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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193화 (193/237)

193화

<공간 마법(1)>

수많은 귀족과 마법사들을 네르하와 마하의 내기.

그 결과가 네르하의 승리로 돌아가면서 네르하는 마하가 내기에 걸었던 ‘그란시스 마탑’을 정산받게 되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란시스 마탑에 더해, 마탑이 지배하고 있는 이곳 ‘루리엔 시’ 전체를 받아낸 셈이었다.

“결과는 결과. 이것에 승복해라, 마하.”

“물론입니다, 가주님.”

마하는 얼핏 덤덤하게 결과를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카이젤이 잠시 누군가와 담소를 나누기 위해 자리를 비웠을 때.

뿌득!

“응? 방금 뭔가 부러지는 소리가…….”

“착각이겠지요.”

“하지만…….”

“착각입니다.”

마하의 서슬퍼런 시선을 받은 가신 하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런 마하의 모습을 본 장로 몇몇이 속으로 혀를 찼다.

‘마하의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군.’

‘반대로 네르하는 충분히 거점이라고 부를 수 있는 지역을 얻었다.’

그들의 계산은 복잡하게 흘러갔다.

‘아직 네르하는 그 세력이 마하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기세라는 건 한번 흥이 오르면 어디까지 올라갈지 모르는 법.’

‘어쩌면, 이미 시류는 뒤집혔을지도 몰라!’

다른 가신들의 생각이 이러하듯.

마하 역시 현재 상황에 크나큰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네르하아아아!’

그녀의 마력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단순히 내기에 패배했다다는 점이 문제가 아니었다.

마탑와 도시 하나를 넘겨주는 것으로 끝났다면 속이야 좀 쓰리겠지만.

문제는 이번 헤르메스로 인해 파생된 ‘결과’가 문제였다.

‘케프렌과의 경쟁이라니! 그렇게 되면 네르하의 세력이 어떻게 될지 뻔하게 눈에 보이거늘!’

기존의 마나 연공법을 아득하게 뛰어넘는 축기율.

그리고 그 축기율로 일어나는 부작용을 아예 없애버리는 거나 마찬가지인 융합기.

그 가능성과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지 마하의 눈에도 훤히 보일 정도면, 가주들의 눈에는 또 어떻게 보이겠는가?

‘과거에 그러한 마나 연공법의 창조를 시도했다 실패한 선조가 있다고 들었는데, 네르하가 정말로 성공할 줄이야!’

마하는 이번 패배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수를 쓰려 했다.

“지금 당장 마탑의 마스터들에게 얼굴 좀 보자고 전해.”

“죄, 죄송합니다, 마하 님.”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지극히 부정적이었다.

“몇 시간 전부터 그란시스 마탑에 대한 모든 연락망이 끊겼습니다.”

“뭐? 설마 그놈들이 감히?”

그야말로 빛의 속도와도 같은 손절…이라고 보기에는 빨라도 너무 빨랐다.

수하는 송구스럽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아무래도, 윗선에서 손을 쓴 모양입니다.”

“이, 이이익!”

마하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여기서 말하는 윗선이라는 게, 가주 카이젤을 뜻하는 것임을 모를 정도로 마하는 멍청하지 않았다.

‘설마, 후계자 자리를 놈에게 넘기기로 마음을 굳히신 건가!?’

까득!

마하는 자신의 검지손톱을 물어뜯으며 이를 악물었다.

‘뭔가 수를 써야 해. 이대로라면, 분명 이대로라면 언젠간 놈에게 먹힌다!’

같은 압박이라 해도 아랫사람이 느끼는 위기감과 당사자인 마하가 느끼는 위기감은 그 차원이 달랐다.

“바멜에게 시간을 좀 내달라고 말해라. 가능하면 레티안과 세티안도 같이!”

“주, 주군! 대부인께서 2부인 소생들과 손을 잡는 건 엄격히 금하셨…….”

수하의 말은 마하의 살기 어린 말에 대번에 잘려 나갔다.

“네 주인이 나냐, 아니면 어머님이냐?”

“소, 송구합니다!”

“바멜에게 전해. 네르하의 지분 70%를 줄 테니 나와 손을 잡자고.”

지금까지 ‘동급’으로 취급해주지도 않았던 동생들에게 손을 내밀 정도로, 마하의 정신은 상당히 몰려 있었다.

“앞으로 한 달 후면 네르하는 케프렌 가문에 사절로 떠날 거다. 놈의 세력을 잘라내려면 그때가 결정적인 기회가 될 거야.”

