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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175화 (175/237)

175화

<헤르메스로 가는 길 (3)>

“그렇군, 요즘 들어 평정심이 깨지는 일이 잦다고?”

“그, 그래요. 절대로 당신 때문이 아닙니다.”

“아니, 그건 당연한 거다만.”

이젠 굴지의 실력자로 성장한 그녀가 갑자기 이런 고충을 토로하는 건 이상할 게 없다.

‘캐스팅 중에 마력 제어가 힘들고, 검로에 흔들림이 생긴다라.’

이런 일이 일어나는 원인은 둘 중 하나다.

생각을 마친 네르하는 고개를 들어 루시아를 바라보았다.

“일단 지금 상황에선 뭐라 대답하기 힘들군.”

“…….”

“왜 날 노려보고 있지?”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째서인지 루시아가 뭔가 심통이 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본인이 아니라니 그러려니 하는데, 왜 이쪽이 잘못한 느낌이 들지?

“일단은 실전 대련으로 확인해 보도록 하자. 그래야 정확히 알 수 있을 것 같군.”

“뭐, 그러죠.”

* * *

사악!

날카로운 검기가 네르하의 어깨를 노린다.

흔히 오러를 발현해 내는 경지를 초인의 단계라고 치켜세우는 경우가 많지만, 진정한 초인은 날카롭게 정련한 마나 소드로도 오러를 베어 내는 게 가능했다.

즉, 지금의 루시아가 그 단계에 들어섰다.

삭! 삭! 삭!

방금 전의 일격을 가볍게 피했다고 그게 끝이 아니었다.

한 차례의 찌르기가 무효로 돌아가자마자, 재빠르게 어깨를 좁힌 루시아가 대번에 세 번의 공격을 연이어 가해 왔다.

‘빠르고 유연하군!’

네르하는 감탄했다.

지금의 일격을 막아 내거나 피할 수 있는 자가, 지금 리브라에 몇이나 될까?

적어도, 생도 수준에서는 네르하를 제외하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도 좋았다.

“하아압!”

루시아의 빠른 검격에서 네르하는 그녀의 주변에 존재하는 반구형의 형태를 보았다.

저것은 바로 검사로서의 제공권. 저 영역에 별다른 공략법도 없이 들어갔다간 팔 하나 잘리는 건 순식간일 것이다.

‘하지만 역시.’

루시아 본인이 말했듯, 저 영역에는 ‘흔들림’이 많다.

‘그렇다면, 공략법은 간단하지.’

네르하는 그대로 몸을 길게 빼며 거리를 벌렸다.

물론 시간을 끌 생각은 없었다. 루시아의 체력을 고려하면, 저 제공권은 충분히 1시간 이상도 유지가 가능할 테니까.

―고유 계통 발현

―역 속성 분리 : 칠채색의 광휘

네르하의 전신에서 다양한 속성의 마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무, 무슨 짓을?!”

루시아는 경악했다.

원래라면 다중 속성을 다루는 건 마법사들 사이에선 추천되지 않는다.

상생의 속성만을 다룬다고 해도, 조금만 집중력이 깨지면 멋대로 제어를 벗어나 폭주하기 마련.

2, 3개도 아니고 7개의 속성을 동시에 다루려다간 자멸할 게 뻔했다.

하나.

“어? 어어?”

일곱 개로 분리된 마력이, 허공에서 아주 부드럽게 나뉘며 조화를 이루고 있다!

“말도 안 돼!”

8레벨에 이른 대마법사나 가능할 법한 기예.

네르하가 하나하나 주문을 영창할 때마다, 허공에 나타난 마법진이 속성의 마력을 마법으로 가공시켰다.

―플레어 버스트

―아쿠아 하이드로 캐논

―스톰 브링거

―스톤 엣지

―다크 악셀

―라이트닝 스매셔

―브릴리언트 플래시

순식간에 7개의 마법을 영창해 낸 네르하가 사악하게 미소 지었다.

“내가 쌓아 올린 고유 계통의 가능성을 파헤치다 얻어 낸 과정 중 하나지.”

“저, 저기?”

“어디 한계까지 막아 보도록!”

“잠, 잠까아아안!”

루시아의 애틋한 비명과 함께, 일곱 개의 마법이 그대로 루시아의 전신을 두들겼다.

* * *

그렇게 가벼운 실전 대련이 끝났다.

“흐아아아…….”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루시아는 네르하가 쏘아 낸 7개의 마법을 모조리 격퇴해 내는 데 성공했다.

