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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가문의 무신이 되었다-223화 (223/237)

223화

<라데우스 후계 전쟁 (2)>

루트비히의 말마따나, 네르하의 친모 로젤리아와 장로 네슬렉은 고통스러운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이, 이 신의도 없는 작자들!”

주먹과 이빨이 부르르 떨린다. 평소 냉철하게 일처리를 그녀가 이렇게 감정을 드러낸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에 대한 방증이었다.

그녀의 옆에서 팔짱을 낀 네슬렉이 조용히 말했다.

“어쩔 수 없소. 애초에 철새 같은 이들이었으니 철새 같이 떠난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으니까.”

그나마 로젤리아에 비해선 겉으론 이성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네슬렉 역시 속으로는 조금만 건드려도 폭발할 활화산 같은 상태였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 망할 개자식들의 마음을 어떻게든 되돌려야죠!”

그 개자식들이란 아르바가 죽은 뒤 네르하에게 붙은 베르돈과 더글라스, 두 장로를 일컬음이었다.

“늦었소. 그들은 대놓고 척을 질 생각으로 떠났으니.”

베르돈과 더글라스. 그들은 로젤리아의 금전적인 지원으로 북방에서 잃은 세력을 상당 부분 회복하고 있었다.

원래라면 네르하를 든든하게 뒤받치며 활약해야 할 두 사람이었지만, 바스텔이 복귀 선언을 하자마자 모든 줄을 잘라내고 전향해버린 것이었다.

거기다 뻔뻔스럽게도 지금까지 얻어먹은 것들을 고스란히 챙기고서 말이다!

“두 사람에게 지원 중이던 자금줄 몇과 하부 조직들의 소식이 끊겼소. 이제 우리가 파멸하든 저들이 파멸하든 둘 중 하나의 미래만이 남았을 뿐.”

“그런 도둑놈들이 어찌 라데우스의 장로 자리에 있단 말입니까!”

로젤리아는 울화가 차서 외쳤다. 그들에게 들어간 돈과 자원이 한두 푼이 아니었다. 게다가 짧은 시간 동안 세력을 회복해야 하니 더더욱 많은 돈이 들어갔다.

“이대로는 승산이 없습니다. 특히 마하 공녀가 힘을 보태기라도 했다간…….”

그렇게 되면 무슨 짓을 해도 이길 수 없다.

그 참담한 미래가 아른거리자 로젤리아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그러지는 않을 거요.”

네슬렉이 고개를 저었다.

“마하의 야심은 바스텔이 돌아왔다고 해도 꺾일 수 있는 게 아니지. 1인자의 자리를 포기하고 굴복하느니, 설사 모든 걸 잃고 침몰하더라도 도박수를 던지는 게 바로 마하라는 존재요.”

바스텔이 은거하지 않고 멀쩡히 존재했을 때도 마하는 자신의 야심을 숨기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나마 승산이 있는 거지.”

로젤리아는 불안한 눈빛으로 네슬렉을 바라보았다.

사실 그녀는 네슬렉 역시 바스텔 편으로 갈아타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조심스레 품고 있었다.

하지만 네슬렉은 갈아타기는커녕 더더욱 열의를 불태우며 네르하의 승리를 위한 전략에 몰두했다.

그 의리는 분명 고맙긴 했지만… 가끔은 그 모습이 피를 탐하는 광인처럼 보여 불안불안할 때가 있었다.

네슬렉이 보이는 광기가, 적은 물론 아군까지 피로 적실 것처럼 보였던 것이었다.

“마님! 네르하 도련님께서 도착하셨다고 합니다!”

“……! 바로 나가겠다 전하세요!”

네르하의 귀환에 로젤리아의 표정이 환해졌다.

과거엔 변변찮고 미덥지 못했던 아들이었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자랑스러운 자신의 아들이었다.

그야말로 버선발로 마중 나온 로젤리아의 모습에, 네르하는 속으로 쓰게 웃었다.

“어서오세요, 네르하! 케프렌에서의 활약은 들었습니다! 정말 고생했어요!”

“감사합니다, 어머님.”

“어디 아픈 곳은 없죠? 일단 의사와 신관들을 불렀는데…….”

“괜찮습니다. 딱히 다친 곳은 없으니까요.”

네르하는 손을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간만에 뵈었으니 회포를 풀어야 하겠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아, 그, 그래요!”

멋쩍어하는 로젤리아를 뒤로 하고, 네르하가 네슬렉에게 시선을 돌렸다.

“현재 상황은 어떻습니까?”

“최악이지. 라데우스 전체의 절반 이상이 바스텔에게 붙었으니까.”

본가에선 이미 계승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았는데도 바스텔의 승리를 점치고 있었다.

