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189화 (189/237)

189화

<짐승들의 왕 (3)>

나선으로 파고드는 불꽃의 주먹.

게다가 기습인 만큼 어지간한 마법사라면 영창조차 하지 못하고 저세상으로 갈 것이다.

그런데.

“허어억!”

까가가각!

무언가 금속이 갈려 나가는 소리와 함께, 블레이즈 피스트가 튕겨 나갔다!

상대의 반응속도에 네르하는 속으로 적지 않게 놀랐다.

‘이걸 반응해?’

물론 얼굴 일부분이 그대로 뜯겨나가긴 했지만, 상대의 정체가 마족이라는 걸 고려하면 제대로 된 타격을 입히는 것엔 실패한 셈이었다.

“이, 이놈. 기습을 하다니.”

자간은 얼굴 뼈가 보이는 부분을 감싸며 네르하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생각보다 내구성이 좋군. 마법사의 육체가 아니야.”

겉으로 보이는 건 깡마른 노인의 육체였지만, 마족은 그 내면을 보아야만 한다.

그리고 네르하의 눈에는, 자간의 내면에 품고 있는 야성(野性)이 그대로 눈에 보였다.

“마치 짐승과도 같군. 너, 뭐하는 놈이냐?”

어느새 얼굴의 상처가 대부분 재생된 자간이 웃음을 흘렸다.

“흐, 흐흐흐! 예리하구나. 다른 놈들은 단 하나도 제대로 눈치채지 못했거늘.”

우둑! 우두둑!

자간의 노쇠한 육체가 불쾌한 소리를 내며 꿀렁거리기 시작했다.

딱 봐도 전신의 신체가 팽창하고 있는 게 보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전신에 비정상적으로 털이 돋아나고, 인간의 이목구비가 포유류의 그것처럼 불룩 튀어나오고 있었다.

“늑대 인간(Lycanthrope)인가?”

“그냥 늑대 인간이 아니지.”

거대한 마기가 뿜어져 나옴과 함께, 놈의 크기가 무려 4미터가 넘게 자라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검은 갈기가 인상적인 이족보행의 늑대 괴물이 된 자간이, 네르하를 노려보았다.

“웨어 비스트 로드, 자간이다.”

“백작급이었군.”

게다가 그 격은 북방에서 처음 만났을 때의 다른 백작급과 비교해서 전혀 뒤지지 않았다.

그 말인즉.

‘비슈나르와 동급인 녀석이 저놈의 뒤를 봐주고 있군.’

그 사실을 제하고도, 이런 곳에서 갑자기 만난 놈치고는 상당한 거물이었다.

자간이 시퍼런 이빨을 드러내며 말했다.

“네르하 라데우스… 네놈에 대해선 상당히 흥미 깊게 정보를 모으고 있었지.”

“내가 벌써 그렇게 인기인이 되었나?”

“마왕 살해자를 우습게 볼 자는 없겠지. 하지만 내가 주목한 건 다른 부분이다.”

스윽!

자간이 날카로운 검지를 네르하에게 들이밀었다.

“네 녀석이 마법의 강력한 힘에만 의존하지 않고, 육체의 힘 역시 단련했다는 것! 바로 그 부분이다!”

“으, 으응?”

자간은 마치 무언가에 심취한 듯 잔잔한 눈으로 일장연설을 날렸다.

“대부분의 마계 귀족들은 인간의 마법을 무시하지만 난 아니다! 권능과는 다른 인간이 쌓아 올린 보편적인 힘의 체계! 인간의 마법에서 크나큰 가능성을 보았다!”

“어, 그, 고맙다?”

“그리고 나의 강력한 육체가, 인간의 마법과 결합 될 경우 얼마나 큰 시너지가 일어나는지를 깨달았지.”

“……!”

“그 힘을, 네놈에게 유감없이 발휘해주마.”

네르하는 상당히 놀랐다.

네르하의 경우엔 무술… 즉 무공과 마법의 조합에서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지만, 육체 그 자체와 마법을 조합하는 것도 틀린 답은 아니었다.

“크하하! 죽어라!”

자간이 손바닥을 뻗어 마력을 한껏 모으기 시작했다.

‘자간… 아스타로스의 첩보로는 분명 무투파 마족이라고 들었지. 하지만 인간의 육체를 얻어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아스타로스가 자신을 기만했거나, 그도 아니면 그녀 역시 잘못된 정보를 얻었거나.

아무래도 말하는 걸 보면 후자에 가까워 보인다.

“레이첼 교수님.”

“알아. 주변 걱정은 말고 저놈이랑 실컷 놀라고.”