캐스팅을 7개나 했다는 게 대단했지, 사실 마법을 하나하나 따져보면 전부 5레벨 이하의 공용 마법들뿐이었으니까.

하지만 네르하의 마법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마나 익스텐더로 증폭시킨 마력을 끊임없이 순환해서 루시아의 영역을 두들겼고, 그 결과 생각보다도 훨씬 일찍 루시아의 자세를 무너뜨리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결과.

“너무해.”

간신히 타박상으로 끝난 루시아가 탈진한 채로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칭얼거리지 마라.”

하지만 그런 루시아의 투덜거림에도 네르하는 냉정했다.

“원래 네 실력대로라면 30분 정도는 더 버텼을 테니.”

살그머니 고개를 든 루시아가 입술을 살짝 내밀었다.

“확실히 문제가 있긴 하군.”

평소의 공방에선 무리가 없다. 하지만 문제는 점차 극한으로 몰아칠수록 루시아의 흔들림이 부각되고 있다는 점이다.

‘마법을 받아치는 공격에 지나치게 힘이 들어가고, 날카롭게 쏘아져야 할 검격엔 흔들림이 있다.’

평소의 그녀를 생각하면, 이런 공격쯤은 부드럽게 흘려내려고 시도했을 것이다.

‘이게 생각보다 더 문제인 건, 실력의 부족이 아니라 정신 상태가 흔들려서 나타나는 구멍이라는 건데.’

이건 급격하게 이룬 성취에 대한 반작용으로 일어난 성장통에 더불어 하나의 문제가 더 혼합된 경우였다.

네르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전형적인 주화입마 초기 증상이군.’

심적인 부분에서 작은 화가 일어나 그게 조금씩 불씨를 키우기 시작하고 있다.

이것이 곤란한 점은, 이 심적인 부분이 네르하가 해결해 줄 수 없는 부분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투기 자체는 나쁘지 않아.”

칭찬으로 시작했지만, 루시아는 저게 본론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곧 무지막지한 비난이 쏟아질 것 같은 느낌이…….”

“잘 아는군. 성장에 대한 지나친 갈망. 그리고 누군가에 대한 열등감. 지금 네 상황을 고려하면, 아마도 가문에 대한 일이겠지.”

“…….”

“솔직히 이 부분은 내가 해결해 줄 수 없는 문제다. 라데우스의 인간이 케프렌의 사정에 개입하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니까.”

“그렇긴, 하죠.”

“너도 어디에 도움을 구할 수도 없으니 혼자서 끙끙거리다가 화가 치민 거겠지.”

“아, 아니. 그건 아닌데요.”

“그게 아니라곤 해도, 원인은 같을 테지.”

루시아는 그 말에 부정하지 않았다.

시무룩해진 그녀를 향해, 네르하가 딱한 눈빛을 보냈다.

‘뭔가, 도움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사실 이번 북방 사태에서, 결과론적으로 보면 가장 큰 손해를 본 게 바로 루시아다.

같이 북방으로 간 다른 녀석들은 작위다 보물이다 하면서 한몫 단단히 챙겨 갔는데, 정작 함께한 루시아는 개인의 성취를 제외하면 얻은 게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보물전의 아티펙트를 넘겨주고 싶어도 신분이 신분이다 보니.’

네르하는 나름 그녀에게 미안해하고 있었다.

“주화입마는 사소한 일에서 시작되기도 하지만, 사소한 일로도 풀리기 마련이지.”

“……?”

“이번 헤르메스가 열리는 마법 도시 루리엔은 내가 알기론 나름 괜찮은 곳이라고 들었다. 일단은 바깥 공기 좀 쐬면서 기분을 환기시키자고.”

네르하의 의도를 알아들은 루시아가 눈을 번쩍 떴다.

“그 말은?”

“어차피 넌 리브라에 크게 얽매일 사정도 아니니, 사정을 말하면 뺄 수 있겠지.”

“아아!”

루시아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하긴, 최근 몇 년간 그녀는 휴식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으니, 이런 여행도 제법 나쁘진 않을 거다.

“고마워요, 네르하!”

루시아는 뭐가 그리 기쁜지 팔을 활짝 벌리며 기뻐했다.

그렇게, 헤르메스로 가는 최종 동행인으로 루시아가 확정되었다.

* * *

그렇게 며칠 뒤.

“그란시스 마탑이 이런 걸 보내오더구나.”

