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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156화 (156/237)

156화

<북방 결전 (6)>

부우웅!

흰색의 서리와 푸른색의 서리가 부딪치며 거대한 냉기의 용권풍이 생겨났다.

그 용권풍은 승천하는 용처럼 잠시 하늘을 수놓더니, 곧 사라지고 말았다.

“훌륭하구나.”

엘로이아는 완벽하게 자신의 공격을 차단한 손녀를 향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영역을 제외한 모든 면에서, 너는 나와 거의 대등한 기량을 이루었다. 네가 자랑스럽구나.”

“헛소리하지 마세요.”

자신의 조모를 향해 불경한 말을 내뱉은 클로이아였다.

“정작 그 영역을 이루지 못했다면, 설사 다른 부분에서 모든 기량을 초월했다고 해도 패배는 막을 수 없겠죠.”

그 말대로였다.

지금 두 사람의 대결을 그나마 박빙이라고 칠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영역을 사용하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뿐.

“하지만 내가 영역을 사용해도 버틸 자신이 있기에 이렇게 나선 거 아니었니?”

“네, 그건 그래요.”

“그렇다면, 증명해 보거라.”

후욱!

한순간, 주변의 공기가 가라앉았다.

주변을 둘러싼 엘로이아의 영역이 급격히 늘어나며, 하나의 권역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심상각인영역, 천년여왕(千年女王).

엘로이아 블루벨벳의 복장이 마치 신부복처럼 새하얀 드레스로 바뀌어 갔다.

저건 면직물이 아닌, 서리와 의념으로 이루어진 의복.

저 의복이 재구축되는 순간, 클로이아의 승산은 0이 되리라.

하지만 그때.

파삭!

“……!”

서리로 이루어진 드레스 자락이 갑자기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갈라지기 시작했다.

파삭파삭파삭!

‘……이건!’

서리가 의념의 통제를 벗어나 제멋대로 폭주한다.

이대로 내버려 두다간 제어에 실패해 자기 자신을 상처 입힐 게 분명했다.

엘로이아는 다급하게 영역을 해제했다.

거칠게 휘몰아치던 권역이 다시 거짓말처럼 잠잠해졌다.

“설마, 네가 이런 수법을 쓸 줄이야!”

그녀는 방금 이 폭주의 원인이 자신의 손녀에게 있다는 걸 대번에 알아차렸다.

영역 상쇄!

지금 클로이아는 이전 네르하가 마족 뮬란의 마계 영역을 박살 낼 때 사용했던 방법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답습했다 해도, 이건 영역에 대해 어느 정도 깨달음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너의 깨달음이, 확실하게 7레벨 후반부에 이르렀구나!”

즉, 현재 클로이아의 실력은 라데우스의 장로들과도 능히 호각을 이룰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는 뜻이었다.

“하나 무모하구나. 이런 식으로 영역의 형성을 상쇄하는 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다.”

괜히 네르하가 리바운드를 염려하며 엘로이아에게 상담을 요청했던 게 아니었다.

“맞아요. 하지만, 나름 확신이 있었어요.”

그녀는 이미 네르하가 어떤 식으로 마계 영역을 상쇄했는지, 그 과정을 직접 옆에서 보았다.

거기에 더해.

“할머니의 영역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는, 어렸을 때부터 수없이 봐 왔으니까요.”

비록 의념과 영역에 대한 것은 자세히 사사받진 않았지만.

그녀는 엘로이아의 천년여왕이 어떤 식으로 형성되는지 본인을 제외하면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다.

“무언가 준비를 해 왔다는 건 눈치챘다만,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몰랐구나.”

엘로이아의 눈빛엔 대견함이 깃들어 있었다.

사실상 빙정의 힘을 끌어오지 않는 이상, 승부를 뒤집을 수 없다는 게 증명된 것이었다.

“네가 이렇게까지 성장했으니, 이젠 정말 안심하고 일족의 미래를 맡길 수 있겠구나.”

마치 이별을 암시하는 듯한 한마디.

“……할머니?”

그리고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푸욱!

검은 촉수가 엘로이아의 심장을 꿰뚫었다.

아니, 심장을 넘어 상체 전체를 관통했다.

“……!”

클로이아의 동공이 더할 나위 없이 커진 순간.

억류하는 피를 강제로 게워 내던 엘로이아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빙정에, 모든 진실을 새겨 놓았단다.”

“하, 할머니?”

“지금부터, 네가, 만년빙정의, 계승자다.”

쑤욱!

그 말이 끝나자마자, 촉수에 꿰뚫린 엘로이아의 육체가 그대로 검은 꽃봉오리 속으로 끌려가고 말았다.

그 모습을 무력하게 바라보던 클로이아가 손을 내뻗으며 절규했다.

