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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201화 (201/237)

201화

<케프렌의 어둠 (3)>

케프렌은 루시아를 감시할 목적으로 일부러 그녀를 다시 붙여두었겠지만, 어쨌든 그녀는 루시아의 설득 하에 아군으로 합류하였다.

“하나 그와는 별개로.”

유모가 단호한 표정으로 네르하를 쏘아보았다.

“저 남자와는 절대로 협조해선 안 됩니다.”

“어, 어째서?”

당황하는 루시아를 향해, 유모가 황당하다는 시선을 보냈다.

“어째서라니요? 라데우스 측에 오래 있다 보니 감각이 상실된 겁니까?”

……사실 그 말이 맞았다.

“으, 으윽!”

유모의 말뜻을 자각한 루시아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워낙 네르하와 부대끼고(?) 살다 보니 가문 간의 입장을 잠깐 까먹을 때가 종종 있었던 것이다.

“이건 라데우스의 인간이 끼어들 사안이 아닙니다. 괜히 저 청년과 얽혔다간 뭘 해보기도 전에 파멸할 수도 있습니다.”

유모는 단호하게 네르하를 노려보았다.

“그러니, 돌아가십시오.”

“미안하지만 그렇겐 안 돼.”

“뭐라고?”

인상을 한껏 구기는 그녀를 향해, 네르하가 말했다.

“파멸이든 뭐든 어차피 지금 상황은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격이다. 나라는 조력자가 없으면 파멸 이전에 뭘 해볼 수도 없을걸?”

“……자신감이 대단하군요. 여기까지 숨어들어온 은신능력은 인정합니다만, 과연 실력도 그럴지 궁금하군요.”

그녀는 허리춤에 메여있는 자신의 검을 꺼내 들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녀가 가문에서 재능이 없다고 판명을 받았다고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가문의 기준.

레이벨 루 케프렌은 오러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귀(鬼)급의 검사였다.

“그만해, 유모. 네, 네르하… 의 말이 맞아.”

“네르하? 지금 라데우스의 인간을 그렇게 친근하게 부르시는 건가요?”

믿을 수 없다는 듯 루시아를 바라보던 그녀였지만, 이윽고 이어진 말에 눈을 부릅떴다.

“네르하는 나보다 강해. 그것도 훨씬.”

“……지금 뭐라고?”

“나보다 강하다고. 그러니까 그만해. 괜히 다른 기사들이 눈치채기 전에.”

유모는 루시아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애초에 얼마 전 가주가 직접 가신들을 불러 모아 루시아를 특별 취급했던 이유가 무엇인가?

가주의 입으로 그녀가 ‘검왕’의 경지에 올라, 원탁에 도전할 자격을 갖추었다고 직접 공언한 탓이 아니던가?

그런데 그런 루시아보다 더 강하다?

“네르하를 지키려고 한 말이 아니야. 저 사람은, 내 스승이나 마찬가지야.”

저 표정은 진심이다.

유모는 루시아가 거짓을 고하지 않고 있다는 걸 느꼈다.

‘정말 저 청년이 아가씨와 비슷한 경지라고 친다면, 상당한 도움이 될 거야.’

어차피 그녀가 경계했던 건 계획이 사전에 무산될 가능성이었지, 실력의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아가씨가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적어도 방해가 되진 않을 거라 믿겠습니다.”

“따, 따라와, 네르하. 잠깐 작전 회의야.”

“…….”

네르하의 팔을 붙잡고 이끄는 루시아의 모습에, 유모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너무 친근한데?’

물론 저 모습이 ‘연기’라는 것은 눈치채고 있었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저 연기 속에 ‘진심’이 숨어 있다는 걸, 십수 년간 그녀를 보아온 유모의 촉감이 예리하게 발동했다.

그렇게 네르하를 구석으로 끌고 간 루시아가 작게 속삭였다.

“이, 이제 어떻게 할 거예요?”

“어떻게 하긴. 저 여자와 계획을 공유해야지. 딱 봐도 아녜스의 위치를 아는 눈치던데.”

“괜찮겠어요? 나는 몰라도 유모는 뼛속까지 케프렌의 기사. 결정적인 순간에 당신을 배신할 수도 있어요.”

그 말에 네르하는 피식 웃으며 루시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맙지만 내 걱정을 해줄 필요는 없다.”

“자, 잠깐만!”

“여기가 북방보다 위험하다고 생각되진 않거든.”

루시아는 자기가 어린애 취급받는다는 게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머리에 얹힌 네르하의 손을 쳐냈다.

“내, 내가 연상인데…….”

뭐, 일이 실패할 경우 두 가문 사이가 어떻게 될지는 충분히 예상이 가긴 하다만, 최악의 경우라도 목숨만은 건져 탈출할 자신은 있었다.