학장 루트비히에게 불려간 네르하는, 이번 헤르메스를 주최하는 그란시스 마탑으로부터 통보 하나를 받았다.

네르하는 루트비히에게 받은 통보지를 읽고는 묘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예선 경연?”

“그래, 마탑의 늙은이들이 제법 깜찍한 수를 썼더구나.”

예선 경연이란 다름이 아니었다.

본선에 차출된 70여 개의 경연작에 더해, 이번 헤르메스에 한해서 80개의 경연작을 추가하여 본선 경연작의 수를 총 150개로 늘리겠다는 것.

그리고 그 80개의 경연작은 다름 아닌 현장에서 심사를 받아 뽑겠다는 것.

“이게 가능한 일입니까?”

헤르메스가 시작되기까지 앞으로 3주도 채 남지 않았다.

이런 식의 긴급 공표가 이루어지면 행사가 제대로 돌아갈 리도 만무했고, 그건 곧 높은 확률로 헤르메스라는 행사의 권위가 실추되는 것으로 이어지기 마련이었다.

루트비히는 작게 웃었다.

“그만큼 이번 사태를 그놈들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증거겠지.”

네르하는 하단 부분에 있는 내용을 읽었다.

“심사작이 많아지는 만큼, 추가로 라데우스 본가의 저명한 인사들을 심사위원으로 초대하겠다라.”

“그래, 이번 통지에서 가장 중요한 게 그 부분이다.”

“이번 행사를 정치 싸움으로 몰고 가겠다는 속셈이군요.”

“끌끌끌! 그렇지.”

그란시스 마탑의 의도는 이것이었다.

솔직히 우리가 너희 둘 중 하나를 선택하기엔 리스크가 크니, 너희가 알아서 라데우스 본가의 영향력 싸움으로 결론을 지어라.

“조금, 괘씸하군요.”

“하지만 나쁘진 않지. 마하가 이번 헤르메스에 준비를 철저히 해 놨을 테니까.”

“학장님께선, 제가 낸 이론이 마하 누님이 보낸 자들에게 밀리리라 보십니까?”

“글쎄? 그건 모르지.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루트비히가 손가락 하나를 치켜들었다.

“마하라면, 심사위원에 대한 매수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를 거란 점이지.”

“…….”

“판을 먼저 크게 벌인 것도 마하의 짓이었으니, 밑에 있는 마탑으로서도 할 말은 있지.”

“정치 싸움이라…….”

네르하는 말끝을 흐렸다. 그런 네르하를 향해, 루트비히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이건 마하에게도 의외의 일일 것이다. 자, 너는 이 사태를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

“마하 누님과 본가의 영향력 싸움으로 간다면, 결국엔 제가 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란시스 마탑이 일견 손을 놓아 버린 것처럼 보여도, 잘 따져보면 마하에게 승산이 있는 쪽으로 판을 벌린 셈이었다.

“그러니 원래 예정대로 판을 공정하게 짜야겠죠.”

“어떻게? 시간이 얼마 없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손을 쓸 셈이더냐?”

네르하는 루트비히와 눈을 마주하며 씨익 웃었다.

“이런 상황에서 공정한 판을 짜려면, 더 큰 판이 필요합니다.”

“더 큰 판?”

“미리 손을 써두기를 잘군요. 그게 아니었다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네르하는 마치 독백하듯 작게 웃었다.

“여러모로 운이 따르는군요.”

“흐으음…….”

루트비히는 고개를 살짝 꺾으며 생각했다.

‘저 모습을 보면 뭔가 손을 써둔 것 같긴 한데, 그걸 내게 말해 줄 생각은 없어 보이는군.’

뭐, 무슨 짓을 했는지 지켜보는 것도 나름 재미일 것이다.

‘이번 헤르메스는 참 재밌겠군. 직접 가 보지 못하는 게 참으로 아쉽구나.’

‘여러모로’ 해야 할 일이 많은 루트비히는 진심으로 아쉬워했다.

* * *

그렇게 며칠 뒤.

지도 교수 레이첼을 필두로, 네르하와 루시아가 다시 리브라의 문을 나섰다.

많은 이들이 네르하가 이번 헤르메스에서 어느 정도의 성적을 거둘지 궁금해했고, 그에 따라 꽤나 많은 이들이 네르하의 움직임을 주목했다.

그런 와중, 지나치게 환하게 웃는 레이첼의 모습이 다수의 눈에 목격되었다는데, 그 사실에 주목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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