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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203화 (203/237)

203화

<케프렌의 어둠 (5)>

제국 남서부, 말론 평원.

남부 대수림에서 그라이아나 산맥을 타고 시작된 괴수들의 침공은 대륙 전역을 발칵 뒤집어놨다.

그라이아나 산맥 자체가 대륙 남부의 여러 국가들에 걸치고 있었던지라, 제국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었던 탓이었다.

말론 평원은 제국에서도 손에 꼽히는 곡창지대이자 케프렌 직할 관리지역이기도 했다.

말론 평원의 중심지이자, 제국의 군사요충지 중 하나인 비그나 성.

비그나 성에서는 케프렌의 가주 마기우스와 휘하 장성들이 한창 작전 회의에 열중하고 있었다.

“제국군의 도착은 언제라고 했지?”

“재상이 약속한 날로부터 앞으로 일주일이 남았습니다, 가주님.”

“일주일이라…….”

마기우스가 피곤한 기색으로 눈가를 문질렀다.

수마왕 레비아탄의 선전포고(메테오)로부터 한 달.

괴수의 무리가 케프렌의 영역으로 오고 있다 판단한 마기우스는, 루리엔에서 귀환한 직후 곧바로 병력을 끌어모아 원정에 나섰다.

고작 3일의 시간 동안 급조한 병력이었지만 그 사이 케프렌이 끌어모은 병력의 수는 절대 적지 않았다.

기사만 3천에 일반병

그야말로 케프렌의 저력이 엿보였다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만한 전력에도 마기우스는 정면 대결은 꿈도 꾸지 못했다.

하나하나가 어지간한 기사를 상회하는 괴물들.

그것이 바로 대수림의 괴수들이었다.

“대응이 빨라 피해를 줄일 수 있었지만, 슬슬 위험하군.”

마기우스는 눈앞에 펼쳐진 지도를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그는 자신이 루리엔으로 향했던 것이 천운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그런 것이, 현장에서 벌어진 상황의 심각성을 보지 못하고 평소처럼 보고로만 판단했다면?

타이밍이 조금만 어긋났어도, 케프렌은 상상 이상의 피해를 입었을 터였다.

그만큼 대수림에서 튀어나온 괴수들은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강력했고 또 치명적었다.

“제국군 30만이 뒤를 받쳐준다면, 정면 대결도 해볼만 할 겁니다.”

“그렇다 해도 정면 대결은 무리다. 잘 해봐야 공멸이야.”

이곳의 기사 전력은 정예 중의 정예.

모두 잃으면 케프렌은 치명타를 입는 셈이었다.

지금껏 팽팽하게 유지해왔던 라데우스와의 균형추가, 대번에 반대쪽으로 기울게 될 것이다.

“라데우스 측은 어떻지?”

케프렌에 비해 라데우스의 영역으로 흘러간 숫자는 이곳의 1/10에 지나지 않았다.

당연히 라데우스쪽에서는 상당히 희망적인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라데우스의 직계인 마하 공녀가 제국 남부군을 이끌고 대회전을 벌였지만…… 참패했다고 합니다.”

“뭐?”

주변에서 황당하다는 반응이 들려왔다.

“아무리 그쪽 전력이 이쪽에 비해 적다고는 해도, 적도 같은 조건이었을 텐데 참패했다고?”

마하가 이끄는 군대엔 분명 라데우스 본가의 전력은 거의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적 괴수들의 수는 고작 5천. 거기에 마왕급 강자는 한 명도 없다.

그런데도 졌다고?

“그쪽에서 보내온 정보에 의하면, 전투 도중 정체불명의 마족들이 다수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들 하나하나가 마왕급은 아니지만 마계 백작급이 몇 섞여 있었다고 하더군요.”

“좋지 않은 소식이군. 그래서, 어떻게 되었지?”

“제국 남부 방어군은 괴멸. 마하 공녀는 중상을 입었고, 휘하에 있던 고위 마법사들은 대부분 전멸했다고 합니다. 그나마 괴수 무리들은 거의 대부분 없애는 데 성공해, 영역의 침범은 막아냈다는 점이랄까요?”

결과만을 보면 사실상 양패구상, 공멸에 가깝다.

하지만 라데우스의 입장에선 이건 참패가 맞았다.

“전장에 난입한 마족들을 하나도 잡지 못했나 보군.”

“예,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일이 점차 꼬이는군.”

마기우스는 골치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그쪽에 나타난 마족이 이쪽에 다시 나타나지 않으란 법은 없었으니까.

