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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174화 (174/237)

174화

<헤르메스로 가는 길 (3)>

‘드디어 원했던 걸 손에 넣었군.’

마법을 발현하는 것에 대해서는 대륙 제일을 다툰다는 라데우스 직계 마나 연공법.

네르하는 그걸 손에 넣자마자, 그대로 기숙사에 틀어박혀 내용을 탐독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으음…….”

몇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네르하는 한숨을 쉬고야 말았다.

‘내가 알던 것과 궤가 너무 달라.’

하늘의 순리는 비슷하게 돌아가니, 이 안의 내용이 이치에 맞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 라데우스 마나 연공법은 기본적으로 ‘외부의 도움’을 필요로 했다.

‘젠장, 이 마나 연공법이 강한 이유를 알겠군.’

네르하는 혀를 찼다.

‘혹시나 했지만 예상이 맞을 줄이야.’

중원에서도 당대에 최강이라 칭송받는 내공 심법들을 살펴보면, 순수하게 축기로만 내공을 쌓는 경우는 드물었다.

선조로부터 대대로 이어오는 기물의 힘을 흡수한다든가, 아니면 대자연의 힘이 농축된 영약이나 보옥의 힘을 빌린다든가 하는 식이었다.

이 마나 연공법 역시 마찬가지. 스타 플래티넘의 기운을 생성하려면, 기본적으로 ‘천생석(天生石)’이란 것을 품고 연공을 해야만 했다.

다만 이 천생석이 항상 필요한 건 아니었다.

마나의 기초를 쌓기 시작하는 때에 천생석의 힘을 빌려 기운을 형성하고, 그 후부터는 눈덩이를 굴리듯이 덩어리를 키워 나가는 형식이었다.

‘문제는 이 천생석이란 걸 보면 마치 무언가의 ‘내단’과 비슷한 것이라는 점인데.’

뭐, 이 부분은 루트비히나 다른 이들을 통해 알아볼 수 있으니 크게 염려가 되지는 않는다.

다만 이 외에 또 다른 문제가 있었으니.

연공법의 구결 곳곳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고유명사가 가득하단 점이었다.

특정 혈자리의 경우 어느 정도 고민하면 답이 나오긴 했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전문용어를 완벽하게 해석하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어.’

원래 ‘네르하’는 이 천생석을 이용해 라데우스의 마나 연공법을 익혔을 것이다.

‘네르하’의 육체를 고스란히 얻은 만큼, 원래라면 스타 플래티넘이 발현하는 게 정상일 것이다.

한데 어째서인지, 네르하는 이 연공법을 다시 익혀도 원래의 스타 플래티넘이 발현되지 않을 거라 직감했다.

‘아무래도 다른 성질의 마나를 쌓으면서 자연스레 소실된 것 같은데. 그렇다고 보기엔 녀석이 원래 가지고 있던 마나량이 그렇게 적은 것도 아니었지.’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에 네르하는 혀를 찼다.

그때였다.

똑똑!

바깥에서 누군가가 문을 노크했다.

“들어와.”

마치 암살자와도 같은 고요함. 하지만 살기는 없다는 점에서 네르하는 상대의 정체를 쉽게 눈치챘다.

“실례하겠습니다, 주인님.”

“오랜만이다, 세이라.”

창백한 피부와 붉은 눈.

이 두 가지를 모두 부합하는 건, 선천적인 돌연변이가 아닌 이상 오직 뱀파이어라는 종족뿐이었다.

“요즘 근황은 어떻지?”

“너무 잘 돼서 큰일이죠.”

세이라는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세상이 어수선해지면서 정보 길드를 이용하는 이들이 많아졌어요. 기존 투입된 인력이 모자랄 정도로요.”

네르하가 실질적인 주인으로 있는 정보 길드 ‘미네르바’.

창설된 지 이제 막 1년 남짓된 신생 길드치고는, 미네르바는 그 성장세가 어마무시했다.

“돈과 권력이 합체된 만큼 성장은 그야말로 시간 문제죠.”

한순간, 그녀의 눈가에 서늘한 그늘이 졌다.

“평소 우릴 그렇게 무시하던 그 귀족 놈들이 비굴한 낯짝으로 손을 비비는 걸 보니 이루 말할 수 없는 쾌감이…….”

“…….”

이 녀석, 그렌 타운에 있을 때 쌓여 있던 게 많았군.

빈민가의 정보 조직과 라데우스 직계 직속 정보 조직의 위상이란 귀족과 천민만큼의 격차가 있으니까.

“뭐, 그건 적당히 하고. 이번에 내가 영지를 하사받은 건 알고 있나?”

“네, 필렌에는 이미 사람들을 보내 지부 설립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빠른데?”

