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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186화 (186/237)

186화

<헤르메스 (5)>

마기우스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다음 발표자라고?”

“우연하게도, 저와 제 협력자가 헤르메스의 마지막을 장식하게 되었더군요.”

“그래서?”

“그 협력자는 제가 제출한 마나 연공법을 익힌 자들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그들 중 가장 성취가 뛰어나죠.”

“…….”

“제 이론에 대한 추가적인 증명은, 그녀가 해줄 겁니다.”

“자, 잠깐!”

네르하의 말이 끝나자마자 심사위원석에서 항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참가자들 간에 협력은 헤르메스에서 금지되어 있소. 이것은 룰 위반이오!”

“맞소! 이건 반칙이나 다름없소!”

심사위원 몇몇이 네르하의 참가자 자격 박탈을 주장했다.

그중 한둘은 마하와 짧게나마 연줄이 있는 자들이었다.

네르하는 항변하는 대신 고개를 돌려 마탑의 마스터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이번 헤르메스의 최종 결정권자들이니, 네르하와 루시아의 제출물을 사전에 접했을 것이다.

“크, 크흠!”

VIP들과 함께 있던 마탑의 마스터, 제일 바룬이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응시자 네르하 라데우스와 루시아 스플릿하트의 이론은 확실히 상관관계가 있소.”

“오오! 그렇다면?!”

“하나 그렇다 해도 그 관계가 헤르메스의 룰을 어기진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였기에 이론을 통과시켰소이다. 오히려 확실한 증명을 위해 일부러 발표 순서를 붙여서 배치한 것이오.”

막 밝아지려던 이들의 표정이 다시금 일그러졌다.

“그,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일반적으로 ‘발표 논문’과 그 논문의 ‘파생 논문’이 함께 나올 경우 파생 논문은 룰을 어긴 게 맞소.”

하지만 그들이 판단하기로, 루시아의 제출물은 파생 논문이라 부르기엔 조금 무리가 있었다.

“더군다나 마나 연공법이라는 특수한 케이스를 고려하면, 파생 이론 역시 마나 연공법이어야 룰을 어긴 것이 되지. 하지만 루시아 스플릿하트의 이론은 마나 연공법이 아니었소.”

“……!”

“그러므로 루시아 스플릿하트의 제출 이론이 네르하 라데우스의 평가에 영향을 주는 건 사실이지만, 룰은 어긴 게 아니라는 것이 그란시스 마탑의 판단이오.”

“크흐흠!”

마탑의 마스터가 이렇게까지 나오자, 심사위원들은 더 이상 반대할 이유를 잃고 침묵했다.

제일 바룬이 기세를 이어 루시아를 지명했다.

“그럼, 헤르메스의 마지막 발표자는 앞으로 나오시오.”

이제는 텅 빈 장소가 되어버린 강연자 대기석을, 홀로 차지하고 있던 루시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이쪽으로 오는 네르하에게 걱정스럽게 물었다.

“괜찮겠어요?”

“뭐가?”

“뭐긴요? 내가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당신의 성적이 달렸잖아요? 내가 실수라도 하거나 수준을 인정받지 못하면 어떻게 하려고요?”

루시아도 이런 자리에선 불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네르하와 같이 자신의 주전장이 아닌 곳이니만큼 자신감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가 없겠지.

네르하가 말했다.

“상관없다.”

“정말요?”

“너도 나름 열심히 준비했잖냐? 인정받고 싶어서 말이야.”

“……그건.”

“그럼 부담 갖지 말고 갔다 와. 난 슬슬 대비를 해야 하니까 말이야.”

그녀의 가볍게 어깨를 두드린 네르하는, 이후로 별다른 말 없이 대기실을 빠져나갔다.

네르하의 손길이 닿은 어깨를 살짝 움켜쥔 그녀는, 가볍게 숨을 들이 내쉬고는 경연석을 향해 앞으로 나아갔다.

“루시아 스플릿하트입니다.”

“…….”

그녀의 눈은 심사위원을 향해 있지 않았다.

그녀의 눈은 오로지 한 곳. 그녀가 등장하고 지금까지, 줄곧 자신을 향해 눈길을 거두지 않았던 ‘친부’에게 향해 있었다.

“제가 이번에 제출한 이론의 제목은, ‘마력과 오러의 융합으로 인해 파생되는 가능성’입니다.”

