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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220화 (220/237)

220화

<새로운 질서(3)>

“자, 자. 이리로 오게 경. 내가 좋은 포도주를 가져왔는데 말이야.”

마하는 셀로미엔이 자신의 편이 되기로 결정한 이후부터 정말 지극하게 대우했다.

말하는 것으로만 보면 거의 자기 진영 내에서 2인자 대우를 해주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사실 누군가 마하의 현재 사정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그녀의 이런 절박함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바스텔이 돌아왔으니 장로들이 모두 등을 돌려도 이상할 게 없어! 심지어, 어머니까지도!’

대부인 시엘의 지지 아래 정력적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차기 가주 후보 1위 자리에 올랐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바스텔이란 존재가 없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

그가 돌아온 이상 마하의 세력은 사상누각과도 같았다.

그 누각을 지탱하려면 셀로미엔의 지지는 필수적이었다.

사실 삼마자 중에서도 그녀의 전임자인 류레이아는 특별했다.

그녀는 단순히 엘븐 포레스트의 엘프만이 아니라, 이 대륙에 사는 이종족들 전체를 대표하는 ‘로드’나 다름없는 위치였다.

실질적인 세력을 고려하면 삼마자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발군이었다.

그 후계자인 셀로미엔 역시 차세대 이종족들의 지도자가 되리라는 건 당연한 사실.

마하가 내준 포도주의 향을 음미하며, 셀로미엔은 조용히 그의 말을 경청했다.

“자네와 엘븐 포레스트가 내 뒤를 받쳐준다면, 후계자 전쟁에서의 승산도 그리 나쁘진 않을 걸세.”

“그런데 저희만으로 바스텔 공자를 이길 수 있겠습니까? 제가 아무리 라데우스의 정세에 어둡다지만, 위로는 바스텔 공자가, 아래로는 네르하 공자가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만.”

흠칫!

마하의 눈이 살짝 차가워졌다. 지금 셀로미엔은 네가 숨기고 있는 밑천을 털어놓아 봐라, 이렇게 얘기하고 있었다.

마하가 짐짓 불쾌하다는 듯 투덜거렸다.

“그걸 알면서 내 손을 잡았단 말인가?”

“그걸 아니까 손을 잡은 거죠. 부족한 게 없는 자에게 손을 내밀어 봤자 얻어낼 게 없으니까요.”

그 말은 틀린 게 없었다.

심리적으로 궁지에 몰린 마하는 이 판을 뒤집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내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이번에 네르하 도련님이 케프렌에 가서 매우 큰 공을 세웠다고 하더군요. 무려, 케프렌의 가주를 바꾸는 일에 절대적인 도움을 주었다고 하던가요?”

으득!

마하가 자신도 모르게 이빨을 갈았다.

어떻게 자신에게 군공을 양보하나 싶었더니, 그쪽에 가서 어마어마한 걸 얻어내고 말았다.

그에 비해, 자신은 주워 먹는 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해 이렇게 꼴사납게 패퇴했고 말이다.

“그런 만큼 그분에게 가봤자 먹을 것도 별로 없겠죠. 안 그렇습니까?”

“으으음!”

셀로미엔은 정곡을 찔렀다.

주력도 아닌 놈들에게 동남부 지역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한 마하는, 이대로 성과 없이 돌아가면 정치적으로 나가리 될 가능성이 매우 컸다.

“제가 알기로 이번 후계 전쟁은 영지전과 비슷한 형태로 진행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그렇다면 적어도 숫자 정도는 비슷하게 맞춰 놓아야 하지 않을까요?”

라데우스의 영토 전역을 두고 겨루는 땅따먹기 게임.

물론 지나치게 과열되어선 안 되니 동원할 수 있는 전력은 제한된다.

그렇기에 후계 전쟁에선 장로들의 힘이 매우 중요했다.

라데우스에서 정예라는 자들은 대부분이 장로들의 직속에서 복무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장로들은, 대부분 바스텔 편으로 돌아설 테고!’

특히 마하의 경우가 가장 치명적이었다.

마하를 지지하던 장로들 대다수가, 원래 바스텔의 편에 서 있던 이들을 시엘의 후광을 업고 꼬셔온 이들이었으니까.

“후우, 어쩔 수 없지.”