상황을 대번에 파악한 레이첼이 주변에 불꽃을 두르며 외쳤다.

자간은 물론 주변에 있던 마법사, 였던 것들도 늑대인간이 되었다.

“다행히 남은 놈들 중에 마계 귀족급은 없는 것 같군. 죄다 권속들 뿐이야.”

“그래도 방심은 금물입니다.”

“걱정 말라고! 오랜만에 실전 감각으로 놀아 볼까!”

레이첼이 자신의 고유 계통을 발현하며 주변 떨거지들을 붙잡아두면서.

네르하와 자간의 전투 역시 시작되었다.

“하하하! 프로미넌스 플레어!”

자간이 펼친 것은 7레벨의 화염 계열 공격 마법.

거대한 화염의 폭풍이 그대로 네르하를 덮쳤다.

그 위력은 레이첼의 고유 계통과 비교해도 전혀 꿇리지 않을 정도.

‘시작은 눈속임부터인가?’

네르하는 당장 공격에 나서기보단 차분하게 수비를 굳히며 ‘본격적인 공격’에 대비했다.

“포튼 레이 캐논!”

화염 계열 다음엔 광선 계열의 파괴 마법.

역시 7레벨에 이른 강력한 파괴력을 자랑한다.

하지만 레이첼 정도의 숙련자가 시간을 들여 위력을 모은다면 모를까, 일반적인 7레벨 정도의 위력으로는 현재 네르하의 방어를 뚫을 수는 없었다.

‘마탑의 마스터를 수십 년 동안 해왔다고 들었는데, 확실히 마법 사용이 능숙하군.’

네르하는 이번 마법 역시 반격에 나서지 않고 회피와 방어에 집중했다.

그런 네르하의 모습에, 자간은 기세가 등등해져 소리쳤다.

“흐하하! 제대로 반격하지도 못하는가? 확실히 나같은 무투파 마족이 마법의 힘을 만난다면 거의 무적에 가깝긴 하지!”

“…….”

“무한에 가까운 마력! 그것에서 나오는 광범위한 화력! 마계 영역만을 믿는 허약한 놈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육체의 방어력까지!”

콰과과과광!

자간은 입을 놀리는 속도에 걸맞게 수없이 마법을 난사했다.

자간의 전략은 확실히 놀라웠다.

무투파 마족이 수십 년 동안 인간의 마법을 파고들어, 그것을 7레벨의 수준으로 체화해냈다.

체내의 마력은 일반적인 인간 마법사의 수준을 훌쩍 뛰어넘을 테니, 제대로 캐스팅만 할 수 있다면 분명 걸어 다니는 마법 포대라고 불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설마, 이게 정말 네가 말하고자 하는 ‘대답’이냐?”

“뭐?”

“마법과 육체의 시너지에 관심을 가졌다면서, 고작 공수(攻守)의 개념을 나눈 것에 그쳤다고?”

이게 기만인지 아닌지, 네르하는 자간의 표정을 심각할 정도로 살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자간은 진심으로 자신의 상황을 정답으로 여기고 있는 것 같았다.

‘고유 계통을 신체 강화 쪽으로 발전시킨다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텐데?’

이건 고유 계통에 대해 연구하면서 한 번 정돈 생각해 봤던 문제였다.

저런 수인형 마족들은 인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기초 스펙이 높았고, 그것을 최대치로 뽑을 수 있는 잠재력 역시 인간보다도 높았다.

특히나 육체의 능력이 정점에 달하는 무투파 마족이 본격적으로 마법의 힘을 육체 강화에 결합한다면, 정말로 현재의 네르하조차도 경계할 막대한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조금… 아니, 많이 실망이군.”

“뭐라고!?”

“두 길을 파는 건 좋은데, 길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파고 있잖냐? 두 길을 하나로 만들려는 시도는 아예 하지도 않았고.”

“이놈! 무슨 헛소리냐!?”

“무슨 소리긴? 이런 소리다.”

확신이 끝난 네르하가 본격적으로 공세에 나섰다.

속성 통합을 이용해 체내의 마나를 ‘금기(金氣)’로 모조리 때려 박으며, 그야말로 살아있는 철인이 되어 자간을 향해 돌진했다.

“브, 블리자드 스톰!”

뒤늦게 자간이 시야를 가리며 수세로 나섰지만, 네르하는 아랑곳하지 않고 뚫어버렸다.

화염계열이라면 모를까, 얼음계열의 마법은 네르하의 금기를 어찌할 수가 없었다.

