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184화 (184/237)

184화

<헤르메스 (3)>

‘마나 연공법이라.’

네르하의 눈이 흥미로 가득 찼다.

대륙 각지에서 모인, 수많은 천재, 수재들의 발표를 들으면서, 네르하는 정말로 많은 것을 얻었다.

아직 자기 차례도 아닌 이틀 차에도 굳이 참석했을 정도로 말이다.

‘이번 헤르메스에 제출된 마나 연공법은 내 걸 포함해서 다섯 개. 과연 어느 정도 수준일지…….’

마나 연공법이라는 말에, 심사위원들은 물론 관람석의 다른 이들까지 눈을 빛내기 시작했다.

특히 몇몇은 아예 보드나 수첩을 들고 필기를 준비하기까지 했다.

“참으로 도전적인 응시자로군요.”

“그것도 라데우스의 특수마법개발부라면 엘리트 중의 엘리트들이 모이는 집단. 그곳을 서른 이전에 들어갔다면, 못해도 5레벨에 이르렀다는 말이겠죠.”

그때 라데우스와 관계 없는 한 심사위원이 불편한 심기를 여지없이 드러냈다.

“하지만 헤르메스는 개인의 성취를 평가하는 곳. 라데우스의 지원이 있다면 당연히 상위권을 노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흥, 그 반대겠지.”

하지만 그 말은 대번에 반박되었다.

“지원 없이 상위권을 노릴 수 있는 인재이니 라데우스의 선택을 받는 거요. 일의 선후는 확실히 알아줬으면 좋겠군.”

그 심사위원은 마탑의 초대를 받고 참가한 라데우스의 원로 중 하나였다.

“그리고 알 만한 사람이 그런 말을 하시오? 세상에 완벽한 공정함이라는 게 존재하던가? 라데우스의 후원을 받는다는 건 개인의 능력이며 운. 그로 인해 헤르메스의 평가가 떨어진다 해도 절대적인 진리는 변하지 않소.”

“크, 크흠!”

개인의 성취에서도, 이름값에서도 완벽히 눌린 그 심사위원은 괜히 헛기침하며 고개를 돌렸다.

철저하게 재능의 영역인 마법계에서 공정함을 따지는 것만큼 어리석은 건 없었으니까.

그런데, 그 원로가 의외의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리지널리티의 검증은 확실히 해야겠지.”

“그 말씀은?”

“라데우스의 지원은 어디까지나 제 능력을 방해 없이 펼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지, 타인의 것을 훔쳐 자신의 것으로 포장하는 게 아니지. 차후 라데우스 소속의 응시자들은 일반적인 지원자들보다도 더 가혹한 검증이 있을 거요.”

겉으로 보면 다른 이들을 최대한 배려하는 듯한, 마법계의 정점인 라데우스의 자존심을 세우는 듯한 말이었지만.

의외로 그 반응에 대한 평가는 좋지 않았다.

‘흥, 말은 잘하는군. 자기들 가주가 저렇게 눈을 부릅뜨고 있으니 저렇게 말하는 거겠지.’

‘저만한 VIP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논란이라도 일었다간 라데우스의 명성에 흙탕물을 뿌리는 격. 저들이 없었다면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망할 놈. 저놈이 마하 공녀의 후원을 받았다는 걸 모두가 뻔히 아는 사실이거늘.’

그래도 뭐가 됐든 마나 연공법을 공개한다는 건, 그로 인해 파생될 손해를 감수한다는 것.

상황이야 어찌 되었건, 심사위원들은 기대감을 가지고 지엔을 바라보았다.

“먼저, 결과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제가 개발한 마나 연공법 ‘수룡의 흐름’은 이름 그대로 ‘수 속성’의 마나를 연성하는 방법입니다.”

그 말에 심사위원들이 고개를 주억거리기 시작했다.

“머리를 썼군요.”

“확실히. 무속성의 마나가 아닌 엘리멘탈 계열의 특정 속성이라면 재능을 타니 말이죠.”

엘리멘탈 계열의 속성의 경우, 방법을 안다고 마나 연공법을 함부로 연성했다간 골로 가기 딱 좋다.

해당 계열에 대한 재능이 없다면, 소위 중원에서 ‘삼재심법’이라 불리는 기초 연공법보다도 효율이 떨어지기도 하고 말이다.

헤르메스에 제출된 연공법이 세간에 공개된다고는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마법계에 한정되기 마련.

‘설사 마나 연공법이 절실한 귀족가라 해도 혈족 전체가 그 분야를 타고나지 않는다면 쉽게 건드릴 수 없으니까.’

몇몇 이들의 눈에 실망감이 번지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네르하는 지엔이 설명을 이어나갈수록 감탄을 금치 못했다.

‘상당히 공을 들인 이론이다. 적법한 체질을 타고난 이가 어릴 적부터 저 연공법으로 수행한다면 엄청난 성취를 이룰 거야.’