마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라면 절대로 이런 식으로 자신의 밑천을 내놓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네르하의 약진에 더해 바스텔까지 다시 나타난 지금, 그녀는 심리적으로 상당히 몰려 있었다.

“내가 어머님도 몰래 비밀로 키우고 있는 자들이 있네.”

“놀랍군요. 본가의 이목을 피했다는 소리 아닙니까?”

“자네만 알고 있게. 사실 그들의 존재를 아는 건, 나와 심복들을 포함해서 자네가 고작 5번째니까.”

그야말로 심복 중에서도 마하 본인에게만 충성을 바친 자들만이 그 존재를 알았다.

마하가 아주 조용히 셀로미엔에게 속삭였다.

“암살마법사단. 타나토스(Thanatos). 감정을 거세하고 오로지 목적만을 위해 살아가는 나만의 인형들이지.”

“호오?”

“원래는 계승 전쟁에서 적대적인 성주나 마법사단의 단장들을 상대하기 위해 키워온 아이들이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아무래도 네르하 놈을 암살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군.”

그리고 네르하를 암살한 뒤 그 세력을 흡수하면 충분히 바스텔과도 일전을 치를 만했다.

셀로미엔의 표정이 대번에 떨떠름하게 변했다.

“괜찮겠습니까? 아무래도 그런 금기는…….”

당장 그 금기를 저지르다 파멸한 게 바로 셋째인 아르바 아니었던가?

“자네만 비밀을 지켜준다면 아무런 걱정 없네. 다른 이들은 다 입이 무거우니까.”

생각 같아서는 비밀 유지를 위해 셀로미엔에게 언령의 맹세라도 시키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그렇게까지 하면 엘븐 포레스트가 반발할 확률이 높았다.

“후후, 좋습니다. 앞으로의 일이 참 재밌어지겠군요.”

홀짝!

셀로미엔은 옅은 웃음을 지으며 포도주를 홀짝였다.

“그렇지. 앞으로 참 재밌어질 거야.”

마하 역시 그녀와 마주보며 잔을 기울였다.

하지만 마하는 한 가지 착각을 하고 있었다.

‘무엇’이 재밌어지느냐에 대한 해석은.

두 사람의 의견이, 서로 갈리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 * *

라데우스 본가가 발표한 후계 경쟁은 대륙 전역을 달구었다.

대륙의 많은 세력들이 이번 사태에 대해 여러 의견을 내놓았는데.

“아니 이런 미친놈들이 다 있나?!”

제국의 재상이자 원로원주인 르브론 대공은 라데우스의 발표에 누구보다 분노한 인물 중 하나였다.

“전력을 다해 마족 놈들을 밀어내도 모자랄 판에, 뭐? 후계 전쟁이라고!”

“지, 진정하십시오, 각하!”

주변의 귀족과 부관들이 다급하게 대공을 말렸지만, 그는 되려 더 화를 내며 소리를 내질렀다.

“진정?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나!”

헤르메스에선 허허거리며 신비로운 노인장의 분위기를 풍겼던 그였지만, 아무래도 이번 소식 앞에선 그 강철 같은 평정심을 끝까지 유지할 수는 없었던 모양이었다.

한동안 씩씩거리며 분을 풀던 대공이 간신히 진정했다.

“후우, 그래서? 카이젤 놈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저질렀다고 하나?”

“라데우스 측은 앞으로 전장의 분위기가 한동안은 소강 상태에 이를 거라 했습니다.”

“예언자 납셨군. 그래서?”

“그들도 마기우스 가주의 급사를 보고 느낀 게 많은 모양입니다. 그래서 만약의 일이 터지기 전에 후계 문제를 빠르게 마무리 지으려고 하는 듯합니다만.”

“그러면 좀 평화적으로 했어야지! 이런 때에 전쟁을 벌여?!”

“으아아악! 고정하십시오! 제발 좀!”

서류를 던지며 발광하는 대공의 모습에 부관들이 울상을 지었다.

‘저거 다 정리하려면 또 야근이겠군!’

“후욱! 후욱! 남북 쪽이 번갈아서 속 썩이게 하는군. 이대로 가다간 제국의 예산이 씨가 마르겠어!”

한껏 거들먹거리던 두 놈들이 막상 필요할 땐 발을 빼 버린다.