“이 오행의 기본적인 상관관계도 모르는 놈이! 그야말로 마법의 공격적인 부분만 파고들었구나!”

분노한 네르하의 주먹이 그대로 자간의 머리통을 돌려 버렸다.

콰앙!

“크아아악!”

자간의 몸이 그대로 꼴사납게 나가떨어졌다.

하지만 마계 백작의 육체가 지닌 강인함은 그대로였던지라, 네르하는 유효타 한 번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해서 자간을 몰아쳤다.

“크억! 컥!”

자간은 필사적으로 마법을 발현해 네르하를 밀어내려고 했다.

그러나.

“왜! 왜 통하지 않는 거냐!”

“그거야, 네놈이 전략과 상성은 1도 고려하지 않고 고위 마법만을 난사하고 있으니까.”

자간은 분명 7레벨에 이른 숙련된 고위 마법사와 동격으로 마법을 쏟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외의 부분은 리브라의 신입생만도 못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육체가 아깝구나!’

차라리 육체에 강대한 마기를 두른 채 육탄전을 벌였다면 일이 이런 식으로 흘러가진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과거 크루갈과 사투를 벌였을 때처럼, 좋은 승부를 겨룰 수 있었겠지.

하지만 눈앞에 있는 자간이라는 놈은, 마법의 파괴력과 범위에만 매달려 정작 마법의 정수(精髓)에선 한참이나 멀어진데다 스스로의 역량마저 갉아먹고 말았다.

‘차라리 잘 됐군. 이런 식으로나마 마계 백작 하나를 잡게 되었으니 말이야.’

아무리 마계 백작급이라 해도, 마핵을 정면으로 꿰뚫린다면 그대로 소멸해버릴 것이다.

네르하가 그럴 생각으로 주먹에 힘을 모을 때.

그 순간, 자간에게서 영언이 흘러나왔다.

―거기까지 해라, 인간.

오싹!

팟!

네르하는 자신도 모르게 자간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뭐지? 방금 그 섬찟함은?’

방금 네르하의 생존 본능을 자극한 ‘무언가’는 분명 자간에게서 흘러나온 것이 분명했다.

자간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나름 아끼는 부하를, 죽게 둘 수는 없군.

네르하는 본능적으로 눈치챘다.

저건 방금 전의 그 늑대인간이 아니다.

북방에서 만난 비슈나르와 같은, 틀림없는 마왕 클래스다.

―자간을 곤란하게 만들 강자라면, 그대는 라데우스나 케프렌, 두 가문 중 하나의 가주인가?

“……?”

상대에게서 흘러나온 말은 네르하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뭐지? 내가 네르하 라데우스라는 걸 모르는 건가?’

아니, 애초에 이렇게 젊은 모습이 가주일 리가 없지 않은가?

이유야 뭐가 됐든, 네르하는 일단 자신의 정체는 숨기기로 결정했다.

“그렇다면 어쩔 거지?”

―가능하면 케프렌 쪽이었다면 좋겠군. 아니, 그 육체의 강인함을 보면, 라데우스라는 놈들보다는 케프렌이라는 게 더 알맞겠어.

‘뭐지, 이놈은?’

놈은 이쪽의 상황을 보고 멋대로 착각하고 있었다.

마치 인간 세상에 처음 나와 아예 정보라는 걸 접해보지 못한 녀석 같다.

지금까지 네르하와 마주했던 마족들이 적어도 정보 수집에서는 게을리하지 않았던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자간이 너희들에게 선물을 준비했다던데, 그게 마음에 들었는지 모르겠군.

선물이라면 분명 메테오를 말함일 것이다.

놈이 조종하는 자간의 몸이, 허공에 뜨기 시작했다.

―네 얼굴은 기억했다. 케프렌의 가주여, 나 레비아탄이 직접 너의 영토로 들어가 네놈의 육체를 찢어버릴 것이다.

“자, 잠깐!”

―그럼, 머지않을 때에 너와 나는 다시 보게 될 것이다.

네르하는 당황했다.

이런 식으로 적의가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건 네르하가 바라는 일이 아니었다!

“내 이름은 네르하 라데우스다! 네놈이 찾는 케프렌이 아니라!”

싸악!

네르하가 뒤늦게 자신의 정체를 밝혔지만, 자간의 육체는 어느새 사라진 상황이었다.

“…….”

“……어어.”

그리고, 자간의 수하들을 처리한 뒤 사태를 지켜보고 있던 레이첼이, 입을 뻐끔거리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이게 그, 차도 살인이라는 거냐?”

“아닙니다.”

네르하는 이마를 짚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