“사실 이것도 나은 거다. 원래라면 싸움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을 테니까.”

“방도는 있습니까?”

“당연한 걸 묻는군. 이 상황을 역전하려면 방법은 단 하나뿐이지 않느냐?”

네르하는 훗, 하고 웃었다.

“뭐, 그렇겠죠.”

“중요한 건 순서다. 가능한 이탈자 없이 전부 손에 넣어야 한다.”

로젤리아는 두 사람의 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았다.

현재 상황에서 도태된 거나 다름없는 라데우스의 다른 직계들. 그들이 품고 있는 세력을 모두 휘하에 넣어야 한다는 소리였다.

“정석적으로는 바멜과 세티안이겠지.”

북방에서의 일이 끝난 후, 바멜과 세티안 남매는 사실상 후계 경쟁에서 도태되었다.

그들이 세운 공이 적지는 않았지만, 문제는 네르하가 너무 높게 비상한 탓에 상대적으로 가려져 버린 탓이었다.

원래라면 가장 세력이 적은 그 두 사람을 흡수하는 게 정석이겠지만…….

“아뇨, 그 전에 먼저 찾아가 봐야 할 이가 있습니다.”

“응? 누구?”

“지금 상황에서 가장 불만이 많은 사람이겠죠.”

“마하 말이냐? 하지만 마하의 세력은 여전히 강대하다. 가장 나중에, 세력을 충분히 불리고 나서 찾아가야 된다고 생각한다만.”

“아뇨, 마하 누님 말고, 한 분이 더 있지 않습니까?”

“아!”

네슬렉은 탄성을 내질렀다.

존재감이 워낙 약한 탓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지만, 확실히 순서를 따지자면 가장 먼저 손에 넣어야 할 인물이 있었다.

라데우스 가 차남, 루드빅 라데우스.

“지금쯤이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겠죠. 루드빅 형님이라면 제가 내민 손길을, 거절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 * *

며칠 뒤.

라데우스 가문에선 대대적으로 후계 전쟁에 대한 사항을 대륙 전체에 공표했다.

이전엔 내부자나 협력 관계, 혹은 자격이 있는 일부 가문들에게만 미리 통보한 것이라면, 이번엔 대륙 전체에 대대적으로 알린 것에서 차이가 있었다.

“젠장, 젠장, 젠장!”

많은 이들이 기대와 긴장감, 그리고 걱정에 쌓여 있을 때, 다른 이들과는 조금 다른 감정을 내뿜는 한 존재가 있었다.

루드빅 라데우스.

라데우스의 차남이자 연공 순서로는 세 번째. 충분히 대권을 노릴 수 있는 서열이었다.

하지만 세간의 평은 루드빅 라데우스를 차기 가주 후보라 생각하지 않았다.

죽은 동생인 아르바 라데우스보다도 가능성이 낮다 여겼다.

마하처럼 정력적으로 활동하지 않았고, 아르바처럼 음습한 계략으로 세력을 불리지도 않았다.

아주 조용한 은자. 그게 루드빅을 향한 일반적인 시선이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바깥의 시선일 뿐, 루드빅은 나름 야심을 가지고 철저히 대권에 도전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물밑에서 장로들을 설득하고, 여러 전투 마법사단의 단장들을 직접 찾아가 충성 맹세를 다짐받았다.

다가올 마하나 아르바와의 싸움에서 승산을 재며, 아주 조용히 때를 기다렸다.

…바스텔이 복귀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죄다, 죄다 배신자들뿐이야! 내게 충성을 맹세해 놓고, 바스텔이 튀어나오니까 손바닥 뒤집듯이 배신하고!”

콰창! 콰직!

“빌어먹을! 빌어먹을 새끼들!”

루드빅은 주변 집기들을 부수며 분노를 토해냈다.

사실 다가올 때를 대비해 루드빅이 모은 전력은 절대 적지 않았다.

빈틈을 노리면 마하와 붙어도 할만하다고 자부할 정도였다.

하지만 물밑에서 그가 조용히 포섭한 세력들은, 바스텔이 복귀하자마자 물밑에서 조용히 흩어지고 말았다.

강력한 카리스마로 수하들을 휘어잡은 마하는 사정이 나았지만, 루드빅은 그런 것조차 없었다.

세력이 단숨에 반의반 이하로 깎여 버렸다. 이래서는 뭘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루, 루드빅 도련님.”

“뭐냐?! 내가 들어오지 말라고 했을 텐데!”

시녀는 루드빅의 분노에 두려움에 떨며 필사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네, 네르하 도련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뭐? 그 자식이 왜?”

“그, 그것은 저도 잘… 딱히 방문 목적을 밝히시진 않았습니다.”

