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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206화 (206/237)

206화

<반란 (3)>

네르하와 크라수스가 대결을 시작하기 얼마 전.

죄인들의 수용소, 검의 미궁은 주변에서 파견 나온 기사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대공자 님.”

한창 1층을 점거하고 상황을 파악하던 기사들은, 금발의 청년, 아렌 루 케프렌을 보고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상황은 어떻죠?”

아렌의 물음에 기사단 ‘철벽’의 단장, 타르마가 대답했다.

“입구를 지키던 기사 열다섯이 모조리 죽었고, 직계분들 역시 구속이 모두 풀려 있었습니다. 범인과 직계분들은 다른 곳으로 향하지 않고 지하로 내려간 듯싶습니다.”

타르마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대공자의 지시로 아직 지하로 향하진 않았습니다만, 시간이 지나면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릅니다. 부디 지시를!”

그 말에 아렌은 빙그레 웃으며 바깥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들은 지하로 향하지 않았습니다.”

“네? 곳곳에 흔적이 남아 있는데 무슨 말씀을…….”

“다른 자들입니다. 당신들보다 한발 앞서 이변을 알아차렸지요.”

“으, 으음!”

타르마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상식적으로 저게 말이 되나 싶었다.

철벽은 타 기사단에 비해 특별히 수준이 높은 건 아니었지만, 그 대신 일반적인 기사단의 세 배 이상의 인원을 자랑하는 곳.

그만큼 내부의 이변을 누구보다 빠르게 알아차릴 수 있는 장본인 중 하나였다.

저 말은 즉 자신들 철벽을 무시하는 것.

하지만 그걸 반문할 수는 없었다.

대공자 아렌에게 ‘두 번의 반문’은 자살행위라는 것이, 요즘 기사단 사이에 상식으로 널리 알려진 탓이었다.

아렌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뭐, 상황을 보니 그들도 나이우스보다 한발 늦은 모양입니다만.”

“나, 나이우스?”

“나이우스 공자가 이번 일에 대한 범인이란 말입니까?!”

주변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오는 가운데, 원탁의 기사 몇몇이 모습을 드러냈다.

개중에는 아렌과 함께 북방으로 향했던 노년의 기사, 가비스도 존재했다.

“이거, 일이 터졌군요.”

“가비스 경.”

“나이우스 혼자라면 몰라도 직계들까지 챙기려면 흔적이 남을 수밖에 없겠죠. 곧바로 추격조를 편성해서 보내겠습니다.”

“뭐, 그건 알아서 하시고.”

지금 아렌의 신경은 나이우스 ‘따위’에게 쓸 건덕지가 남지 않았다.

쿠르르릉!

그때, 미약한 지진이 일어나며 대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이것은!”

감각이 뛰어난 기사들 몇몇은 지하에서 벌어지는 막대한 힘의 파동을 감지하곤 전율했다.

그리고 지하의 사정을 아는 극소수의 간부들은 당황해하며 아렌에게 시선을 돌렸다.

“설마, 그분이 구속에서 풀려난 건가?”

“후후, 후후후…….”

아렌이 웃음을 흘렸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지금 모인 전력이라면 그분을 충분히 제압할 수 있습니다만.”

가비스는 아렌이 병력을 투입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뇨.”

하지만 아렌의 반응은 가비스의 예상을 한참이나 벗어났다.

“이곳에 집결한 모든 병력을 물리고 이들의 역량을 나이우스의 추적에 돌리세요.”

“지, 지금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곳엔 저 혼자 있겠습니다.”

아렌은 그 말을 끝으로 대답을 듣지 않고 미로의 안으로 들어갔다.

더 이상의 말은 듣지 않겠다는 아렌의 태도에도 가비스는 별다른 대꾸를 하지 못했다.

‘선대를 살려둔 게 인정(人情)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추측하고 있었지만…… 무언가 다른 꿍꿍이가 있어서였던가?’

신형을 돌리기 직전, 가비스는 아렌의 얼굴을 보았다.

즐거워 죽겠다는 그 얼굴.

그리고 그 표정이 나타날 때마다, 가문엔 여지없이 거대한 혈풍이 불어닥쳤다.

‘대체 무슨 생각인지.’

전대 가주가 어리석은 꿈을 꾸다 아렌에게 제압당한 사실은, 가문 내에서도 극비였지만 원탁의 기사 정도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이어진 테바라의 반란, 나이우스의 잠적 역시 그 뒤에 전대 가주가 있다는 것 정도는 무난히 추측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상황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음에도 대공자인 아렌은 그를 죽이는 것에 무조건적으로 반대했다.