“유모라고 했나? 일단은 설명부터 듣지.”

네르하는 자신이 이곳에 온 건 아렌 루 케프렌과 마족과의 관계성을 의심했기 때문이며, 마왕 예루리의 봉인을 언급하며 골드 드래곤 아그란바드의 의뢰를 받았다고 말했다.

“만약 아렌 루 케프렌이 마왕과 연관이 있다면, 이번 일은 상당히 쉬워질…….”

“자, 잠깐.”

그런데, 어째서인지 유모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어, 어떻게 평의회의 의원이 본가의 비밀을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딱 봐도 감정의 상태가 불안정하게 변해있었다.

국제적인 시점에서 보았을 때, 마기를 사용했다는 것 자체는 딱히 죄가 아니다.

당장 네르하만 해도 마기를 사용하고 있고, 그 사용을 가주인 카이젤에게 허가를 받았으니까.

이전 시라스 루 케프렌이 사용했던 마검(魔劍) 같은 기물들 역시 존재하는 만큼, 마족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지 않는 이상 마기 자체는 힘의 한 종류로서 나름 인정을 받고 있었다.

다만, 케프렌만은 예외.

케프렌에선 그 어떤 경우라도 마기의 사용은 가문에 대한 반역으로 간주되어 극형에 처해지게 된다.

“본가의 직계 중에 마기를 사용한 자가 있던 건 사실입니다.”

네르하와 루시아는 유모의 입에서 아렌의 이름이 나올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하지만 그건, 대공자가 아니라…… 테바라 공자예요.”

“뭐?”

“자, 잠깐! 유모,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루시아는 말도 안 된다는 듯 목소리를 높이며 유모에게 따졌다.

“이건 사실입니다. 테바라 공자가 직계임에도 재판을 거치지 않고 즉결 처형을 당한 건, 그가 마기를 사용했기 때문이었어요.”

* * *

네르하의 표정이 굳어졌다. 루시아 역시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기분으로 유모를 윽박질렀다.

“저, 정말 그게 사실이야? 정말 테바라가 마기를 사용했냐고!”

“부정하기엔 그걸 목격한 사람들의 숫자가 너무 많습니다. 당장 테바라는 마기를 이용해 대공과 싸웠으니까요.”

‘그렇군. 어쩐지 좀 이상하더라니.’

이전 네르하는 원탁의 1석인 대공이 테바라를 막지 못했다면 더 큰 피해가 발생했을 거다, 라고 들었다.

테바라라는 후계가 네르하 본인 정도의 수준이 아닌 이상 그 말은 뭔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었는데, 사실 이런 뒷사정이 있었던 것이었다.

‘그와는 별개로, 일이 꼬이는군.’

사실 네르하는 마왕이든 천마든 아렌 루 케프렌이 마기를 사용할거란 사실을 거의 심적으로는 확신했다.

그 근거는 오직 하나.

‘시라스 루 케프렌.’

과거 검왕 베하나스와 함께 리브라를 찾아와, 루시아와 네르하를 습격했던 케프렌의 방계.

그는 분명, 최상급 마검 다인슬라이프를 다루었었고, 그걸 대공자 아렌에게 하사받았다고 말하기까지 했었다.

그런데 여기서 갑자기 테바라가 마기를 사용했다는 말이 튀어나온 이상, 네르하가 뒤를 캐야 할 곳은 두 곳으로 늘어난 셈이었다.

네르하가 심각하게 생각에 잠겨있을 때, 귓가에 루시아의 애절한 소리가 들려왔다.

“자, 잠깐. 그럼 아녜스는? 그럼 아녜스는 어떻게 된 건데?!”

테바라가 마기를 사용했다면, 그의 반란에 얽힌 아녜스는 좋게 말해도 곱게 끝날 리가 없었다.

“다행히 아녜스는 몸에 마기를 품지 않았어요. 그렇기에 유폐에 그친 거죠.”

“그, 그래? 그건 다행이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루시아를 향해, 네르하가 입을 열었다.

“일단은 처음 계획대로 아녜스를 만나보는 게 우선순위겠군. 녀석이라면 무언가를 알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렇죠.”

“아녜스를 시작으로 다른 직계들과 접촉하는 거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그들은 자중하고 있겠지만, 그만큼 또 불안에 떨고 있을 테니까.”

직계 중 제일의 실력자였던 루시아가 설득한다면, 죽음의 문턱에서 떨고 있는 그들은 기꺼이 호응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때, 유모가 입을 열었다.

“지금 다른 직계들은 검의 미궁에 모두 유폐되어 있습니다.”

“모두 말인가?”

