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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167화 (167/237)

167화

<후계 경쟁 개막 (1)>

이후로 네르하에겐 편안한 휴식의 시간이 찾아왔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네르하를 제외한 저택의 고용인들에게는 지옥과도 같은 일정이 시작되었는데.

“자, 잠시만이라도 좋으니 도련님과 만나게 해 주시오!”

“본인은 카란시스 마탑의 부탑주입니다! 네르하 공자님을 뵈러 왔습니다!”

“현재 이 저택은 외부 손님을 받지 않습니다. 모두 돌아가 주십시오!”

하루가 멀다 하고 저택 앞을 점거하는 방문객 인파에 고용인들은 진이 빠질 지경이었다.

그야말로 라데우스와 연관된 정, 재계의 거물들이 앞다투어 네르하와 연을 맺기 위해 찾아왔다.

“저, 저분은 파르본 라데우스 님이십니다만…….”

“모두 돌려보내! 설사 라데우스의 혈족이라 해도 마찬가지야!”

워낙 거물들이 방문했기에 로젤리아가 저택에 눌러앉아 고용인들에게 지시를 내려 줘야 했을 정도였다.

“마, 마님. 이렇게 손님들을 막 쫓아내도 괜찮을까요? 아무래도 후환이…….”

로젤리아는 단호했다.

“상관없다. 우리 네르하에게 부스럼을 만드는 것보다는 훨씬 나아.”

분명 찾아오는 이들 하나하나는 평소의 그녀라면 반색하며 맞이할 정도의 인물들이었지만, 지금만큼은 사정이 달랐다.

“어차피 네르하가 본격적인 후계 구도에 참여하면 알아서 다시 찾아올 위인들이야.”

사실 그들의 지위 하나하나를 보면 거창해 보이지만, 실상은 마하나 루드빅 같은 라데우스 유력 후계 그룹에 끼지 못한 자들이 대다수였다.

2부인 유리아 소생인 바멜이나 레티안, 세티안 남매. 혹은 완전히 나가리된 아르바에게 줄을 잇던 자들뿐.

소위 말하는 ‘알짜’는 아닌 자들인 것이다.

‘장로급이 아닌 이상, 지금 시점에서 굳이 만나 줄 필요는 없지.’

냉혹하게 계산을 마친 로젤리아는, 다시금 바쁘게 손님들을 쫓아내는 작업을 시작하려고 했다.

하지만.

“헐헐헐, 바빠 보이는구만.”

“……헉!”

아무리 로젤리아라 해도, 절대로 쫓아내서는 안 되는…… 아니, 쫓아내지 못하는 거물들도 존재하기 마련.

한 노인이 방문객들을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가르며 나타났다.

“자, 작은아버님께서, 어떻게 여기에?”

“내가 못 올 곳을 왔나?”

천연덕스럽게 대꾸하는 노인은, 다름 아닌 ‘리브라’의 학장이자 전대 가주의 동생.

즉, 현 가주 카이젤의 숙부가 되는 전대의 원로, 루트비히 라데우스였다.

“네르하 그 고얀 녀석은 어디 있나?”

* * *

루트비히라면 가주조차도 접견을 거부할 수 없는 거물이다.

당연히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저택 안으로 들일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학장님.”

“여기가 리브라더냐?”

언짢다는 말투에 네르하가 씨익 웃었다.

“아닙니다, 할아버님.”

“그래, 그래야지.”

마주 웃은 루트비히는 이윽고 창문 바깥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여전히 많은 손님들이 있었다.

“좋은 대응이다. 굳이 지금 시점에서 누군가와 만나 줄 필요는 없지. 네 가치를 스스로 깎아 먹게 될 테니.”

“어머님께서 도와주셔서 전 한 게 없습니다.”

“그건 그렇지. 유리아의 견제에서도 잡초처럼 살아남은 아이이니, 정치적인 감각은 무시할 수 없지.”

“…….”

정작 루트비히의 칭찬에도 당사자인 로젤리아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요즘 남쪽 지방의 물류 움직임이 여간 심상치 않던데, 뭔가 아는 게 있느냐?”

“글쎄요, 저로선 잘 알지 못하는 일입니다만.”

그녀의 철면피 같은 대답에도 루트비히의 표정은 여전했다.

“남쪽 지방엔 여러 대도시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주목할 만한 건 최근 가문에 정식으로 편입된 그렌 타운이 있지.”

움찔!

“그리고 그렌 타운의 실질적인 주인은, 지금 네 옆에 앉아 있고 말이다.”

