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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165화 (165/237)

165화

<의심 (2)>

“네이하, 피하지 않으면 죽을 거다.”

네르하는 나름 무심한 티를 내며 그대로 엘리멘탈 볼텍스를 날렸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네이하가 다급하게 방어 마법을 영창했다.

“아, 아크 실드!”

일반적인 실드보다 훨씬 두껍고 단단한 막이 나타났지만.

“피하라니까.”

엘리멘탈 볼텍스는 아주 가볍게 네이하의 실드를 뚫어 버렸다.

“……!!”

그렇게 네이하의 머리통이 날아가 버리기 직전.

모든 걸 꿰뚫을 기색이던 엘리멘탈 볼텍스의 속도가 한순간 확 죽어 버렸다.

“이익!”

네이하는 그 틈을 타 몸을 날려 공격을 피했고.

콰과과광!

저택의 정원 일부가, 그대로 마법의 피해에 휘말려 쑥대밭이 되어 버렸다.

“헉! 헉!”

크게 숨을 들이쉰 네이하는 떨리는 눈으로 뒤쪽의 참사를 돌아보았다.

명백하게 자신의 역량을 초월하는 위력.

즉, 네르하의 경지가 네이하 자신을 훌쩍 뛰어넘었다는 증거였다.

“어, 어떻게 그사이에 이런 경지를……!”

“뭐, 많은 일이 있었지.”

네르하가 동생을 향해 물었다.

“더 해볼 테냐? 납득할 때까지 실컷 어울려 줄 수 있다만.”

그 말에 네이하는 자신의 지팡이를 꾹 쥐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네이하는 절대로 전력을 다한 게 아니었다.

아직 자기 역량의 반도 내보이지 않았고, 원한다면 더 다채롭고 강력한 마법을 네르하에게 쏘아 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

네이하의 이마에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단 한 번의 마법 교환.

천재인 네이하는 이 한 번의 교환으로 상대와의 역량 차이를 뼈저리게 느꼈다.

‘여기서 뭘 더 해 본다고 해도, 돌아오는 건 비참함 뿐이야.’

스스로 그 결과를 납득한 네이하는, 천천히 고개를 내저으며 지팡이를 거두었다.

“아니, 여기까지야.”

“그래? 조금 아쉽구나.”

네르하는 진심으로 아쉽다는 듯 손을 거두었다.

상대와의 차이를 깨닫고 포기할 줄 아는 것도 능력이지만, 네르하는 가능하면 동생이 승부 근성을 보이며 진심으로 달려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아니, 이건 무인으로서의 생각일 뿐이지. 네이하에게 강요할 바는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네이하가 새삼스럽다는 듯 네르하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정말 강해졌구나, 오라버니.”

“많은 일들이 있었지.”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이 정도로 강해졌다면, 오라버니는 정말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네.”

“……그래.”

네르하는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아직까지도 네이하와 했다던 그 ‘약속’이 무엇인지 기억나지가 않는다.

어지간히 세세한 과거의 일은 전부 기억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뭔가, 문제가 있는 건가?’

이 부분은 나중에 정신계 마법사와 상담을 한번 해 볼 필요성이 있을 것 같다.

네이하가 말했다.

“내년이면, 이제 나도 리브라에 들어가게 될 거야.”

“그러냐?”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나?

“그때가 되면, 선배로서 잘 부탁해. 오라버니.”

배시시 웃으며 말하는 네이하의 모습에, 네르하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그래, 기다리고 있으마.”

그렇게 두 사람의 마도전이 끝났다.

처음엔 크게 놀랐던 로젤리아였지만, 간신히 마음을 수습한 그녀는 이윽고 네르하의 성취에 크게 기뻐했다.

‘이제야 좀 체감이 드는 모양이군.’

저택 안으로 들어서면서 로젤리아가 호들갑을 떨었다.

“네르하와 네이하가 함께 리브라에 재적한다면! 리브라의 인재들을 끌어모으기 한결 수월해지겠군요. 아주 좋은 일입니다.”

네르하는 쓴웃음을 내지었고, 네이하 역시 뭔가 불만이라는 듯 살짝 볼을 부풀렸다.

‘참, 이 사람의 권력욕은 한결같아.’

과거에 품었던 그녀의 야망이 망상에 가까웠다면, 지금은 정말로 가능성이 생겼다는 점이 좀 아이러니다.

네르하는 그녀의 욕망이 딱히 싫지는 않았다.

“그건 중앙에 옮겨! 데코레이션 확실히 하고! 거기! 빨리빨리 움직이지 못해!”

“네! 집사님!”

