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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222화 (222/237)

222화

<라데우스 후계 전쟁 (1)>

하지만 케프렌에겐 약간의 시간만 있으면 충분히 복구할 수 있는 피해였다.

긴 세월 동안 누적된 인프라와 화수분처럼 뿜어져 나오는 인재풀은, 쓰러지고 싶어도 그렇지 못하게 만드는 저력을 가질 수 있게 해주었다.

“1, 2년이라.”

물론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무시할 수 있는 피해라는 건 아니었다.

그 시간 동안 루시아는 다른 곳에 눈을 돌릴 새 없이 가문을 수습하는 데만 전력을 다해야 했다.

찻잔을 만지작거리던 루시아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네르하.”

“그래.”

“가주…… 아니, 이젠 전대 가주님이죠. 그분이, 저와 당신과의 혼인을 추진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나요?”

“…….”

네르하는 살짝 당황했다. 어째서 그녀가 굳이 지난 일을 꺼내 드는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알고는 있었다. 단지 그걸 안 지는 며칠 되지 않았지.”

“그, 그런가요?”

“너와 엮이는 게 불가능하니 아녜스가 언급되더군. 황당해서 참.”

“아, 아녜스, 말인가요?”

루시아는 당황했다. 하지만 곧 그럴 수 있겠구나 하고 납득했다.

아직 20대, 그것도 초중반에 불과한 신임 가주인 만큼, 아직 정치적으로는 원탁의 기사나 전대 원로들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런 상황에서 라데우스와의 불필요한 충돌은 최대한 피하는 게 옳았다.

굳이 마기우스의 말이 아니더라도 가문의 중진들은 혼란스러운 정국을 수습하기 위한 방책 중 하나로, 라데우스와의 혼인 동맹을 적극적으로 몰아붙이고 있었다.

그녀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동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어떻게 생각하긴. 필요는 하다 여기지만 내가 할 수는 없지. 너도 알다시피 내 목적이 뭔지 알잖아?”

“그렇긴, 하죠.”

루시아의 표정이 살짝 밝아졌지만 이윽고 다시 어두워졌다.

그녀가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꺼내었다.

“케프렌으로 오시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어요.”

“……뭐?”

황당해하는 네르하의 시선에 루시아는 다급히 손을 내저었다.

“그! 아, 아니! 만약에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면 말이죠!”

내가 왜 이런 미친 말을 꺼냈지?!

루시아의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입이 주책이라고, 자신도 모르게 본심…… 이라기보단 원했던 바람을 입에 꺼내버린 것이었다.

“나보고 아녜스와 결혼하라고?”

“아녜스, 라기보단…… 그, 조금 더 나은 쪽이 있지 않나, 하고.”

“…….”

“…….”

무시무시한 침묵이 장내에 내려앉았다.

이쯤 되면 네르하도 루시아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를 리가 없었다.

루시아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숙여진 얼굴의 무게가 천 근처럼 느껴졌다.

한참을 침묵하던 네르하가 피식 웃으며 루시아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주변의 가신 중 누군가가 봤다면 감히 가주의 머리에 손을 올리냐며 칼을 뽑았을 장면이었다.

“내 꿈은, 라데우스의 가주가 되는 거야.”

“그렇, 죠.”

루시아의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네르하는 그런 그녀의 모습이 제법 귀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뭐. 기둥서방 같은 것도 나쁘진 않겠군. 정말 일이 대차게 꼬여 버린다면 말이지.”

“아, 에?”

“너는 좀 다혈질인 면이 있으니까. 스트레스가 쌓이다가 폭발하면 주변에서 제동을 걸어줄 사람이 필요하긴 하겠지.”

“그, 그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아니긴. 북방에서 마족 하나를 썰어버리고 아주 상쾌하게 웃더만.”

“……!”

그, 그걸 봤단 말인가?!

분명 마계 백작이자 검은 성자라 불리는 베드리우스의 부하와 일대일 매치를 벌이긴 했다.

나름 주변에서 보지 않았을 거라 생각해서 제 성질을 좀 부려봤는데, 설마하니 네르하가 그걸 봤을 줄이야!

“뭐, 서로 간의 일은 모든 일이 끝난 다음 생각해 보자고. 아직 시간은 많이 있으니까 말이야.”

“그래요.”