“잠깐만요, 주군!”

마하의 생각을 읽은 수하가 대경실색했다.

“서, 설마! 장로들을 쳐내실 생각이십니까!?”

단순히 세력적으로 견제를 넣는 게 아니라 쳐내는 것.

그건 라데우스 내부적으로 거대한 피의 항쟁이 일어난다는 뜻이기도 했다.

“못할 게 뭐가 있지?”

싸늘한 마하의 반응에도 수하는 필사적이었다.

“혀, 현재 대륙의 상황이 전체적으로 불안정합니다. 당장 이번 메테오 건만 해도 마족들의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상황이고요! 그런 상황에서 가문 내에서 항쟁을 일으키셨다간……!”

“아아, 알아. 알고말고.”

이게 눈치 없는 짓이란 건 알고 있다.

자칫 잘못하면 가주에게 찍혀 영원히 갈려 나갈지도 모르는 일.

“하지만 이번이 아니면 기회가 없어.”

네르하의 주위에 장로가 무려 셋이나 붙어있다고는 하나, 그들 현재로선 무언가 하자가 있는 자들.

그들이 본격적으로 세력을 회복하기 전에 확실하게 쳐내야만 한다.

그 결과, 라데우스가 가진 힘의 총량이 ‘조금’ 줄어든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주, 주군…….”

지금껏 볼 수 없었던 주인의 감정.

탐욕, 질투, 그리고 불안감.

생전 처음 겪어보는 냉철했던 주인의 균열에, 수하는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 막연한 불안감이 치솟아 오르는 것을 느꼈다.

* * *

“7인의 마스터 중 하나, 제일 바룬이라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네르하 공자.”

“아아, 잘 부탁하지.”

네르하 역시 빙그레 웃으며 그의 인사를 받았다.

“앞으로 ‘오랫동안’ 얼굴을 보게 될 텐데, 서로 얼굴 붉히는 일 없이 잘 지내보자고.”

그 말인즉, 만약 자신을 배신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우회적인 경고였다.

“무, 물론입니다.”

살벌한 네르하의 경고에 제일 바룬은 식은땀을 훔쳤다.

“어떻게, 바로 임페리얼 아카이브에 접속하시겠습니까?”

아티펙트 보물전과 함께 라데우스의 힘과 역사를 상징하는 장소, 임페리얼 아카이브.

오로지 한 시대에서 대마법사라 불리는 자들만이 논문을 저장할 수 있는 최고의 지식 보관소였다.

네르하가 턱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흠, 그러고 보니 궁금한 게 있는데, 어떻게 이곳에서 아카이브에 대한 접근 권한을 가지고 있는 거지?”

제일 바룬이 허리를 깊게 숙였다.

“계란은 한 부대에 담아선 안 되는 법이지요.”

“내가 궁금한 게 바로 그거야. 이곳이 라데우스에서 ‘부대’로 지정할 정도로 관계가 깊은 곳인가?”

“크, 크흠!”

아무래도, 자신의 새로운 주인은 자기가 얻게 된 마탑의 가치를 상당히 과소평가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제일 바룬은 네르하를 향해 그란시스 마탑에 대한 가치가 어떠한지를 일장 연설하기 시작했다.

“그란시스 마탑은 대륙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초거대 마탑입니다. 마탑 휘하의 교육기관만 다섯이며, 등록된 마법사의 수는 6만 8천에 달하죠.”

“그건 알고 있긴 한데…….”

“리브라에 입학시키는 인원만 매해 꾸준히 열 명 이상을 배출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대륙 모든 마탑을 통틀어서도 굴지에 달하는 성적이라고 봅니다!”

“아, 그래…….”

네르하가 원한 건 그란시스 마탑의 규모가 아니라, 마탑과 라데우스 가문과의 관계성이었다.

네르하가 제일 바룬의 착각을 정정하려던 찰나.

“무엇보다, 그란시스 마탑은 라데우스 본가, 정확히는 ‘외부지원국’의 관리를 직접적으로 받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외부지원국!”

라데우스의 외부 세력 및 동맹 세력을 총괄하는 가주 직속 감찰국.

어지간한 장로들보다도 더욱 강력한 힘과 권한을 지닌 곳이었다.

“사실 라데우스와 관련이 없는 마탑 대부분이 그렇긴 합니다만, 그중 임페리얼 아카이브에 대한 접근 권한을 가진 건 저희를 포함해 셋을 넘지 않습니다.”

“그렇군.”