“3부인께서 적극적으로 움직이며 지휘하셨기에 일이 빠르게 진행되었죠.”

“……다 좋은데, 기본적인 걸 잊진 않았겠지?”

“예, 알고 있습니다.”

세이라가 싸늘한 표정으로 입꼬리를 올렸다.

“미네르바는 네르하 주인님의 직속. 그 사실을 잊는 경우는 절대로 없습니다.”

“좋아.”

“3부인께서 주인님의 의사에 반하는 행동을 하실 경우, 저와 미네르바는 주저 없이 그분을 등질 겁니다.”

물론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만큼, 로젤리아가 네르하에게 해가 되는 일을 하진 않을 것 같았지만.

그녀는 본디 네이하를 가주로 만들 생각이었던 걸 고려하면, 방심은 할 수 없었다.

그때, 세이라가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리고, 이것을.”

“뭐지?”

“이번 헤르메스에 마하 공녀가 투입한 인원들. 그리고 그들이 제출한 대략적인 연구 주제들입니다.”

“이런 것도 알아왔어?”

네르하가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실 이미 논문을 제출한 시점에서 크게 의미가 있는 정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흥미가 끌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호오오?’

마하의 휘하 마법사들이 내놓은 주제들을 보자, 네르하는 어째서 마하가 그리 자신만만했는지 이해했다.

‘단순히 뛰어나다고 평할 정도가 아니야. 기존의 범례들을 뒤집을 정도의 이론들뿐이야. 게다가 희귀성까지 갖췄어.’

아마도 라데우스 본가가 철저하게 독식하고 있던 고급 이론들을 이번 기회에 풀어 버린 것 같은데…….

‘기존 마법계엔 거의 알려진 게 없는 정령 마법까지 들고 왔군.’

확실히 흥미를 끌 만한 주제다. 정령 마법사는 고유 계통 중에서도 최고로 희귀한 부류 중 하나.

온갖 계통이 모여 있는 이곳 리브라에서도, 정령 마법사는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게다가 이게 끝이 아니었다.

꿈틀!

‘마나 연공법이, 4개씩이나?’

그야말로 네르하를 완벽하게 밟아 버리려는 마하의 의지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때, 세이라가 뭔가 우물쭈물하며 숨기고 있던 걸 실토했다.

“사실 이 정보를 얻게 된 건, 마하 공녀 측에서 애초에 숨길 생각이 없기 때문인 게 컸어요. 아니, 오히려…….”

“열심히 마법계에 이 정보를 퍼 나르고 있다?”

“네, 원래라면 이런 건 주제조차도 극비로 숨겨졌겠지만, 어째서인지 중견 마탑의 장로 정도면 알 수 있을 정도로 정보가 퍼지고 있어요.”

“재밌군.”

동생을 화려하게 밟아 버리기 위해 일부러 판을 키우고 있는 건가?

아마 이번 헤르메스는 역사상으로 꼽아도 가장 화려한 대회가 될 것이다.

“그럼 이쪽도 슬슬 손을 써야겠군.”

“네? 어떻게 손을 쓰시게요? 아무리 주인님이라 해도 심사위원회에 대한 매수는 불가능합니다만.”

“매수는 무슨 매수냐?”

약간 불쾌하다는 듯 세이라를 노려본 네르하가 말했다.

“판을 이렇게 벌여 놨으면 적어도 공정성 정도는 갖추어야겠지.”

그리고 그 공정성을 갖추기 위한 방법은, 더욱 거대한 판이다.

“초대장을 보내. 내 이름으로.”

“누구에게요?”

처음엔 순진하게 고개를 갸웃거리던 세이라였지만, 네르하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이름의 면면을 확인하는 순간.

“제, 제정신이세요?”

창백하던 피부가 이젠 완전히 새하얗게 탈색되기 시작했다.

자신의 주인에게 이런 말을 내뱉을 정도로, 네르하가 뱉어낸 이름들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난 지극히 제정신이지.”

네르하의 표정에 작지만 사악한 웃음이 맺혔다.

“시간이 빠듯하니 올지 안 올지는 모르지만, 만약 오게 되면 참 재밌어질 거야.”

“미, 미쳤어. 전 어떻게 돼도 몰라요.”

“모든 책임은 내가 질 테니, 넌 초대장이나 잘 돌려.”

단호한 네르하의 태도에 세이라는 결국 백기를 들었다.

“……알겠습니다.”

세이라는 이로 인해 파생될 여파에 대해선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며 필사적으로 자기합리화를 시전했다.

그녀는 한차례 호흡을 고르고는 말을 이었다.

“북방의 일이 끝난 만큼, 그쪽에 쏠렸던 여력을 라데우스 본가 쪽으로 집중하려고 합니다만, 그 외에 신경 써야 할 일이 있을까요?”