츠츠츠츠!

루시아가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 뻗은 손바닥 위로, 푸른 별빛의 기운이 생성되었다.

그 기운은 마치 행성을 자그맣게 축소한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루시아의 낭랑한 말이 장내를 울렸다.

“이것의 이름은 유성기(流星氣). 한 가문의 마나 연공법과 이전 발표자인 네르하 라데우스의 마나 연공법을 합친 것에 대한 결과물입니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루시아의 유성기에 집중되었고.

“저는 이 유성기를 바탕으로 한 몇 가지의 융합기를 선보일 예정이며.”

무엇보다, 마기우스 엘 케프렌의 놀라움은 이들 중 당연 발군이라 할 수 있었다.

“미리 말씀드리겠지만, 저는 이 유성기를 바탕으로 검왕(Lord of Blade)의 경지에 올랐습니다.”

지금까지 중 가장 충격적인 발언이었다.

* * *

“수고했다.”

경연장의 바깥에는 어느새 레이첼이 마중 나와 있었다.

네르하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성실하시네요.”

네르하와 루시아가 경연 준비에 여념이 없을 때, 이리저리 싸돌아다니며 놀아재낀 걸 의식한 말이었다.

“윽!”

레이첼의 표정이 대번에 구겨졌다.

“비꼬지 마라. 콱 그냥.”

그녀의 협박 아닌 협박을 받은 네르하가 심드렁하게 물었다.

“그래서, 바깥 상황은 어떻습니까?”

네르하가 말한 바깥 상황이란 루리엔 바깥, 라데우스와 케프렌의 신경전을 일컫는 것이었다.

“어떻긴? 완전히 개판이지.”

“흠, 역시 그런가요?”

“네 부하들이 실시간으로 정보를 갱신해주고 있는데, 아주 흥미로운 정보가 하나 날아 왔거든?”

“뭐죠?”

“남쪽에서 대수림의 괴수들이 튀어나와 대거 북쪽으로 도하를 시도했다는 말이 있어.”

“…….”

“다행히 제국 국경수비대가 라데우스랑 케프렌 측의 도움을 받아 일단은 격퇴했다고 하는데, 문제는 대수림에서 튀어나오는 괴수들의 숫자가 상상을 초월한다고 해.”

“상상을 초월한다면?”

“일단 숲 밖으로 나온 것들로만 10만.”

‘일단’이란 말이 나온 건, 앞으로 맞이할 적의 수는 최소 그 세 배 이상을 상정해야 한다.

‘규모로만 따지면 북방 때보다도 많군.’

10만의 괴수라는 건, 라데우스나 케프렌 같은 전력이 없다면 설사 제국이라 할지라도 치명타를 입힐 수 있는 숫자였다.

레이첼이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개입, 할 거냐?”

그 물음에, 네르하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뇨. 처음 정했던 방침은 변하지 않습니다. 헤르메스… 그리고 그에 관련된 일만 끝나면 다시 리브라로 돌아가 개인적인 성취에 매진할 겁니다.”

레이첼은 그 말을 듣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 그런데 말이야. 네 말 중에 ‘그 관련된 일’이라는 게 좀 걸리는데 말이지.”

그녀는 용병 출신인 만큼 이런 일에 눈치가 매우 빨랐다.

“훗, 예리하시군요.”

“그, 끝나자마자 바로 돌아갈 수는 있는 거냐?”

“음, 아마도 힘들 것 같긴 합니다.”

“아마도라니? 뭔가 말이 묘하다?”

네르하는 빙그레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미네르바와 별도로 굴리고 있는 첩보원의 말에 의하면…….”

“의하면?”

네르하가 손가락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몇 시간 후면, 이 도시에 메테오가 떨어질 예정이라고 하더군요.”

“……에?”

레이첼의 표정이 멍청하게 변했다.

* * *

“……이상입니다.”

약 15분간 이어진 루시아의 강연이 끝났다.

“…….”

“…….”

심사위원들은 물론이고, VIP와 다른 관객들까지 입을 다물며 침묵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심사위원 중 하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추, 축기율, 3.0이라니. 그게, 말이 되는 수치인가?”

루시아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 말이 됩니다. 다만, 이 수치는 세간에 S급으로 평가받는 무속성의 마나 연공법과 결합된 결과물이며, 여기에 더해 저 자신의 성취가 예상 편차보다 더 뛰어났기에 나올 수 있는 수치입니다.”

