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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219화 (219/237)

219화

<새로운 질서 (2)>

“전황은? 전황은 어떻게 되었나!”

“원탁의 기사, 베고프 경께서 세력을 추슬러 시나몬 요새에서 수성 중이라고 합니다!”

“그 외 피해는!?”

“근방의 병력을 모두 모아! 지방 기사단에 총출동 명령을 내려라!”

아니나 다를까, 수뇌부들의 상황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 따로없었다.

가주, 마기우스 엘 케프렌의 전사.

그것이 전 대륙에 주는 충격은 절대로 적지 않았으니까.

마기우스가 전사하고 일주일이 지났음에도, 케프렌 수뇌부들의 혼란은 가라앉지 못하고 있었다.

그만큼 가주라는 우두머리의 죽음은 커다랐던 것이다.

“네르하…….”

지렌은 복잡한 표정으로 네르하를 맞이했다.

얼마 전만 해도 마기우스가 전사하리라는 예측을 허황된 소리라며 일축했던 그는, 한동안 네르하를 볼 때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상황은 어떻습니까?”

“모른다. 워낙 혼란스러워서 지금 뭘 물어볼 상황이 아니야. 그나마 귀동냥으로 들은 소식에 의하면, 가주의 사망 외엔 의외로 전체적인 피해는 그리 크지 않다고 하더군.”

“그렇습니까?”

“거의 양패구상에 가까웠던 모양이야. 마기우스 가주와 그 레비아탄이란 놈의 싸움이.”

비그나 성에서 수성으로 일관하던 마기우스가 수마왕 레비아탄과 일전을 벌이게 된 이유는 단순했다.

라데우스 쪽 전선에서 마하를 참패시켰던 마천회의 마족들이 대거 수마왕에게 합류했던 것이었다.

“평지전에서 그 진가를 발휘하는 기사들에게, 그 마족들의 합류는 재앙이었겠지.”

마천회의 마족들이 펼치는 광범위 포격에 마법전력이 모자란 비그나 성의 방어력으론 버틸 수가 없었고, 결국 대안을 찾지 못했던 마기우스 선택했다.

땅을 내주고 후퇴하기보단 수마왕과 일전을 치르기를 결정한 것이다.

그 무모한 선택에 네르하는 살짝 신음했다.

‘원래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선택이지만, 정말 수명 문제가 있었다면 어쩔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군.’

그렇게 마기우스는 수마왕을 가능한 유리한 지대로 유인했고, 양군이 마주보는 가운데에서 결국 일대 결전을 치렀다.

그리고 그 결과는 마기우스의 사망.

다만 그냥 죽지는 않았는지, 수마왕 레비아탄은 양팔과 꼬리가 잘려나가고 눈 한쪽을 잃는 치명적인 중상을 입었다다고 한다.

마족들은 우두머리의 무력화로 서남부전선을 포기하고 크게 후퇴.

그나마 영토에 큰 미련이 없는 짐승들의 군세라 다행이었다.

“더 큰 문제가 있다.”

“여기서 더 큰 문제가 있습니까?”

“이건 바로 몇 시간 전에 들어온 정보인데, 아렌 루 케프렌이 대륙 남부에서 그 마천회라는 마족 놈들과 함께 나타났다고 하더군.”

“…….”

“그리고 그 마족만이 아니라 그들 주위엔 드래곤들이 여럿 발견되었네.”

네르하는 한숨이 나오려는 걸 참았다.

오월동주도 정도껏이지 지금 뭐라고?

“그들은 대수림 안으로 들어가 그곳에 거대한 성을 만들어내고는 그곳을 자신들의 영토라고 선언했어.”

“대체 무슨 생각인지…….”

이미 대륙 남부는 대수림에서 뛰쳐나온 수마왕의 군세로 난장판이나 다름없었다.

케프렌은 우두머리를 잃었고, 라데우스는 이제 곧 후계자 전쟁에 들어가야 한다.

그런 와중에 대수림을 자기 영토로 선언한다고 해도 제재를 가할 여력이 있는 집단은 없었다.

근데 굳이 꼭 선언을 해야 했나?

“마치 쳐들어오라고 도발이라도 하고 있는 것 같군요.”

“케프렌도 상황이 복잡해. 가주는 물론 전대 가주까지 죽은 데다, 후계자로 낙점되었던 놈은 뜬금없이 저런 짓거리를 벌였으니.”

이런 상황이라면 원탁의 기사들 일부가 딴생각을 품고 있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라데우스는 어떻게 할 생각이랍니까?”

“일단은, 아무리 밉다 해도 케프렌을 도와야겠지.”

그나마 지렌에게서 정상적인 대답이 나왔다.

“현재 라데우스와 케프렌은 이와 잇몸의 관계다. 한쪽이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게 될 터.”

단순히 세력 크기의 문제가 아니었다.

