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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204화 (204/237)

204화

<반란 (1)>

케프렌 가문이 죄인들을 가두어 놓는 장소, 검의 미궁.

사실 미궁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 치고는 그 내용물은 상당히 조약했다.

뭔가 아쉬워하는 네르하를 향해 루시아가 눈을 흘겼다.

“대체 뭘 기대한 거예요?”

무슨 감옥을 5층까지 파놨다길래 수형자의 급수를 나누어 체벌의 환경을 구현했을까 싶었는데, 진실은 그냥 가둬 놀 사람 수가 많아서 파놓은 것일 뿐이었다.

“맹수들이 즐비하다거나, 도산검림이 실재한다거나, 용암처럼 끓는 열기가 존재한다거나 뭐 그럴 줄 알았지.”

네르하의 말에 루시아는 물론 유모까지 황당한 시선을 던졌다.

“……대체 어디 있는 지옥이에요, 거긴?”

“그런 곳에 죄수들을 던져놨다간 한 달도 되지 않아 죄다 죽어 나갈 겁니다.”

“뭐, 말이 그렇다는 거지.”

감옥이라 그런지 미궁 내부는 상당히 삭막했다.

곳곳에 상당한 인기척이 느껴지지만, 이곳에 갇힐 정도라면 전부 단전이 폐쇄된 자들뿐.

대다수가 삶의 가능성을 놓아버린 이들뿐이었다.

네르하가 주변을 둘러보다가 침음을 흘렸다.

“하지만 이런 거대 공동에 관리자가 아무도 없다는 건 좀 이상하군.”

아무리 일이 터질 때 외부에서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다고는 해도, 감옥인 이상 최소한의 간수나 관리인이 있어야만 했다.

“확실히, 그렇긴 하네요. 최근의 일로 수감자가 대폭 늘어났을 텐데.”

반란을 일으킨 전원이 죽지는 않았을 테니, 분명 상당한 이들이 이곳에 갇혀있을 터.

‘함정인가?’

아니, 그건 아니다.

미래 예지라도 가지지 않는 이상, 현재 상황에서 자신들을 도모한다는 건 이치에 맞지 않다.

뭐가 됐든 네르하와 일행은 아무런 방해 없이 밑으로 쭉 내려갔다.

확실히 검의 미궁 내부엔 단순히 죄인만 있는 게 아니었는지, 곳곳에 갇힌 수감자들 중 루시아와 안면이 있는 자들이 제법 있었다.

“루, 루시엘라 님!”

“돌아오셨습니까?!”

“제프? 구엘란? 당신들이 왜 여기에 있죠?”

그들은 과거 루시아가 한창 후계 경쟁을 하고 있을 때 그녀를 지지했던 기사들.

아니, 더 정확히는 전대 대공자 휘하에 있던 자들이었다.

“죄송합니다, 루시엘라 님. 테베라 공자를 도와 아렌 그 개자식을 몰아내려고 했지만…….”

그들은 루시아가 가문을 탈출한 이후 테베라 휘하에서 반란을 도모했다 실패한 모양이었다.

“그, 그것보단 크라수스 님께서… 크흐흐흑!”

“이 밑에, 할아버님이 계시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루시아는 그들과 깊게 대화를 나누고 싶어했지만, 아쉽게도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며칠만 더 버텨주세요. 곧 꺼내드릴 테니.”

“당신께서 돌아오신 것만으로도 저흰 얼마든지 버틸 수 있습니다.”

“부디, 대공자님의 원한을 갚아주시길!”

밑으로 내려갈수록 이런 자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녀가 과거에 얼마나 많은 힘을 지녔었는지, 그리고 지금에 와선 얼마나 몰락했는지를 증명해주는 숫자였다.

그렇게 최하층 5층까지 내려간 일행은, 중앙에서 사슬에 묶인 한 노인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네르하가 노인에게 물었다.

“당신인가? 날 부른 자가.”

“끌끌끌, 그래. 혹시나 했는데 정말로 내 의념을 감지할 수 있었군.”

대번에 노인의 정체를 알아차린 루시아가 노인을 향해 달려갔다.

“하, 할아버님!”

“오오, 오랜만이구나, 루시엘라.”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우득! 우드득!

루시아는 노인에게 달려가 전신을 묶고 있던 사슬을 그대로 뒤틀어 구겨버렸다.

‘저거, 나름 합금으로 만들어진 사슬 같은데?’