“하다못해 그 수마왕이란 놈만 어떻게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수마왕 레비아탄.

대륙 최강의 검사, 마기우스가 제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게 막아서고 있는 최고의 적이었다.

수마왕의 이름이 나오자, 가신들의 입가에서 대번에 침음이 흘러나왔다.

“으음!”

“그 괴물을 붙잡아둘 수 있는 건 가주님뿐이시니.”

“하다못해 협공을 할 수 있는 수준의 기사들이 몇 명 더 있었더라면!”

사실 마기우스와 수마왕의 충돌은 지금까지 딱 두 번 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두 번의 충돌 당시, 주변에 있던 많은 괴수와 기사들이 그 여파에 휩쓸려 분쇄육처럼 다져지고 말았다.

주변의 피해가 워낙 컸기에 수마왕도 마기우스도 공방 자체는 매번 짧게 끝나고 말았지만.

그 짧은 여파라도 버티고 마기우스에게 한 손을 보태주려면, 최소 검왕(劍王), 즉 원탁의 기사급은 되어야만 했다.

‘지금 내 몸 상태로는 절대로 장기전으로 가면 안 된다. 어떻게든 시간을 벌 수밖에…….’

마기우스는 자신의 수명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음을 직감했다.

젊은 시절, 대륙 최강의 마법사라면 카이젤을 따라잡기 위해 무리하다가 결국 상당한 수명이 깎이고 말았다.

그 대가로 검성(劍聖)의 경지에 오르며 대륙 최강의 검사라는 칭송을 듣게 되었다지만.

그 부작용으로 반 세대 정도 위에 있는 라데우스보다도 훨씬 빠르게 후계를 결정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고 만 것이었다.

“본가의 대공에게 전해라. 아렌의 성인식이 끝나면 곧바로 최소한의 전력만 남기고 이쪽으로 합류하라고.”

“예, 가주님!”

“현재 본가의 상황은 어떻지?”

“테바라 공자… 아니, 테바라의 반란을 무사히 진압하고 수습 단계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 외에는?”

“라데우스의 장로, 지렌 라데우스가 사절단의 단장으로 로엘 소드에 도착했으며, 가주님께서 초대장을 보낸 네르하 라데우스 역시 사절단에 합류해 도착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우렁차게 대답하던 참모가 무언가 비밀을 토하듯이 천천히 목소리를 낮췄다.

“루시엘라 공녀님도, 무사히 복귀하셨다고…….”

“그런가.”

마기우스는 담담하게 보고를 받았다.

가신들이 우물쭈물하며 마기우스의 눈치를 살폈다.

대공자 아렌이 승리를 목전에 둔 지금, 굳이 루시엘라를 살리다 못해 중용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더 이상한 건 대공자 아렌 역시 가주의 선언에 흔쾌히 동의했다는 점이었다.

잠깐 생각에 잠겨 있던 마기우스가 불현듯 입을 열었다.

“자네들에게 한 가지 묻지.”

“말씀하십시오, 가주님.”

“라데우스와 케프렌이 혼인 동맹을 맺는다면,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 것 같나?”

“……네?”

“정확히는 케프렌의 2공녀 루시엘라와, 라데우스의 5남 네르하 라데우스의 결혼일세.”

“……네?”

가신들은 멍청한 표정으로 같은 말을 한 번 더 내뱉고야 말았다.

* * *

“저, 정말 괜찮겠습니까?”

“뭐가?”

“2층으로 내려오기 직전에 입구 쪽에서 소란이 있었습니다. 분명 기사들이 들이닥친 게 분명합니다만.”

미궁의 입구는 오로지 하나뿐.

이제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되돌릴 수가 없다.

불안해하는 유모의 말에, 네르하는 곰곰이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하나 물어볼 게 있는데.”

“뭐죠?”

“케프렌은 왜 전대 가주에 대한 일을 외부에 공표하지 않았지?”

유모가 눈을 부릅떴다. 상황을 전달받지 못한 루시아 역시 진지한 표정으로 유모를 바라보았다.

“그걸 왜 지금 묻는 거죠?”

“그땐 어물쩡 넘어갔지만, 내부가 이런 상황에선 뭔가 이상하지. 전대 가주는 가주가 자리를 비운 상황에서 중심을 잡아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니까.”

그런데도 뜬금없이 케프렌은 전대 가주를 향해 ‘죽었다’ 라고 말하는 강수를 두었다.

