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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166화 (166/237)

166화

<의심 (3)>

네르하는 고개를 들어 시엘과 시선을 마주했다.

약간의 감정이 보이긴 했는데, 워낙 희미하다 보니 그 감정의 정체가 무엇인지 헷갈렸다.

‘무슨 생각이지?’

질문의 초점이 ‘아르바의 배신’이 아니라 그 배신자를 처단한 당사자에 맞추어져 있다.

‘설마 자기 자식에 대한 복수를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조금 실망이다.

“네, 제가 죽였습니다.”

당당하게 선언하는 네르하의 모습에 로젤리아가 기함을 하며 소리쳤다.

“네르하!”

네르하는 그녀를 무시한 채 시엘에게만 정신을 집중했다.

“아르바의 건에 대해서는 당시 목격자 수백을 포함한 모든 진위를 종합하여 아주 상세하게 보고서를 올렸습니다만.”

라데우스 직계. 그것도 대부인의 소생인 초직계의 죽음이 얽힌 일이다.

전쟁이 끝난 만큼 그 여파를 신경 써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고, 실제로 네르하는 귀환 도중 이 부분에 대해선 최대한 세심하게 보고서를 작성했다.

“…….”

잠시 찻잔을 든 시엘은, 김이 올라오는 찻물을 살짝 들이켠 후 이렇게 말했다.

“아무래도, 네가 내 말을 오해한 듯하구나.”

“오해라고 하셨습니까?”

“정점에 오르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수단 방법도 가리지 말라 가르친 게 바로 나다. 그러다 실패해 죽었다면 아르바의 역량은 고작 거기까지인 거지.”

그야말로 가볍게 먼지를 털어내는 듯한 비정함.

정말로 모자간의 정이 존재하는지, 아니면 단순히 숨기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완벽한 철벽이다.

“내가 궁금한 건 그게 아니다. 아르바가 진심으로 수작을 벌였다면 설사 실패하더라도 원정군은 궤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을 텐데.”

네르하는 선선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랬겠죠.”

“그리고 아르바의 타겟이 된 너 역시, 이리 무사히 돌아오긴 힘들었을 터. 내 말이 틀렸느냐?”

뿌득!

그 순간, 어디선가 뼈가 뿌득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의 근원은 로젤리아.

아무래도 시엘의 발언이 제대로 선을 넘었기에, 이런 식으로라도 분노를 토해 내는 것일 터다.

“훗.”

하지만 시엘은 그런 로젤리아의 반응을 즐기듯이, 엷은 미소로 눈웃음을 쳤다.

그녀의 성향상, 이 정도가 최선의 반항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

그런 시엘을 향해, 네르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르바의 심계는 분명 위협적이죠.”

그 순간, 장내의 모든 이가 네르하의 입을 주목했다.

“하지만 이미 패배자 따위가 뭔가 큰 걸 꾸밀 수 있을 정도로, 북방의 상황은 그리 만만한 게 아니었습니다.”

꿈틀!

“패배자라고?”

“네, 패배자. 가주께서 맡기신 병력을 모두 잃고 마왕에게 굴복한 시점에서부터, 아르바는 뭘 해도 실패할 운명이었죠.”

네르하는 보았다.

시엘의 눈가가, 아주 작게 가늘어졌음을.

하지만 그걸 무시한 채, 네르하는 천연덕스럽게 말을 이어 나갔다.

“물론 이것저것 꾸미긴 했죠. 하지만 누구보다 깊은 곳에 있어야 할 놈은 어리석게도 시작부터 뒤통수를 맞고 말았죠. 그게 패착이었습니다.”

“뒤통수?”

“아, 물론 제가 쳤다는 건 아니지만요.”

네르하는 일부러 최대한의 미소로 시엘과 마주했다.

네르하는 그녀가 분노를 토해 내길 기대했다.

뒷감당 이전에, 그런 감정을 토해 낸다면 이 자리는 그녀의 패배였으니까.

“훗!”

그러나, 그녀는 네르하의 의도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아하하하하! 넌 정말 재미있는 녀석이구나.”

파하하 웃으며 박장대소하는 저 의미는 무엇일까?

감정을 만들어 냈다고 보기엔 꽤나 진심으로 웃는 모습이다.

“그래, 아르바가 마왕에게 굴복했다고 한 시점에서부터 눈치채긴 했지. 마기에 정신이 오염된 시점에서, 녀석의 총기는 그 빛을 잃었을 테니까.”

“…….”

“그리고 그 뒤통수를 친 자는, 분명 엘로이아겠지.”