“할머니!!”

* * *

―이건…….

크루갈은 자신을 관통한 촉수가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비슈나르, 진체로 현신할 힘을 빌려준 목적은, 내 육체였던가?

꾸욱!

―애초부터 날 소환했던 건, 이런 식으로 잡아먹으려던 생각이었나.

크루갈은 강제로 촉수를 떼어 내려고 했지만, 어째서인지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애초에 소환에서부터 진체 변신까지 비슈나르의 힘만으로 이루어진 만큼, 이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몰랐다.

푹! 푹! 푹! 푹!

곧이어 수십 가닥의 촉수가 추가로 튀어나와 크루갈의 몸을 관통했다.

오러조차 튕겨 버릴 강대한 크루갈의 육체였지만, 이 검은 촉수의 침입은 아주 쉽게 허용하고 말았다.

크루갈은 하늘을 바라보며 탄식했다.

―적어도, 승부 자체는 내고 싶었는데.

그 순간, 크루갈의 육체가 순식간에 쪼그라들며 미라처럼 메말라 갔다.

―원통하군. 끄르르륵!

두 번이나 중간계에 나타나 네르하의 앞길을 막아섰던 강적.

마계 백작 크루갈의 최후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허무하고 비참한 결말이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크루갈의 죽음이 아니었다.

네르하가 다급하게 류레이아에게 일갈하듯 소리쳤다.

“총사령관!”

“중앙군, 전원! 발사하라!”

그녀 역시 충분히 현재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렸다.

지금까지 좌우 양군의 보호를 받으며 마법을 영창하던 중앙군이, 본격적으로 뒤를 바라보지 않고 전면에서 마법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그 모든 것이 최소 7레벨 이상.

외부 마나를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분대, 혹은 소대 단위로 서클의 마력을 모아 모든 역량을 투입한 일격이었다.

순수 엘리멘탈 계열의 마법들은 물론, 파괴력으로는 발군이라는 플라즈마, 아케인 계열의 고유마법들 역시 일괄적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피해, 루시아!”

그 파괴력은 충분히 산맥을 밀어내고 지도를 바꿔 버릴 수 있을 지경.

여파만으로도 어지간한 방어마법 정도는 찢겨 버릴 수 있으니, 피하는 게 여러모로 이로웠다.

“으, 으윽!”

네르하와는 달리 육체의 내구성이 그리 강하지 않은 루시아는, 몇 번의 공방만으로도 이미 내부가 걸레짝이 된 상황이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남았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루시아의 실력은 극찬받아 마땅했지만.

네르하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휘청이는 그녀를 옆구리에 껴안고 필사적으로 충격의 범위에서 벗어났다.

쿠―웅!

쿠구구궁!

마치 천지가 개벽하는 듯한 굉음과 진동. 그리고 새하얗게 물든 시야가 한동안 이어졌다.

그렇게, 거의 수 분 이상의 공세가 끝나고.

북방 원정군은 연기와 수증기 속에서 별다른 상처 없이 활짝 만개하기 시작하는 꽃봉오리를 보고 말았다.

“이럴 수가…….”

순수 파괴력의 총합으로만 따진다면 메테오를 떨어트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대이적 마법에 버금가는 위력을 직격으로 얻어맞고도, 비슈나르의 꽃봉오리는 여전히 건재했다.

그렇게, 마기에 휩싸인 꽃봉오리의 중앙에서.

매끈한 여성의 나신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전군 후퇴. 수단, 방법, 피해를 가리지 않고 무조건 마왕령을 벗어난다.”

“초, 총사령관!”

사실상 도주를 택한 그녀의 선택에 엘프 부관들이 목소리를 높였지만.

류레이아의 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북방을 벗어나 라데우스 본가로 후퇴한다. 저건, 저건 사실상…….”

8레벨의 대마법사가 두려움에 젖어 목소리를 떨었다.

“본가의 역량만으론 감당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야.”

* * *

“하아, 드디어.”

마왕, 비슈나르가 쾌감에 젖은 한숨을 내뱉었다.

“처음으로, 제대로 된 몸으로 이 세상에 발을 내디뎠구나.”

지금껏 중간계에 강림한 마왕은 제법 되었지만, 현재의 비슈나르처럼 본체의 힘을 최대한 끌어온 마왕은 존재하지 않았다.

“다른 마왕들이 질투하는 게 눈에 선하구나.”

대륙 곳곳에서 숨을 죽이던 다른 마왕들이 지금의 비슈나르를 본다면 분명 질투에 몸을 떨 게 분명했다.

마계에서나 느낄 수 있었던 전능감을 만끽하던 비슈나르가, 천천히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다.

“일단은, 지금까지 날 지겹게 방해한 인간들을 모두 죽이고 나서 시작하자꾸나.”