“큰아버님께서 그 건에 대해 네르하에게 도움을 주셨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참으로 감사드려요.”

“허허허, 공치사를 들으려고 한 말은 아닌데 말이다.”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루트비히와 로젤리아 사이에 번개가 치는 느낌이 든다.

‘아무래도 어머님이 뭔가 수작을 부리고 있는 것 같은데 말이야.’

네르하가 그렌 타운의 실질적인 지배자가 되었다는 건, 어지간한 라데우스의 중진이라면 알고 있을 사실이다.

애초에 케프렌이 그렌 타운의 영유권을 포기한 시점에서, 라데우스로서도 결코 가벼운 일은 아니었으니까.

“아직 선은 크게 넘지 않고 있는 듯하니, 지금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으마.”

“정말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충고라 하신다면 뼈에 새기겠습니다.”

로젤리아는 능청스럽게 고개를 숙였다.

그런 모친의 모습에 네르하는 속으로 혀를 찼다.

어제 대부인 앞에서는 고양이 앞에 쥐처럼 설설 기더니, 이름값이 비슷한 루트비히에겐 지나치게 당당하게 나서고 있다.

‘뭔가 권력자 감지 센서라도 있는 걸까.’

네르하가 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루트비히가 헛기침을 하며 주제를 돌렸다.

“내가 왜 너를 찾아왔는지, 궁금해하고 있겠지.”

“아, 네. 물론입니다.”

“음? 뭔가 반응이 좀 시원치 않은데. 설마 딴생각이라도…….”

“철저하게 감정을 조절하고 있었습니다.”

네르하는 귀신같은 노인네라며 속으로 루트비히를 욕했다.

“큼! 뭐, 그렇다면야.”

몇 번의 헛기침 후, 루트비히가 본론을 말했다.

“내가 찾아온 건, 이번 북방의 일 때문이 아니다.”

“그 말씀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지. 네가 북방에 가기 전, 중간 시험으로 제출한 논문에 관한 이야기다.”

아.

북방의 일이 워낙 중대하다 보니 까먹고 있었다.

마나 연공법을 중간 시험으로 제출하고, 그것을 젊은 마법사들이 이론의 전장이라 부르는 ‘헤르메스’에 제출해 달라고 했었지.

“결과가 나왔습니까?”

이미 논문을 제출한 지 거의 반년이 지났다.

당연히 그에 대한 결과가 나왔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하지만.

“아니.”

“으음?”

당황해하는 네르하의 모습에 루트비히의 입가가 살짝 구부러졌다.

“역시나, 논문 작성자인 너의 경연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하더군.”

“하아, 굳이 귀찮게…….”

“명성을 원한다면 너에게도 나쁘진 않은 일이다.”

“나쁘지 않다뇨? 그냥 저 혼자 가서 심사위원들한테 들볶이고 와야 하는 거 아닙니까?”

헤르메스가 ‘경연 대회’를 표방하고 있지만, 실상은 그 경연을 하는 당사자는 오직 수상자들뿐이었다.

수많은 이론들이 제출되는 만큼, 몇 차례에 걸쳐 사전에 철저하게 걸러지고.

남은 진국들만이 상을 수여받음과 동시에 그 이론을 학계에 내보이는 식인 것이다.

‘수상자도 아닌 내가 경연이 필요하다는 건, 결국 혼자 지랄을 하고 와야 한다는 뜻이겠지.’

솔직히 경연 자체는 상관없지만, 갔다 오는 것 자체가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다.

네르하가 의욕이 빠진 기색으로 어깨를 늘어뜨릴 때.

“헤르메스 역시 북방의 일 때문에 잠시 연기되었다는 걸 아느냐?”

“그건 처음 듣는군요.”

그런 건 애초에 딱히 들을 기회도 없었다.

“그렇기에 올해의 헤르메스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치러진단다.”

“…….”

그 순간, 네르하는 루트비히가 무슨 말을 할지 알 것 같아 인상을 팍 구겼다.

“설마, 공개 경연이니 뭐니 하는 건 아니겠죠?”

“바로 그거다.”

“끄응!”

루트비히의 말에 따르면, 일반적인 수상 인원의 3배수 정도를 뽑아 3일에 걸쳐 마법계의 중진들에게 경연하는 형식으로 진행한다고 한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네르하가 제출한 논문은 그 경연에 포함되어 버렸고 말이다.

‘생각 같아선 그냥 때려치우고 싶지만, 얻고 싶은 게 있으니.’

