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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208화 (208/237)

208화

<반란 (5)>

“난, 그 사람을 믿어.”

너무나도 단호한 대답이었다.

가볍게 질문했던 아렌의 입이 잠깐 다물어질 정도로.

“의외의 말씀이네요.”

아렌이 웃었다.

“평생을 보아온 전대 가주님보다, 고작 2년여를 겪은 그 남자를 더 믿는다고요?”

“2년이면 사람 하나를 판단하는 데는 충분한 시간이야.”

인간성에 대해서는 되려 충분하다 못해 넘칠 지경이었다.

다만 실력만큼은 아직 판단이 서지 않아서 문제였지.

“그리고, 웃으면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건 그다지 설득력이 없어.”

“하하하, 그렇죠.”

아렌도 그다지 진지하게 물어본 건 아닌 모양이었다.

“할아버님의 수준이 이곳 케프렌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로 높은 건 맞습니다. 하지만, 초월을 잠깐이나마 엿본 자와 그러지 못한 자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죠.”

‘초월? 그게 무슨 소리지?’

루시아의 눈가가 살짝 가늘어졌다.

“누님.”

그때, 아렌이 갑자기 부드러운 목소리로 루시아를 불렀다.

“제법 늘긴 했습니다만, 아직 모자랍니다.”

“뭐?”

“방금 전의 그 검기. 골든 글로리의 조화로운 성질을 이용해, 오러에 마력장의 특성을 부여하신 거죠?”

“네, 네가 어떻게 그걸?!”

루시아는 기겁했다. 유성검은 마법을 깊게 파고들지 않는 이상은 절대로 그 원리를 알아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아렌은 대번에 그 사실을 꿰뚫어 본 것이다!

“후후, 확실히 누님은 천재예요. 원리를 알고 있다고 해도 적용하는 건 별개의 문제. 상반되는 성질을 제어하기 위해선 그야말로 초인적인 감응 능력이 필요한데 말이죠.”

“너, 정말, 정체가 뭐야?”

이건 예전에도 여러 차례 물은 적이 있었다.

그가 오라비인 대공자를 죽일 때도, 자신이 가문을 뛰쳐나가 리브라로 도망치기 전에도 말이다.

하지만 아렌은 그저 웃을 뿐,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끝까지 회피하곤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원래라면 그냥 가게 두었겠지만, 지금의 누님껜 해드릴 말이 있겠군요. 밑의 싸움이 조금 길어질 것 같으니 심심하기도 하고 말이죠.”

스윽!

찰나의 순간, 아렌의 신형이 어느새 루시아의 근처까지 다가와 있었다.

‘어, 어느새!’

루시아가 기겁하며 반사적으로 칼을 휘둘렀다.

하지만 아렌은 가볍게 그 칼을 피하고는, 등에 있는 유모에게 손을 뻗은 상태였다.

그리고 아렌의 손에서 뻗어 나온 황금빛의 기운이 유모에게로 스며들어 갔다.

그것이 아렌 나름의 응급치료라는 걸 루시아가 모를 리가 없었다.

유모에게 손을 뗀 아렌이 말을 이어 나갔다.

“파괴력과 강도를 극한으로 늘린다고 해도, 의지를 인지하고 그걸 두를 수 없다면 결국엔 한계를 맞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움찔!

루시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앞으로 인외의 존재들과 싸우려면 더더욱 그렇겠죠.”

아렌이 말을 이어 나갔다.

“그 융합기를 다루다 보면 자신의 주변에 마력장과는 다른, 무형의 제공권이 생겨나는 게 느껴지실 겁니다.”

그저 굳은 채로, 자신도 모르게 아렌의 말을 경청하고 있을 뿐.

“마력장과 제공권. 두 가지 영역을 동시에 다루기가 힘드니 마검사라는 직종이 극의에 다다르기 힘든 거죠. 그걸 동시에 신경 쓰면서 사용하려면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재능이 필요하니까요.”

마력장의 끝에 있는 것이 바로 마법사의 심상 각인 영역.

그리고 제공권의 끝에 있는 것이 기사의 의념 영역.

“그 두 가지를 엮어주는 매개체가 바로 검입니다. 마력 역장과 제공권을 동시에 전개할 때, 아주 잠깐이나마 교집합으로 엮이는 부분이 존재합니다.”

‘아.’

루시아는 전율했다.

지금 아렌이 말하고 있는 것.

이것은 바로 현재의 루시아에게 가장 필요한 가르침이자 깨달음이었다.