그걸 마치 수건 짜내듯이 주무르고 있다는 점에서 그녀의 완력이 예사롭지 않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전대 가주, 크라수스 엘 케프렌이 떨떠름하게 말했다.

“……못 보던 사이에 많이 터프해졌구나.”

“그게 문제가 아니잖습니까!”

한쪽 팔이 사라진 자신의 조부를 향해, 루시아가 울부짓듯 외쳤다.

“대체, 누가 할아버님을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진정하거라.”

“아렌인가요? 아렌 그 망할 놈입니까!”

“진정하라 하지 않았느냐.”

콩!

가벼운 꿀밤이 루시아의 정수리를 강타했다.

그리고 루시아의 머리가 그대로 땅바닥에 처박히며 쿵! 소리를 내었다.

‘생각보다 멀쩡한데?’

위에 있던 기사들이 난리를 친 것 치곤.

그리고 팔 하나가 날아간 것치고는 상당히 정정해 보인다.

‘팔이 잘렸을 뿐 단전이 폐해지진 않았다. 그렇다면 애초에 저 사슬 역시 자력으로 풀 수 있었을 터.’

저 말인 즉, 이유야 어찌됐건 전대 가주는 ‘자의’로 이곳에 있다는 소리였다!

크라수스가 루시아를 타이르듯 말을 이었다.

“아렌을 탓하지 말거라. 내가 이렇게 된 건, 아렌 때문이 아니니까.”

“네? 지, 지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그가 이곳에 갇혀 있는 이유가 아렌과의 사투라고 알고 있던 유모는, 갑자기 튀어나온 진실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크라수스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맺혔다.

“내가 이곳에 갇혀있는 건, 사정이 있어서란다.”

“…….”

츠츠츠!

한순간, 네르하의 감각에 불쾌한 무언가가 감지되었다.

‘으응?’

그 감각의 근원은 다름아닌 크라수스에게서 흘러나오고 있었고, 문제는 이 감각이 무인이 아닌 ‘마법사’의 감각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었다.

네르하가 불쾌감의 정체를 내뱉었다.

“저주?”

“호오? 알아차렸는가?”

크라수스의 심장 부근에 새겨진 저주의 근원은 다른 무엇도 아닌 마기.

‘단순히 마계 귀족급 정도가 아니야. 마왕급이 분명하다.’

지금 상황에서 추측할 수 있는 원인은 단 하나.

“예루리입니까?”

“허! 자네가 그걸 어떻게 알았지?”

크라수스는 진심으로 놀라워했다.

그의 눈이 날카롭게 네르하를 훑었다.

“마법사 특유의 마력장이 느껴지는데도 육체는 이상적인 권사의 모습이군.”

그는 얼추 네르하의 소속을 파악한 듯싶었다.

“라데우스에 아렌 같은 괴물이 또 하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네. 자네, 이름이 뭔가?”

“네르하 라데우스입니다.”

“그래, 자네가 바로 루트비히가 그렇게 자랑하던 라데우스의 미래였나?”

네르하는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네, 제가 다음 대의 가주가 될 겁니다.”

당돌한 네르하의 말에 크라수스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하! 정말 그렇게 될지도 모르겠어. 바스텔이 아렌을 꺾기 위해 아직도 절치부심하고 있을 텐데, 그 전에 네가 소가주에 오를지도 모르겠군.”

방금, 절대 흘려들을 수 없는 말이 튀어나왔다.

“지금, 뭐라 하셨습니까?”

“응? 뭐가 말인가?”

“바스텔 형님이 어쩌고 하신 것 말씀입니다.”

“……?”

크라수스는 고개를 갸웃했다.

잠깐이나마 네르하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뭐야, 알려지지 않은 거냐? 루트비히 그놈도 쪼잔한 구석이 있구만.”

라데우스의 장남, 바스텔 로저 라데우스는 모종의 이유로 최근 수년 동안 폐관 수련 중이다.

문제는 그 ‘모종의 이유’가 무엇인지 제대로 아는 자가 가문 내에 없다는 점이었다.

과거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마하와의 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점에서 어느 정도 바스텔에 대해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말 그대로다. 음, 한 7~8년쯤 전인가? 라데우스의 사절로 왔던 바스텔 놈이 아렌과 뭔가 대담을 나눈 적이 있었지.”