그리고 그런 네르하의 생각을 루트비히는 귀신같이 읽어 냈다.

“역시, 뭔가 원하는 게 있나 보구나.”

“뭐, 그렇죠.”

“뭘 원하지? 가능하면 원하는 술식이 있는지 미리 알아봐 줄 수도 있다만.”

호오?

네르하는 사양하지 않고 원하는 걸 말했다.

“공간계열의 고정술식을 원합니다.”

그 말에 루트비히의 표정이 한순간 멈칫했다.

“공간계열? 분명 찾아보면 있겠다만, 고정술식이라고 해도 그 난이도는 7레벨을 넘어선다. 그걸 네가 익힐 수나 있겠느냐?”

고정술식.

공간계열이 9레벨에 해당하는 절대적인 영역이라고는 하나, 특정 효과만을 노리고 방정식처럼 체계화한 술식들이 있다.

다만 그 대부분 역시 혼자 힘으로는 발동이 불가능한 대마법들이라는 게 문제였지만.

“네, 상관없습니다. 제가 원하는 건 공간계열의 기초를 익히는 것이니까요.”

이전 북방에서 이자카르에게 얻어 낸 고정술식의 공간 마법.

원초의 혼돈에서 탈출할 당시 딱 한 번 써 보았을 뿐, 그 이후로는 시도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뭐가 됐든 다른 공간 마법에 대한 기초를 닦아야만 이걸 제대로 쓸 수 있어.’

아마 이자카르가 건네준 술식은 어쩌면 9레벨에서도 상당한 수준일지도 모른다.

마왕이 자부심을 보일 정도면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뭐, 좋다. 알아보도록 하지.”

강연이 시작되는 날짜는 다름 아닌 지금으로부터 바로 3주 후.

‘일정이 꽤나 빡빡하겠군.’

곧 벌어지는 논공행상에서 상만 받고 홀라당 나를 수는 없다.

지금은 거절한 손님들을 하나둘씩 만나 봐야 하며, 그것만으로도 일주일은 족히 잡아먹을 거다.

거기에 2달 뒤에는 케프렌에서 벌어질 대공자의 성인식에 참석해야 하니…….

“머릿속이 복잡해 보이는구나.”

“해야 할 일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뭐, 걱정하지 말거라. 적어도, 앞으로 라데우스 내부의 일에 대해선 네가 신경 쓸 일은 별로 없을 테니.”

네르하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그건 무슨 뜻으로 하시는 말씀이신지?”

“네슬렉이 리브라의 부학장 자리에서 사임했다.”

“……!”

“그리고 본가의 장로 자리에 지원했지.”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네르하가 알기로, 네슬렉은 가주와의 권력 싸움에서 패배한 자다.

목숨을 부지한 것만으로도 천운이며, 네르하가 네슬렉의 도움을 원하는 것도, 어디까지나 리브라 내부의 일에서의 지원을 바랐을 뿐이었다.

“받아들여질 확률이 높을 거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오히려 네르하보다 로젤리아가 훨씬 놀라워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대의 직계인 네슬렉의 장로 취임.

사실상 라데우스 본가의 권력 구도를 크게 뒤틀어 버릴 대사건임은 분명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후계 경쟁이 시작되면, 네르하 너를 공식적으로 지지하면서 불씨를 지피겠지.”

“…….”

“한마디로, 후계 경쟁에서 내부 권력 싸움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다. 네슬렉의 수완이라면, 베르돈과 더글라스를 설득하는 건 쉬운 일일 테니.”

“제가 그분을 제어할 수 없다면 있으나 마나입니다만.”

“물론, 당연히 놈을 제어할 목줄 정도는 네 손에 쥐여 줄 거다. 가주도 생각이 없는 건 아니거든.”

한마디로, 네슬렉이 라데우스 본가에 합류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이번 북방의 일에 대한 보상 중 하나라는 뜻이다.

다만 이게 보약일지 사약일지는, 당장 눈으로 봐선 알 수가 없다는 게 문제였지만 말이다.

그 이후로 루트비히는 몇 마디 대화를 나누었지만, 볼일은 모두 끝났는지 나오는 얘기는 그냥 시시콜콜한 주변 사담에 불과했다.

그렇게 루트비히가 자리를 떠나고.

머릿속이 복잡해진 탓에 로젤리아와 네르하는 이후에도 자리를 지키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아직 정치에 대해 잘 모르는 네이하만이 뚱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볼 뿐이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나.

논공행상의 날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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