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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170화 (170/237)

170화

<보물전 (1)>

그렇게 마하와의 내기가 성립되었다.

“오오! 마하 공녀와 네르하 공자와의 내기라니!”

당연한 말이지만, 이건 밀실에서 이루어진 밀담이 아니다.

수많은 귀족들, 그리고 라데우스의 중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성립된 내기이며.

무를 수도, 물러서도 안 되는 마하와의 진정한 한판 승부였다.

“마침, 증인이 되어 줄 이들이 참 많이 있구나.”

마하는 양팔을 활짝 펼치고는 주변을 둘러보며 외쳤다.

“여러분께서 동생과의 ‘사소한’ 내기에 대한 증인이 되어 주시겠죠?”

“물론이지!”

“이런 재미있는 사건을 그냥 놓칠 수가 있나!”

귀족들은 하나같이 잔을 높이 들며 이번 내기에 대한 증인이 됨을 약속했다.

“보물전의 보물과 마탑이라! 마하 공녀가 정말 자신이 있나 보군!”

“처음엔 너무 과한 요구를 하나 싶었는데, 그 반대였군요. 자기 지지기반 중 가장 큰 걸 고르다니요.”

“아니, 그 전에 그란시스 마탑은 라데우스와 별 관계없는 곳 아니었소?”

“지금 그게 뭐가 중요한가요! 이건 사실상 후계자 싸움의 시작을 알리는 정면 대결인데요!”

약간 느긋하게 이어지던 연회장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달아올랐고.

많은 이들이 호들갑을 떨며 이 주제로 이야기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 내기는 연회장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전달되었다.

말 그대로, ‘모든’ 이들에게 말이다.

“어떻게 생각하나?”

“글쎄요.”

연회장의 가장 최심부.

라데우스의 혈족들만을 위해 마련된 룸 안에서, 가주 카이젤이 피식 웃음을 내지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숙부님께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카이젤의 맞은편에 있는 노인, 루트비히가 코웃음을 치며 답했다.

“마하가 제 무덤을 파는군.”

“……그 정도입니까?”

“가주도 보게 되면 나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될 걸세.”

루트비히가 이렇게까지 말하자 카이젤도 턱을 쓰다듬으며 호기심을 보였다.

“궁금하군요. 네르하가 대체 뭘 내놓았는지.”

“가주라면 얼마든지 얻을 수 있지 않나? 한번 봐 보게. 제법 놀랄 테니.”

“사법(邪法)이나 외법은 아닙니까?”

“날 뭐로 보는 건가? 정말 그랬다면 내가 네르하를 살려 두었을 것 같은가?”

“그건 아니지요. 하지만 숙부님도 알다시피, 인체의 공부는 절대 혼자서 이룰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 말이 맞다.

마나 연공법 같은 인체 공부의 정수는 문서화된 지식만으로는 절대 습득할 수 없었다.

루트비히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분명 그 기반 지식을 가르친 이가 있어. 그가 바로 네르하를 변화시킨 장본인이겠지.”

“재밌군요. 라데우스의 정보망에 단 한 번도 포착되지 않은 기인이라?”

“라데우스와 케프렌. 양가의 체제로 굳어진 이후에도, 세상의 이면엔 의외로 강자가 제법 많지. 자네만큼의 강자가 세상에 더 존재한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어.”

“글쎄요…….”

카이젤은 그 말엔 회의감을 보였다.

세상의 균형을 수호하는 용왕들을 제외한다면, 카이젤은 자신을 어찌할 수 있는 존재는 세상에 없을 거라 확신했다.

‘아니, 어쩌면 용왕 중 하나가 네르하에게 접근한 것일 수도 있겠군.’

뭐가 됐든 네르하의 변화는 극적이었고, 또한 긍정적이었다.

언제 시간이 나면 아그란바드를 한 번 더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한 카이젤이었다.

* * *

베리타스에서 대부분의 일을 마친 네르하에게, 이제 남은 건 리브라에 귀환하는 것뿐이었다.

‘이곳의 일은 두 사람에게 맡기면 되겠지.’

네슬렉과 로젤리아는 과거에 별다른 접점이 없었음에도, 아주 의기투합해서 날아다니고 있었다.

뭔가 일이 생긴다고 해도, 이제 대륙 곳곳으로 퍼져나가는 세이라의 정보 조직 ‘미네르바’가 근황을 빠르게 전해 줄 테고 말이다.

하지만, 그 전에 이곳에서 마무리해야 할 일이 있었다.

―오랜만이군, 네르하 라데우스.

“그러네.”