루시아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너무 부끄러워서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감정이 드는 와중에도, 루시아의 냉철한 이성은 미래를 계산하고 있었다.

‘모든 일이 끝난 뒤에도, 과연 우리의 입장은 변할 수 있을까?’

자신의 입장이 변하던가 상대의 입장이 변하던가.

둘 중 하나는 확실하게 변해야 관계의 진전을 노려볼 수 있으리라.

루시아는 그렇게 생각했다.

* * *

제국 북쪽 팔라레스트 산맥.

라데우스 직속 교육기관 리브라.

“흐음, 너희들의 요청이 허황된 건 아니나, 너무 성급하다고 본다만.”

학장 루트비히 라데우스는 자신의 앞에 선 세 명의 학생을 바라보았다.

바스톤 페레이라, 알페온 리브레히트, 배커 라데우스.

전원 리브라의 3학년에 재적 중이며 5레벨을 돌파한 학년의 에이스들이었다.

특히 배커와 바스톤의 경우, 사실상 6레벨의 초입에 들어서 본가에서도 초특급 루키로 주목하고 있었다.

배커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서며 외쳤다.

“이제 곧 본격적으로 후계 전쟁이 시작될 거라 들었습니다.”

“그렇지.”

“그분의 수하로서 어찌 이걸 지켜만 보고 있겠습니까? 미약한 힘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으음.”

루트비히는 세 명을 번갈아보았다.

바스톤 페레이라는 흔치 않은 마법사형 탱커로서 집단전에선 레벨 이상의 가치를 발휘할 수 있었다.

알페온 리브레히트 같은 경우엔 솔직히 개인의 실력은 그다지 특출난 게 없지만, 뒷배경으로 둔 가문의 이름값이 대단했다.

라데우스의 동맹 중에선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세력이니만큼 네르하에게 이것저것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배커 라데우스?”

“말씀하시죠, 학장님.”

“내가 알기로 자네 부친은 바멜 라데우스의 가장 큰 후견인일 텐데, 이렇게 멋대로 행동해도 되겠나?”

그 물음에 배커는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듯 피식 웃었다.

“제가 네르하 놈에게 빌붙으면 아버님께선 되려 좋아하실 겁니다. 학장님께서 그걸 모르시진 않으실 텐데요?”

루트비히는 선선히 인정했다.

“뭐, 그렇겠지.”

라데우스의 방계 중에서도 큰 세력을 지닌 길레드 라데우스는 방계 중에선 상당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미 북방의 일로 바멜 라데우스는 끝났습니다. 아버님께서도 그럴싸한 명분만 있다면 바로 다른 곳으로 갈아타실 테죠.”

“그게 바스텔이 아닌 네르하인가?”

“제가 바스텔 님의 소문만 들어 그분의 진면목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배커의 눈이 무언가 열망과 함께 번뜩였다.

“그 빌어먹을 개자식이 바스텔 님에게 뒤떨어진다 생각하진 않습니다.”

“푸흐흐, 네르하가 참 재미있는 수하… 아니, 악우를 사귀었군.”

수하라는 말에 배커의 얼굴이 급격히 일그러지자, 루트비히는 어깨를 으쓱하며 그 말을 정정했다.

루트비히가 살짝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다.

“그래, 조기 졸업이라. 리브라 역사에 없던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엄연한 특혜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지.”

그 말에 배커가 입꼬리를 뒤틀었다.

“학장님께서도 네르하 녀석의 편이잖습니까? 알게 모르게 도움을 주신 적이 많으신 것 같은데요?”

“그렇긴 하지. 하지만 그것들은 내가 숨길 수 있는 종류의 것이었고, 이건 확실하게 본가의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는 혜택이다.”

5레벨.

분명 이 세 명은 졸업에 대한 최소한의 커트라인은 넘었다.

그리고 알페온을 제외한 두 명은, 남은 1년을 계속 리브라에 보낸다고 해도 큰 진전은 무리일 것이다.

그걸 고려하면 조기 졸업을 시키는 것도 크게 이상할 건 없지만…….

“본가의 분위기가 거칠게 돌아가는 지금, 뒷말이 없으려면 적어도 졸업시험 정도는 봐야겠지.”

“졸업시험…… 이라고 하시면?”

“꽤나 어려울 게야. 일반적인 시험보다 더.”

“그 정도는 각오하고 있습니다.”