크라수스가 과거의 기억을 더듬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대담이 끝난 후, 그놈의 표정에 패배감이 깃든 것을 많은 이들이 보았지. 그리고 녀석은 차후 다시 만날 때 반드시 아렌을 꺾겠다는 선언을 하고 떠났다.”

“마, 말도 안 돼! 그때 아렌의 나이는 열 살 남짓이었습니다!”

이 말을 한 당사자는 네르하가 아닌 루시아였다.

바스텔 로저 라데우스의 천재성은 유명했다.

다른 그 어떤 라데우스의 직계들도 감히 도전을 내밀지 못했을 정도로.

게다가 7~8년 전이면 당시의 바스텔은 이미 7레벨에 무난하게 이르러 후계 자리를 단단히 다지던 때였다.

그런 그가 고작 10살 아이에게 패배감을 맛보았다고?

“그때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당사자들만 알겠지. 하지만 바스텔이 아렌을 꺾겠다는 말을 한 건 사실이다.”

저 말이 정녕 사실이라면, 라데우스로선 절대 밝혀서는 안 될 굴욕적인 역사나 다름없었다.

“아렌 그 녀석은 괴물이다. 재능이란 말로는 설명할 수가 없어.”

“…….”

루시아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졌다.

전대 가주라면 분명 자신의 편을 들어줄 거라 믿고 있었는데, 지금 모습을 보면 그 역시 아렌을 인정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최악의 가정이 튀어나오기 전에, 네르하가 일단은 주제를 다른 것으로 돌렸다.

“현 대공자에 대한 일은 나중에 따지기로 하죠.”

“흠.”

“지금 중요한 건 전대 가주님의 상태. 그리고 그에 얽힌 상황인 듯합니다만.”

“그렇지…….”

현재 상황으로 돌아오자, 크라수스의 표정에 씁쓸함이 맺혔다.

“일단, 네가 어떻게 예루리의 존재를 알고 있는지에 대해 물어보마. 아마 출처는 드래곤이겠지?”

곧바로 드래곤을 언급하는 걸 보니, 크라수스 역시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굳이 부정하진 않겠습니다.”

“아마도 그중 가장 가능성이 높은 건 아그란바드나 글로시엘이겠지. 평의회에 틀어박힌 주제에 세상사에 가장 간섭하고 있는 놈들이니.”

크라수스는 네르하와 일행들을 둘러보며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예루리의 봉인이 반쯤 풀렸다.”

“……!”

“그리고 나는 그 사실을 가장 먼저 알아차렸지만, 예루리의 마계 영역에 휘말려 봉인이 풀린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못하고 놈과 싸워야만 했지.”

원래 저만 한 강자가 날뛰면 뭐가 됐든 외부에서 눈치를 채야 한다.

하지만 상황을 보면 그러지 못한 모양이었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혼자서 마왕급에게 대적하는 건 무리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패색이 짙어졌고, 결국 팔 하나를 헌납하고 말았지.”

“세, 세상에, 그런 일이!”

유모가 입을 가리며 믿을 수 없다는 듯 경악했다.

이곳은 케프렌의 중추 중의 중추.

그런데도 눈치챈 이가 아무도 없었을 줄이야!

“그리고 그런 나를 구한 게, 바로 아렌이었지.”

다른 누구도 아닌 아렌이 크라수스를 구했다?

의심과 궁금함이 동시에 치솟아 올랐지만, 네르하는 일단 계속해서 설명을 듣기로 했다.

“상황이 어떻게 되었든, 아렌이 내 목숨을 구한 건 명백한 일이다. 나와 아렌은 놈을 몰아붙였고, 다시 재봉인을 하기 직전까지 갔지.”

“직전까지 갔다는 건, 봉인에 실패하셨다는 뜻입니까?”

“……반 정도는.”

크라수스가 참담한 기색으로 얼굴을 내리깔았다.

“놈의 육체 자체는 재봉인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놈의 의식의 일부가 육체에서 빠져나갔고, 그 직후 내 심장에 저주를 내리고 어딘가로 사라졌다. 그리고, 얼마 후에 테바라의 반란이 일어났지.”

“서 설마!”

“그래.”

지금까지 말한 내용대로라면 결과는 하나.

“놈은, 지금 케프렌의 직계들에게 빙의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루시아와 유모가 입을 쩍 벌렸다.

정말 저 말대로라면 현재 바깥의 상황의 아귀가 얼추 들어맞는다.

그런데.

‘뭔가 수상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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