“즉, 마하 공녀는 저희만 한 세력을 잃게 된 것이지요.”

제 얼굴이 금칠하는 게 마뜩치는 않지만, 저 말이 딱히 틀린 건 아니었다.

‘그나저나 마하가 이런 것까지 걸면서 얻고 싶었던 아티펙트가 뭐였을까?’

내기를 제안한 이유가, 단순히 네르하의 세력을 깎아내기 위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뭐, 언젠간 알게 되겠지.’

네르하는 가볍게 고개를 털며 고민도 털어버렸다.

“그럼, 바로 임페리얼 아카이브에 접속하도록 하지.”

“네, 부디 원하시는 걸 얻기를 기원하겠습니다.”

* * *

사실 임페리얼 아카이브에서 원하는 걸 얻어내는 게,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지는 대충 예상하고 있었다.

―어서 와라, 네르하 라데우스. 임페리얼 아카이브에 온 것을 환영하지.

눈앞에 내려앉은 금빛의 눈꽃 사슴.

그 사슴을 본 순간, 네르하는 자기도 모르게 말을 툭 내뱉었다.

“너, 페레스냐?”

한순간, 네르하는 사슴의 눈가가 일그러지는 걸 알아차렸다.

―내 이름은 케레스다. 페레스는 내 동생이지.

“아, 그래?”

―다음부턴 그런 불쾌한 착각은 하지 말아줬으면 하는군.

나중에 보물전에 가서 페레스에게 같은 대사를 내뱉는다면, 100% 이런 반응이 나올 거라는 걸 확신했다.

뭐, 네르하는 자신이 원하는 걸 찾아줄 수 있다면 아카이브의 수호자가 케레스든 페레스든 상관없었다.

‘역시, 생각대로 리브라에 있는 것과 비슷한 구조로군.’

아카이브에 접속 자체는 할 수 있지만 거기서 뭔가를 얻기 위해선 눈앞에 있는 관리자의 협조가 필수적이었다.

―그래서? 제일 바룬에겐 네가 공간 계열의 술식을 원한다고 들었다만?

“맞아, 공간 계열, 그것도 가능하면 해당 계열에 대한 숙련도 전체를 올릴 수 있는 주문이 필요해.”

―흐음, 고유 계통을 익히지 않고 공간 계열을 파고드는 건 그다지 추천하진 않는다만?

확실히 고유 계통의 각성 없이는 공간 계열 마법은 지나치게 비효율적이었다.

―단순히 아공간 수납이라면 실베리오 아카이브에 존재하는 만큼, 네가 원하는 건 아마 직접적인 이동 게이트를 여는 쪽이겠지.

“물론.”

―가장 쉬운 물질이동 관련 마법을 익힌다 해도, 혼자 힘으로는 시전하는 데만 3일이 걸린다. 생명체의 이동은 아예 9레벨의 영역이지.

아무리 마법의 정점에 달해 있는 라데우스라고 해도 9레벨만큼은 특별했다.

―미안하지만 고유 계통이 아닌 공용 마법 중에서 생명체 이동 관련 술식은 설치형 워프 게이트뿐이다. 그게 네게 그다지 도움이 될 것 같진 않구나.

역사상 9레벨에 이른 공간 계열 대마법사들은 거의 전부가 고유 계통을 통해 개척한 것이었다.

오히려 공용 마법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생명체의 이동 마법 술식은 가지고 있다.”

―그게, 사실인가?

케레스가 눈을 크게 떴다.

―믿을 수 없군! 그 정도 레벨의 술식은 신이나 마왕급이 아닌 이상 가지고 있을 리가 없는데?

‘당연히 그 마왕에게서 얻어낸 거니까.’

네르하는 그 속마음을 숨기며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원하는 건 거기까지 갈 수 있도록 중간 다리를 놓아줄 수 있는 술식이야.”

―중간 다리라…….

케레스는 깊게 고민했다.

―네 말이 사실이라면, 실베리오 아카이브에 적당한 술식이 하나 있다.

그리고는 아공간에서 책자 하나를 꺼내 가볍게 입에 물었다.

―카르안 라데우스가 남긴 이것이 가장 좋을 것 같군.

그 순간, 네르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잠깐, 누구라고?”

카르안 라데우스.

그 이름은 분명 예전에 들어본 기억이 있다.

과거 클로이아가 관리자로 있던 ‘실패작’들이 봉인된 서고.

카르안 라데우스는 분명 그 서고 안에서 발견했던, 마나 연공법의 실패작을 저술한 장본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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