하다못해 단전만큼은 폐하자고 많은 이들이 주장했지만, 아렌은 그것마저도 무시했다.

결국 크라수스가 일을 벌였던 미궁의 5층. 그곳에서 최대한 할 수 있을 만큼 육체를 제압하고 가두는 것에 그치고 말았다.

그리고, 아렌은 미로를 지키던 위층의 모든 간수들을 철수시키고 지금의 상황을 만들었다.

‘하아, 가주가 하루빨리 귀환해야 이 사태가 진정될 것 같구나.’

대체 아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리고 무슨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도대체 짐작이 가지 않는다.

아무리 차기 가주로 확정되었다지만, 아직 가주도 아닌 자에 의해 가문 전체가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아니, 전권을 쥐고 흔드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다.

진짜 문제는 원탁의 그 누구도 아렌의 진짜 목적이 뭔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케프렌이란 가문조차 자신의 장난감처럼 여기고 있으니, 앞으로의 일이 참으로 걱정되는구나.’

가비스는 막막한 앞날에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 * *

크라수스는 당황했다.

“내, 내 검이 밀려난다?”

네르하가 영역을 펼치면서, 그와 동시에 자신의 검이 어째서인지 힘을 잃고 밀려나기 시작했다.

크라수스가 구겨진 얼굴로 소리쳤다.

“말도 안 돼! 이게 무슨 일이야!”

비록 마왕의 하수인이 되었다지만 크라수스의 의념은 여전했다.

그의 검은 여전히 검제(劍帝)의 경지에 있었고, 의념과 영역을 자유자재로 다룰 줄 알았다

비록 부상으로 기력과 마나가 조금 쇠하긴 했지만, 결코 자신의 손자 뻘에 불과한 ‘애송이’에게 밀릴 정도는 절대로 아니었던 것이다!

“내가 힘에서 밀리다니!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왜 있을 수 없다고 단정하지?”

네르하의 영역이 약 오십 미터 가까이 확장되며 크라수스가 펼친 의념의 검을 완벽하게 밀어내었다.

갈 곳을 잃은 의념의 검은, 이윽고 통제를 잃고 해체되어 네르하의 영역에 흡수되고 말았다.

제대로 펼쳐진 영역의 모습에 네르하는 흡족해했다.

‘실전에서 처음 펼친 영역이긴 한데, 나름 잘 된 것 같군.’

―흥, 아직 온전한 8레벨이 아닌 주제에 너무 당당한 것 아니냐? 꼼수로 펼친 주제에.

‘그래, 다 네 덕이다.’

원래 온전한 영역이라면 지금보다도 훨씬 컸을 것이다.

거의 마계 영역에 가까운 넓이를 자랑했겠지.

하지만 현재 네르하의 역량, 그리고 이 영역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이 정도라도 충분히 크라수스를 상대할 수 있었다.

“이건, 힘으로 밀린 게 아니군.”

네르하의 영역 안에서 그 특성을 읽어낸 크라수스가 인상을 썼다.

“하지만 차라리 힘으로 밀린 게 더 나을 정도야.”

느껴진다.

이 영역이 발산하는, 권능에 가까운 어마어마한 능력이.

“공간을 다루는 힘이구나, 이것은!”

“정답. 아직 기초적인 수준이지만 말이야.”

딱!

네르하가 손가락을 튕겼다.

뚜둑!

“크으윽!”

그와 동시에 엄청난 중력이 크라수스의 육체를 짓눌렀다.

“믿을 수 없군. 국지적인 공간 능력을 재현하는 게 아니라 영역 자체가 공간을 다루는 힘이라니.”

뚜둑! 뚜두둑!

“하지만 아직 미숙해. 공격에 적용할 정도는 아니군.”

어느새 중력에 적응한 크라수스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사자후를 내질렀다.

“놀랍긴 하지만 극복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푸욱!

크라수스의 외침과 함께, 검은 마기가 오러와 섞여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크라수스의 등 뒤에서 검은 불꽃으로 만들어진 날개가 돋아나면서, 잘린 팔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대단하군. 아무리 마왕의 힘을 빌렸다지만 힘으로 극복하다니.’

네르하가 한 짓은 공간의 장벽을 만들어 의념의 검을 밀어낸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외엔 공간 마법의 하위 단계인 중력 계열을 응용해 크라수스를 압박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영역 내에서 자유자재로 공간이동을 시전한다거나, 공간을 접어 절대적인 물질 소멸의 힘을 사용한다거나 하는.