물론 해당 연공법에 걸맞는 인재를 찾는 것부터가 지난한 일이지만, 어쨌든.

‘저 정도면 내 연공법의 개량에 큰 도움이 될 수 있겠군. 후, 후후후…….’

스타 플래티넘을 생성하는 라데우스 특유의 마나 연공법에 더해, 네르하는 속성 통합이라는 자신의 고유 계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제3의 연공법을 또다시 만들고 있었다.

물론 지금도 충분한 마나를 지닌 네르하에게 새로운 연공법을 개발한다고 도움이 될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축기(畜氣)와 운용(運用)은 다른 문제이니까.’

비축한 기를 효과적으로 운용하는 것 역시 마나 연공법의 한 갈래.

네르하는 이 두 가지 중 후자에 조금 더 무게를 둔 연공법을 개발 중이었다.

“적법한 재능을 지닌 이가 연성할 경우, 라데우스가 세운 축기율의 기준으로 약 1.7의 효율을 볼 수 있습니다.”

“오오!? 1.7!”

지금까지 심드렁하던 관객들이 1.7이란 소리를 듣고 다시금 눈을 부릅뜨기 시작했다.

그때, 옆에 있던 루시아가 네르하에게 물어왔다.

“1.7이라면, 평균 기준 효율에서 1.7배의 마나를 쌓을 수 있다는 거죠?”

“그렇지. 효율로만 따지면 초일류… S급의 연공법이라 할 수 있지.”

중원의 경우 60년의 축기를 통해 1갑자의 공력을 얻을 수 있다는 등, 연공법의 효율 기준이 존재하듯.

이쪽 대륙에서도 마나 연공법의 등급을 구분하기 위한 축기율이라는 기준이 존재한다.

“일반적인 마법사의 마나 연공법을 1.0으로 잡아 B급이라는 기준으로 두고, 1.4이상을 A급으로 취급하지. 1.7이면 뭐, 아무리 특정 속성을 위한 연공법이라곤 해도 말도 안 되는 효율인 건 맞아.”

“그 일반적인 수준이라고 한다면?”

“딱 바스톤이 속한 페레이라 가문을 대략적인 기준점으로 둘 수 있겠네. 뭐, 지금은 좀 다르겠지만.”

사실 1.0을 만족할 수 있는 마나 연공법도 대륙에선 상당히 높게 쳐주는 편이었다.

일반적인 용병, 방랑 마법사들이 익히는 삼류 쓰레기 연공법의 경우엔 0.5는커녕 0.2나 0.3도 나오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였으니까.

“저 정도면, 가문이나 집단의 비밀 병기를 위한 인재 찾기에 몰두할 가능성도 적진 않겠군요.”

“아마 딱 그 정도의 파급 효과 정도만을 노리고 공개했을 가능성이 크지.”

사실, 그렇다고 해도 네르하는 그리 큰 효과는 없을 것으로 보았다.

설사 특정한 재능을 발견하여 그에 대한 연공법을 적용시킨다고 해도.

‘그 효율을 뽑아낼 수 있는 술식의 부재를 어떻게 해야 할지도 문제지.’

수 속성의 마나를 익힌다면, 그 마나를 이용해 발현할 수 있는 마법도 수 속성의 마법밖에 없다.

문제는 일개 가문이 특정 속성의 마법을 고레벨에 이르도록 가르칠 역량이 있을 리가 없을뿐더러, 그걸 해결하려고 마탑 같은 곳에 문의라도 했다간 대번에 라데우스의 정보망에 걸려버릴 가능성이 컸다.

“음, 어쩌면…….”

네르하는 살짝 말끝을 흐렸다.

이제 막 지엔의 발표가 끝나고 다음 차례로 넘어가려고 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렌의 다음으로 나타난 이는, 레이첼을 연상시킬 정도로 붉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여성 마법사였다.

“페릴 네스란입니다. 제가 이번 헤르메스에 제출한 이론은, ‘화속성’의 마나 연공법입니다.”

‘역시.’

대중화가 불가능한 특정 속성의 연공법을 발표하면서, 혹시 모를 자신의 마나 연공법에 대한 견제를 동시에 행하고 있다.

‘내가 발표할 마나 연공법 역시 특정 속성에 관련되었다고 생각했나?’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아니, 일반적으로 보면 오히려 이렇게 생각하는 게 더 타당하다.

A급 이상의 무속성 마나 연공법을 멋대로 배포한다면 그 파급력은 어디까지 뻗어 나갈지 예상할 수가 없다.

정말로 뒷감당을 할 수가 없을 터. 그랬다간 라데우스 본가에서 무력으로 헤르메스를 뒤엎어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네르하의 예상대로, 이후 마나 연공법이라고 나오는 것들은 전부 엘리멘탈 계열에 치중된 특정 속성의 마나 연공법들 뿐이었다.

그렇게 2일 차가 끝나고, 숙소로 돌아온 네르하는 헤르메스에서 발표된 이론들을 정리하며 이렇게 생각했다.

