.”

“……어째서? 무엇 때문에?”

클로이아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주저앉았다.

현재 상황에서의 단독 행동.

그건 결코 좋은 의미가 될 수 없었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던 네르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결국 결정을 내렸나?’

그녀가 결정을 내렸다면, 클로이아 역시 결정을 내려야 한다.

“클로이아.”

“네, 네.”

“결정을 내릴 때가 온 것 같다.”

“무엇을 말이죠?”

그녀의 멍한 반문에, 네르하는 목에 힘을 주며 이렇게 말했다.

“서리 일족의 미래에 대한 것을.”

“……!”

클로이아는 물론, 바실리까지 굳은 표정으로 네르하에게 시선을 돌렸다.

네르하는 알 것 같았다.

한평생 서리 일족에 대한 책임감만을 가지고 살아온 엘로이아 블루벨벳이.

무슨 결정을 내렸는지를.

그렇기에 그 결심을 존중하고, 받아들여야만 했다.

서리 일족은 물론, 네르하 자신을 위해서도.

“클로이아.”

나는 그녀에게 다가올 잔혹한 미래를 예견하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너는, 네 조모와 대적할 준비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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