“……맞습니다.”

네르하는 속으로 혀를 차며 고개를 끄덕였다.

“엘로이아 블루벨벳. 그녀라면, 아무리 아르바라 해도 감당하기 버거운 존재는 맞지.”

엘로이아는 아르바의 손을 저버리고, 마왕의 편을 들어주는 척하다가 결국엔 네르하를 선택했다.

“먼저 도발한 것은 사과하마. 네가 무슨 반응을 보일까 궁금해서 한 이야기였단다.”

라데우스의 2인자이자 대부인의 자리에 있는 여인의 사과.

그 무게를 모르지 않을 텐데도, 네르하의 반응은 영 시원찮았다.

“용건은 다 끝나셨습니까?”

“이런 건방진!”

시엘의 뒤에 있던 호위 마법사 몇이 분노했지만, 이윽고 시엘의 손짓에 제지되었다.

“아직 하나가 남아 있단다.”

“무엇이죠?”

“두 달 뒤.”

찻잔을 내려놓은 그녀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케프렌 가문의 대공자가 성인식을 치른단다.”

“분명, 아렌이라는 이름이었죠.”

“그래. 원래는 지금보다 한참 일찍 진행되었어야 할 일이었지만, 북방의 일 때문에 그 행사가 미루어졌지.”

“저를 그 성인식에 보내고자 하십니까?”

“눈치가 빠르구나.”

로젤리아가 다급하게 시엘에게 항의했다.

“자, 잠시만요, 대부인! 어째서 우리 네르하가 저 먼 케프렌 가문까지 가야 하는 겁니까?”

케프렌의 본가는 거리로만 따지면 북방보다도 더 먼, 사실상 대륙 반대쪽에 위치해 있다.

지금 상황에서 그런 먼 여행길을 나섰다간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터.

무엇보다, 네르하에게 자신의 친자식을 잃은 ‘권력자’가, 바로 눈앞에 있지 않은가?!

“당연히, 케프렌에서 네르하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초대했기 때문이지.”

“그, 무슨?!”

“어차피 직계 한 명은 반드시 보내야 한다. 원래라면 바멜이 후보군에 올랐지만, 알다시피 그 아이는 북방에서 팔 하나를 잃어 요양에 들어가야 하지.”

그런고로 차선책으로 네르하가 선택되었다는 뉘앙스였다.

네르하는 시엘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만약 가지 않겠다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라데우스의 체면이 구겨지겠지.”

경쟁 가문에서 직접 지목했음에도 보내지 못한다면, 라데우스의 체면이 이만저만이 아니게 된다.

시엘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대신으로, 근접한 나이대의 세티안이나 네이하가 선택되겠지?”

“그, 그런!”

로젤리아의 귀에는 네르하가 거절한다면 그 대신으로 네이하를 보내겠다는 협박으로 들려왔다.

그때, 네르하가 웃으면서 말했다.

“재밌군요.”

“재밌다?”

“북방에서 귀환 당시 총사령관의 제지로 그의 초대를 거절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발을 뺀다면 그쪽에서 절 우습게 알겠죠.”

“호오?”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케프렌에서 라데우스의 이름을 크게 떨치고 돌아오도록 하죠.”

“네르하!”

로젤리아가 크게 소리치며 네르하를 말렸지만, 사실 네르하는 애초부터 이 제안을 거절할 생각이 없었다.

‘여러모로 케프렌이란 가문은 한 번 봐둬야만 하니까.’

굳이 아렌 루 케프렌의 존재가 아니더라도.

이전 검왕 베하나스가 사용했던 마교의 검술 ‘혈광패검’.

그것의 존재를 안 이상, 케프렌은 무슨 상황이든 한 번은 확인해 둬야 하는 곳이 되었다.

“제법 호쾌한 결단이구나.”

“제가 좀 성격이 시원시원하죠.”

“후후후, 눈을 마주치지도 못하고 오줌을 지린 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

네르하의 표정이 팍 일그러졌다.

그런 네르하의 반응을 즐기는 듯 작게 웃음을 털어낸 시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 아르바의 이름이 가문 내에 오르내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 말은 즉, 아르바를 죽인 네르하에 대해 어떠한 추궁이나 불이익이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이며.

아르바의 존재가, 라데우스 가문에서 철저하게 축출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 공훈에 대한 보상은, 기대해도 좋다.”

그 말을 남기고 시엘은 떠났다.

대번에 조용해진 저택의 분위기를 깬 건 로젤리아였다.