저택 내부에선 요리사들이 바쁘게 음식을 운반하고 있었다.

3인 가족이 먹을 상에 거의 300인분이 나오는 건 확실히 좀 많이 사치스럽지만.

‘저택에 먹을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니 뭐.’

그런 상황에서 요리사들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한 청년 집사를 보자, 네르하의 입에서 실소가 흘러나왔다.

“오랜만이구나, 사미르.”

“헉! 네르하 도련님!”

까무잡잡한 피부를 지닌 이 사미르 에델이란 청년은, 네르하가 이 세계에 와서 접한 최초의 타인이었다.

네르하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사미르에게 다가갔다.

“뭐야, 수습 집사인 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야. 벌써부터 권력자처럼 보이는데?”

그 말에 사미르는 헤프게 웃으며 뺨을 긁적였다.

“권력자 맞습니다. 사실상 이 저택의 2인자나 다름없게 되었지요.”

“엥, 진짜?”

나름 장난스러운 질문이었는데,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사미르가 콧김을 뿜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집사의 권력은 모시는 주인님의 위상에서 나옵니다. 주인님의 위상이 과거와는 차원이 달라졌으니, 직속 집사인 저의 위상 역시 달라지는 건 당연한 일이죠!”

“……그러냐?”

이전 바멜에게 내통하다 로젤리아의 손에 갈려 버린 집사장을 제외하면, 사미르의 힘은 이 저택 내의 고용인들 중에선 제일이었다.

“빨리 도련님께서 리브라를 졸업하시고, 제가 옆에서 모시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빌고 있습니다!”

기합이 잔뜩 들어간 사미르의 말에 네르하가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후후, 그래, 그런 날이 언젠간 오겠지.”

정말 오랜만에 겪는 저택의 분위기에, 네르하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나쁘지 않군.’

처음 이 저택에 발을 내디뎠을 땐 이렇게까지 여유를 느끼지 못했다.

가능한 인간관계에 담을 쌓고 힘을 기르는 데 집중하였기에 몰랐었지만.

여유가 생긴 지금. 이런 분위기 속에서 가족은 물론 타인과의 관계에서 느껴지는 이 감정이.

썩,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마, 마님. 도련님. 크, 큰일 났습니다! 바, 밖에! 밖에!”

아쉽게도 이 감정은 그리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무슨 일이지? 오늘은 모든 방문을 거절하라고 했을 텐데?”

로젤리아의 싸늘한 눈빛을 마주하고도, 노년의 메이드장은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그만큼, 지금 바깥에 찾아온 손님의 정체가 어마어마하다는 방증일 것이다.

메이드장이 침을 꿀꺽 삼키며 로젤리아에게 방문객의 정체를 알렸다.

“지금 밖에, 시, 시엘 대부인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뭐, 뭐라고?!”

로젤리아의 얼굴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 * *

시엘 라데우스.

라데우스 가문의 안주인이며 가주 카이젤의 첫 번째 처.

하지만 가문 내에서 그녀가 차지하는 위상은 고작 첫째 부인 정도로 퉁칠 게 아니었다.

라데우스 가문의 실질적인 2인자.

수많은 권력자와 실력자가 즐비한 이 라데우스 가문에서, 2인자의 자리를 확고부동하게 유지할 수 있는 건 절대로 가주의 지원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었다.

개인의 실력, 지위, 수완, 카리스마.

모든 것에서 정점에 위치해 있어야만, 이 가문에서 2인자의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 * *

대부인, 시엘 라데우스는 외모부터가 로젤리아와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화려하고 날카로운 인상의 미인인 로젤리아와는 정반대.

푸른 머리카락에 단정하고 온화한 얼굴이 인상적인, 보기만 해도 마음이 포근하지는 유형의 미인이었다.

“가족들 간에 오붓한 식사 자리에 갑자기 들이닥쳐서 미안하군.”

“무, 무슨 말씀이십니까, 대부인? 우리 모두가 한 가족이지 않습니까? 그렇게 말씀하시면 서, 서운하군요.”

로젤리아는 그녀의 말에 필사적으로 딴죽을 걸었지만, 시선은 바닥을 향했고 목소리는 사정없이 떨리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시엘은 은은하게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후후, 그런가? 그렇다면 편하게 형님이라고 부르게. 대부인이란 호칭은 영 친근하지 않군.”

“제, 제, 제가 어찌 감히…….”

로젤리아는 시엘의 말 한마디에 그대로 침몰했다.

그런 모친의 굴욕적인 모습에 네르하는 신선한 감정을 느꼈다.