‘마하가 정말 날 뭉개버리려고 작정을 했군.’

단순히 마나 연공법만이 아니라, 독창적인 고레벨의 술식, 산업 하나를 뒤집어버릴 수 있는 이론들이 대거 출품되었다.

게다가 단순히 이론을 던져버린 게 아니라 저작권이니 특허권이니 하는 걸 들고 와, 라데우스의 이익을 저해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의 임팩트를 보이는 치밀함까지 갖추었다.

네르하만이 그걸 느낀 게 아니었는지, 레이첼이 불쑥 찾아와 걱정을 표했다.

“괜찮겠어? 마하가 보낸 애들, 만만치 않아보이던데 말이야.”

“네, 하나같이 대단하더군요. 배울 게 정말 많았습니다.”

단순히 지식이나 이론의 깊이로 따지면, 네르하는 그들에 비할 수가 없었다.

전장에서의 전투가 아닌 탁상 위에서의 전투.

주 전장이 아닌 곳에서의 전투는 네르하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깁니다.”

네르하는 담담하게 그 한마디를 내뱉었다.

* * *

3일 차, 헤르메스.

3일 차가 되었음에도 헤르메스의 열기는 전혀 식지 않았다.

오히려 뒤로 갈수록 더 수준 높은 이론들이 나타난다는 걸 알아차렸는지, 대중들은 지치기는커녕 참가자들에게 꾸준한 환호와 응원을 보냈다.

그렇게 3일 차 헤르메스가 시작되고 반나절이 지나, 48명의 인원이 발표를 끝냈다.

그리고.

“드디어군요.”

“사실상 이번 헤르메스의 주인공이 등장할 차례, 말이죠.”

“대체 어느 정도의 이론일지, 기대가 됩니다.”

심사위원들은 하나같이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에 제출된 이론들을 수습한 그란시스 마탑의 마스터들은 단 하나의 이론도 심사위원들에게 공개하지 않았다.

그만큼 보안에 신경을 썼다는 증거이긴 하지만, 심사위원들은 지금, 이 순간이 올 때까지 좀이 쑤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고, 대중들과 심사위원들의 앞에 은갈색 머리카락의 청년이 나타났다.

‘라데우스라는 거대 가문의 후계 경쟁에 엄청난 영향을 주는 경합.’

‘지금까지 마하 공녀의 후원을 받은 이들의 이론들은, 하나같이 우승을 차지해도 이상할 게 없는 것들 뿐.’

‘게다가 단 하나의 겹침도 없이, 다양한 분야에서 독보적인 수준을 보여주었지.’

‘아무리 북방의 영웅이라 불린 청년이라지만, 이론에서 그것들을 넘어설 수 있을까?’

오만가지 생각이 심사위원들의 뇌리를 지배하던 중, 오늘 49번째로 지정된 네르하의 입이 열렸다.

“네르하 라데우스입니다.”

그 순간, 장내가 조용해졌다.

“제가 이번에 제출한 이론은 마나 연공법입니다. 이미 저 이전에 네 분이나 되는 마법사들이 발표를 해서 그런지 그다지 희소성은 없군요. 기대했는데 말입니다.”

엷게 웃는 네르하를 향해, 한 심사위원이 질문을 건넸다.

“응시자의 마나 연공법은 무슨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까?”

“지금까지 발표된 화, 수, 풍, 뇌의 4속성의 이론들과 겹친다면, 입상을 위해선 이 이전의 이론들 보다도 훨씬 우수해야 할 겁니다.”

속사포처럼 터지는 질문에도 네르하의 표정은 흔들리지 않았다.

“제가 지금부터 경연할 마나 연공법은.”

좌중을 둘러본 네르하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무속성의 마나 연공법입니다.”

“……!!”

소리 없는 비명.

그야말로 경악이 좌중을 강타한 가운데, 가장 상석에 앉아 있던 카이젤이 옆자리를 향해 나지막하게 경고했다.

“가만히 있으시오, 마기우스 공.”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난 마기우스 엘 케프렌이 카이젤을 노려보았다.

“카이젤 가주. 지금이 두 가문의 전쟁을 막을 수 있는 마지막 골든 타임이오.”

“뭐, 본인도 어제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소.”

카이젤의 예상대로, 마하는 네르하의 모든 수를 봉쇄하려는 듯 다방면에서 최고의 수를 썼다.

하지만 그걸 모두 지켜보았음에도, 경연석에 선 네르하의 표정엔 오히려 자신감이 가득했다.

카이젤은 그 자신감의 원천이 참으로 궁금했다.

“만약 일이 잘못된다면, 내 손으로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을 죽여 버릴 테니, 지금은 조금만 참고 있으시구려.”

“…….”

카이젤이 이렇게까지 말하자 마기우스는 그제야 마지못해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그의 눈은 여전히, 날카롭게 네르하를 향해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