네르하의 추측으로는 이랬다.

“전대 가주는 죽지 않았다. 다만 내부 정쟁에서 패배했을 뿐.”

“정쟁, 이라면.”

루시아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후계자 문제겠지. 학장님께 듣기로, 널 리브라로 보낸 건 케프렌의 전대 가주라고 들었다.”

“맞아요.”

“그렇게까지 해준 건 널 아낀다는 의미이기도 하겠지만, 다음 대의 후계로 생각하고 있다는 뜻도 얼추 유추할 수 있어.”

“그렇다면…….”

“가주는 알다시피 아렌 루 케프렌을 대공자로 올렸지. 서로가 지지하는 방향이 다르니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고.”

물론 전제만으로 상황을 유추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결과까지 이렇게 나온 이상, 그 과정을 알아차리는 건 쉽다.

“전대 가주는 패배한 거야. 그리고, 이 밑에 갇혀 있지.”

“……!”

네르하는 한순간 유모의 표정을 세심하게 관찰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입가가 일그러지고, 표정은 눈에 띄게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걸, 어떻게 확신하죠?”

“상대가 나를 불렀으니까.”

“부, 불렀다고?”

“의념의 사용이 극에 이르면, 단순히 위협용에 그치지 않고 의지를 담을 수가 있게 되지.”

의념에 의지가 담기면 살상력이 생긴다.

단순히 위압으로 인한 질식이 아닌, 의지 자체에 물리력을 부여하는 게 가능해진다.

이건 흔히 말하는 심검의 다른 응용이었다.

어찌 된 모양인지 저 밑에 갇혀 있는 상대는 네르하의 존재를 발견했고, 거대한 의념을 통해 자신의 정체를 알렸다.

그리고 네르하는 그 부름에 답해 밑으로 내려가는 중이었고 말이다.

루시아가 물었다.

“그런 게 가능한가요?”

“왜 불가능할 거라 생각하는데? 메시지 마법도 엄연히 존재하는 마당에.”

“그, 그건 그렇죠.”

“내가 궁금한 건 네 유모 쪽인데 말이야. 왜 전대 가주에 대한 일을 숨기고 있었지?”

네르하와 루시아의 시선이 동시에 돌아갔다.

유모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

“딱히 숨기려던 건 아니에요. 아니, 외부인인 당신에겐 숨겨야 하겠지만 적어도 루시아에겐 상황이 진정되면 말해주려고 했었어요.”

유모의 말도 나름 일리가 있었다. 아렌의 성인식에 직계의 반란. 가문 내외가 뒤숭숭한 판에 굳이 이미 끝난 사건을 말해서 감정을 흔들 이유는 없었으니까.

“그리고, 전대 가주님이 어디로 사라지셨는지는 나도 몰라요. 그분은… 대공자에게 패배한 뒤로 자취를 감추셨으니까.”

“뭐?”

“뭐, 뭐라고?!”

다른 누구도 아닌 케프렌의 선대 가주가, 가주도 아니고 10대 후반 남짓한 대공자에게 졌다고?

“거, 거짓말이지?”

“진실이에요, 루시엘라. 그 일 때문에 직계들간의 모든 다툼이 의미를 잃었고, 대공자는 성인식과 동시에 곧바로 후계자로 책봉된 거죠.”

‘돌겠군.’

케프렌의 전대 가주라면, 적어도 그들의 기준으로는 검제(劍帝), 중원으로 따져도 화경의 끝자락을 넘어 현경의 경지엔 무난하게 올랐을 것이다.

그런 고수를 일대일로 박살 내?

그건 지금의 네르하조차도 꽤나 힘든 일이었다.

“아무래도, 마기우스 가주는 너에게 기회를 준 게 아니라 현실을 알고 무너지라고 수를 쓴 것 같다.”

“…….”

루시아의 현재 경지는 초절정을 넘어 화경의 문턱에 이르러 있다.

그녀의 나이를 감안하면 그야말로 세기의 천재라고 불러도 모자랄 정도였지만, 상대는 재능이란 규격에서 재단할 수 없는 괴물이었다.

뭐, 그런 괴물이 루시아의 근처에 하나 더 있긴 했지만, 적어도 적은 아니니 넘어가고…….

수많은 미로와 함정을 돌파하고, 미궁의 마지막 5층으로 내려간 네르하 일행은.

‘저자로군, 날 부른 자가.’

수많은 사슬에 묶여 처참한 몰골이 된 어느 노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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