아렌은 지금 이 두 가지를 어떻게 융합할지에 대한 방법을 말해주고 있었다.

루시아는 아렌의 이론을 물 먹은 스펀지마냥 빨아들였다.

그렇게 아렌의 가르침은 약 5분 동안 이어지고.

대략적인 요결을 모두 전한 아렌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의 누님이라면 이 정도라도 얼추 다음 단계에 대한 감을 잡으실 수 있으실 겁니다.”

“…….”

“그 사람은 애초부터 의념을 다루는 데 워낙 능숙하기에 벽을 잘 느끼지 못했을 뿐, 누님의 경우엔 이 부분을 반드시 해결해야만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답니다.”

유쾌하게 웃은 아렌이 바깥쪽을 가리켰다.

“가시죠, 더 시간을 끌면 위험하겠군요.”

“대체, 무슨 속셈이야?”

루시아는 듣고 싶었다. 대체 아렌의 저의가 무엇인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건이 전부 아렌의 의도대로라는 건 무리가 있겠지만, 적어도 어느 정도 의도된 대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 정도는 이해하고 있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제 목적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케프렌이란 가문은 그저 수단 중 하나일 뿐이지요.”

즉, 지금 아렌이 벌이고 있는 일들은 오직 하나의 목적만을 위해서 이루어지고 있단 소리였다.

“바깥에 누님을 위한 무대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라이먼 경에게 가면 자연히 하게 될 일을 알게 되실 겁니다.”

“…….”

“부디 제 기대를 넘어서실 수 있는지, 이번 일이 모두 끝나면 그때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웃기는군. 네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그렇게 된다면야.”

아렌은 어깨를 으쓱했다.

“죽는 거죠, 뭐.”

너무나 태연하게 죽음을 입에 담고 있다.

루시아는 비탄을 느끼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까진 부정해왔지만, 이젠 확실히 알겠어.”

“무엇을요?”

“넌 내가 알던 동생이 아니라는 걸.”

부정하고 싶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인정할 수밖에 없다.

지금 눈앞에 있는 건, 아렌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타인’이라는 걸.

“좋아, 네 말대로, 이번 일이 모두 끝난 뒤, 내 모든 걸 걸고 네가 숨기고 있는 모든 가죽을 벗겨버리겠어.”

“하하하, 그렇게 하시죠.”

아렌은 자신이 동생이 아니라는 것도 부정하지 않았다.

고마움과는 별개로, 그 사실이, 루시아에겐 너무나 큰 아픔으로 다가왔다.

* * *

“허허, 참.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라데우스의 사절단 단장이자 장로, 지렌 라데우스는 주변에 모여 있는 사절단 단원들을 보며 혀를 찼다.

“갑자기 귀환이라니. 케프렌도 속이 참 좁군요.”

지렌 라데우스는 네르하와의 약속에 따라 ‘철저하게’ 관광에 임했다.

케프렌이 붙여놓은 감시자들이 진짜 놀러 온 건가 착각(?)할 정도였다.

그때 지렌의 부관이 살며시 다가왔다.

“장로님, 주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알고 있다.”

귀환 도중에도 케프렌의 기사들이 다급하기 이동하는 것이 보인다.

무언가 일이 터지지 않고서는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저희를 노리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대비를 하시는 게 어떠신지요?”

“흠.”

지렌은 자신의 하얀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부관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만약 산재한 케프렌의 기사단이 도시를 봉쇄한다면, 아무리 지렌 자신이 있더라도 별다른 반항도 하지 못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케프렌의 속사정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지렌은, 조금 여유롭게 행동하기로 결정했다.

“우릴 노릴 거라면 이렇게 산만하게 행동할 리가 없다. 더 은밀했겠지. 일단은 상황을 지켜보도록 하자고.”

“알겠습니다.”

장로가 결정했다면 따르면 될 뿐이었다.

그렇게 일행이 검의 성지에 도착했을 때였다.

‘으으응?!’

지렌은 저 멀리서 흐릿하게 느껴지는 피냄새에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 피냄새보다도 더 불쾌하게 느껴지는 기운.

바로 ‘마기’였다.

“어? 저것들은 뭐야?”

사절단이 완전히 안쪽으로 들어왔을 때.

그들이 본 것은 인근에 널린 수많은 시체, 그리고 한창 전투를 벌이는 흑색과 백색의 기사들이었다.

“막아라! 절대 놈들에게 성지가 점령되도록 놔두지 마라!”

뜬금없이 나타난 수백에 달하는 흑색의 기사들.