라데우스와 케프렌은 ‘국가’가 아니면서도 대륙 전체에 영향을 주는 기형적인 세력.

만약 한쪽이 무너지고 다른 한쪽이 움츠러든다면, 두 가문을 눈엣가시로 보던 제국과 왕국들이 딴마음을 품게 될 가능성도 충분했다.

“이런 상황에선 새로운 가주의 리더십에 따라 상황이 변할 테지.”

“루시아라면 잘할 겁니다.”

“확실히 보통은 아니더군. 그런 거물이 리브라… 그것도 네 그늘에 숨어 있었을 줄이야.”

그 사실을 장로인 자신조차 몰랐다는 게 지금에 와선 조금 허탈할 정도였다.

‘으음, 바로 말해야 하나?’

다만 그런 인연 때문에, 지금 이 말을 꺼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등하고 있는 지렌이었다.

“왜 그런 눈으로 절 보십니까?”

“끄응! 다름이 아니라,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다 보면 두 가문 사이에 혼인 동맹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구나.”

“혼인 동맹이요?”

“그래, 거의 300년 만에 있는 일이지.”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대립해온 가문들인 만큼, 혼인 동맹은 그야말로 백 년 단위로 세야 할 만큼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다.

“나쁘진 않겠군요. 시기가 뒤숭숭하니만큼.”

“문제는 네르하 네가 그 당사자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으니 말이지.”

“……네?”

네르하가 멍청하게 되물었다.

“으음, 그게 말이다.”

마기우스가 전사하기 이전, 그는 루시엘라 엘 케프렌과 네르하 라데우스의 혼인 동맹을 진지하게 입에 담았다고 한다.

“그리고 본가에 알려 추진을 명령했다고 하더군. 상황이 묘하게 변한 탓에 붕 떠버린 모양이지만.”

“어, 어어…….”

네르하는 답지 않게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혼인? 나랑 루시아가?’

전혀 생각해 보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사실 전생에서도 기생이나 좀 후리고 다녔지 딱히 누군가와 혼인해서 가정을 가진 적은 없었다.

“뭐가 됐든 두 가문의 결속을 위해서 필요한 일이긴 하지.”

지렌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녀가 가주가 된 이상 불가능하지만, 상대를 바꾸면 또 불가능한 건 아니다.”

“사, 상대라면?”

“나이대를 생각한다면, 저 아이가 되겠군.”

지렌의 손가락 끝에는, 멍한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아녜스가 있었다.

“어, 음…….”

네르하는 떨떠름하게 아녜스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녜스, 괜찮나?”

“아…….”

아녜스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마기가 사라진 뒤에도 그 후유증은 계속해서 그녀를 괴롭혔다.

특히나 마지막 순간, 예루리의 파편이 마기를 회수할 때 마나가 크게 진탕되면서 내장 기관이 많이 상했다는 게 문제였다.

“아직 회복되려면 일주일은 더 있어야겠군. 다행히 가주 승계식 전에는 회복할 수 있겠어.”

나이우스에게 지배당한 직계들은 당연하지만 루시아가 등극하는 것에 어떤 방해도 하지 못했다.

마기에 지배당했다는 추태를 만인에게 보인 데다, 휘하에 있던 대부분의 세력이 이탈하여 사실상 허수아비나 다름없어진 탓이었다.

“아이러니한 일이지. 외부의 일이 없었다면 흘린 피로만 따지면 케프렌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왕위 계승이 이루어진 셈이었으니.”

지렌이 혀를 찼다.

확실히 케프렌이든 라데우스든, 세대가 교체되고 패권이 넘어갈 때마다 상상을 초월하는 피가 흘렀다.

심할 때는 그 거대한 가문이 흔들릴 정도였으니 지렌의 말은 가히 틀린 것이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제가 혼인 동맹에 나가는 건 좀…….”

“뭐, 그렇지. 안전을 보장받는 대신 후계 자리에 영원히 멀어지는 일이니까.”

진지하게 후계 자리를 노리고 있는 네르하로선 절대로 받아선 안 되는 일이었다.

그때였다.

“잠깐 실례하죠.”

“오, 케프렌의 차기 가주께서 오셨군.”

루시아가 수십에 달하는 호위를 거느리고 이곳에 나타났다.

“아녜스는 어떤가요?”

네르하가 대답했다.

“건강 상태는 나쁘진 않다. 잃어버린 마나는 어떻게 복구하지는 못했지만.”

“다행이군요.”

케프렌에서도 고명한 의사가 많았지만 마기에 관련된 문제는 영 취약한 게 사실이었다.

그런 와중 가주의 허가 아래 합법적으로 마기를 다루는 네르하가 아녜스를 봐준 것이었다.

“그런데, 정말 아녜스만 봐줘도 상관없나? 다른 직계들은?”