아무리 네르하라도 아직 그런 고위 응용은 먼일이었다.

현재의 영역은 이자카르의 공간 계열 술식과, 헤르메스의 우승으로 얻어낸 허수 차원의 포털 게이트 술식을 얻어낸 덕분에 간신히 펼칠 수 있었으니까.

‘뭐, 그마저도 이자카르의 백업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공간을 온전히 다룬다는 건 그만큼 어마어마하게 어려운 일이었다.

―놈의 기력과 오러는 회복되었지만, 그 대가로 예루리의 힘이 상당히 약해졌다. 아마 한동안 재생이나 불사의 능력은 쓰지 못할 것이다.

‘그거 다행이군.’

네르하는 그대로 자신의 영역을 거두기 시작했다.

어차피 크라수스가 저런 상태까지 간 이상, 어설픈 중력 조작 따위는 힘만 낭비할 뿐이었다.

“신기하군.”

좁혀지는 영역을 보며 크라수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법사의 영역처럼 보이지만, 지금은 또 무인의 영역처럼 보이는군. 대체 네놈의 정체가 뭐지?”

한 사람의 영역이 마법사와 기사의 특성을 동시에 띠고 있다는 건, 크라수스로서도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아렌 놈처럼 압도적이진 않아도 까다로운 상태는 분명하군. 네놈 역시 재능의 틀을 벗어난 괴물의 영역에 있구나.”

구석에서 유모를 치료하고 있던 루시아는 그 말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케프렌의 인물로서, 더 이상 너의 존재를 좌시할 수는 없겠구나.”

“마왕에게 영혼을 판 자가 가문의 이름을 들먹이는가?”

“흐흐흐, 이 가문은 원래 나의 것이었다. 마기우스, 그 빌어먹을 놈이 부당하게 내 자리를 강탈하기 전까지는!”

“강탈당했다고?”

“그래. 놈은 부정한 방법으로 가주의 자리에 올랐지. 그리고, 그 부정한 방법에 대한 대가를 치를 때가 온 것이다!”

권력의 욕망에 사로잡혀 포효하는 크라수스의 모습.

그걸 지켜보며 느끼는 루시아의 충격은, 차마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하, 할아버님.’

언제나 인자한 얼굴로 자신의 든든한 지원자가 되어주었던 조부.

하지만 속내를 드러낸 지금.

그 인자함이 가면에 불과했다는 걸 알자, 그녀의 속내는 실시간으로 썩어들어가고 있었다.

“크흐흐, 가만히 있어도 마기우스 그놈은 곧 뒈지겠지만, 놈은 대가를 치르지 않고는 편히 눈을 감지 못할 거다.”

“……뭐라고?”

가만히 있어도 죽는다?

방금, 절대 지나쳐서는 안 될 정보가 흘러나왔다.

“마기우스 가주가 가만히 있어도 죽는다는 건 무슨 뜻이지?”

“흐흐, 모르고 있었나? 하긴 라데우스라도 이건 모르고 있겠지.”

“대답해라.”

크라수스는 어깨를 으쓱했다.

“날 꺾을 수 있다면 대답해주마.”

“……좋아.”

더 이상의 대화는 불필요.

네르하는 펼쳐둔 영역을 좁히며 자세를 잡았다.

상대는 분명 마왕을 제외하면 지금까지 싸워왔던 자들중에선 가장 강한 자.

자신이 발을 내디딘 현재의 위치가 어떠한지, 충분히 척도가 되어줄 수 있는 상대였다.

퉁!

네르하와 크라수스가, 동시에 자리를 박찼다.

* * *

어둠 속에서.

한 여인이 입을 열었다.

“마왕 예루리가 곧 부활하겠군요.”

어둠 속에 묻혀 있던 상대가 답했다.

“예루리의 존재 자체는 그다지 걱정할 게 없다. 예루리가 레비아탄과 더불어 온전하게 힘을 보존하고 있다곤 해도, 현시대의 인간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니야.”

“그럼 왜 그렇게 예루리의 부활을 걱정하시나이까?”

“네르반.”

“……!”

상대의 말에 어둠을 바라보던 여인의 눈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예루리는, 지금은 잠들어 있는 네르반을 깨울 열쇠를 가지고 있다.”

“그, 그렇다는 건?”

“네르반에게 복수를 천명한 천마(天魔)가 움직일 것이다.”

그리고.

“그와 강한 운명의 실로 얽힌, 무신(武神) 역시 역사에 모습을 드러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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