“네, 원탁은 테바라에 이은 또 다른 반란을 염려해 대공자의 성인식이 끝날 때까지 직계들과 세력을 아예 분리시키기로 결정했죠.”

“그렇다는 건!”

“계란을 한 부대에 담아둔 셈이지, 오히려 일이 편해졌군.”

“일단은 밤이 될 때까지만 기다린 다음 이동하도록 하죠. 지금 나갔다간 대번에 걸릴 테니.”

“아니, 그럴 필요는 없다. 그럴 시간도 없고.”

유모의 의견을 잘라낸 네르하는, 그대로 루시아의 손을 맞잡았다.

“#$%^#$%!!”

“무, 무슨 망측한!?”

유모의 눈이 경악으로 일그러지던 찰나.

스스스슥!

네르하와 루시아의 모습이, 갑자기 주변 광경에 동화되듯 사라지기 시작했다!

“헉!”

“이러면 굳이 기다릴 필요는 없겠지?”

“화, 확실히 라데우스의 직계답군요. 마나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고위 레벨의 은신 마법이라니!”

“…….”

은잠술을 마법으로 치부하는 유모의 말에 네르하의 입술이 살짝 삐뚤어졌다.

“…….”

그리고.

네르하와 손을 맞잡은 루시아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 * *

그렇게 네르하와 일행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일주일이 넘는 시간 동안 검의 미궁에 유폐된 아녜스는 서서히 메말라가고 있었다.

“…….”

딱히 의식주가 부족한 건 아니었지만 빛을 보지 못한 상태였고, 무엇보다 부하들의 배신은 그녀의 정신에 큰 충격을 가했다.

“어째서, 그런 선택을 한 거야.”

사실 그녀가 검의 미궁에 갇힌 건, 테베라의 반란 이후가 아니었다.

지금껏 생사고락을 같이했던 부하들이, 테바라에게 동조해 멋대로 자신을 이곳에 가둬버린 것이었다.

“지금껏 연락이 없다는 건, 실패했다는 의미겠지.”

그 후로 다른 직계들이 줄줄이 잡혀 와 미궁 곳곳에 갇혀버렸다.

굳이 연락이 없더라도 이런 정황만으로도 충분히 전후 사정의 파악이 가능했다.

“언니, 보고 싶어…….”

아녜스는 눈물을 흘리며 루시아를 찾았다.

이전부터 루시아에 대한 동경이 커다랬던 아녜스는, 심신이 피폐한 지금에선 의존증에 가까울 정도로 그녀를 찾고 있었다.

그때였다.

“으아아아! 당장 날 여기서 꺼내!”

쾅쾅쾅!

저 멀리서, 한 소녀의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그 소녀의 정체는 자신보다 1살 위의 후계인 5공녀, 밀레니아였다.

꽤나 먼 거리였지만 검의 미궁 자체가 워낙 밀폐된 공간인데다, 아녜스 정도의 실력자가 소리를 놓칠 정도는 절대 아니었다.

한참을 발악하던 밀레니아는 제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발악하다, 결국 힘이 빠져 헉헉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녜스가 있는 방향을 노려보며, 앙칼지게 소리쳤다.

“젠장, 아네시스! 꼴사납게 질질 짜지 말고 여기서 나갈 궁리나 해!”

밀레니아의 외침에 곧바로 대답이 들려 왔다.

다만, 그 대답을 한 이는 아녜스가 아니었지만.

“하하하! 꼴사나운 건 너다 밀레니아. 괜히 가만히 있는 애를 왜 건들고 그러나?”

“엘비스!”

밀레니아에게 면박을 준 건 케프렌의 4공자인 엘비스 엘 케프렌이었다.

어둠 속에서 벽에 등을 기대던 엘비스가 입술을 뒤틀며 입을 열었다.

“엘비스 오라버니, 겠지.”

“닥쳐!”

“아네시스. 너도 그래. 테바라의 폭주가 실패로 돌아간 지금, 루시엘라가 돌아와도 뭘 어떻게 할 수는 없지.”

나름 여유가 있는 말투였지만, 그 내용은 사실상 체념에 가까웠다.

밀레니아가 한껏 비웃음을 머금었다.

“흥! 루시엘라 언니를 앞세워 권력을 취하려던 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시끄러워, 조용히 좀 하지 못해?”

“왜? 난 재밌는데.”

엘비스와 밀레니아의 신경전이 벌어지자, 인근에 있던 다른 직계들까지 가세해 미궁이 시끌시끌해지기 시작했다.

그런 그때.

뚜벅! 뚜벅!

미궁의 입구에서, 로브로 모습을 가린 누군가가 나타났다.

“모두들, 여전히 기운 넘치는 것 같아 다행이군.”

“……! 네, 네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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