“졸업시험도 통과하지 못하면 형님에게 도움이 될 리가 없죠.”

그들은 모두 각오를 다졌다.

루트비히는 기특하다는 듯 얇게 웃었다.

“좋아, 바로 준비하도록 하지.”

세 명의 졸업시험은 일반적인 시험과는 완전히 다른, 루트비히가 특별히 준비한 ‘시련’이 될 것이다.

솔직히 현재의 네르하에게 도움이 되려면 어지간한 실력으로는 발목만 잡을 뿐이었으니까.

“아, 그리고.”

루트비히가 구석에서 조용히 있던 푸른 머리의 여인에게 시선을 돌렸다.

“자네는 해고일세.”

“…….”

여인, 클로이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애초에 그만둘 작정으로 찾아온 거긴 한데, 대접이 너무하시는 거 아닌가요?”

“왜, 내가 못할 말 했나?”

“적어도 명예퇴직 정도는 인정해 주셔야 하지 않을까요?”

명색이 고위 마법사인데 대접이 너무 박하다!

“근속 연수가 안 돼서 무리일세. 그리고 교수 일은 제대로 하지 않고 북방 인근에서 수작질이나 부리고 있었으니, 딱히 대접해줄 필요성도 느끼질 못하겠고.”

클로이아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네르하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북방의 경계도시 아르지엔 인근에서 여러 일을 꾸미긴 했었다.

“그리고…… 자네도 말일세.”

클로이아의 옆에는 팔짱을 끼고 있는 노년의 거한이 있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군.”

노인, 시저 루드벡이 씨익 웃음을 내지었다.

“제자가 싸우는데 스승이 돕지 않는다면 스승 실격이지.”

애들 싸움에 어른이 나서는 건 부끄러운 일이지만, 다 큰 어른이 같은 어른들과 싸우는데 나서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런 혼란기에 자네가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반대할 이는 없겠지.”

삼마자의 일각이 불안한 지금, 시저 루드벡의 합류는 오히려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었다.

루트비히가 시저와 클로이아를 번갈아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삼마자가 사마자를 넘어 오마자(五魔子)가 되겠구만.”

류레이아 엘마이넨.

머르딘 르 페이.

마기온 트라시스.

대륙을 진동시킨 8레벨의 대마법사들.

기본적으로 라데우스의 내부 정치엔 배제된 이들이었지만, 사실 참여하고자 한다면 못할 것도 없었다. 명분이야 만들어내면 그만이니까.

무엇보다 삼마자들은 후계 전쟁에 대비해 자신들만의 직속 수하들을 꾸릴 권리마저 있었으니 이럴 때는 정말로 장로 이상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게 가능했다.

시저 루드벡이야 전쟁용병으로 구르며 명왕이라 불린 자타공인의 실력자.

클로이아 역시 아직 온전한 8레벨에는 이르진 못했지만, 여전히 북방에서라면 삼마자들과 비교해도 크게 밀리지 않는 서리 일족의 대표였다.

“마기온은 당연히 바스텔에게 붙겠지만, 8레벨에 준하는 대마법사 다섯이 함께한다면…… 솔직히 승산이 없는 것도 아니겠군.”

“응? 다섯 명?”

시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과 클로이아, 그리고 엘븐 포레스트의 셀로미엔까지 세 명. 그럼에도 두 명이 더 붙었다는 건…….

루트비히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나와 머르딘도 함께할 거다.”

“……!”

은연중 네르하를 지원하던 루트비히야 그렇다 치더라도, 지금껏 절대 중립을 표방하던 머르딘까지 합세했다고?

“크, 크큭, 크크크큭!”

시저는 자신의 얼굴을 가리며 웃었다.

지금은 그 야성이 수그러들었다고는 하나, 과거 그는 누구보다 앞장서서 적의 피를 탐미하던 자.

그것도 지독하게 재미없는 마족들과의 싸움이 아닌, 경지에 오른 마법사들의 전쟁이었다.

“정말로, 정말로 재밌겠군.”

“레이첼 선배도 껴주세요. 도움이 될 겁니다.”

“그래, 그녀도 나름 시저의 후배 격인 전쟁마법사. 나름 도움이 되겠지.”

루트비히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로젤리아와 네슬렉에게 연락을 넣지. 지금쯤 아주 죽을 맛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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