전원이 오러를 내뿜을 수 있는 어마어마한 실력자들로, 나타나자마자 주변에 있는 이들을 닥치는 대로 학살하기 시작한 자들이었다.

“이, 이상합니다! 아무리 봐도, 놈들은 성지 내부에서 나타난 것 같습니다!”

“빌어먹을 놈들! 대체 소속이 어디야?!”

“그걸 따질 때가 아닙니다! 원탁 휘하 기사들이 집결할 때까지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야 합니다!”

숫자는 비슷했지만 서로의 전력의 차는 명백했다.

인근을 지키던 기사 중 귀급의 기사는 고작 스물 남짓.

하지만 상대는 전원이 오러 유저였다.

‘이거, 아무리 봐도 녀석의 계획이 어그러진 것 같은데?’

뜬금없이 눈앞에서 벌어진 의문의 전투에 지렌은 고민했다.

루시엘라 엘 케프렌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대권 도전.

케프렌 내부를 뒤흔들어 조력자를 찾고, 그들의 힘을 빌려 내전을 유도한다는 것이 바로 네르하가 털어놓은 계획의 기본 골자였다.

물론 성공하면 좋고, 실패해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협조한 계획이었지만.

아무래도, 상황이 참 묘하게 돌아가는 듯했다.

그때.

“너희는, 라데우스로군.”

전장의 한복판에서 나름 특별한 휘장을 걸친 흑기사 하나가 지렌에게 다가왔다.

지렌은 상대가 생각보다 젊은 놈이라고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네놈은 뭐냐?”

“그건 너희들이 알 바가 아니다.”

“허허, 이놈 말하는 싸가지 봐라?”

지렌이 손을 쓸지 말지 진지하게 고민하던 그때.

“이건 케프렌 내부의 문제. 너희들이 끼어들 판이 아니다.”

“뭐, 그런 것처럼 보이긴 하다만.”

“얌전히 숙소로 돌아가 대기하고 있어라. 그러면 이 이후로도 너희를 손님으로 대우해줄 거라 약속하지.”

“흐음.”

지렌은 고민했다.

아무래도 상대 역시 케프렌에 속한 놈인 건 확실해 보였다.

이대로 케프렌 놈들이 서로 상잔을 벌여 전력을 깎아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상황이 될 것이다.

애초에 네르하에게 협력한 것도 그런 상황을 기대한 것이긴 하니까.

그런데.

‘네르하 녀석이 여기에 어떻게 얽히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쉽게 발을 빼는 건 어려운데.’

만약 네르하가 이번 일에 대한 주모자이거나 재수 없게 얽혔을 경우, 그의 힘이 되어주기 위한 최소한의 대비 정도는 해줘야만 했다.

‘그래도 일단은…….’

생각을 정리한 지렌이 흑기사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뭐 네놈들끼리 서로 물고 죽이는 데 라데우스가 끼어들 이유도, 명분도 없지.”

순간 흑기사의 입가가 살짝 씰룩거렸지만, 그는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지렌의 비아냥을 참아냈다.

“현명한 선택이군.”

“우린 이만 들어가 보도록 하지. 저놈들의 도와달라는 눈빛이 너무 초롱초롱해서 부담스럽거든.”

그 말마따나, 형편없이 밀리고 있던 백색 기사들이 지렌을 향해 뭔가 간절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대놓고 도와달라고 말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기사들의 전장에서 마법사의 지원이 얼마나 큰 효과를 내는지 그들 역시 잘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지렌은 그런 그들의 눈빛을 무시하고 숙소로 향했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그놈의 명령이 있었는지, 다른 흑기사들은 지렌과 라데우스 일행을 일절 건들지 않았다.

그렇게 숙소로 돌아온 지렌은, 도착하자마자 부관에게 말했다.

“부관.”

“예, 장로님!”

“장비를 모두 챙겨서 전투준비를 갖춰라.”

“……?!”

방금 전에 했던 말과는 완전 딴판인 명령.

“개입하실 생각이십니까?”

그 말에 지렌은 주변을 둘러보며 뜬금없는 말을 꺼냈다.

“네르하가 없군.”

“그야 당연히…….”

지들끼리 쑥떡 거리다가 뭔가 일을 벌이기 위해 사라졌는데 당연히 없지.

부관의 황당해하는 시선에도 불구하고, 지렌은 엄숙하게 선언했다.

“이런 난리통에 우리 소중한 라데우스의 직계가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는데, 당연히 우리가 챙겨야지 않겠나?”

“네, 그렇죠.”

부관이 힘없이 대답했다.

“그러니 가자고. 네르하를 찾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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