‘힘의 차이가 절대적이군.’

지금까지 아낌없이 권력욕을 보이던 것과는 딴판인 모습.

마치 토끼와 사자가 밀실에서 눈을 마주친 것 같다.

로젤리아에게서 시선을 거둔 시엘이 네르하에게 눈을 돌렸다.

“네르하야.”

“네, 대부인.”

“지금은 사석이니 편하게 부르거라.”

“예, 첫째 어머님.”

네르하는 망설임 없이 시엘의 말에 응했다.

그런 네르하의 태도에 시엘이 재밌다는 듯 살짝 미소를 내지었다.

“후후, 그래, 그래.”

네르하를 기특하게 바라본 시엘이 말을 이었다.

“내가 이렇게 온 건, 몇 가지 네게 물어볼 게 있어서다.”

그 말에 네르하는 속으로 침음을 삼켰다.

‘드디어 올 게 왔군.’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뒤에 물어볼 줄 알았는데, 이렇게 대부인을 직접 보낸 걸 보면 아무래도 가주의 호기심이 제법 큰 모양이다.

네르하는 소위 예스맨이 되어 조용히 고개를 조아렸다.

“하문하십시오.”

“그래,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마.”

시엘의 입에서, 예상대로의 질문이 흘러나왔다.

“가주님과 류레이아의 대담에서 확실하게 매듭을 짓지 못한 게 있었지.”

“제가, 마왕을 어떻게 처리했는지에 대한 일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그래, 맞다. 단순히 스타 플래티넘의 마력을 내뿜었다는 것만으로는 납득이 되지 않지.”

네르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사실 그때 질문하실 줄 알아 잠자코 있었습니다만, 지금 하문하셨으니 답하겠습니다.”

딱!

네르하가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나와, 이자카르.”

스으윽!

그 말이 끝나자마자, 네르하의 목을 휘감으며 검은 헤츨링이 물질계에 구현되었다.

그 헤츨링의 본질을 알아차린 시엘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것은!”

“네, 이 녀석은 마왕 이자카르. 제가 얻은 이 보옥 속에 갇혀 있었던 마왕이자, 마계의 용입니다.”

“어떻게 봉인에서 풀려난 거지? 아니, 그 전에…….”

시엘의 전신에서 은은하지만 무지막지한 마력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기세는, 류레이아나 엘로이아와 비교해도 절대로 뒤지지 않았다.

표정을 굳힌 시엘이 무섭게 네르하를 노려보며 말했다.

“설마, 흑마법사가 되었느냐?”

“그 대답 역시 바로 할 수 있습니다.”

네르하가 손바닥을 펼쳐 마력을 모았다.

그러자, 지수화풍의 순수한 자연계의 마나가 네르하의 손아귀 위에서 춤추기 시작했다.

“으음!”

“흑마법사는 절대로 이런 식으로 마나를 운용할 수 없죠. 체내의 마나가, 전부 마기로 뒤바뀌니까요.”

“…….”

시엘은 그 말에 대꾸하진 않았지만, 이해하는 기색을 내보이긴 했다.

그 이후로, 네르하는 자신이 준비한 시나리오를 조목조목 설명하기 시작했다.

지금 이자카르의 모습은 본체가 아닌 자아의 조각에 불과하다는 것.

그런 이자카르와 주종관계로 계약하여 그 힘을 얻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 힘을 바탕으로 마왕 비슈나르를 처치할 수 있었다는 것.

네르하는 북방에서 있었던 일을 교묘하게 조작하여 새로운 일대기 하나를 창작하고 말았다.

그 개연성과 과정이 워낙 대단하였기에, 시엘은 물론 로젤리아와 네이하 역시 눈을 빛내며 네르하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그렇군. 있을 법한 일이구나.”

한바탕 이어진 네르하의 일대기를 모두 들은 시엘은 나름대로 납득했는지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 말은 잘 들었다. 진위성은 류레이아와 다른 이들과의 증명을 교차하여 검토해 보도록 하지.”

의외로 시엘은 마왕 처리 건에 대해선 별다른 이의 없이 넘어갔다.

하나.

“그러면 한 가지를 더 묻겠다.”

지금까지 담담하던 시엘의 눈이, 처음으로 감정을 내보였다.

그리고 네르하는, 방금 전의 질문이 ‘가주’의 볼일이었다면, 지금 나올 질문은 시엘 ‘본인’의 볼일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렇게, 시엘의 본론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네르하 라데우스. 네 손으로, 아르바를 처리하였느냐?”

꿀꺽!

어딘가에서, 목구멍이 꿀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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