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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214화 (214/237)

214화

<격변 (2)>

“하지만 승부는 뻔하겠군.”

다른 드래곤들 역시 동의했다.

“확실히.”

“저 인간의 힘은 분명 인류라는 종의 카테고리가 가질 수 있는 한계치에 근접해 있다.”

“그렇다 해도.”

“그 한계치를 넘어선 자와 근접한 자의 차이는 절대적이지.”

드래곤들의 평가는 정확했다.

처음 아렌이 휘두른 패검기가 상쇄된 이후에도, 두 사람은 공방을 지속해나갔다.

아니, 정확히는 아렌이 일방적으로 네르하를 두들기는 양상이었다.

“잘 버티는군요, 그럼 이건 어떨런지?”

천마신공 특유의 검붉은 기운 위에, 희미한 황금빛이 일렁렸다.

유마강기(劉魔强氣)

도천파(屠天波)

수십, 수백에 달하는 강기의 파도가 네르하를 덮친다.

같은 강기조차 수수깡처럼 썰어버리는 천마의 절기.

네르하는 속절없이 아렌의 공세에 밀려 나갔다.

“크윽!”

심장이 고동치며 마나 익스텐더가 육체에 힘을 더한다.

그럼에도 버티는 게 고작.

일격 일격에 뼈가 울리고 근육이 찢어지기 시작했다.

‘젠장!’

네르하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중원 고금제일의 기공, 천마신공(天魔神功)의 힘은 여전히 명불허전이었다.

‘지금이라면 충분히 할 만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이 오만이었음을 깨닫는 건 잠깐이면 충분했다.

쿠구구궁!

결국 네르하의 육체가 아렌의 공세를 버티지 못하고, 기어코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흐음!”

아렌이 사뿐히 자리에 내려앉으며 네르하가 널브러진 곳을 바라보았다.

“크으으!”

흙먼지가 걷히자 넝마가 된 네르하의 상체가 드러났다.

찢어진 상의 사이에서 잘 단련된 근육이 무색할 정도로 핏물이 흘러나온다.

아렌이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확실히 마법을 접목시킨 탓일까요? 전체적인 기교와 내공의 운용이 말도 안 될 정도로 늘었군요.”

“…….”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육체의 성능이 많이 아쉬워요. 무적권신이라 불리던 그 강인하고 단단했던 육체는 대체 어디로 사라졌는지…….”

아렌의 표정엔 딱하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빌어먹을 자식.”

네르하가 이 육체를 개조한 지는 아직 5년도 채 지나지 않았다.

분명 5년이란 세월이라면 쓸만할 정도로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수십 년을 일념으로 쏟아 만든 전생의 그 금강불괴를 재현하기엔 터무니없이 모자란 것이다.

“아아, 그렇군요. 당신의 사정을 깜빡했습니다.”

아렌 역시 그제야 그 사실을 깨달았는지 살짝 앓는 소리를 냈다.

“한 5년 정도만 더 시간이 있었다면 육체를 확실히 완성시켰을지도.”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다.”

네르하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입을 열었다.

“준비가 부족하다고 늦게 찾아올 만큼, 운명이 다정하던가?”

“하하하, 확실히 그렇죠.”

“그런 거에 후회를 할 만큼, 인생 그렇게 허술하게 살진 않았어.”

네르하가 다시금 마력을 끌어올렸다.

‘확실히 위력만큼은 저보다 우위인 게 많았어.’

당장 비슈나르만 해도, 놈의 브레스는 산맥을 가르고 하늘을 쪼개지 않았던가?

하지만 놈의 공세는 강력하면서도 무학의 이치에 일말의 어긋남도 없었다.

‘아직은, 해볼 만해!’

그렇게 전의를 다지던 그때, 네르하의 귓가에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봐 애송이!

‘왜 부르냐, 이자카르.’

네르하의 목을 감으며 나타난 이자카르가 인상을 구기며 외쳤다.

―답답해서 한마디 한다. 왜 가지고 있는 걸 다 쓰지 않고 본신의 힘만으로 상대하고 있는 거냐? 상대가 그리 만만해 보이냐?

‘으음, 그건 아니지.’

―그럼 뭔데? 내가 보기에 저놈은 확실하게 마왕급이다. 인간이 어떻게 육체의 변질 없이 저 정도의 힘을 지니고 있는지는 내 지식으로도 잘 모르겠다만, 어쨌든 네놈 따위가 건성으로 상대한다고 어떻게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야!

