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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188화 (188/237)

188화

<짐승들의 왕 (2)>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물었다.

“수왕(獸王)이여, 그대는 혼천(混天)의 문이라는 것을 아는가?”

그 누군가의 목소리는 상당히 낭랑했으며, 또한 젊었다.

저 멀리서 산악과도 같은 거대한 짐승이 누군가를 향해 답했다.

“세계의 인과율이 꼬이면서 생긴 특이점이라고 알고 있다.”

“잘 아는군. 혼천의 문은 문자 그대로 혼돈의 하늘을 불러일으키는 문이다.”

지금껏 감고 있던 짐승의 눈이 살짝 뜨였다.

“그래, 너희 마족들이 500년 전에 천계의 문을 연답시고 무리를 하다가 그렇게 되었지.”

“…….”

대답하지 않는 짐승을 향해, ‘그’의 말이 계속해서 쏟아졌다.

“너희들의 헛짓거리 덕분에, 나는 무한전생(無限轉生)의 힘을 잃었다. 신이 될 기회를 박탈당하고, 전혀 관계없는 다른 세계로까지 끌려들어 와 버렸지.”

그의 입가에 비릿한 웃음이 맺혔다.

“거기에 다른 특이점까지 함께 말이야.”

“우리를, 원망하는가?”

“지금은 딱히. 옛날에는 정말 너희 마족들을 전부 없애 버리고 싶었지만, 지금은 네놈들의 발을 500년 동안 묶어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있어. 다만 문을 열어 날 물 먹인 장본인, 네르반 만큼은 여전히 용서하지 못하겠군.”

그 말에 짐승이 가소롭다는 듯 콧김을 내뿜었다.

“힘의 격차를 보았음에도 여전히 신(神)에게 도전하고자 하는가? 무모한 자로군.”

패배까진 아니더라도… 아니, 그때의 결과는 사실상 ‘그’에게 있어서는 패배나 다름없었다.

그가 사뭇 불쾌하다는 기색을 보였다.

“너희가 날 걱정해 줄 여유는 없을 텐데?”

이윽고, 그의 입가에 자그마한 호선이 맺혔다.

“너희가 걱정해야 할 건, 나와 함께 흘러들어온 특이점이니까.”

“……특이점이라.”

“그 특이점은, 너희에겐 500년 전 나 이상의 재앙이 될 것이다. 스스로 불러온 재앙에 짓눌리는 셈이지.”

스윽!

지금껏 엎어져 있던 거대한 덩치가 일어섰다.

“그 특이점이라는 것은, 분명 우리 마족에게 혼돈의 하늘이 될 것임이 분명하겠지.”

퍼석! 퍼서석!

짐승이 일어선 여파로 주변에 있던 나무와 무너지고, 수십 년 동안 자라왔던 덩굴이 줄기줄기 끊어져 나갔다.

“크릉?”

“크르르릉!”

그 기상에 지금까지 눈치를 살피던 짐승의 수하들이 대경실색하며 머리를 박기 시작했다.

짐승은 그런 모습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내 손으로 그 특이점을 제거하겠다. 마계의 생존을 위해서라면 난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

“푸흐흐, 그래서 난 네가 마음에 든다니까.”

그는 확실히 짐승만은 마음에 들어 했다.

‘짐승의 왕(獸王)’이라는 이명을 지녔지만, 짐승은 놀랍도록 이성적이고 실리적이었다.

하찮은 명예와 개인의 영달을 위해 따로 노는 마족들과는 달리, 짐승만은 오로지 대원칙을 잊지 않으며 행동했다.

그 결과, 그 강력한 전력을 지니고도 각개격파 당하며 세계 곳곳에 숨어든 다른 마왕들과는 달리.

한 가지 목표에만 매진했던 짐승은 결국 이 광활한 대륙을 일통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전력이, 대륙의 모든 지성을 가진 생명들을 노리기 시작했다.

“라데우스든 케프렌이든 관계없다. 중간계는 500년 동안 멸망을 유예받은 것일 뿐.”

대륙의 모든 마족 마왕을 통틀어, 오로지 짐승만이 이 말을 할 자격이 있었다.

“나 수마왕 레비아탄! 마계의 낙원 건설을 위해 기꺼이 내 몸을 바치겠다!”

쿠오오오오!

거대한 짐승의 포효가 하늘을 강타했다.

대수림의 모든 괴수들은 그런 레비아탄의 압도적인 격에 굴복했다.

다만 ‘그’만은 그런 레비아탄의 모습에도 전혀 위축되지 않고 주먹을 들었다.