“…….”

잠깐 생각에 잠겼던 루드빅이 화를 가라앉히며 말했다.

“데리고 와.”

몇 분 뒤, 시녀의 안내에 네르하가 나타났다.

네르하는 주변의 처참한 광경을 보며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심리적으로 많이 몰려 있군.’

루드빅은 아르바 이상으로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고, 행동거지조차도 조심스럽게 활동하는 유형이다.

그런 그가 아무리 자기 집무실이라고 해도 이렇게 난장판으로 만들었다는 건, 그만큼 몰려 있다는 뜻.

뭐, 자신의 심리 상태를 넌지시 알리려고 연기를 했다는 쪽도 가능성이 있었지만, 네르하는 루드빅이 그 정도까지 심계가 깊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만한 인재라면 뭐가 됐든 북방에서 뭔가를 이루어냈을 테니까.

“방이 많이 어지럽군요, 루드빅 형님.”

“찾아온 용건이나 말해라 네르하.”

그 말에 네르하는 맞은편 쇼파에 털썩 걸터앉았다.

손 아랫동생의 무례에 루드빅의 눈가가 살짝 일그러졌다.

“급하신 모양이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죠.”

네르하가 검지를 들어 루드빅을 가리킨 후.

그대로 아래쪽으로 꺾어 바닥을 가리켰다.

“제 밑으로 들어오시죠, 형님.”

“미친놈.”

루드빅은 마력을 일으켜 그대로 네르하를 향해 쏘아버렸다.

콰과과광!

* * *

“시작됐군요.”

루드빅이 날린 마법의 여파로, 저택의 한 귀퉁이가 완전히 박살났다.

그리고 흙먼지 사이로 분노한 루드빅이 네르하를 거칠게 몰아치는 모습이 드러났다.

로젤리아가 네슬렉에게 걱정스럽게 물었다.

“너무 날뛰면 외부지원국이 개입할 수도 있을 텐데, 괜찮을려나요?”

“그 안에 제압해야지. 네르하 녀석도 그만한 자신감이 있어서 시비를 건 것일 테니.”

“하지만 조금 걱정이 됩니다. 굳이 동맹이 아니라 복속을 선택하다니. 아무리 몸을 꺾어도 마음까지 꺾이진 않을 텐데요.”

사실 루드빅 정도면 대등한 동맹으로서 대우해줄 가치가 있었다.

하지만.

“자넨 뭔가 착각을 하고 있군.”

“네?”

“애초에 라데우스 직계 후계 중에서 대권에 관심이 없는 건 천성이 게으른 레티안 하나뿐이야. 나머지 놈들은 카이젤의 핏줄을 제대로 타고난 것들이지.”

“…….”

“제왕이 되거나 죽거나. 그게 아니면 강제로 굴복하거나. 라데우스 직계들의 결말은 언제나 한결같았지. 절대 진심으로 숙이는 법이 없어.”

‘그 결말을 뒤바꾼 분이 할 말은 아닌 것 같네요.’

로젤리아는 그 말을 하려다가 꾹 참았다.

눈앞의 존재는 가주와 싸우고도 살아남아 장로의 자리까지 차지한, 그야말로 예외 중의 예외였으니까.

“물론 동맹으로 대우해줄 수는 있지. 하지만 그건 입장이 비슷할 때나 이야기지. 솔직히 마하를 제외하면 다 고만고만한 놈들이야.”

“그래도 루드빅 공자 정도면…….”

“이봐, 이봐. 마음에도 없는 말 하지 말라고.”

네슬렉이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시엘의 소생이 네 자식에게 굴복하는 모습을 누구보다 원하고 있지 않나? 한평생을 그 모습만 상상하며 지내왔을 텐데?”

“…….”

“거봐. 지금도 입꼬리가 들썩거리고 있잖나.”

로젤리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가를 매만졌다.

네슬렉의 말대로,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양 입가가 살짝 올라와 있었다.

“……아아.”

그 말대로였다.

사실 기대를 한 건 네르하가 아닌 네이하였지만, 그 생각이 바뀐 지는 제법 오래되었다.

로젤리아는 자신의 옆에 다소곳하게 있는 네이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네이하, 잘 보세요. 저게 바로, 라데우스의 가주가 될 자격이 있는 자의 싸움입니다.”

“…….”

네이하는 멍하니 저 멀리서 벌어지는 두 후계의 싸움을 바라보았다.

이전 자신을 제압했던 네르하의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다만 그때는 워낙 순식간에 당해 그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피부로 느끼기가 힘들었다.

그때는 그저 압도적이라고 느꼈지만, 지금은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저게, 정말로 내가 알던 네르하 오라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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