확실히, 모두가 1.0의 마나 연공법을 익힌다고 하여 전부 1.0이라는 결과물을 내진 않는다.

개인의 재능에 따라, 그리고 노력에 따라 1.0은 1.2가 될 수 있고, 1.5도 될 수 있는 법이었다.

하지만.

그걸 고려해도, 3.0이란 수치가 정말 말도 안 되는 수치인건 부정할 수가 없었다.

“3.0. 3.0이라…….”

“축기율의 임팩트가 너무 커서 그렇지, 마력과 오러의 융합으로 인한 기술들 역시, 그 잠재력이 대단했습니다.”

그들은 그것조차도 밑천을 전부 꺼낸 게 아니라는 걸 알아차렸다.

“마법과 검술, 두 가지를 모두 익혀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래도 이 정도의 잠재력이라면…….”

“수치 하나만으로 이번 헤르메스에 제출된 모든 이론을 잠재울 수 있겠습니다.”

심사위원들의 의견이 하나로 모이려던 찰나.

마하 측 심사위원들이 이의를 표명했다.

“하지만 정작 연공법의 결합 노하우는 공개하지 않았잖습니까?”

“맞습니다. 가장 중요한 요소가 없다면 네르하 라데우스의 이론은 고작 0.8의 마나 연공법일 뿐입니다.”

“지엔 시룬이나 페릴 네스란의 연공법은 1.7의 축기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차라리 이들의 이론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필사적으로 네르하의 연공법을 깎아내려는 그들의 시도는, 아쉽게도 다른 심사위원들의 말에 저지당하고 말았다.

“무속성의 마나 연공법과 속성 마나 연공법의 가치가 같을 수가 있겠습니까?”

“저런 속성 마나 연공법을 익힐 수 있는 인재는, 잘 해봐야 만 명에 한 명꼴밖에 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마법계가 입문부터 재능을 따지기는 하나, 이런 경우는 재능 속의 재능을 따지는 일.”

“입문 자체를 할 수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는 아주 중요하죠.”

“거, 다 알 만한 분들이 그런 말을 하시오?”

“크, 크흐흠!”

많은 심사위원들의 폭격 속에, 마하 쪽 심사위원들이 그대로 쭈그러졌다.

절대다수의 엘리멘탈 계열 마법사들은, 무속성의 마나 연공법을 익힌 뒤 고유 계통을 각성하면서 자신의 마나 속성을 변화시킨다.

일반적인 마법사보다 배에 가까운 마나를 시작부터 쌓는다면, 확실히 특별한 존재로 거듭날 수 있긴 했지만.

그런 축복을 받는 건 정말로 대륙 전체를 이 잡듯이 뒤져도 몇 명 되지 않았다.

“거기다 네르하 라데우스는 원한다면 얼마든지 두 연공법을 결합해주겠다고 했습니다.”

“이건 라데우스 가문이 지향하는 전투마법사의 육성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누군가가 이젠 사장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단어 하나를 내뱉었다.

“마투사(魔鬪士)라…….”

마검사와 함께, 이젠 대륙에선 웃음거리로 전락한 두 길을 파는 자들.

지금 네르하와 루시아가 제출한 이론들을 합작한다면, 충분히 두 길은 하나의 널찍한 길로 합쳐질 수가 있었다.

“아무래도, 결정이 난 것 같군.”

VIP석에 있던 카이젤이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

그리고, 그런 카이젤의 곁에 있던 마하의 표정이, 붉으락푸르락하며 분노로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감시탑에서 온 급보입니다!”

어수선하던 장내의 시선이, 대번에 난입한 한 사내에게로 쏠렸다.

“뭐지?”

“루리엔 동남쪽 30km에서 9레벨 대이적 마법의 마력을 관측!”

“뭐? 9레벨이라고?!”

“뭐가 발현한 거지? 그리고 그 마력이 향한 곳은 어디고?”

보고를 올리는 사내의 입이, 사정없이 떨리고 있었다.

“그, 그 마력이 지정된 곳은, 다름 아닌 이곳 루리엔 시로 판명 났으며…….”

“그리고? 또?”

“사, 사용된 마법은, 미, 미티어…스트라이크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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