네르하는 하늘에 둥둥 떠 있는 ‘눈꽃사슴’을 올려다보았다.

상대의 정체는 진짜 사슴이 아닌, 사슴의 형태를 한 정령.

그것도 라데우스 보물전의 관리자인 인공정령 페레스였다.

―많이 달라졌구나.

페레스가 우묵한 눈으로 네르하를 살펴보았다.

―내 눈으로도 너의 역량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겠군. 엄청나게 강해졌어.

“딱히 칭찬받으려고 온 건 아니다만.”

―후후, 그렇겠지.

예나 지금이나, 사슴이 웃는 모습을 보면 뭔가 소름이 끼친다.

화악!

페레스의 전신에 눈 같은 새하얀 무언가가 휘날렸다.

그리고 그 눈이 시야를 변화시키며, 마치 단정한 전시회장과도 같은 곳으로 공간을 뒤바꾸기 시작했다.

―보물전에 온 걸 환영한다, 네르하 라데우스.

네르하는 지금 라데우스의 금역 중 하나인 보물전에 와 있었다.

보물전은 가주전과 같은 곳인 베리타스의 최심부 제1구역에 위치해 있다.

그리고 인공정령 페레스와 수백에 달하는 보안 계열 마법사들이 철통같이 수비하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다만 보물전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

―이곳에선 숨기고 있는 게 없어야 한다.

“숨기고 있는 것?”

네르하는 한순간 의아해했지만, 이윽고 페레스가 무엇을 말하는지를 깨달았다.

“아아, ‘이 녀석’ 말인가?”

딱!

네르하가 손가락을 튕기자마자, 네르하의 뒷덜미에서 헤츨링의 형상을 한 이자카르가 튀어나왔다.

막 잠에서 깬 것 같은 기색이었던 이자카르는, 신경질적으로 네르하를 쏘아보았다.

―뭐냐, 애송이.

네르하는 그 말을 무시한 채 이제 됐냐는 듯한 시선으로 페레스에게 눈짓을 보냈다.

페레스가 살짝 코웃음을 쳤다.

―꼴이 말이 아니로군.

―흥, 이 몸을 고작 알리바이용으로 부려 먹는 건 이놈뿐일 거다.

이자카르는 시엘의 앞에서 재롱(?)용으로 꺼내어진 걸 아직도 마음에 두고 있었다.

뭐, 이자카르가 무슨 반응을 하든 페레스는 자기 할 일을 시작했다.

―좋다, 네르하 라데우스. 무슨 아티펙트를 원하지?

“생각해 둔 건 있긴 한데, 일단 내게 배정된 3개 중 하나는 나중으로 미뤄둘 수 있겠지?”

―마하와의 내기 때문이로군. 딱히 문제는 없다.

“소문이 벌써 여기까지 퍼졌나?”

―적어도 이곳 베리타스에서 모르는 자는 없지.

“열심히 퍼 나르고 있군. 그러다 지면 어쩌려고.”

살짝 혀를 찬 네르하는 다시금 본론으로 돌아갔다.

“좋아. 일단은 마력의 제어와 체내 순환을 안정시켜 주는 보조용 아티펙트가 필요해.”

―호오?

페레스가 흥미롭다는 듯 눈을 반짝였다.

―고유 계통의 파괴력 증가라거나, 특정 고위 마법이 인챈트된 물건이라든가 하는 건 흥미 없나?

“관심 없어.”

―공간 이동이나 시간 정지, 디스인티그레이트 같은 절대 소멸 마법이 걸린 아티펙트도 존재한다만?

“…….”

9레벨을 대표하는 대마법들이 인챈트된 보물들이 있다는 말에, 네르하는 아주 잠깐이나마 흔들리긴 했다.

하지만 이윽고 정신을 차리곤 다시금 고개를 내저었다.

“내가 원하는 거나 찾아 줘.”

―흐흐, 주관이 뚜렷하군.

확실히 있으면 좋은 것들이긴 하나, 지금 네르하에게 필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다.

마나 익스텐더의 과부하를 최대한 억제하며, 최종적으로 신체에 대한 부담감을 줄여 줄 방법을 찾으러 온 것이다.

‘지금부터 내가 가야 할 길은, 전생에서도 가 보지 못했던 영역.’

마왕 비슈나르.

놈을 이길 수 있었던 건, 어디까지나 주변의 많은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었으며.

그 상태의 놈과 정면으로 다시 붙는다면 필패하는 건 자신이 되리라는 걸 네르하는 알았으니까.

그런 네르하의 각오와 의지를 느꼈는지, 페레스는 앞발을 들어 무언가를 조작하는 모습을 취했다.