그런데, 네르하가 답지 않게 우물쭈물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래도, 저놈도 칼 하나로 날 상대하고 있잖아!’

―……뭐?

이카자르의 눈이 순간 허무하게 풀리며, ‘이 새끼 무슨 개소리지?’라는 뜻을 내뿜기 시작했다.

‘그, 넌 모르겠지만 저놈은 내 목표 같은 놈이야. 놈과의 차이가 얼마나 좁혀졌는지 맨몸으로 확인하고 싶었다고!’

―아, 그래?

‘그러니까 이건 뭐 병신도 아니고, 라는 눈으로 쳐다보는 건 이제 그만해줄래?’

네르하로선 어느 정도 중요한 문제였다.

과거엔 애초에 일대일 대결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다.

신(新) 중원 10대 고수와 무림 연합의 고수들이 천마의 힘을 빼기 위해 무수히 목숨을 던졌고, 그들이 어느 정도 성과를 낸 뒤에야 싸움이라는 게 성립할 수 있었으니까.

이자카르가 코웃음을 치며 물었다.

―그래서, 차이가 좁혀진 것 같냐?

‘어느 정도는. 내가 강해진 것도 있긴 하지만, 저놈도 옛날 같진 않아.’

천마신공이 골든 글로리의 힘을 얻으면서 기공의 힘 자체가 더 강해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네르하가 보았던 천마신공의 진가는 박투(搏鬪).

팔다리는 물론 머리까지 싸움에 동원하는 전신박투에서 최대한의 진가를 발휘한다.

하지만 아렌은 그런 천마신공을 검술로 개조해 사용하고 있었으니, 과거와는 다르게 약간의 허술함을 엿볼 수 있었다.

‘전과는 다르게 빈틈이 확실히 보인단 말이지.’

확실히 숙련도의 문제에선 천하의 천마라도 피해갈 수 없는 문제인 것 같았다.

다만 그 틈을 찌를 수 있느냐 없느냐는 별개의 문제였지만.

우우우웅!

네르하가 양손에 찬 흑백의 장갑이 밝게 빛난다.

그 모습을 본 아렌이 살짝 혀를 찼다.

“그런다고 변하는 건 없습니다만.”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알겠지.”

“태산과 뒷산의 길이를 굳이 대봐야 아는 겁니까?”

“천하의 천마께서 혓바닥이 매우 길군.”

예전 같았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닥치고 죽이려 들었을 텐데 말이지.

네르하가 자리를 박찼다.

‘영역 전개.’

이전 크라수스를 상대했을 때 사용했던 심상 각인 영역이 다시금 모습을 드러내었다.

‘영역으로 놈의 공세를 방어한 뒤, 순간 화력으로 틈을 찌른다.’

아쉽지만 상대의 속도는 이쪽을 넘어서고 있다.

왜 크라수스가 아렌에게 패하고 유폐되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을 정도로, 일반적인 위력과 속도가 말도 안 되게 빠르다.

“의도가 뻔히 보이는군요. 확실히 저와 제대로 싸우려면 영역을 펼치긴 해야겠죠.”

마치 네르하의 의도에 놀아나 주겠다는 듯, 아렌이 다시 한번 도천파를 날렸다.

“또 당할 것 같냐?!”

공간제어의 힘을 가진 네르하의 영역이 아렌의 도천파를 저지하기 시작했다.

끼긱! 끼기긱!

기분 나쁜 묘한 마찰음이 인다.

아렌이 날린 강기들이 점차 속도가 떨어져 허공에 멈춰서는 진기한 광경이 일어났다.

그런 상황에서, 아렌이 입을 열었다.

“한 가지, 당신에게 충고를 하겠습니다.”

“충고라고?”

“당신이 내 앞에서 그런 영역을 펼친 건… 확실하게 말하죠. 치명적인 실수입니다.”

“……!”

조금씩, 조금씩. 아렌의 도천파가 공간을 비집으며 네르하에게 다가온다.

공간을 제어하는 권능이, 더 큰 권능에 밀려나기 시작한다.

“확실히 이런 영역을 만들어낸 건 당신답지 않은 상당한 기적이긴 합니다. 그 영역은 마법이 아닌 무공 측면에서의 깨달음이 더해진 결과물이겠죠.”

아렌이 검을 겨누며 무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심상(心狀)이라는 건 이런 무기질적이고 공허한 형태가 아닙니다. 검사는 오로지 검(劍) 하나만을 바라보다 보니 심상이 단순하게 변하지만, 고유 계통이라는 다양한 세계를 구축하는 마법사는 사정이 다르죠. 그건 즉, 당신의 영역이 아직 초짜 수준에 불과하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크으으윽!”