그 질문에 네르하는 고민 없이 대답했다.

“남쪽.”

“네?”

“정확히는, 대수림에 대한 정보가 필요해.”

아무리 앞으로의 일에 네르하가 굳이 개입할 필요는 없다고 하나.

정보 자체는 끊임없이 갱신해 놔야 비상시에 유기적으로 움직일 수가 있다.

그런 면에서, 현재 가장 위험한 쪽은.

‘하늘을 향해 포효하던 그 거대한 마수.’

느낀 건 아주 잠깐의 편린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 위험성만큼은 절대로 무시할 수 없었다.

네르하의 심각한 표정을 느꼈는지, 세이라 역시 얼굴을 굳히며 고개를 숙였다.

“바로 착수하겠습니다.”

* * *

세이라가 돌아간 후에도 네르하는 편히 쉴 수 없었다.

앞으로 남은 여유 시간은 고작 일주일.

그 안에 주변 상황을 최대한 정리하고 이번 헤르메스가 열리는 페이론시로 향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바쁜 나날을 보내던 와중, 네르하에게 또다시 손님이 찾아왔다.

“루시아?”

그녀의 방문은 조용했다.

루시아의 모습을 살펴보던 네르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표정이 좋지 않군.’

아니, 표정보다는 그녀를 둘러싼 기운이 매우 불안정했다.

무언가 정신적으로 몰려 있는 게 눈에 보였다.

“요 며칠 수련장에 박혀 있다고 들었는데, 뭔가 할 말이라도 있나?”

루시아가 시선을 들어 네르하와 눈을 마주쳤다.

“다음 주에 헤르메스에 가신다면서요?”

“그렇지.”

“동행인은 정해졌나요?”

“인솔 교수 한 명과 함께 2인으로 갈 생각이다.”

“인솔 교수라면, 클로이아 교수님?”

뭐, 네르하와의 인연이 가장 강한 건 클로이아이니 원래라면 그녀와 함께했을 것이다.

“아니, 클로이아는 요즘 너무 바빠서. 아마도 레이첼 교수가 동행할 것 같은데?”

북방을 버리고 아르지엔까지 내려온 서리 일족 문제로, 할 일이 워낙 많아 요즘 통 얼굴을 못 보고 있었다.

“그렇군요.”

레이첼 루비아이.

7레벨의 화염계 스테레오 타입의 마법사이자 실마연의 지도교수.

그리고 요즘 들어 네르하에게 들이대는 빈도가 부쩍 늘어난 이이기도 했다.

“요즘 레이첼 교수가 당신에게 뭘 내놓으라고 소리 지르는 경우가 많다던데?”

“아아, 클로이아 때문이지 뭐.”

네르하는 짜게 식은 눈빛으로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을 회상했다.

어느 순간 갑자기 두다다다 달려와서는 이쪽의 멱살을 붙잡으며 하는 말이.

―야! 저년, 대체 북방에서 뭘 처먹고 왔길래 저렇게 강해졌어!? 영약이지? 영약이야!

―네가 쥐방울만 할 때 밑으로 들어가 줬는데 난 뭐 없냐? 응?!

…이런 식으로 네르하를 들들 볶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충격이었겠지.’

원래 레이첼은 클로이아보다 반수 위에 있는 실력자였다.

하지만 만년빙정을 얻고 북방에서 재능이 제대로 개화하기 시작한 클로이아는, 고작 1년 만에 레이첼을 훌쩍 추월해 앞서 버린 것이었다.

‘아마 오랜만에 만났으니 실력이나 확인해 보자고 싸움을 걸었다가…….’

처참하게 발렸을 가능성이 높았다.

아니, 네르하를 보자마자 보인 격한 반응을 고려하면 높은 정도가 아니라 그냥 100%다.

그때, 루시아가 뜬금없이 이런 말을 내뱉었다.

“저도 데려가 주실 수 있나요?”

“너를?”

“네, 적어도 방해는 되지 않을 자신은 있어요.”

일취월장하는 루시아의 실력이야 의심할 여지는 없다.

하지만 굳이 안전한 리브라를 놔두고 밖으로 나돌아다닐 이유가 있나?

그런 시선을 느꼈는지, 루시아가 깊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당신의 곁에 있어야만, 이 복잡한 마음이 가라앉을 것 같으니까요.”

“어?”

해석하기에 따라서, 뭔가 묘하게 들릴 만한 발언이었다.

“응?”

그리고 루시아 역시, 자신이 방금 뭔 말을 내뱉었는지를 자각했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다급하게 두 손을 내젓는 그녀의 뺨에는, 짙은 홍조가 드러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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