저 인간들의 눈을 속이고 이런 결과를 만들기까지 받은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적어도 시야에 보이는 모든 인간들을 찢어발겨야만 화가 풀릴 것 같았다.

비슈나르가 막 꽃봉오리에서 발을 떼려던 찰나.

“멈춰.”

푸른 머리카락의 여인이 비슈나르의 앞을 막았다.

“아아, 너는.”

여인의 정체를 확인한 비슈나르가 재밌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 인간의 혈육이구나. 분명, 클로이아라고 했던가?”

의외로 비슈나르는 클로이아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왜 내 앞을 막았지?”

“그래서? 그래서라고?!”

클로이아의 눈엔 핏발이 맺혀 있었고, 눈물이 흐른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이, 개자식아! 왜, 어째서, 할머니를 죽였어?!”

“후후.”

“할머니는 널 위해 일했어! 아군을 배신하고 네 편에 섰다고! 그런데, 왜!”

비록 다른 의도가 있다고는 해도, 엘로이아 블루벨벳은 라데우스를 등졌다.

그리고 그 모습을 만천하에 보여 돌이킬 수도 없게 되었다.

“당연히, 이 몸이 인간 따위와의 약속을 지킬 리가 없지 않느냐?”

“……뭐?”

“언령의 계약도 아닌 단순한 구두 약속. 권속도 아닌 인간 따위의 약속을 지켜야 할 이유는 없구나.”

뚜둑!

클로이아의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끊어졌다.

“죽어어어엇!”

수십 자루의 얼음 창이 비슈나르를 향해 날아갔다.

그러나 당연한 말이지만, 단 한 자루도 비슈나르에게 닿지 않고 눈발로 화해 소멸했다.

“하찮은 인간이지만, 그래도 대를 잇는 자를 함께 죽인다는 건 각별하지.”

어느새 클로이아의 눈앞까지 다가온 비슈나르가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런 상대의 압도적인 위용에도, 분노에 몸을 맡긴 클로이아는 필사적으로 힘을 쏟아부었다.

“웃기지, 마!”

클로이아는 본능적으로 얼음칼 하나를 만들어 휘둘렀다.

핏!

“음?”

그리고 그 얼음칼이 비슈나르의 손바닥을 가르자, 자그마한 생채기가 생겨났다.

지금까지 줄곧 여유롭던 비슈나르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이건, 빙정의 힘이구나.”

“하악! 하악!”

“도망치지 않고 죽으러 온 건 운이 좋았구나. 후환을 이렇게 제거할 줄은 몰랐어.”

만년빙정에 담긴 신성한 힘은 확실히 위험했다.

“죽거라.”

화르륵!

검푸른 불꽃이 비슈나르의 손에 맺혔다.

그렇게 그 불꽃이 클로이아의 머리를 직격하기 직전.

콰앙!

저 멀리서 검은 불꽃이 비슈나르의 불꽃을 튕겨냈다.

“이건, 이자카르의 힘?”

마계에서도 심연이라 불리는 곳을 지배하던 존재.

그 힘을 먹어 치웠음에도, 여전히 끝을 알 수가 없는 존재.

마룡 이자카르, 그의 힘을 다루는 자라면 이 중간계에 오직 하나.

“네르하 라데우스, 너로구나.”

어느새 네르하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 모습을 드러내었다.

* * *

“저리 가 버렸는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총사령관님.”

엘프 부관이 약간의 경멸이 담긴 눈빛으로 네르하가 사라진 장소를 바라보았다.

“어쩌긴, 명령 불복종의 죄는 살아 돌아오면 물어야지.”

중앙군의 일제 포화가 통하지 않은 시점에서, 남은 건 본가의 힘을 총동원한 대이적 마법뿐.

원래라면 강제로라도 네르하를 제압해서 후퇴해야 하지만, 서포트에 모든 힘을 소모한 류레이아로선 네르하의 이탈을 막을 수 없었다.

“그러니 살아 돌아오게 해야지.”

“초, 총사령관님?”

엘프 부관은 ‘으쌰!’란 기합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난 자신의 상관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조금 전, 내 친구가 죽었다.”

“친구라고 하시면?”

부관의 반문에도 류레이아는 대답하지 않고 혼잣말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그 친구 년이, 왜 이런 짓을 벌였는지 알게 되었지.”

사대 신기라 불리는 신화시대 유물의 공명으로 인한 정보의 공유.

만년빙정의 주인이 이전되기 직전, 자신의 50년 지기 친구가 남긴 메시지.

“애초부터, 막을 수 없다고 여겼던 거야. 그래서…… 목숨을 걸고 독을 풀었어.”

위대한 마왕조차 쓰러트릴 수 있는 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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