―일반적인 마나 소모 감소나 발사마법의 반동 제어 같은 걸 찾는 건 아니군.

최상위급 아티펙트 중에선 8레벨의 마법도 큰 리스크 없이 사용하게 만드는 것도 있다.

하지만 페레스는 네르하가 원하는 게 그런 종류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신체의 완벽한 제어. 궁극적으로 불로불사에 이르는 걸 목표로 하고 있는가?

“……아니, 그건 아닌데.”

뭔가 터무니없는 오해를 하고 있는 페레스의 말에, 네르하가 다급히 변명하려 했다.

―하지만 네 녀석이 추구하는 길의 끝에는 보통은 불로불사가 있지. 리치가 되지 않고 영생을 추구하려는 마법사들은 지금도 흔히 있으니까.

페레스는 신형을 돌리며 말했다.

―따라와라.

원래라면 소환 등을 통해 건네주면 될 텐데, 페레스는 일부러 보물전 안을 거닐며 네르하를 인도했다.

―보물전의 아티펙트들은 대부분 내 관할 아래 있지만, 특수한 몇몇은 직접 봉인을 풀어야 하는 과정에 있지.

“1급에 해당하는 것들인가?”

―그렇다.

이자카르가 봉인된 망각의 서조차 2등급으로 분류되었을 정도이니, 1급으로 지정된 아티펙트라면 대체 얼마나 귀하고 강력할지 예상이 되지 않는다.

―라데우스 보물전에서 1급으로 취급되는 기준은 간단하다.

어느덧, 페레스를 따라온 일행의 눈앞엔, 거대한 석문이 나타나 있었다.

‘날개?’

석문에는 수많은 날개가 겹치듯 새겨져 있었다.

네르하는 저 날개가 단순히 동물의 날개가 아닌, 이 세계에서 신선에 대입되는 천사들의 날개라는 걸 알아차렸다.

―신성(神性)을 품고 있을 것.

페레스가 네르하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것이 1급 아티펙트 ‘성유물(聖遺物)’의 등록 조건이다.

* * *

‘여기는…….’

마치 엄숙한 종교시설 내부를 보는 듯한 광경.

스테인드글라스가 빛을 발하는 이 기묘한 장소 한가운데에는.

부유물처럼 둥둥 떠다니는 일곱 개의 아티펙트가 대번에 눈에 띈다.

―여기가 바로 내가 보물전의 수호자로 만들어진 가장 큰 이유. 신화전이다.

“여기 있는 것들이 라데우스가 자랑하는 최고의 보물들이로군.”

―자랑한 적 없다. 수집된 이후로 단 한 번도 외부에 유출되거나 정보가 공개된 적은 없으니.

“……아니,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

아직 저놈에게 센스를 기대하는 건 무리인가 보다.

페레스가 그중 하나를 가리켰다.

―네가 원하는 게 있다면 아마 저것일 거다.

거대한 검, 찬란히 빛나는 잔, 비치지 않는 거울 등이 존재하고 있었지만.

페레스가 네르하에게 추천한 것은, 아주 자그마한 팔찌였다.

‘일단 겉모습은 합격. 귀찮게 들고 다닐 필요는 없겠군.’

거울이나 칼이나 잔이나. 아무리 성능이 대단해도 네르하의 전투 스타일상 들고 다니면서 쓸 만한 것들은 아니었다.

하지만 팔찌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저것에 대한 설명을 하기 전에, 네르하 라데우스.

“말해.”

―네게 한 가지를 권유하고 싶다.

“무엇을 말이지?”

―이것을 선택하고 나서, 두 번째 아티펙트는 내가 권하는 걸 선택해 주지 않겠나?

“……?”

네르하는 순간 위화감을 느꼈다.

자신이 알기로, 저 인공정령 페레스는 어디까지나 절대적인 중립.

자아와 감정 표현을 할 수는 있지만, 원칙으로 부여된 기본적인 알고리즘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그런 말을 하는 의도는 뭐지?”

그리고, 페레스는 정말 의외로 이렇게 말했다.

―단순한 선의다. 저 마왕 이자카르를 확실하게 억누르기 위함이지.

“……!”

―네르하 라데우스. 이참에 확실히 말하지.

페레스의 눈가에 적의가 깃들었다.

―저걸 계속 그대로 둔다면, 언젠가 너에게 거대한 재해로 돌아와 널 삼켜 버릴 것이다.

“뭐?”

―아무래도, 이미 절반 정도는 부활한 듯싶으니까.

스스슥!

아까 페레스의 몸에서 휘날렸던 그 눈꽃이,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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