“너도 나도, 서로의 목적이 달성되기를 바라지.”

“아아, 그럼 나중에 보도록 하지.”

레비아탄 역시, 자신의 팔을 들어 주먹을 맞대는 제스쳐를 취했다.

서로가 주먹을 맞붙는 행위는 나름 친근한 동업자의 증거.

그는 드물게 미안하다는 기색으로 자신의 뺨을 긁었다.

“‘녀석’에겐 미안하군. 두 번이나 성인식이 미뤄질테니 말이야. 후후후…….”

* * *

루리엔 남동부. 그라이아나 산맥 인근.

“스승이시여, 앞으로 2시간 후면 루리엔에 심판이 떨어지옵니다.”

“흐흐흐, 수고했다, 모두들.”

수하들의 보고를 받은 마계 백작 자간이 음충맞은 웃음을 흘렸다.

메테오.

자신의 권능이 아닌, 우주의 부산물을 끌어다 적을 타격하는 마법.

오로지 자신의 힘만을 믿는 마족들에겐 발상 자체가 힘든, 그야말로 인간만의 마법이라 할 수 있었다.

궤도 지정도 힘들고 마력 소모 역시 어마어마하지만 그 위력만은 절대적인 대이적 마법.

지난 수십 년 동안 꾸준히 인간의 마법을 배우고 세력을 확장한 보람이 있었다.

“스승이시여, 한 가지 의문이 있습니다.”

“뭐지?”

“지금 루리엔에는 라데우스와 케프렌의 가주, 그리고 골드 드래곤 로드라는 아그란바드까지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들의 힘과 영향력이라면, 하늘이 열리기 전에 도시의 인간들을 대피시키는 건 쉬운 일이 아닐지요?”

확실히 제자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대륙을 나눠 먹은 거대 가문의 가주들, 카이젤과 마기우스가 루리엔에 나타난 건 어디까지나 예상외의 사태였다.

하지만 자간은 오히려 이걸 기회로 여겼다.

“흐흐흐, 상관없다. 중요한 건 루리엔이라는 도시 자체를 박살 내는 거니까.”

만약 카이젤과 마기우스 도시를 내버려 두고 도망간다?

오히려 좋다.

“도시의 시민을 지키든 지키지 못하든, 놈들이 우리의 공격을 피해 도망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

“오오! 확실히!”

“이번에 소환한 메테오는 직접적인 타격이 아닌 어디까지나 선전포고의 의미가 강한 상징적인 축포에 불과할 뿐. 수마왕께서 직접 나서실 때가 진짜 전쟁이 벌어질 거다.”

자간은 이번 전쟁이 상당히 희망적으로 진행되리라고 판단했다.

“북방에서 큰 전력을 소모한 라데우스는 한동안 다시 대군을 꾸릴 여력은 되지 못해. 놈들이 우물쭈물하는 사이, 수마왕께선 이곳 그라이아나 산맥을 넘어 케프렌의 영토를 유린하실 거다.”

“굳이, 전력을 온존한 케프렌을 말입니까? 라데우스를 먼저 치시는 게 오히려…….”

합당한 반문이었지만 자간은 웃음을 흘렸다.

“흐흐, 그것엔 이유가 있다. 너희가 지금 알 필요는 없어.”

뭐가 됐든 스승이자 영혼의 주인인 자간의 말이다. 제자들은 군말 없이 받아들였다.

그렇게 몇 시간 뒤.

“오오! 오오오!”

“하늘이, 열린다!”

루리엔 상공 2km 위로 거대한 마법진이 생성되며 그 사이로 메테오가 공간을 비집듯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마력의 파동만으로 구름이 흩어지고 공간이 진동해, 마치 하늘이 열리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메테오의 크기는 기껏해야 직경 수십 미터에 불과했지만, 이 정도만 해도 도시는 물론 인근 전체를 쓸어버리기엔 충분했다.

“이 광경 하나를 위해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가!? 드디어 열매를 딸 시간이구나!”

라데우스의 눈을 속이기 위해 자간이 들인 노력은 어마어마했다.

일단은 철저하게 대기권 소환이 아닌 공간 소환을 선택했다.

또한 마력의 흐름을 감추기 위해 대수림에서부터 이곳까지 철저하게 마력을 감추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이유로 소환된 메테오의 크기는 일반적인 메테오보다는 작았지만, 지금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자! 이것으로 나 자간의 이름은 마족들 사이에서 불멸의 기억으로 새겨질 것이다!”

인간들을 멸종으로 몰아넣을 대전쟁의 서막을 연 마족!