네르하는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의 영역이 미완성이라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모든 힘을 끌어냈음에도 이렇게 형편없이 밀리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백령수투를 얻고 출력 자체는 북방 때보다도 훨씬 더 올랐다. 그런데, 왜 밀리는 거냐!’

무엇보다 아렌이 내보이는 힘의 출력이 아까와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 네르하의 굴욕은 더더욱 컸다.

“당신은 크고 위대한 성의 토대를 쌓았지만, 그저 토대만을 쌓은 앙상한 뼈대에 불과할 뿐. 그래서야 이보다 훨씬 작지만 완성된 성보다는 모든 면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콰직!

“설사, 외부의 힘을 빌려와 출력 자체를 높인다고 해도 말이지요.”

영역이, 깨졌다.

“크아아아악!”

―애송이!

공간을 제어하던 의념이 흐뜨러진다. 자연스레 네르하의 몸은 수십 개에 달하는 거대한 강기의 파도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말았다.

네르하의 신형이 아까 전보다 더욱 꼴사납게 나가떨어졌다.

그 일말의 비명을 끝으로, 네르하의 입은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

육체가 한낱 고깃덩이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일격이었으니까.

하지만.

“목숨은 건졌군요. 흑룡이 멋대로 힘을 끌고 와 수호해준 덕분인가요?”

마지막 순간에 이자카르가 자의로 실드를 걸지 않았다면, 네르하는 정말로 두 번째 삶과 하직했을 것이다.

“…….”

그렇다 해도 네르하가 입은 상처가 치명상에 가깝다는 건 부정할 수가 없었다.

상황이 진정되는 기미가 보이자, 키라네이드가 아렌에게 말했다.

“끝났나?”

“네, 끝났습니다.”

널브러진 네르하의 뒷통수를 바라보며 아렌이 씁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조금 도움이 될 줄 알았는데, 이래서야 한참 멀었군요. 네르반에게 잡아먹히지나 않으면 다행이겠죠.”

“그러면 차라리 죽이는 건 어떠냐? 딱 봐도 네놈에게 원한이 깊어 보이는데.”

“으음, 어떻게 할까요?”

아렌은 고민했다.

사실 이 세계에 전생한 지 아직 몇 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걸 고려하면, 네르하의 성장은 매우 훌륭한 편이었다.

아까 했던 말마따나 5년 정도만 흘러도 등을 맡길 수 있는 훌륭한 전력이 될 것은 분명했다.

문제는 네르하에게 5년이란 시간을 줄 만큼, 아렌의 사정이 여유롭지 않다는 점이었다.

‘그냥 죽일까?’

죽이기엔 실력과 재능이 아깝다. 하지만 살려두기엔 분명 언젠가 자신의 발목을 물고 늘어질 것이다.

“비켜라, 그리 고민이 된다면 차라리 내가 하지.”

“뭐, 어쩔 수 없죠.”

아렌이 어깨를 으쓱하며 자리를 비워주었다.

그래도 명색이 전생의 숙적. 가능하면 자신의 손으로 마무리를 지어주고 싶었으나, 도통 손이 가질 않는다.

그렇게 키라네이드가 손바닥에 에너지를 모아 쏘아내려던 찰나였다.

치링!

마법진이 형성되는 소리와 함께, 네르하의 전신에 고위계의 방어마법이 발현되었다.

“……?!”

그리고 어느새, 로브를 뒤집어쓴 괴인이 나타나 키라네이드를 가로막고 있었다.

“너는?”

전조도 기척도 없이 나타난 괴인.

한순간 드래곤들과 아렌의 이목까지 속일 정도라면, 상대의 실력이 결코 범상치 않다는 증거일 것이다.

더 놀라운 건, 아렌이 괴인을 향해 아는 척을 했다는 점이었다.

“이거 놀랍군요. 당신이 이 자리에 나타날 줄이야.”

키라네이드가 아렌에게 물었다.

“아는 자인가?”

아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들도 이름 정도는 들어봤을 겁니다. 꽤 유명인사시거든요.”

휘익!

동굴 내부에 바람이 불며, 괴인의 후드가 벗겨져 나갔다.

그리고, 후드가 벗겨지고 나타난 건, 엎어진 네르하와 똑같은 은갈색의 머리카락이었다.

아렌이 상대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바스텔 로저 라데우스. 은거를 깨고 동생을 구하러 오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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