“네르하! 어, 어째서 그렇게 간단하게 가겠다고 선언한 건가요?”

네르하는 속으로 살짝 웃었다. 복잡미묘한 그녀의 심정이 훤히 보였다.

“그렇다고 네이하를 보낼 수는 없지 않습니까? 오라비인 제가 가야죠.”

“그, 그건 그렇지만…….”

“어차피 그 제안은 대부인이 아닌 가주님의 의사. 거절은 의미가 없었을 겁니다.”

로젤리아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하지만, 좋은 기회를 이런 식으로 놓치니 속이 탑니다.”

“좋은 기회라면?”

“아르바를 후원하던 두 분의 장로가 이번 일로 끈이 떨어지지 않았습니까? 이쪽에서 잘 설득하면 가능성이 있을 텐데, 하필이면 네르하가 자리를 비우게 되니…….”

“흐음.”

네르하는 한 방 먹었다는 듯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역시, 그 아르바의 어미이니 조금도 방심할 수가 없군.’

‘거절’이란 변수를 없애기 위해 직접 행차했을 가능성을 부정할 수가 없다.

“어차피 2달이나 되는 시간이 남지 않았습니까? 그사이에 어떻게든 해결책을 모색해 보죠.”

그 말을 끝으로 네르하는 잠깐 쉬겠다고 자리를 떠났다.

정확히는 손님 방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루시아를 확인하러 가는 거였지만 말이다.

“…….”

그런 네르하의 등을, 네이하가 묘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 * *

시엘 라데우스는 마차에 몸을 맡긴 채 자신의 거처로 돌아가고 있었다.

―대부인.

그런 시엘의 발끝에서, 인간의 형상을 한 그림자 하나가 툭 튀어나왔다.

“그래, 벨루아. 무슨 일이냐?”

벨루아라 불린 그림자가 말했다.

―이대로 네르하 라데우스를 가만히 두실 겁니까?

그 말에 시엘은 피식 웃었다.

“가만히 두지 않으면? 어쩌겠다는 것이냐?”

―제거할 수 있습니다. 명령만 내려 주신다면.

“마왕을 단독으로 죽인 실력자를 말이냐? 암월(暗月) 전체가 나서도 힘들 텐데?”

벨루아는 잠시 침묵했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본가의 사람은 거의 없지 않습니까?

들려오는 소문이 사실이라면, 네르하의 실력은 삼마자를 넘어 가주와 맞먹는다는 뜻이 된다.

본가의 정말 많은 이들이 류레이아를 마왕 토벌의 제일공신으로 생각하지, 네르하는 그 사이에 꼽사리를 낀 비겁한 놈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다.

목격자가 무려 천여 명이 넘어갔지만, 편견이란 그렇게 쉽게 벗겨지는 것이 아니었다.

―본신의 실력과 암살의 실력은 다른 문제입니다. 설사 백번 양보해서 그가 공동 토벌자라 하더라도…….

“그만.”

벨루아의 말은 시엘의 차가운 일갈에 잘려 나갔다.

“나를 어디까지 비참하게 만들 셈이냐?”

―대, 대부인.

“아르바의 패배는 그놈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이 라데우스라는 거대한 맹수들의 우리 안에서, 아르바는 그저 경쟁에서 도태되었을 뿐이야.”

―보, 복수를 하지 않을 생각이십니까?!

아르바가 루드빅을 넘어 마하와도 어느 정도 세력 다툼이 가능했던 건, 본인의 수완도 수완이었지만 대부인 시엘의 지원이 어느 정도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만큼 시엘이 아르바를 아낀다는 건, 그녀 주변의 모두가 아주 잘 아는 일이었다.

하지만 시엘은 냉정하게 대꾸했다.

“입 닥쳐라.”

―…….

“나는 아르바의 이름을 가문에서 오르내리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건 가주님과도 사전에 협의된 약속. 네놈 역시 더 이상 이 일을 언급하지 말지어다.”

―죄, 죄송합니다, 대부인.

“가문보다 그 아이를 우선시하는 너의 입장을 이해하지 않는 건 아니나, 지금 네르하를 노리는 건 더없이 어리석은 일이야.”

북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든 간에, 네르하는 이제 라데우스의 유력한 소가주 후보로 떠오르게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암살이라도 당한다면?

가주가 어떻게 나올지, 시엘은 예상하기도 싫었다.

살짝 한숨을 쉰 시엘은 고개를 바깥쪽으로 돌렸다.

“마하에게 간다. 그래도, 어느 정도 준비는 해야겠지.”

―예, 대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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