이만큼 감미롭고 황홀한 칭호가 또 어디에 있을까!

츠츠츠츠!

천천히 공간을 빠져나온 메테오가 목표로 한 지점을 향해 낙하하기 시작한다.

자간은 감격했다.

여기까지 온 이상, 라데우스가 아무리 발악을 해도 저 메테오는 이제 막지 못한다.

눈앞에서 운석이 낙하하는 장엄한 광경을 본다면, 그 누구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어? 저건 누구…….”

천리안으로 루리엔의 상황을 관찰하던 자간과 부하들이 한순간 고개를 갸웃거렸다.

루리엔의 중앙에서, 무언가 검은 날파리 같은 게 튀어나와 하늘을 향해 치솟기 시작한 것이었다.

다만 워낙 관찰 거리가 먼 탓에 날파리처럼 보였을 뿐, 자간은 저것이 ‘사람’이라는 걸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지금, 무슨 짓을?”

루리엔에서 튀어나온 ‘누군가’는 그대로 상공 수백, 수천 미터를 돌파해 메테오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번쩍!

무언가 금색의 호선이 번쩍이더니, 지상을 향해 내려가던 메테오가 그대로 두 동강이 나버렸다!

“마, 말도 안 돼!”

하지만 자간과 부하들의 놀람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눈앞에 마치 루리엔을 뒤덮는 듯한 거대한 수백 수천의 마법진들이 나타나더니.

콰과과과광!

그대로 그 마법진들이 일제히 백색의 광선 비슷한 무언가를 발사하며, 조각난 메테오를 직격 해버렸다!

단순한 빛줄기가 아닌, 천사의 날개들이 뭉쳐있는 것 같은 기묘한 조형.

마치 지상에서 천상의 존재가 승천하는 듯한 장엄한 광경이었다.

그리고 그 일격으로, 자간이 수십 년 동안 공들여 소환한 메테오가 사라져버렸다.

자신의 계획이 실패했다는 것보다도, 지금 자간의 뇌리를 차지한 생각은 단 하나.

“대, 대이적 마법, 신의 휘광(God's glare)?”

9레벨의 3요소 중 하나, ‘소멸’계열의 정점.

메테오가 간섭 계열에서 가장 유명한 마법이라면, 지금 눈앞에 나타난 마법은 소멸계열의 대표적인 마법이었다.

자간은 다리가 풀리는 걸 느끼며 멍하니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대, 대체 누가? 어, 어떻게 이렇게 짧은 순간에, 대이적 마법을 쓸 수가 있지?”

오랜 세월 인간의 마법을 파고든 자간은 나름 확신에 차 있었다.

설사 라데우스라 하더라도, 이런 상황에선 절대로 대응하지 못할 것이라는 걸.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자간의 생각은 얼추 맞아떨어졌다.

북방에서도 고위 마법사 백여 명이 며칠 동안 스펠을 읊어야만 발동이 가능했던 게 바로 대이적 마법, 미티어 스트라이크다.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대이적 마법을 완성시켰다는 건, 미리 알고 마법을 영창해두었거나.

그것이 아니라면.

“서, 설마, 라데우스에, 9레벨에 이른 마법사가, 존재한다는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정말 이게 사실이라면, 수마왕의 전략은 처음부터 다른 방향으로 짜야만 했다.

대수림에서 수십만, 수백만의 괴수들이 튀어나온다 한들, 9레벨의 마법사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이건 화염방사기를 든 인간 앞의 개미 떼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때였다.

“휘유! 굉장한데?”

정신을 멍하니 놓고 있던 자간의 귀에, 처음 듣는 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적’의 출현이 명백했음에도, 자간의 대응은 그저 멍하니 고개를 돌리는 것 정도에 불과했다.

워낙 쇼크였던 탓일까? 자간보다 그 제자들이 먼저 정신을 차렸을 정도였다.

“누구냐!”

“진부한 물음이군. 알면 뭐하게? 이제 곧 죽을 걸.”

퍼퍼퍼펑!

자간이 완전히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주변에 있던 제자들의 머리통이 상당수 사라진 뒤였다.

자간은 그제야 자신들을 찾아온 적의 정체를 파악하곤 이를 악물었다.

“네르하, 라데우스!”

“미안하지만 통성명을 나눌 시간은 없어서 말이야.”

부웅!

자간의 눈앞에 나타난 네르하가, 그대로 상대의 얼굴을 향해 불꽃의 주먹을 내질렀다.

―블레이즈 피스트!

네르하가 처음으로 창시한 오러와 마법의 융합기가, 기습적으로 자간의 머리를 향해 내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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