“딱히? 그것들이 뭐가 이쁘다고? 목숨을 살려준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해야죠.”

“……확실히 그렇긴 해.”

목숨은 붙여놨지만, 그 이상은 해주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가 느껴진다.

하긴, 그녀의 가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저 진상같은 형제자매들이었으니.

“그래서? 한창 바쁠 때인데 굳이 찾아온 이유가 무엇입니까?”

지렌이 나름 예의를 갖춰 루시아에게 물었다.

그녀가 기록용 수정구 하나를 지렌에게 건넸다.

“라데우스 측에서 사절들에게 메시지가 왔어요. 계승식이 끝나는 즉시 바로 돌아와 줬으면 한다더군요.”

“으음?”

지렌은 의아해하며 수정구를 받았지만, 네르하는 저 메시지의 뜻을 잘 알고 있었다.

지렌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담담하게 수정구의 내용을 읽었지만.

“바, 바스텔이 복귀했다고? 아, 아니, 그것만이 아니라…….”

내용을 읽어나갈수록, 지렌의 표정이 점점 흙빛이 되어가기 시작했다.

“후계 전쟁이라니! 이게 무슨 소리야!”

* * *

“대, 대체 이게 무슨 소리야?!”

비슷한 시기, 지렌과 마찬가지로 라데우스 본가의 메시지를 확인한 마하가 비명을 내질렀다.

“바스텔 이 개자식! 이제 와서 갑자기 튀어나오다니!”

“고, 고정하십시오, 주인님!”

수하들의 만류에도 마하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이게 지금 고정하게 생겼어!? 분명 후계 자리 따윈 관심 없으니 걱정말라고 했던 게 엊그제 같았는데!”

“주인님. 이 이렇게 된 이상 빠르게 분노를 가라앉히시고 할 일을 하셔야 합니다.”

“할 일…….”

“네. 본가는 후계 계승 전쟁을 선포했지 바스텔 님에게 소가주 자리를 넘긴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 그렇지.”

마하는 그제야 호흡을 가다듬으며 화를 가라앉혔다.

“다행히 지금 성에 ‘그분’이 계십니다. 가장 먼저 그분을 구슬려야 합니다. 삼마자의 일각을 얻을 수 있다면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수하가 말한 그 분.

그분의 정체는 엘븐 포레스트의 경비대장이자 차기 삼마자 후보, 셀로미엔 엘마이넨이었다.

“그래, 그녀가 여기 있었지!”

마하는 반색했다.

본래 엘븐 포레스트에만 박혀 있어 전쟁이나 정치 감각이 모자란 그녀는, 류레이아의 적극적인 권유로 남부 지방 일반군의 군권을 잡고 외부 활동을 시작한 참이었다.

그러다가 남부에 터진 전쟁으로 마하와 함께 전쟁을 수행하며 나름의 전우애를 쌓았던 것이었다.

“그녀를 불러! 아니, 지금 상황이면 내가 가는 게 좋겠군.”

자신의 대에 세계수의 수호자가 되는 게 확정인 만큼, 그녀를 얻는 건 장로 하나 이상의 지지를 얻는 것과 같았다.

전력 하나가 아쉬운 마하로선 우연찮은 기회였다.

“무슨 일이십니까, 마하 공녀?”

“아 셀로미엔 경. 내가 못 찾아올 곳에 온 것처럼 말하는군.”

“설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차 한잔 어떠신지요?”

“좋지.”

마하는 아주 친근하게 셀로미엔에게 다가갔다.

자기가 아쉬울 때 궁하게 손을 내밀 정도로 마하는 어리석지 않았다.

마하는 그녀와 합류한 이후 지속적으로 공을 들여왔다.

“후계 전쟁이라, 꽤나 복잡한 일이 벌어졌군요.”

“그렇지. 그래서 말인데…….”

분위기가 살짝 풀어졌다 싶었는지, 마하가 노골적으로 물었다.

“나를 좀 도와주겠는가? 그대가 함께해준다면 정말 큰 도움이 될 거야.”

대놓고 내민 손길을 바라보던 셀로미엔이, 잠깐 고민하는 척하더니 고개를 주억거렸다.

“음, 엘븐 포레스트의 의견은 들어봐야 합니다만, 마하 공녀를 위해서라면야 저 자신의 도움 정도는 얼마든지 드릴 수 있습니다.”

“정말인가?!”

“다른 후계분들은 본 적도 없고, 마하 공녀의 능력은 전부터 봐왔으니까요.”

“고맙네, 정말 고마워!”

마하는 진심으로 기뻐하며 셀로미엔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엘븐 포레스트에 전해줄 정보가 늘겠군.’

이미 엘븐 포레스트가 누구를 선택했는지 알고 있는 셀로미엔으로선, 그저 겉으로 웃음을 지어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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