가주를 잃은 케프렌이야 참작의 여지가 있지만, 라데우스 이것들은 정말로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제국이 동원한 군사만 30만이 넘어! 그것도 몇 년 동안 크고 작은 싸움이 끊이질 않아 군비가 계속해서 나갔다고! 아무리 제국이라 해도 이대로 가다간 파산이야!”

“다행히 남쪽을 점유한 마족들이 그 이상 올라올 생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반역자 아렌 루 케프렌이 대수림으로 숨어버리고 그 마왕조차 거의 재기 불능에 가까운 중상을 입었으니까요.”

부관들의 필사적인 말에 대공의 표정이 그제야 누그러졌다.

“그래, 그건 그나마 다행이지. 평의회 쪽에선 뭐라고 하던가?”

대륙 중앙 평의회.

제국과는 별개로 돌아가는 드래곤들의 정치기관으로, 그들 역시 이번 사태에 깊숙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아직 공식적인 답변은 없습니다. 그들로서도 이번 사태는 여간 당황스러운 게 아닌가 봅니다.”

아렌 루 케프렌이 일부 드래곤들과 손을 잡고 케프렌의 비지에서 무언가 일을 벌였다.

문제는 그들이 일을 벌인 이유가 무엇인지, 그들로선 도무지 알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분명 대수림으로 기어 들어간 것과 연관이 있어.”

노련한 정치가인 르브론 대공은 별다른 정보가 없어도 본능적으로 그 사실을 느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대공은 골치가 아파 오는 걸 느꼈다.

“뭔가 곤란하신 게 있으신가 보군요.”

“누구냐?!”

고혹적인 목소리와 함께 대공의 집무실 가운데 검은 웅덩이가 생겨났다.

그리고 그 웅덩이 속에서 붉은 머리카락의 소녀가 나타났다.

“……마족!”

한눈에 봐도 양쪽 관자놀이를 중심으로 뻗어 나온 저 산양 같은 거대한 뿔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주변에선 난리가 났다.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지? 마법사들은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거냐!”

이곳은 제국의 수도. 그중에서도 황궁과 함께 최고의 보안을 자랑하는 대공 관저다. 당연히 라데우스에서 파견 나온 고레벨의 마법사들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당연히 당당히 정문으로 들어온 것이겠죠?”

챙! 챙!

주변에서 대공을 호위하던 기사들이 빠르게 검을 뽑아들었다.

여기까지 침입한 마족이라면 분명 고위 마족이 분명할 터.

침입한 마족 소녀는 그런 기사들의 모습을 같잖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암살인가?”

의외로 대공의 그 말에 소녀 ‘아스타로스’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라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그럼 세뇌인가?”

“왜 대화라는 선택지는 제쳐두시는 거죠?”

“마족이 여기까지 침입해 놓고 대화를 거론하는 건가?”

“음? 흐음. 뭐, 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럴 수도 있는 게 아니라 그런 거겠지.”

약간의 침묵이 흘렀다.

당연하지만 바깥에선 결계니 호위니 하며 기사와 마법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게 느껴진다.

하지만 여기까지 침입을 허용한 이상 르브론 대공의 목숨은 이미 마족의 손에 반쯤 떨어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지난 뒤.

아스타로스는 깊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하아, 이 몸이 어쩌다가 이런 취급을 받게 된 건지.”

“……??”

대번에 말투가 바뀐 상대의 모습에 대공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아스타로스가 푸념하듯이 말을 토해냈다.

“이 몸은 명색이 마계 백작위에 앉은 몸. 쪼잔하게 인간 따위를 암살하진 않는다.”

“마계 백작!”

생각보다 훨씬 거물의 등장.

장내의 긴장감이 엄청나게 올라간다.

하나 그 와중에도 대공은 평정심을 유지하며 입을 열었다.

“그럼, 정말로 대화를 위해 찾아온 건가?”

“정확히는 거래를 원하는 거지.”

“거래, 라고?”

아스타로스는 아연실색한 대공의 모습에 조소를 지었다.

“그래, 남부에 위치한 마족들의 정보를 아는 대로 모조리 넘겨주지.”

“그 대가는?”

“제국령 내. 라데우스 가문의 영역에 존재하는 모든 성주들에게, 한 인물을 지지하라고 설득을 해줬으면 하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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